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도 신부들의 소명 중 하나는 자기 주변에서 가난한 사람을 찾는 거다
그런데 7-80년대에서 '가난한 사람' 은 노동자라고 여겼다.
조뭐뭐라는 신부님이 계신다. 지금이야 교구에서 청소년 사목도 하고
지금은 햇살 청소년 사목센터를 운영하는 분인데...
당시 가난한 사람들이 기존 노동자에서 가난한 사람을 찾을 때
이 분은 '청소년' 에게서 찾고 계셨단다.
당연히 다른 사람들은 '아직도 애들하고만 논다' 하며 핀잔을 주기도 하고
당신 주변에도 동조의 손길을 보내주는 사람은 별로 없었단다.
그러다 알게 된 예수회 신부님을 찾아가 피정을 했단다
마지막 날 면담을 하면서 그 분은 이런 이야기를 하셨단다.
"신부님은 욕심이 많으시네요..."
내용만 놓고보면 나쁜 말 같지만 실로 그분이 말하고픈 것은 이거였다.
'하느님은 내 안의 나쁜 것을 갖고도 좋은 것으로 바꾸신다.
내가 가진 욕구, 욕망도 평범하게 보면 부정적인 것으로 느낀다.
하지만 그런 욕구가 있는 사람만이 무언가를 할 수 있다.
반대로 아무런 욕구가 없는 사람은 시작도 못한다.
자신이 가진 것을 가지고 당신의 것으로 잘 치환하라.' 는 얘기였다...'
이에 힘을 얻은 그 분은 프랑스의 회의가 열린
프라도 신부들끼리 회담 장소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자신의 사목이 슈브리에 신부가 했던 사목 관점과 같음을 확인받으셨다.
지금도 교육도 못 받고, 부모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
청소년들이 많다면.. 이미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 아닌가?
가난에 대한 여러 시각의 확대였다.
그동안 고해성사 참 많이도 보았다. 그것도 같은 죄로 인해..
자기가 얼마나 한심하게 보이겠는가? 얼마나 자기가 밉겠는가?
그러나 자기를 미워함은 당신의 뜻이 아니다.
그것을 가지고 주님의 일을 찾아야 하리라...
욕심을 어찌 볼까?
2013. 7. 13. 오전 7: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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