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왕도에 뜻이 없거나 있다 해도 주변국들 침공이 걱정되어 상경하기 어려웠다.
그런 상황에서 '신불(神佛)'은 소영주에 불과한 노부나가와 이에야스에게 그 기회를 준 것이다.
심술 궂은 신불은 쉽게 할 수 있는 여러 대영주들을 놔 두고 하필 제일 작은 영주에게 기회를....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도쿄)에 '도쿠가와 막부'를 세운 것은 62세 때인 1603년.
그 무렵에는 이렇다 할 큰 전쟁은 없었다.
그러나 인간은 항상 어떤 일 또는 뭔가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동물이라고 하던가.
전쟁없는 평화는 싸움 밖에 모르고 그것이 삶의 전부나 다름 없는 무사들을 불만스럽게 했으며
잦은 전쟁으로 항상 전비(戰費)에 쪼들려 어려웠던 영주들도 여유가 생기자 생각이 달라졌다.
그러나 대부분 영주들은 그 돈으로 교역선을 건조하여 해외 교역을 시작했으며
넘쳐나는 떠돌이무사 낭인(浪人)들을 그 교역선에 고용하여 먼 바다 항해의 안전을 도모했다.
그 당시 남쪽의 필리핀과 말라카 등 해상에는 상선(商船)을 노리는 해적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조선술이 발전하게 되어 동남아에서 더 멀리 유럽의 영국과 내델란드까지 진출했는데
동양보다 앞선 그들의 총포 화약 등 무기를 수입하다가 스스로 제조할 정도로 발전하게 되었다.
원래 무사들은 이익을 취하는 상행위를 기피했으며 충성과 의리와 청빈이 마음가짐의 척도였다.
그러한 그들이 교역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외국의 훌륭한 신무기 때문.
외국의 신무기를 구입하려면 당연히 큰 돈이 필요했고 영지의 소출만으로는 턱 없이 부족했다.
그들은 또 배 건조술을 위하여 해안에 표류해 온 외국 상선과 선원들을 돌려 보내지 않았는데
집과 여자를 주어 정착하게 한 것은 일본보다 훨씬 앞선 그들의 조선기술과 항해술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여 일본이 처음 만든 120톤 범선으로 태평양을 건너 맥시코에 간 것은 1610년.
그리고 계속 건조하여 유럽 각국에도 보냈다.
그 무렵의 유럽은 오랜기간 세계의 바다를 제패했던 폴투갈과 스페인이 몰락하던 시기였으며
영국과 네델란드 등이 세력을 떨치면서 폴투갈 스페인 등과 싸움이 그치지 않았다.
따라서 조선술과 대포 화약 등 무기들이 발달했고 막부가 그에 관심을 둔 것은 이상할 것 없다.
또한 그 무렵 로마 가톨릭(구교:천주교)의 부패로 종교개혁 중이었는데
루터가 로마교황에게 결별을 선언하고 신교(프로테스탄트)를 창설한 것은 1535년 무렵.
그때까지 유럽 각국은 전통적으로 구교인 가톨릭이었으나 영국과 네델란드 등이 신교로 바꿨다.
그에 구교국들이 적대시하자 신교국들도 강력히 저항했던 것이다.
그렇듯 유럽은 구교국과 신교국으로 나뉘어 싸우고 있었고 구교국들이 점점 힘을 잃던 시기였다.
일본에도 노부나가 시대에 구교가 먼저 들어왔으며 뿌리를 내린 상태에서 늦게 신교가 들어왔다.
그러나 노부나가 다음 히데요시 때까지는 구교와 신교간 갈등이 그다지 문제되지 않았으며
도쿠가와 막부시대에 들어서며 그대로 방치할 수 없는 양상으로 변했다.
일본에 파견된 구교와 신교 선교사들이 포교권을 독점하려고 온갖 책동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아들 히데타다에게 쇼군을 물려주고 은퇴한 오고쇼(이에야스)는 독점을 허락하지 않았다.
일본의 이익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구교와 신교를 차별하지 않은 정책을 고수한 것이다.
더구나 일본 전래의 종교도 있고 이에야스는 신불(神佛)을 신봉하고 있었다.
이에야스는 일본 내의 구교와 신교국들 간의 다툼으로 외국과의 싸움을 우려하는 가신들에게
외국의 침략은 막으면 되고 그 대비를 충분히 하면 된다면서 걱정하지 않았다.
그렇듯 전란이 끝나자 평화의 기초를 다지며 부(富) 축적을 위해 교역에 힘을 기울였던 것이다.
그러나 싸움 밖에 모르는 영주들과 무사들은 이에야스의 그러한 이상(理想)을 이해하지 못했다.
계속된 평화는 경제적 풍요로 이어졌고 그 여유는 작은 영지의 영주들 불만으로 이어졌다.
그에 다시 난세로 돌아가길 바라는 멸망한 가문들의 떠돌이무사들 출세 욕망이 가세한 것인데
다시는 칼을 잡지 않겠다고 결심하며 간신히 구축해 놓은 평화에 전란의 씨가 또 싹을 내밀자
결국 이에야스는 전쟁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되려면 '대청소'가 불가피하다고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평화를 위한 대청소는 한번으로 끝내야 하며
또 한번으로 끝내려면 그 대상자들을 한 곳에 끌어 모아 뿌리를 완전히 뽑아야 했다.
하지만 그는 히데요리가 전란의 근원인데도 남겨 두려고 했는데 히데요시와의 약속 때문이었다.
히데요리를 부추겨 이용하려는 무리들만 제거하면 싸움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