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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대장은 이방인입니다. 이방인인 그가 주님께 자신의 병든 종을 살려 주십사고 청원합니다. 사람들은 그에 관하여, 백인대장은 비록 이방인이지만,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하고, 회당도 지어 주었다고 상당히 우호적으로 말합니다. 그 말을 들으신 주님께서 그들과 함께 그의 집으로 향하는 도중, 백인대장이 친구들을 보내어 주님께 아룁니다.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주님께서는 백인대장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종을 낫게 해 주십니다.
백인대장의 청원은 참으로 유명한 신앙 고백입니다. 교회는 오늘날에도 백인대장의 신앙 고백을 전례 안에서 바치고 있습니다. 영성체 때 우리는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라고 기도합니다. 얼마나 겸손되고, 얼마나 정성스러운 신앙 고백입니까? 우리 또한 날마다 성체성사 안에서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실 때마다 백인대장의 신앙 정신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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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임수와 믿음
제가 어렸을 때 데이비드 카퍼필드의 마술을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자유의 여신 상을 옮기고, 만리장성을 맨몸으로 통과하는 그의 마술은 저에게 세상에 대한 경이로움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저는 그의 마술이 진짜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어른이 된 뒤로 그것에 어떤 속임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저는 더 이상 믿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텔레비전에서 마술을 보면 신기하긴 하지만 그것이 진짜라고 믿지는 못합니다. 모든 마술에는 속임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야기를 몰랐다면 믿을 수도 있겠지만 알고도 믿기는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제가 있는 수도원의 어떤 신부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내가 나중에 죽어서 천당에 갔는데, 예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부처님이 계신다고 하더라도 나는 지금 이 삶에 후회가 없어.” 저는 이 말씀을 듣고 의아했습니다. 만일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우리가 믿어온 예수님은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전락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신부님께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여쭈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제 물음에 한 마디로 대답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까지 예수님 때문에 정말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아올 수 있었거든.”
제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어떤 것인가 생각해 봅니다. 저는 예수님에 대해서 데이비드 카퍼필드의 마술처럼 속임수가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저는 그 신부님처럼 믿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그 신부님께서 저에게 보여주신 그 행복은 속임수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김동욱 부제(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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