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이 친일파를 아는가?

2011. 4. 9. 오후 5:18:53

글자

안티조선에 내 생각과 같은 글이 있어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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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작금의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는 다섯 가지 이슈 중 첫 번째는 친일파 문제입니다.
시간적으로도 가장 먼저의 이슈인 이 친일파 문제가 갈등과 분열의 중요한 이슈가 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직후가 아니라 그 몇 십년 후인 80년대부터 입니다.
내가 어른들에게 듣기로 해방 직후에는 친일파 문제가 그다지 문제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36년이라는 긴 세월을 일제 통치하에서 생사고락을 같이 해온 입장인 터라
2천만 동포 모두가 동병상련의 심정이었기 때문 아닐까 생각됩니다.

사실 모두가 어려운 시대를 살아 누가 누구에게 친일파라고 손가락질 할만큼 떳떳한 사람이 없는 상태였고
그 시대가 전세계적으로 얼마나 야만적이고 광폭했던 시대였는지 모두가 직접 체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설사 누군가 친일했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인간적으로 이해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죽했으면 그랬겠느냐고... 그 입장을 안다.. 라는 동시대인으로서의 상련이 작용했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서 서로를 욕하고 나무랄 염치와 자격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도저히 그냥 용서하고 넘어갈 수는 없는 악질 친일파들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해방 직후에 이승만 정부가 반민특위를 결성하여 처벌하고자 했던 사람들이 바로 그런 자들이며
비록 그 반민특위가 당초의 목표를 충분히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악독하고 비열한 반민족 행위자들에 대한 단죄가 어느 정도는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정도 이상의 단죄는 그 당시 우리 사회 여건으로서는 현실적으로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이유를 자세히 말하기 전에 먼저 더 중요한 문제부터 말하지요.
이 친일파 척결과 일제시대의 청산 문제가
60여년이 지난 오늘날 더욱 첨예하고 심각한 사회의 갈등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나는 여기에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일제시대를 산 사람들이 그동안 다 죽어 얼마 안 되는데다 해방둥이조차 회갑을 넘은지 오래입니다.
그 때문에 일제시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칠순을 훨씬 넘긴 노인들 뿐입니다.
쉽게 말해서 70대 중반 이하들은 일제시대의 어려운 생활 환경과 건국 초기 상황을 잘 모른다는 거지요.
잘 모르기 때문에 피상적으로 생각하여 "친일파는 민족의 역적" 이라는 단순도식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일제 식민시대를 직접 겪지 않은 대부분의 후세들은 친일 행위를 용서할 수 있는 체험적 기반이 없습니다.
그래서 해방 직후 왜 친일파들을 척결하지 않았는가.
매일 같이 천황의 만수무강을 비는 기사를 실었던 조선일보의 사옥이 왜 국민들 손에 불태워지지 않았는가.

그리고 또 왜 친일반민족 신문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경영자들이 일본으로 도망가기는커녕
오히려 변함 없이 국내에서 존경받는 지도급 인사로 당연히 받아들여졌는가.
그 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존경하던 귀국한 상해 임시정부의 요인들까지
그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경영인들과 시국을 의논하고 나라를 함께 걱정했는지 이유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일제시대의 조선인들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지면에 천황 일가의 사진을 싣고
성전(일제를 지키는 전쟁) 완수를 촉구하는 기사를 싣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을 직접 보고 잘 알기 때문에
그러한 친일 행위를 질책하기 보다
그저 한글로 발행되는 조선인의 신문이 폐간되지 않고 있어준 것만 해도 고맙고 대견하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 무렵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조선과 동아 기자들을 전부 애국자로 생각했고 또한 실제로 애국자였습니다.

그런데도 그 시대를 살지 않았고 그 시대가 어떤 시대였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후대들이
당시의 신문에 실린 단편적인 사진과 기사들에 흥분하여
세계 역사에 드물 정도의 민족적 자산인 두 신문사를 친일반민족지로 낙인 찍어 버리고
독립기념관에 보존된 윤전기를 야만적으로 끄집어 내는 만행을 저지르는 짓을 우리는 목격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짓은 과거 역사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고 좌익세력에 의한 음모임을 알아야 합니다.

