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을 어찌 볼까?

2013. 7. 13. 오전 7:05:38

글자

프라도 신부들의 소명 중 하나는 자기 주변에서 가난한 사람을 찾는 거다
그런데 7-80년대에서 '가난한 사람' 은 노동자라고 여겼다.

 조뭐뭐라는 신부님이 계신다. 지금이야 교구에서 청소년 사목도 하고
지금은 햇살 청소년 사목센터를 운영하는 분인데... 
당시 가난한 사람들이 기존 노동자에서 가난한 사람을 찾을 때
이 분은  '청소년' 에게서 찾고 계셨단다.
당연히 다른 사람들은 '아직도 애들하고만 논다' 하며 핀잔을 주기도 하고
당신 주변에도 동조의 손길을 보내주는 사람은 별로 없었단다.

그러다 알게 된 예수회 신부님을 찾아가 피정을 했단다
마지막 날 면담을 하면서 그 분은 이런 이야기를 하셨단다.

"신부님은 욕심이 많으시네요..."

내용만 놓고보면 나쁜 말 같지만 실로 그분이 말하고픈 것은 이거였다.

'하느님은 내 안의 나쁜 것을 갖고도 좋은 것으로 바꾸신다.
내가 가진 욕구, 욕망도 평범하게 보면 부정적인 것으로 느낀다.
하지만 그런 욕구가 있는 사람만이 무언가를 할 수 있다.
반대로 아무런 욕구가 없는 사람은 시작도 못한다.
자신이 가진 것을 가지고 당신의 것으로 잘 치환하라.'
는 얘기였다...'
이에 힘을 얻은  그 분은 프랑스의 회의가 열린
 프라도 신부들끼리 회담 장소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자신의 사목이 슈브리에 신부가 했던 사목 관점과 같음을 확인받으셨다.

지금도 교육도 못 받고, 부모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 
청소년들이 많다면.. 이미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 아닌가?
가난에 대한 여러 시각의 확대였다.

그동안 고해성사 참 많이도 보았다. 그것도 같은 죄로 인해..
자기가 얼마나 한심하게 보이겠는가? 얼마나 자기가 밉겠는가?
그러나 자기를 미워함은 당신의 뜻이 아니다.
그것을 가지고 주님의 일을 찾아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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