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大望) [3]

2010. 4. 11. 오후 6:42:05

글자
내노라 하는 대영주 딸들도 예외 아니었다.
영주의 힘과 상관없이 혼인은 대부분 정략적이었으며 이혼과 재혼을 몇번이든 반복해야 했다.
심지어 전쟁에 패한 후에 적국 영주가 원하면 '선물'로 보내지기도 했다.
그렇듯 난세에 살아 남기 위해 온갖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믿을 것은 오직 자신의 힘 뿐이었다.

권모술수와 모략이 난무하는 난세에는 목숨을 바치는 충성과 믿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영주들은 자신의 영지와 가문을 지키기 위해 녹봉으로 충성스런 많은 가신(家臣)들을 두었으며
영지 크기에 따라(만석당 약 250~300명) 몇 백명에서 몇 천명의 군사를 유지했다.
그리고 영주들은 아들이 태어나면 유능한 가신을 붙여 훌륭한 무장으로 훈육하는 것이 관례였다.

영주가 젊어 왕성하게 활동할 때 아들이 지혜롭고 용맹한 무사로 성장해야 도움된다.
그 때문에 남자는 12세에 여자는 13~4세면 결혼하여 아이를 낳는 조혼 관습이 정착되었으며
영주는 아들이 많을 수록 유리하여 정실 외에 측실(첩)을 여러명 두었다.
측실은 영주의 안전을 위해 가까운 친척 또는 충직한 중신들 딸을 대상으로 했으며
가문 후계자는 보통 정실 소생 장자가 되었지만 가문을 이끌어 갈 자질과 기량이 더 우선되었다.

힘 약한 영주들은 국경이 가까운 대영주의 보호를 받을 수밖에 없었으며
그 대신 대영주가 전쟁할 때마다 최선봉에서 싸워야 했다.
그리고 대영주는 명령에 잘 따르면 굳이 소영주들을 멸망시켜 자신의 직할 영지로 하지 않았다.
그러한 상황에서 이에야스의 아버지 마쓰다이라 히로타다가 작은 '오카자키 성' 성주로 있었고
스루가와 도토우미, 미카와 3개 주의 대영주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보호 아래에 있었다.
이에야스의 외할아버지 미즈노 다다마사의 '가리아 성'도 역시 요시모토 보호를 받고 있었다.

그 무렵은 오카자키 성과 가리아 성의 실력이 비슷했지만
이에야스의 친할아버지 마스다이라 기요야스 시절에는 오카자키 성이 가리아 성보다 강했다.
그 기요야스가 다다마사와 싸움에서 이긴 후 화친 잔치에 나온 그의 부인을 보고 반하여
"부인을 나에게 줄 수 없는가.." 말했고 다다마사는 곧 이혼하여 오카자키 성으로 보낸 것이다.
그 부인은 다다마사가 다른 성주와 싸움에서 빼앗은 그 지방 최고 미인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다마사와 사이에 5남매를 두었는 데 그 막내 딸이 바로 이에야스를 낳은 '오다이'다.

오다이는 기요야스가 26세에 암살로 죽은 후 그의 후계자 마쓰다이라 히로타다와 결혼했다.
그 결혼도 다다마사가 국경을 접한 두 가문의 화목을 바라고 보낸 정략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오다이는 14살에 시집와서 16세에 이에야스를 낳고 그 아들이 1년 반밖에 안 된 두살 때
다시 정략적인 이유로 이혼 당하여 가리아 성으로 쫒겨 갔다.
그후 이에야스가 6살이 되자 요시모토는 이에야스를 순푸에 볼모로 보내라고 요구해 왔는데
영주들이 배반하지 못하도록 중신들 아들 몇명을 시동으로 딸려 잡아두는 당시 관행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린 이에야스는 요시모토의 거성(居城)인 순푸성으로 호송되어 가던 중 납치 당했다.
납치한 사람은 역시 요시모토 보호하에 있던 인근의 다와라 성주 
그 무렵 새롭게 위세를 떨치며 주변국을 위협하던 오와리 성 노부히데에게 보내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다와라 성주는 이에야스의 계모(오다이와 이혼 후 결혼한 정실부인)의 친정아버지였다.
암튼 이에야스는 숙적 노부히데의 인질이 되었고 그 일로 다와라 성은 요시모토에게 멸망 당했다.

노부히데는 이에야스가 인질로 잡혀 오자 히로타다에게 아들을 살리려면 굴복하라고 강요했다. 
하지만 히로타다는 이에야스를 죽여도 굴복할 수 없다며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에 과격한 성격의 노부히데는 격분하여 이에야스의 목을 잘라 히로타다에게 보내려고 했으나
노부히데의 후계자인 노부나가가 극력 반대하여 겨우 살았다.
그럼 그 당시 14살의 노부나가는 어떤 연유로 6살의 어린 인질 이에야스를 살리려고 했는가.

이에야스의 생모 오다이 부인이 아들 목숨 구명을 청원한 때문이었다.
오다이 부인은 이혼 당하여 친정인 가리아성으로 돌아오자 성주는 곧 재혼을 강요했다.
친아버지 다다마사는 죽고 없었고 가리아 성주 미즈노 노부모토는 오다이의 배다른 오빠였다.
그 노부모토가 요시모토를 배신하고 노부히데 편이 된 때문에 히로타다에게 이혼당한 것이었다.
히로타다로선 요시모토에게 의심받지 않기 위해 이혼할 수밖에 없었다.

오다이 부인이 비구니가 되어 절에 들어가 아들의 장래를 빌려고 했다가 재혼 강요에 응한 것은
노부히데를 돕고 있는 신관(神官) 나미타로의 권유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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