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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생명이 있거나 없거나 간에, 세상에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그분에게서 오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분은 세상의 모든 것의 모든 것이시며, 아버지이십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은 끝에 가서는 모두 그분께 되돌아갑니다. 그런데 유독 인간만이 그분께 돌아가지 않으려 하며, 그분의 뜻에 따르려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인간을 그저 바라보고만 계시지 않으십니다. 그저 멸망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몸소 부르시고 찾아오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때가 차자 당신의 외아드님을 인간에게 보내십니다. 그것은 당신의 아드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아드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신 이유는,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드님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당신 사랑의 표현입니다. 거룩하신 아드님께서 지고 가시고 못 박히신 십자가는 곧, 인간을 위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내어놓으실 수 있는 아버지의 대자대비하신 마음의 발로(發露)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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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심판하는가
얼마 전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들썩들썩했습니다. 이번 월드컵은 유난히 더 많은 논쟁거리를 낳았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심판들의 오심 논란이 여느 월드컵 때보다 더 치열했던 것 같습니다. 축구 경기에서 심판이 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경기 규칙을 양 팀에 공정하게 적용하는 것이고, 둘째는 선수들이 큰 부상을 입지 않도록 선수들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심판이 이 두 가지 임무에서 균형을 잘 잡는다면, 선수들은 다치지 않고 서로 공정하게 경기를 할 수 있고, 관객들은 만족스럽게 경기를 관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수들이 경기 규칙을 어기면 심판은 그에 합당한 처벌을 내립니다. 경고가 주어질 수도 있고 심하면 퇴장까지 당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구약시대에 하느님의 심판은 율법에 따른 보상과 처벌을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상을 받을 사람에게 상이 주어지고, 벌을 받아야 할 사람에게 벌이 주어지는 것이 공정하신 하느님의 정의였습니다. 바리사이들이 하느님께서 주신 율법을 엄수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 곧 하느님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 생각을 바꿔놓으십니다.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온 것이다.’ 우리의 잘잘못을 따져 상과 벌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하러 온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심판하시지 않는데, 정작 심판하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닌지 생각하게 되는 하루입니다.
김동욱 부제(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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