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전부터 말했잖아

2005. 8. 27. 오후 3:26:59

글자

 

 

 

커튼을 달다가 미친 사내

 

취미로 DIY 제품을 조립하다가 좌절한 이들만 치료하는 정신병원이 있을 거라고 나는 오랬동안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 내가 바로 그런 정신병원에 있으니까. 흐흐흐.

 하루는 파올라가 침실 커튼을 바꿔어 달면 좋겠다고 했다. 레일을 따라 여닫는 커든이 아니라, 팽팽한 줄에 링을 끼우고 매다는 커튼으로 하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거 괜찮겠군, 하고 나는 생각했다. 우선 창가 양 벽에 드릴로 구멍을 두 개 대가리 없는 나사못을 3분의 2가량 돌려 넣고 너트를 죄어 씌운 뒤, 여기에다 커튼 줄을 걸치면 되겠지.

 나는 사다리를 밟고 올라가 드릴로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처음 뚫는 벽이어서인지 부스러기가 바닥으로 많이 떨어져 내렸다. 그러다 구멍이 너무 커져서 모르타르로 매우고 다시 구멍을 뚫어야 했다. 두 번째 시도는 더 엉망이었다. 오래된 집이라 벅이 워낙 약한게 문제였다. 모르타르는 충분해서 어쨌든 나는 나사를 돌려넣고 줄을 드리워 당기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줄을 팽팽하게 당기자 박혔던 나사못과 꺽쇠가 한꺼번에 뽑혀 나오는게 아닌가. 줄이 당겨지는 힘을 견디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모르타르를 치약처럼 구멍에 다 짜 넣고, 아직 마르지 않은 구멍에 나사못을 집어 넣은 뒤 너트를 죄고, 다시 줄을 드리워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여보, 사실 레일식 커튼도 괜찮지 않겠어?" 내가 파올라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나사못 한 개만 벽에서 뽑혀 나왔지만, 바닥에는 모르타르와 벽 부스러기가 아까보다 더 심하게 떨어졌다. 이 쪽 구멍은 이제 틀려 버렸고, 새 구멍을 뚫어야 했다. 그런데 줄이 경사지지 않게 하려면결국 양쪽 다 새로 뚫을 수밖에 없었다.

 "젠장!"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별것도 아닌 집안일 좀 하면서 당신은 뭘 그렇게 흥분하고 그래?" 파올라가 말했다.

 "별것 아니라고? 그래, 그럼 당신이 하지 그래!" 나는 소리를 쳤다.

 "그럼, 당신은 아무것도 안하고 놀게? 난 벌써 커튼 꿰맸잖아!"

 "왜 자꾸 멀쩡한 커튼은 뜯어내고 새로 하자는 건데? 걸핏하면 토요일마다 이게 왠 고생이야?"

 "커튼 새로 달면 당신도 좋을 거면서 왜 그래?" 그녀가 소리쳤다.

 나는 묵묵히 새 구멍을 뚫었다. 이번에는 특수 모르타르를 채워 넣고 특수 나사못을 조인 뒤 줄을 드리우고 당겼다. 그리고 커튼을 모두 끼워서 달자, 그제야 기다렸다는 듯 커튼이며 나사못과 줄이 바닥으로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커튼 더미가 내 얼굴을 덮쳤고, 그 위로 부스러기들이 떨어져 내렸다. 나는 방 안이 쩌렁 울리도록 욕을 내뱉었다.

 "당신이 그렇게 소리 지르는 거 너무 싫어."

 "왜 엔지니어하고 결혼하지 그랬어?"

 "우리가 이혼하면 그땐 엔지니어하고 할 거야."

 순간 나는 분노의 화신이 되어 성난 소리로 노래를 불러대며 벽 속의 콘크리트에 닿도록 세 번째 구멍을 뚫었다. 몸이 활활 타오르는 것을 느끼며 벽에서 코드를 뽑았지만, 드릴은 여전히 돌고 또 돌았다. 내 엄청난 분노가 뿜어내는 전기력이 기계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한달음에 근처 철물점으로 달려가 슈퍼스페셜 나사못과 슈퍼스페셜 모르타르가 있으면 빨리 내놓으라고 했다. 그러자 여자 점원은 그런 게 있긴 한데 재고가 항상 부족해서 미리 주문을 하면 곧 갖다놓겠다고 했다.

