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서 우리는 생각이 다른 인간이 아닌 괴물들과 같이 살고 있다. 그 괴물들은 열심히 일하고 목숨 바쳐 국가를 지키는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으며 눈만 뜨면 자신들의 생활이 불편하지 않도록 모든 것을 챙겨주며 허용하는 이 나라를 파괴하느라 정신이 없는 붉은색의 괴물이다.
그 괴물들은 6.25를 북침이라고 소리 높여 외치고 아웅산 테러와 KAL858기 폭파, 천안함 폭침 사건 모두를 미국과 미국의 괴뢰인 한국정부가 야합한 자작극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또 북한 주민을 학살 학대하는 김일성과 김정일을 위대한 지도자라고 흠모하여 법정에서도 '김정일 장군 만세'를 외치면서 자신들을 좋은 환경에서 잘 살게 해 주고 있는 이 나라를 향해 '애당초 태어나지 말아야 할 더러운 나라'라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에 조선일보 최보식 기자가 KAL858기 폭파범 김현희를 집중 취재했고 그녀를 통해 '국정원'과 'MBC'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얼마나 좌경화되었는지 다시 조명해 본다.
KAL858기 사건은
1987년 11월 29일 바그다드를 출발해 서울로 날아오던 KAL소속 858편 여객기가 미얀마 근해 상공에서 폭파된 사건이다. 당시 탑승자 115명 전원이 숨졌으며 그 대부분이 귀국하던 중동근로자들이었다. 중동 열사(熱砂)의 사막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3년 만에 귀국 중이었는데 88서울올림픽을 방해하려는 북한의 만행이었고 시신을 찾지도 못한 대참사였다.
그러나 858기 폭파범으로 체포된 김현희는 대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보름 후에 특별사면(1990년 4월 12일)되었다. 정부가 그녀를 살려둔 것은 KAL기 폭파 사건이 북한 김정일의 지시에 의한 테러임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녀가 역사적인 사건의 '유일한 증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증언으로 미국은 북한을 '테러 국가'로 지정했고 베일에 싸였던 일본인 실종 사건이 북한의 납치극으로 드러나 일본 열도를 뒤흔들었다.
그런데 노무현정권 때 '국정원'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나는 가짜였다. 나는 북한 공작원이 아니라 안기부 공작원이 되어 KAL 858기를 공중폭파 시켰다.”고 말하라며 그녀를 압박한 것이다. 김현희가 이를 거부하자 국정원과 경찰이 그녀를 여러모로 탄압했고 드디어 MBC가 카메라를 들고 들이닥쳐 김현희의 거처를 세상에 알렸다. 이한영(김정일의 처조카 : 한국 망명 후 암살됨)처럼 북한이 알아서 조치(암살대를 파견하여 암살)하라는 의미였다.
조선일보 최보식 기자가 2011년 8월 16일부터 3회에 걸쳐 김현희와의 인터뷰 내용을 상중하로 연재했다. 김현희의 대답만 종합해 보아도 국정원이 얼마나 좌경화되었는지 또 김정일이 얼마나 흉칙한 살인마인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김현희는 자신이 KAL기를 폭파한 범인이라 했는데도 이 땅의 좌익들은 김현희를 안기부가 조작한 가짜 범인이라 하고 천안함 폭침 사건도 미국과 이명박 정부가 야합하여 만든 조작극이라 하고 아웅산 테러 사건도 조작이라 하면서 심지어 6.25 남침도 북침이라고 우겨대는 빨갱이 족속들과 이 땅에서 같이 살고 있는 것이 참으로 기분이 더럽다.
