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이 조금 급한 선배 사제가 본당에서 겪었던 일 가운데 하나를 들려주면서 자신의 편견과 오해에서 빚어진 잘못을 겸손하게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본당 수녀님에 대한 편견과 오해로 스스로 강론 시간에 힘들었던 경험이었습니다.
그 본당에는 미사 강론 때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귀를 기울이는 신자들과 달리, 늘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수녀님이 계셨답니다. 그 모습은 강론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아니면 강론 내용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해 보였습니다. 그러한 수녀님의 모습이 눈에 띌 때마다 선배 사제의 마음은 좋지 않았고, 급기야 화까지 치밀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기회를 엿보아 수녀님께 꼭 지적하리라고 마음먹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레지오 마리애 회합에 강복을 위하여 들어갔다가 수녀님의 훈화를 듣게 되었는데, 그 내용이 그날의 강론을 간추린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수녀님은 늘 그날의 강론을 요약하고 거기에 조금 보충한 내용으로 훈화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수녀님이 강론 시간에 고개를 숙였던 것은 그 내용을 하나하나 받아 적으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동안 선배 사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였던 것입니다. 작은 편견 하나가 다른 이의 좋은 점을 발견하지 못하게 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자렛 사람들도 예수님에 대한 편견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고향 회당에서 지혜의 말씀을 들려주시지만 그들은 예수님 안에 묻혀 있는 보물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편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직업과 가문이라는 지극히 세속적인 편견에 사로잡혀 예수님의 참모습을 바라보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습니까? 어떤 편견과 세속적인 기준에 사로잡혀 그들 안에 묻혀 있는 보물을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