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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마귀의 영이 어떤 사람 안에서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하고 크게 소리를 지릅니다. 마귀 들린 사람이 어떻게 회당에까지 들어오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도 나서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 더러운 마귀의 영을 쫓아내시고, 그 사람을 마귀의 손에서 구해 주십니다.
마귀는 누구입니까? 마귀는 하느님의 일을 방해하고, 하느님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으며,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간질하고, 사람과 자연 사이를 단절시키는 못된 세력입니다. 신앙 공동체가 주님 안에서 하나 되지 못하고 서로 갈라질 때, 거기에는 분명히 못되고 더러운 마귀의 세력이 판치고 있는 것입니다. 서로를 믿지 못하고 증오하고 사랑을 나누지 못한다면, 우리 가운데 마귀가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 마귀는 ‘나’일 수도 있고, ‘너’일 수도 있습니다. 혹 나에게 공동체를 이간질시키는 못된 습성이 있다면, 그 ‘나’가 바로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사람일 수 있기 때문에, 언제나 깨어서 주님의 이끄심에 충실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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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말씀의 권위는 성령의 힘입니다
◆‘권위적 · 권위주의’ 라는 단어는 권위 (權威) 의 의미를 왜곡합니다. 권위는 ‘남을 지휘하거나 통솔하여 따르게 하는 힘’, ‘일정한 분야에서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위신, 또는 그런 사람’ 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권위에는 사람과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내적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권위적 또는 권위주의는 ‘권위라는 이름만 내세우는 것’ 을 의미합니다. 권위가 그렇게 왜곡되는 것은 권위를 권력으로만 보고자 하는 사람의 습성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다.’ 는 의미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는 뜻입니다. 예수님 말씀의 권위는 인간의 권력 (權力) 이 아닌 성령 (聖靈) 의 힘입니다. 그 힘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는 더러운 영을 정화합니다.
그 권위는 우리한테도 있습니다.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영이 우리 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말과 행동에 권위가 없다면 그것은 우리의 말과 행동이 권력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우리의 말과 행동에 권위가 있다면 그것은 성령의 은사입니다.
지금 우리의 말과 행동을 묵상했으면 합니다. 그 안에 권력이 있는지, 아니면 권위가 있는지. 그 안에서 사람의 힘이 있는지, 성령의 은사가 있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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