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권위있는 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의 사설에 김정일 사망 관련하여
"지상 최악의 나라 북한은 정권교체를 바라기만 하지 말고 계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정의감 있는 모든 사람들과 수많은 희생자들에게는 김정일이 제 명대로 살다 자연사했다는 것이 정말 잘못 된 일이었다."
그리고 사설은 김정일의 악행을 가차 없이 비판하며 북한을 지옥으로 만들어 놓고 자신은 '달콤한 인생'을 즐긴 자라고 평했다.
꼬냑과 초밥을 즐기고 핵개발을 하고 여객기를 폭파하고 영화에 집착하여 남한 감독을 납치한 독재자라면서 김정일에게는 북한이 영화촬영 세트장이었다고 표현했다.
그는 또 이 무대에서 신(神)을 연기했고 북한주민들을 그를 숭배하는 역을 맡도록 했으며 김정일은 자연사하는 데 성공했을 뿐 아니라 소수 지배층을 보호하고 뚱보 아들에게 이 무대세트를 인계하는 데도 성공했다고 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김정은이 인수한 북한의 딜레마에 대해 '개방을 해도 개방을 안 해도 무너지게 되어 있다는 점'이라고 정리했다. 그리고 '무슨 짓을 하든 결국은 무너지게 되어 있다'(Their dilemma is that whatever they do, North Korea will eventually collapse)는 내용이 눈길을 끄는 것은 중국이 김정일에게 여러 번 개방에 따른 기적적인 성과를 보여주어도 변화를 모색할 수 없었던 이유로 보기 때문이다.
또 이코노미스트는 '개탄해야 할 진실'이 있고 그것은 주변국들이 김정일 살인정권을 지탱해주었다는 점이라고 했다. 중국과 미국은 세계적인 위기의 재발을 막기 위하여 한국은 북한을 흡수할 때의 비용을 겁내어 일본은 통일된 한국을 경계하여 김정일 정권이 무너지지 않도록 움직였다고 했다. 이코노미스트 사설의 결론이 정곡을 찌른다.
"김씨 정권은 영원히 버틸 수는 없다. 어떻게 하면 정권을 교체할 것인가 논의를 빨리 시작할수록 좋다. 이 지역의 안정을 위해서 뿐 아니라 북한의 잊혀지고 짓밟힌 인민들을 위해 그렇다."
이런 사설을 왜 한국의 대표 언론에서는 보고 들을 수 없는가? 이념과 도덕의 기준이 확립되지 않으면 시류에 편승하는 기회주의적인 논설과 읽어도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는 글을 쓰게 된다. 김정일 정권에게 피해를 당한 일 없는 영국의 주간지가 이런 분노와 정의의 사설을 쓰는데 저 악당 손에 수백 만의 인명을 희생당한 한국의 기자들은 왜 정의를 세우지 못하는가? 노예는 제대로 화를 낼 줄 모른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러한 한국 기자들의 노예근성을 지적한 것 아닐까?
한국에서는 이 같은 이코노미스트 사설의 글을 너무 과격하다며 비판하는 이들이 보수층과 식자층에도 많은데 영국에서는 상식이다. 바로 이런 국가가 일류국가인 것이다.
이코노미스트 사설과 같은 좋은 글은 건전한 도덕성과 이념과 분별력이 있을 때만 쓸 수 있으며 중도로 위장한 기회주의적 정신구조의 사람들은 쓸 수 없다. 한국사회의 좌경화 이후 좋은 글과 사설이 없는 것이 그 때문인 것이다.
매스컴이 우리 나라를 이지경까지 정신적으로 타락시키면서 그것을 뜯어 먹으며 호의호식하는 기자들과
영혼을 악마에게 팔아 먹고 부정부패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정상배들의 부도덕성 때문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