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와 그 자매들

2005. 8. 18. 오후 1:49:53

글자

 

 

 

앤. 배리 율라노프 공저, 이 재훈 옮김, 신데렐라와 그 자매들, 한국심리치료연구소

 

<신데렐라와 그 자매들>, 제목이 마음을 끌었어요.

으흠~ 재밌을 것 같은데~~~~  부제가 `ㅡ인간의 시기심ㅡ'이라 붙어 있었어요.

 

`시기심'이라?

내 성격유형의 근원적인 죄가 `선망'아라 했는데,  그래 한 번 맞닥뜨려 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역자가 서문에서

<신데렐라와 그 자매들>은 인간의 시기심에 대한 깊은 통찰을 주는 책으로서, 제 1 부에서는 시기심에 대한 심리학적 성찰을, 제 2 부에서는 시기심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이 지닌 흥미로운 점은 딱딱한 학문적인 접근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동화 신데렐라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으로 재미있게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그 내용이 범상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진지한 독자라면 누구든지 독서의 즐거움을 만낏할 수 있는 책

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서론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신데렐라 이야기는 그 어느 이야기보다 인류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동화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일찍이 사랑하는 어머니를 여읜 신데렐라와 성질이 고약한 계모, 못생기고 심술궂은 이복 자매들, 항상 출타 중인 아버지, 신데렐라에게 아름다운 의복과 멋진 유리구두를 주고 생쥐로 만든 마부와 호박으로 만든 황금 마차에 신데렐라를 태워 왕자의 연회장에 가게 해주는 신비로운 할머니, 그리고 신데렐라를 구출하는 왕자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신데렐라의 이야기는 17세기 후반에 살았던 찰스 페롤트 (Charles Perrault)의 작품에서 유래된다. 찰스 페롤트의 신데렐라와 비슷한 동화들은 북미 대륙과 아시아 및 아프리카 문화권에서 1000 여년 전부터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그 숫자는 무려 700 여종이나 된다.

 

 우리 나라에서도 신데렐라 이야기는 아주 어릴 적부터 정말 많이 들어왓던 이야기고, 지금 우리 나이쯤이면 조카들에게도 많이 들려주었을 법한 이야기이고, 곧 손자손녀들에게 해주게 되겟지요. 이야기를 해주는 입장이 되었을 때는 속으로 이런저런 의문점이 생기기도 했었는데 이 책이 보여주는 관점에서 읽으니 또 다른 재미가 있네요.

 

솔직히 얘기하자면 `재미'란 아주 마음 편하고 그냥 깔깔댈 수 있는 `재미'는 아니었어요. 제게는 그랬어요.

사람의 마음 속을 들여다 본다는 건 늘상 고통을 수반하게 마련이지요.

`시기받음'도 `시기함'도 다, 제 어떤 지나간 시간들을 구체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그 시간의 아픔들을 고스란히 다시 느끼게 해서 그리 편안치만은 않았어요.

 그리고  미처 알지 못했던 깊은 성찰들을 읽으면서는 `정말 이래? 정말 내 안에도 이런 게 있단 말야?' `아닐 거야. 몇 몇만 그렇다는 거겠지.' 라고 도리질치며 외면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면 아차 하는 순간에 누구라도 그런 `죄' 속에 빠질 수 있고, 나도 예외 아님이 분명해요.

 

 다행스럽고 감사로운 건 11장~14장까지는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 은총으로 가는 길, 궁극적 선함의 길을 일러 주고 있다는 점이예요. 자신 뿐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이로운 길을 제시해  줍니다.

 그래서 책은 끝까지 읽어야 한다니까요.

 희망이 생기고 용기도 얻고 마음이 푸근, 편안해 졌어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시는 분께서 선함으로 이끌어 주시리라는 믿음에 다시금 저를 맡길 수 있었습니다.

 

 시기심은 다른 사람에게 속한 것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존재는 자신에 속한 것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존재를 빼앗아 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없다. 다른 사람의 존재가 아무리 훌륭하고 매력적이라고 해도 그것은 우리에게 전적으로 낯선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이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영은 신체가 새로 이식한 간과 심장을 거부하는 것보다 훨씬 더 치명적으로  그것을 거부할 것이다. 우리는 이식된 외이와 심장이 자리잡고 있는 심실에 새롭게 적응할 수는 있으나, 그러한 신체 기관들을 가지고 살았던 그 사람의 인격을 결코 우리 안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아마도 우리의 인격은 타자에 의해 확장되고 이해가 깊어지며, 따라서 더 잘 사용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인격일 수밖에 없으며, 다른 사람이 되고자 하는 모든 시도는 우리 자신과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재난으로 드러날 것이다.

 다른 사람의 형태에 맞추기 위해 우리 인격의 일부를 잘라내고 바꾸는 것은, 마치 신데렐라의 언니들이 유리 구두에 발을 맞추기 위하여 발을 잘라내눈 추한 모습에서 드러나듯이, 어리석은 행동이다. 그러한 어리석은 행동은 신데렐라의 자매들의 경우에서처럼 쉽게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사실은 시기심이 지금까지 존재해 왔고, 아직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모든 전쟁의 중심에는 존재의 적인 시기심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성찰하고 명상하면서도 이 시기심의 존재에 대해서는 거의 인정하는 일이 없다. 우리는 시기심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다. 우리는 시기심의 전쟁터에 살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이 고통을 완화시키고, 그 전쟁을 끝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유창한 몇 마디 말로 시기심을 간단히 정죄하고 재빨리 잊어버림으로써 그 시기심이 존재한다는 달갑지 않은 사실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유혹에 넘어가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시기심의 문제와 진지하게 씨름한다면, 우리는 신데렐라와 다른 고난받는 종들에게서 볼 수 있듯이, 축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놀라움과 함께 발견할 것이며, 그 축복 가운데 가장 적지 않은 것으로서, 그 축복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장, `선함'에서 부분부분 발췌했습니다.

 

댓글 1

  • 2005년 8월 19일 오후 5: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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