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大望) [13]

2010. 4. 13. 오후 2:04:38

글자

쟁취한 당사자는 어렵지 않지만 나이가 많아 권력을 후계자에게 물려주어야 할 때가 문제이다.
후계자가 성인이고 권력 쟁취시에 활약했다면 문제는 없다.
그러나 권력 쟁취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모르는 자식이 후계자가 될 때는 다르다.
그래서 현명한 영주들은 후계자를 어릴적에 정하여 실제와 다름없이 엄하게 훈육시켰던 것이다.

노부나가가 그 경우이고 이에야스는 어릴 때의 힘들고 어려운 환경과 여건이 스승이 된 경우다.
몇번 반복하지만 이에야스는 동부 미카와의 작은 성 오카자키 성에서 태어났다.
비록 양친과 여러 가신들의 축복속에 용맹했던 조부의 명예로운 '다케치요' 아명을 물려받았지만
싸움으로 날이 새고 저물던 난세라 그의 어린 시절은 험난하기 그지 없었다.

그래도 그는 자신과 가문을 위해 선조 대대로 목숨바쳐 충성해 온 가신들을 보물처럼 아꼈고
남 다른 인내심과 조심성이 출중한 전략가 지장(智將)으로 성장시켜 싸우면 승리했다.
그의 마음과 두 어깨에는 언제나 가신들과 그 일족들의 생사가 무겁게 짓 누르고 있었으며
주변 영주들이 하나 둘씩 멸망하고 가신들도 함께 망하는 난세에서 어떻게든 그들을 지켜야 했다.
그 때문에 항상 인내와 신중을 몇번씩 거듭했으며 때로는 강자들에게 굴복할 때도 있었다.  

가신들 용맹성은 널리 소문났지만 굴복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미카와 무사 기질이 항상 문제였다.
목적을 위한 일시적인 굴복과 더 큰 것을 얻기 위한 양보조차 수치로 여기며 반발했다.    
그렇듯 외골수에 꽉 막힌 고집불통이지만 전투에 임하면 물러서지 않고 죽을 때까지 싸웠다.
대개 패전이라 생각되면 전장을 이탈하여 도망가지만 명령이 없으면 결코 등을 보이지 않았다.

가신들의 그것이 힘 없는 작은 성주 이에야스에게 크게 도움되었지만 어렵고 힘들 때도 많았다.
노부나가에게서 장남 노부야스 할복을 강요받았을 때 가신들의 폭발적인 분노와 반발...
전국을 평정한 히데요시가 상경하여 머리 숙이라고 했을 때는 어떠했는가.
또 조상 대대의 오카자키 성과 어렵게 확장한 영지를 떠나 황무지 간토로 옮기라고 했을 때는...

그래도 그러한 일들은 작은 문제였고 정작 이에야스를 괴롭고 고통스럽게 한 일은 나중에 있었다.
용맹하고 싸움에 강한 가신들이 난세일 때는 도움되어도 평화시대에는 아니게 된다.
이에야스가 작은 성주였을 때는 가신들 대부분이 천석 안팍이었고 몇몇 중신만 만석 이상이었다.
작은 영지는 비록 싸움밖에 모른다 해도 다스리는데 어려울 것 없다.

그러나 몇 백만석이면 가신들 대부분이 만석을 넘고 몇 십만석 대영주도 여러명 있게 마련이다.
즉 넓은 영지를 다스릴 능력이 필요한데 전장에서 평생을 보낸 그들에게 그것이 있을 리 없다.
그래도 그들은 대를 이어 목숨을 바쳐 온 혈육과 다름없는 가신들 아닌가.
상황 변화를 알고 잘 대처해 주면 다행이지만 그럴 능력이 없는 가신들이 더 많아 고민인 것이다.

노부나가와 히데요시는 가신들이 전공을 세우면 영지를 늘려 주었으며 그것이 당시 관행이었다.
그리고 일찍 죽은 노부나가는 어려움을 몰랐지만 히데요시는 곧 그 한계에 직면했다.
가신들이 공을 세워도 늘려 줄 땅이 일본에 더 이상 없는 것이다.
그가 명나라 정벌을 핑게하여 조선전쟁을 일으킨 데에는 그러한 속 사정이 있었다.

물론 조선전쟁을 도발한 이유는 그가 싸움밖에 몰랐고 또 이길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에 있지만
그러나 그 전쟁은 결국 어려운 가신들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고 그 자신도 병을 얻어 죽고 말았다.
이에야스는 구두쇠라 소문난 만큼 그 두 사람처럼 후하게 주지 않았으며
가신들이 가문을 유지하며 생활할 수 있는 정도의 영지만 주고 남어지는 직영체제로 관리했다.

주변국 공격에 즉시 지원하기 어려운 먼 거리의 주요 성주들에게는 넓은 영지를 주어 대비했으며
그의 그러한 정책에 가신들은 일체 불만하지 않았다.
그들이 이에야스에게 바치는 충성의 목적이 넓은 영지와 많은 녹봉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키가하라와 두번의 오사카 싸움에 히데요시의 옛 가신들에게 공을 세우게 한 것도 다름 아니다.
그의 가신들은 영지에 불만이 없지만 그들은 넓은 영지를 원하여 공 세울 기회를 준 것이다.

그는 또 큰 성과 넓은 영지에 작은 성주들을 성주대리로 보내어 영주교육을 시켰다.
경험과 능력을 키워 현재보다 더 큰 성의 영주로 봉하여 누대의 충성에 보답하기 위해서였다.
이에야스의 그러한 점이 노부나가와 히데요시와 크게 다른 점이고 더 훌륭했다.
싸움만 잘하여 큰 영주가 되면 영지민들의 고통이 크고 많을 게 뻔하고 지나치면 처벌해야 한다.
많은 백성들이 이에야스와 그 가신들 영지에서 살고 싶어 한 데는 그러한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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