김현희의 증언은 그동안 여러 차래 공개되었고 이번의 인터뷰도 새로운 사실은 없다. 그럼에도 내가 이번의 인터뷰를 이곳에 올리는 이유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김현희에게 사실을 뒤집어 왜곡하려 했다는 증언이 있기 때문이다. 김현희는 현재 그리스도교인이라 알고 있는데 그런 그녀에게 천주교 사제단이 어떻게 비치겠는가. 그리고 그녀의 증언을 처음 접하는 국민들은 천주교 사제단을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몇 번을 말하면서 계속 의문스럽게 생각하는 일이지만 도대체 정의구현사제단이 지향하는 '정의'는 어떤 무엇인가. 김현희 증언 중에 무엇이 그토록 의심스러운가. 사실과 진실을 그대로 보거나 믿지 않고 어떻게든 정부가 저지른 잘못으로 몰아 가려고 하는 좌익들의 상투적인 짓을 여기에서도 보면서 사제단이 앞장을 섰다 하니 마음이 여간 괴롭지 않다.
사제단이 은폐된 진실을 밝혀 무너진 사회정의를 세우는 자체는 지지하지만 이 땅의 좌익들을 도우며 앞잡이 노릇을 하는 행위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고 사제로서 할 일도 아니다. 사제단은 김현희를 가짜 범인이라고 의심하기 전에 먼저 좌익들이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일을 하는지부터 의심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김현희가 국민에게 호소한 말들
"지난 노무현 정권 시절 KAL기 폭파 사건을 '안기부 조작 사건'으로 몰고 가려는 방송에 출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MBC가 나의 거주지를 세상에 노출시켰다. 나를 살해하라고 북한 암살단을 부르는 것과 같았다"
"노무현 정부는 서민과 노동자의 정부라면서 중동 근로자들의 희생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했다. 내가 버티자 국가기관에서 '외국에 이민 나가라'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라'며 협박했다. 2003년 11월 한밤중에 MBC 'PD수첩'팀이 내 거주지에 들이닥친 뒤로 나는 아이를 업고 집을 나와 현재까지 피신 생활을 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큰 죄인인 나를 살려놓은 것은 'KAL기 사건의 유일한 증인'이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나는 혼자서라도 진실을 위해 싸울 수밖에 없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나를 가짜로 만드는데 앞장섰다. 북한 정권은 하느님도 부정한다. 그런 정권이 저지른 사건을 남한정부가 했다고 뒤집어 씌우니 사제복을 입었지만 과연 하느님을 믿기는 하는지 모르겠다"
"KAL기 폭파 직후 바레인 공항에서 정체가 탄로 나자 담배에 숨겨둔 독약 앰풀을 깨물고 자살했는데 다시 깨어났을 때 괴로웠다. 남한에 송환되면 비밀만 털어놓고 갈기갈기 찢겨 죽을 것으로 알았다"
"정말 배신이었다. 등에 칼을 꽂는 것과 같았다. 자기들 말을 안 듣는다고 내 사는 곳을 노출시킨 것이다. 자기들이 직접 나를 손댈 수는 없고 북한이 와서 나를 살해하라는 것이었다."
“KAL기 폭파 때만 해도 나는 통일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믿었다”
"김대중 정부 때도 그런 일 있었지만,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나를 '가짜'로 만들고 온갖 의혹을 부풀렸다. KAL기 폭파 사건을 뒤집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나를 압박한 것이다. 그때 나는 바깥 활동을 일절 안 하고 있었고 딸이 막 걸음마를 하고 있었다."
"나는 좌파 정권의 국정원(김대중 정부 이후)에서는 보호받지 못했다. 그들은 오히려 추위와 위험 공포에 떨면서 도망쳐 나온 나에게 방송에 출연하라고 강요하다시피 했다. 지휘부에서 이미 결정한 사항이라 하면서..."
"물론 내가 북한 공작원이 아니라 안기부 공작원임을 '고백'하라는 것이었다. 내가 '가짜'라고 말하라는 것이었다. 북의 김정일 정권이 저지른 KAL기 폭파 사건을 우리나라로 돌려 표적을 거꾸로 조작하려는 것이었다. 국정원이 MBC 'PD수첩'에 출연하라고 강요했는데 이 비열한 공작의 나팔수인 MBC 방송 프로에 어떻게 나갈 수 있겠는가."