한가지 더 이야기 해 드리지요.
우리 나라 공군사관학교에서 생도들이 교내에서 데모를 한 일 있었습니다.
아마 그 일을 기억하는 사람 별로 없을 겁니다.
공군사관생도들이 고김정렬 공군참모총장의 동상건립을 반대하는 데모였습니다.
김정렬장군은 초대와 3대 공군참모총장이었으며
해방 직후에 아무 것도 없던 시기에 그야말로 맨땅의 무에서 대한민국 공군을 창설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6.25때 그분의 지휘 아래 우리 빨간마후라들이 북한과 중공의 공군을 상대로 하늘에서 싸웠습니다.
대한민국 국군 창건 당시의 초창기 멤버들은
육.해.공군 모두 인적자원의 기반이 공통적으로 3곳 밖에 없었습니다.
'구일본군 출신''만주군 출신' 그리고 '광복군 출신'입니다.
김정렬장군은 경성중학교를 졸업하고 1938년에 일본의 예과사관학교에 입학하여 그곳을 졸업했으며
다시 1941년에 일본 육군 항공사관학교에 들어가 전투기 조종사가 된 사람입니다.

그 당시 맥아더가 방어하고 있는 필리핀을 일본이 공략할 때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해서 맥아더와 싸운 실전경험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김정렬장군이 처음 공군을 창설할 때는 인적 구성에 세곳의 각기 다른 출신의 비행사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물론 숫자에서 가장 많았던 것은 역시 구일본군 출신의 파일럿들입니다.
그리고 구일본군 출신 파일럿과 중국의 국민당군 공군 출신인 파일럿들 중에는
중국 대륙의 하늘에서 서로 적으로 싸운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방 후 그들은 출신지를 불문하고 다 같은 한국의 군인으로서 일심협력하여 나라를 지켰으며
누구 한 사람도 너는 일본군 출신이고 나는 광복군이라며 편을 가르지도 않았습니다.
물론 군내에 출신에 따른 파벌도 없었고 구일본군 장교였던 참모총장의 지휘를 받는다는 사실에 대해서
불만이 있거나 불평을 말한 비행사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처럼 김정렬장군은 그 당시 모든 공군인들에게 존경과 신뢰를 받는 훌륭한 지휘관이었습니다.

만약 그 당시 일본군 출신이라 하여 오늘처럼 배격하고 천황한테 충성했다고 해서 내치고 그랬었다면
공군은 물론 육군도 해군도 창설할 수 없었습니다.
그 무렵의 조선인들 중에 비행경험이 있고 조종간을 잡아본 인적자원을 총동원했지만
공군은 늘 경험 있는 비행사 부족과 양성의 어려움에 허덕였습니다.

그러한 일은 공군만 그런 것이 아니라 육군과 해군도 마찬가지였고 정부의 모든 부처들도 그랬으며
민간 기업과 학계, 언론계 역시 사정은 똑 같았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인재가 워낙 턱없이 모자라 친일 문제를 따지면 건국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던 거지요.

물론 방법은 있었습니다.
북한처럼 빨치산 출신과 홍군 출신들이 대거 입국해서 모든 요직을 장악하고
소련군과 같은 압도적인 대규모 군사력 지원을 받으며 공포정치 철권통치 군사국가로 가는 길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그 종착지는 모든 동구권의 국가들이 보여준 바 그대로이고 최악의 경우 북한처럼 되었겠지요.
따라서 건국 초기의 우리 정부가 양자 택일을 해야 했다면 옳고 바른 길을 택한 것입니다.

정부는 친일 경력을 잘 알면서도 대한민국 건설에 그들의 능력과 자질을 바치도록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그랬었기 때문에 후세들이 오늘처럼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시대를 조금도 모르는 90년대 초의 공군사관생도들이
대한민국 공군을 만든 자신들의 아버지를 친일로 매도해서 교내에서 데모를 한 패륜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제가 예로써 공군의 김정렬장군 이야기를 했지만 이런 예가 비단 공군에만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6.25 때 공산침략군과 맞서 대한민국을 지킨 장군들과 장교들 대부분이 일제 때 일본군 장교출신이었습니다.
그 분들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태어나지도 못했고 자유로운 대한민국에서 숨조차 쉬지 못했을 것입니다.
국군만 그랬던 것도 아닙니다.
그 문제는 정계와 재계, 학계, 종교계, 예술계 등 우리 나라 모든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한 일입니다.

그 당시 우리 나라에서 가장 뛰어나고 많이 배운 우수한 인재들이
그들 자신의 죄도 아니고 그들 자신의 본의도 아닌 단지 일제시대의 경력 그 한가지 때문에
친일파로 낙인 찍히고 매국노로 손가락질 받아 그들의 명예가 더렵혀지고 공적도 가차없이 깎여 버렸습니다.
그들이 더욱 억울한 것은
그들이 산 동시대 사람들이 아닌 그 시대를 전혀 모르는 아들 딸들에게 그런 치욕을 당했다는 사실입니다.