 다음 순간 내 입에서 이글거리는 화염이 뿜어져 나오더니 점원의 명찰을 빨갛게 달구었다. 그녀의 피부도 불꽃에 그슬리고 있었다. 그녀는 운명의 번개에 얻어맞은 통닭처럼 놀라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상점주인이 허둥지둥 나와 사태를 파악하고는 내가 원하는 물건을 간신히 찾아 내놓았다. 집에 와서 보니 슈퍼스페셜 모르타르는 두 가지 성분을 섞어서 쓰도록 되어있었다. 그런데 설명서대로 구멍에 혼합 모르타르 스프레이를 하자 얼마나 빨리 굳어 버리는지 내 손가락이 구멍에 찰싹 달라붇어버리고 말았다. 손가락을 억지로 떼어내자 살껍질 일부가 그대로 구멍둘레에 들러붙어 있었다. 쓰라린 통증을 참으며 나는 나사못을 조이고 꺽쇠를 달고 너트를 씌워 줄을 걸어 당긴 뒤 마침내 커튼을 달았다. 그리고 일을 마친 순간 나는 사다리에서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지면서 이제 막 완성한 커튼 줄을 잡아당기고 말았다. 모든 장치가 바닥으로 쏟아져 굴렀다.

 나는 격렬한 경기를 치른 권투선수처럼 피로한 몸짓으로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났고, 다시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나사못을 조여 넣고 꺽쇠를 달고 너트를 씌운 뒤, 이번에는 커튼 대신 나 자신을 매달았다.

 힘센 남자들이 나를 말리고 있었다. 힘센 남자들이 지금 내가 사는 이곳으로 나를 데려왔다. 그리고 토요일마다 내가 항상 똑같은 방에서 팽팽한 줄을 걸고 커튼을 다는 것을 지켜본다. 글너데 내 몸에 이상한 기계 장치와 연결된 선을 장치해 두었다. 그게 나를 간질이지만 참는 수밖에 없다. 내 생각에 이 장치는 내 안에서 부글부글 용솟음치는 분노의 에너지로 병동전체를 난방시키도록 고안된 것 같다.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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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셀 하케 Axel Hacke

1956년 독일 브라운슈바이크 출생. 괴팅엔과 뮌헨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지금은 뮌헨에서 작가와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1981년부터 2000년까지 독일의 일간지 <<쥐트토이췌 차이퉁>>에서 기자와 칼럼니스트로 일했고, '내 인생 최고의 것"이라는 제목의 일상사를 다루는 칼럼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저널리스트 활동으로 요셉 로트 상(1990), 에곤 에르빈 키쉬 상(1987, 1990), 테오도어 볼프 상(1990) 등을 받았다.

베스트셀러가 많은 하케의 작품들은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 소개되었다. 국내에 소개된 작품으로는 <<사라진 데쳄버 이야기>>(1996)와 <<하케의 동물이야기>>(2002)가 있다.

 

 

악셀 하케 지음 ㅣ  토마스 마테우스 뮐러 그림 ㅣ 조원규 옮김, 내가 전부터 말했잖아, 북라인

 

위에 소개한 하케의 얘기, 어떠셨어요?

아무래도 직접 얘기를 들려 드리는 게 제일 좋은 소개이겠다 싶어서 올렸어요.

이 책 왕 fan인 큰아이가 자기가 치겠다고 나서서 올려 주었답니다. 키키킥 웃어 가면서요.

하케의 이야기를 읽으면 웃다가 울다가 웃게 되거나, 깔깔 크크 웃고 있는데 가슴 속에선 눈물이 줄줄 흐르거나 그래요. 내 일상의 구석구석 세세한 부분까지 들춰내서 웃게 하는데 그것 때문에 울게도 되는군요. 깊이 공감하면서요.

 넘넘넘 배미있는 책이랍니다.

댓글 1

  • 2005년 8월 29일 오전 8:16

    ㅋㅋ

읽은책 좋은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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