"내가 거부하니까, 국정원에서 내 남편을 불렀다. '정 그렇다면 방송 출연은 하지 말고 국정원 내에서 신부님들(KAL기 폭파 사건은 안기부 조작 사건이니 재수사하라고 서명운동을 하던 정의구현사제단을 지칭)을 모셔놓고 설명회를 갖는 걸로 하자고 제안'했다. 남편이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바로 그 시각에 MBC 'PD수첩'팀이 내 거주지로 들이닥쳤다. 나는 갓난아기를 업고 한밤중에 집을 나와 피신해야만 했다."
"나의 최고 보안 사항은 거주지를 은폐하는 일이다. 황장엽 선생에게도 북한이 테러하겠다고 암살단을 보냈고 이한영(김정일 처조카)도 거주지 노출로 살해됐다(1997년). 이 때문에 오래전부터 경찰이 나를 보호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기들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고 내 거주지를 세상에 노출시켜 버린 것이다."
"국정원이 MBC에게 거주지 정보를 흘려준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이는 보호해야 할 사건의 '증인'을 없애려는 것이다. 추운 겨울날 아이를 업고 나와 어디로 가야 하는지.... 허름한 단칸방에서 지금 9년째 살고 있다."
"노무현정부는 서민과 노동자의 정부라면서 중동 근로자들의 희생을, 그 유가족들의 슬픔을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했다. 그리고 천주교사제단이 앞장서서 그런 여론을 조성했다. 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북한에서는 성경책이 발견돼도 대역죄고 가족이 멸절한다. 하느님을 부정하는 그런 정권을 옹호하고 김정일 정권이 저지른 사건을 남한이 했다고 뒤집어씌우다니.. 과연 그들은 사제복을 입고 있지만 정말 하느님을 믿는 것인지 모르겠다."
"국정원 직원이 와서 직접 그렇게 말했다. 2년쯤 나가 있다가 오라고. 나를 보호하던 관할 경찰서에서는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라'고 협박했다. '우유를 마시지 마라 (우리가) 독약을 넣을 수 있다, 신문을 보지 마라 탄저균을 넣을 수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우리가 세놓은 가게에는 영업을 못하도록 법원의 빨간 딱지를 붙여 놓았다. (눈물을 흘리며)내가 말을 다 못하겠다."
"그러나 숱한 협박과 회유가 있었지만 근본을 훼손하고 다른 목적을 가진 조사에는 응할 수 없었다. KAL기 폭파 사건의 모든 자료는 국정원에 보관돼 있다. 내가 더 이상 보탤 것이 없다. 초동수사 때 급하게 하느라 약간의 오차가 있었지만 나중에 정정 확인됐다. 이들은 지엽적인 오류 몇 개를 갖고 트집 잡고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그렇게 해도 사실은 달라질 수 없다. 과거사위원회에서도 북한 정권의 소행으로 결론 내렸다(2007년 10월). 하지만 그런 결론을 내리고도 북한 정권에 대한 비판이나 사과하라는 권고 한마디 없었다."
"이 사건을 뒤집으면 이전의 군부와 우파 세력이 도덕적으로 타격받는다. 정치 구도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랬다고 본다. KAL기 폭파 사건 직후 미국은 북한을 '테러 국가'로 지정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 명단을 풀어달라고 했다고 들었다(2008년 10월 해제)."
"그것은 내 개인의 고통 문제만이 아니다. 115명이 숨진 테러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나라가 어디에 있나. 돌아가신 분들의 영혼을 말살하고 유가족을 속이는 범죄 행위다."
"그때 공작에 가담했던 이들은 처벌받는 대신에 승진했다. 국가관도 안보관도 없다. 이게 제대로 된 사회인가. KAL기 폭파 사건은 이명박 대통령과도 관련 있다. 당시 희생된 근로자 중 현대건설 직원이 60명 이상이었고 이 대통령은 현대건설 회장이었다. 그럼에도 사건의 진실을 뒤집으려는 범죄에 대해 팔짱 끼고 보고 있는 게 한심하지 않은가."