생각해 보면 일제의 강점기간이 36년이었습니다.
한일합방이 되던 해 태어난 사람들이 서른 여섯 살에 해방을 맞은 것 아닌지요.
아무리 피식민지 국민이라 하더라도
한 인간이 되어 40 가까이 배우지도 않고 일도 안 하고 취직도 하지 않고 살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차별받고 멸시받는 식민지 국민이라는 오기와 울분이
그래서 더욱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각계에서 일본인들과 치열하게 경쟁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모든 신생독립국가들의 중추가 식민지 시절에 지배국가에 중용되었던 사람들입니다.
간디, 네루, 막사이사이, 수카르노, 장개석, 이광요 등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위의 어느 나라도 과거 식민시대의 경력 문제로 건국의 주역인 그들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도 그랬습니다.
해방 직후에 그 시대를 함께 살았던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그들의 그것을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과거를 불문하고 모두가 합심단결해서 새 조국을 건설하는데 매진했던 것입니다.

건국 후 반민특위가 하려고 했던 것은 그야말로 반인륜적이고 빈민족적인 범죄자들의 처벌이었습니다.
일제시대에 관직에 나가고 장교가 되고 신문기자를 하고 법관을 하고 교수를 했다고 해서
단죄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시대의 주인공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점차로 사라지게 되니까
새삼스럽게 그 때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세대들의 입에서 "친일파 단죄론"이 거론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친일청산의 타겟이 반민족 범죄자가 아니라 오히려 자유대한민국 건국 유공자들입니다.

이승만과 박정희 같은 뛰어난 당대의 정치지도자들
그리고 조선일보 같은 민족신문 또 학계와 언론계, 경제계, 예술계, 문화계의 혁혁한 공로의 주류인사들이
친일파라는 신종 매카시즘의 칼날 앞에 세워진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심지어 종교계의 원로이자 민족의 지도자 중 한사람인 김수환 추기경까지도
일본군 장교복을 입은 젊은 시절의 사진이 인터넷에 돌아다니면서 온갖 욕을 당하고 있습니다.

누가 봐도 대한민국의 합법적 정통성과 도덕적 권위
그리고 정치적 정체성에 흠집을 내고 상처를 입히자고 하는 목적이 한 눈에 드러나 보이는 친일파청산론은
70년대부터 일부 운동권 학생들에게서 보이기 시작하더니 
80년대에 들어와서 운동권이 당시의 권위적인 정권을 공격하는 주된 무기가 되어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김일성 집단과 좌경화된 학생조직들이
대한한국의 주류계층을 공격하여 크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아킬레스건으로 친일파 문제를 택한 것입니다.
광복이 되고 일제가 이 땅에서 물러간 지 60여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친일파 문제가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는 으뜸가는 이슈로 부각되어 있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입니다.

북정권과 좌익들의 대중적인 선전과 선동이 워낙 교묘하고 사안 자체가 젊은 세대에 어필하기 쉽다보니
이제는 순수한 애국적인 동기로 "친일파 단죄론"에 합세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누구보다도 국가의 정통성과 도덕성에 확신을 가져야 할 공군사관학교의 생도들까지
단지 일본육사를 나온 일본군 장교였다는 이유만으로 공군의 창설자를 존경할만한 선배로 삼기를 거부하고
또 당대의 모든 사람이 민족의 정기를 지켜온 민족신문으로 인정하고 감사를 표했던 조선일보의 윤전기가
독립기념관에서 끌어내려지는 참담한 꼴을 목도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진실을 바로 말하고 사실을 그대로 전해야 할 책임을 기성세대들이 소홀히 한 잘못이 크다고 저는 봅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일제시대 때 배우고 익힌 지식과 기술로 해방 후에 건국에 참여하여
각계 각층에서 나라를 이끌었던 건국세력 및 그들의 뒤를 이어받은 근대화의 주도 세력과
그들에 의한 건국의 의미를 평가절하하고 근대화의 가치를 폄하 또는 훼손하거나 아예 무시면서
대한민국 건국과 근대화의 주도세력을 친일파로 매도하는 집단 사이의 전면적인 전쟁이라고 저는 봅니다.

그리고 어느 쪽이 승리하고 어느 쪽이 나라의 주도권을 장악하느냐에 따라서
향후 우리나라의 국가적 정체성과 국가관의 성격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저는 예측합니다.
오늘의 이 갈등은 보수세력과 진보세력의 단순한 충돌이 절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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