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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 루카 복음 6,39-42 그때에 39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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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福音)은 복된 말씀, 기쁜 소리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내가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복음을 선포한다는 것 자체가 사명이고 의무이며 직무라는 뜻입니다. 사명이기 때문에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하고, 의무이기 때문에 선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며, 직무이기 때문에 삶으로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복음을 전하되,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는 것처럼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져 버리기 때문이지요. 눈먼 이는 곧 위선자이고, 그리스도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이며, 불신하는 자들입니다. 만일 위선자가 아니라면 사람들에게 주님을 제대로 증언하고, 말씀을 그대로 실천합니다. 그러니 주님의 말씀을 전하려는 사람은 먼저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 * * * *
교만의 안경을 벗고
신부가 되고 이제는 선생님 노릇을 하다 보니 알게 모르게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갓 태어난 아기에서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정말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고, 직업도 다양한 사람들을 수시로 만나게 된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물론 여러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겠지만 내 처지는 좀 다른 것 같다.
사람들은 대부분 나를 만날 때 뭔가 얻어가길 바란다는 것이다. 하는 일이 이렇다 보니 문제가 있을 때는 그 해결책을, 위로받을 일이 있으면 위로받으려고 나를 찾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그런 사람들을 위해 작은 보탬이 되고자 노력한다. 그런데 이런 나의 순수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퇴색되는 것을 느꼈다. 나를 찾는 이들한테 점점 내 생각을 주입시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선생님이 되고 나서 이런 내 모습을 확실하게 보게 되었다. 내가 뭐 더 배운 것도 없고, 더 많은 상식을 갖고 있는 것도 전문가도 아닌데, 마치 다 알고 있는 전문가인 듯한 인상을 품기면서 말하는 내 모습에 깜짝 놀란다. 내가 가진 능력과 수준을 생각하지 않고 얕은 지식으로 남을 가르치고 위로하려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교만에 부끄러워질 때가 많다. 그런데 이런 내 모습을 부끄러워하면서도 같은 상황이 생기면, 나는 내 눈에 있는 들보는 못 보면서, 남의 눈에 있는 티를 빼 주겠다고 또 열심히 덤벼든다. 언제쯤이면 이런 교만의 안경을 벗고, 겸손함의 안경을 쓸 수 있을지 고민이다. 이석재 신부(안법고등학교 교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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