"나는 북한 정권의 로봇, 도구가 된 것이다. 자동적으로 명령을 수행한 것이다. 그렇게 했지만 유족들의 슬픔과 고통을 봤다. 그전까지는 상상도 안 해본 일이었다. 내가 왜 이 짓을 했을까. 정말 잘못됐다는 걸 느끼게 됐다. 나를 이렇게 도구로 만든 김일성과 김정일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근로자들도 희생됐고 나도 그렇고 내 가족도 희생이 됐다."
"당시 바레인 공항에서 우리 정체가 탄로 났을 때 준비한 독약 앰풀을 깨물었다. 그때 죽었어야 했다. 죽지 못하고 살아났을 때 참 괴로웠다. 지난 정권에서도 죽고 싶었다. 내가 큰 죄인이지만 나를 살려준 것은 '증인'이기 때문이었다. 진실을 지켜야 하는…."
"집 전화와 휴대전화도 없어... 엄마의 과거를 모르는 두 아이... 평범하고 자유롭게 살았으면..."
"그때만 해도 나는 통일을 위한 혁명가였다. 858기를 폭파한 것은 죄가 아니었다. 혁명가로서 임무를 수행한 것이었다. 하지만 조사를 받으면서 재판정에서 유족들을 만나면서 나 자신의 인간성을 회복해 갔다. 내가 한 짓이 통일을 위한 것이 아닌 큰 범죄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평양 동북리 초대소에서 '남조선 비행기를 제끼는 일'이라는 임무를 받았다.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남조선 괴뢰의 두 개 조선 책동을 막고 적들에게 큰 타격을 주라. 적후(敵後)에서 임무를 수행해내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북한에서 폭파 대상 비행기를 연구할 때 외국인이 타지 않는 항공편을 노렸다. 국제 문제가 안 되도록."
"나는 북한이 가르친 대로 따르는 로봇이었다. 물론 해외실습도 했다. 바깥세상이 북한보다 풍요롭고 자유로웠다. 하지만 남한이 늘 북한을 공격하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럴 수밖에 없다고 배웠다. 북한이 어렵고 못살아도 다른 마음을 가질 수 없었고 용납되지도 않았다."
"북한은 김정일의 직접 지시 없이는 총 한 방도 쏠 수 없는 나라다. 한 달 동안 공작 코스를 정할 때 할아버지(김승일 : 김현희 공범))가 바그다드 노선이 부당하다고 했다. '전시국가를 지나기 때문에 검색이 까다로울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대외정보조사부 과장이 '이미 비준이 난 거니까 이번에는 그냥 하라'고 했다. 북에서는 김일성과 김정일이 아니면 비준을 할 사람이 없고 대남부서는 김정일이 책임지고 있었다."
“순안비행장 출발 직전에 "우리는 적후(敵後)에서 생활하는 동안 3대 혁명규율을 잘 지키고...생명의 마지막까지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높은 권위와 위신을 백방으로 지켜 싸우겠다고 선서했다.”
"당시에는 죄책감이란 게 없었다. 그런 생각을 했으면 혁명가가 아니고 북한 공작원이 아니다. 뒷날 유족들과 대면하기 전까지는 몰랐다. 재판정에서 '네가 했을 리 없다. 왜 안 했다고 말하지 않느냐'는 유족들의 절규에 정말 안타깝고 죄스러운 마음이었다. 빨리 죽여달라는 생각만 했다. 죽는 것이 쉽고 살아 있는 게 고통이었다. 끄때는 내가 살아남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공작 임무를 받고 북한을 떠날 때도 대통령 선거가 있는 줄 몰랐다. 그런 걸 알려주지도 않았다. 오직 '서울올림픽 저지가 목표'였다. 88년 1월 17일까지 참가국 등록 신청을 받으니까 그 전에 큰 타격을 줘야 한다. 그러면 다른 국가들이 위험하다며 신청을 포기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보니 선거와 연관돼 정치적 사건이 됐다. 이번 사건으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다는 말을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