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뜨레야 02월 영적 독서 및 묵상자료 ☆☆
“중풍 병자를 고치다”
며칠 뒤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내려 보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율법 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 영으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그러나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마르 2,1~12)
묵 상
들것을 들고 서둘러 가야 합니다
중풍 병자는 자신의 의지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시중을 들어주고, 병을 간호해 줄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중풍 병자를 들 것으로 들고 예수님께 간 그 사람들의 모습을 묵상해 봅니다.
들 것을 든 네 사람은 누구인지 생각해 봅니다. 친구, 가족, 이웃 사람들일 수도 있고, 길에서 구경하다가 손이 딸리는 것을 보고 팔을 걷어붙인 자원 봉사자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 그들은 환자의 집에서부터 예수님께서 머무시는 곳까지 서둘러 들 것을 들고 찾아갔을 것입니다. 생명이 경각에 달려 있음을 알고 가슴 졸이며 뛰어갔을 수도 있고, 심장마비나 발작이 일어날 수도 있었기 때문에 환자에게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서 무척 조심도 했을 것입니다.
들 것은 든 사람들은 여러 가지의 장애물을 만납니다.
군중들로 가득차서 예수님 곁에 갈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합니다. “중풍환자”라고 소리도 질러 봤을 것이고, 힘으로 밀쳐도 봤을 것이고, 사정도 해 봤을 것이고 설득도 해 봤을 것입니다. 꿈쩍도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고 분노를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모든 노력을 다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이기주의와 무관심 때문에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그 집을 에워싸듯 몰려있는 사람들은 무조건 이기주의자들이고, 나쁜 사람들이라고 매도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 모두 아주 심각한 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며칠 전부터 기다린 사람도 있을 것이고, 더 심각한 병으로 예수님께 마지막 희망을 건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길을 비켜 줄 수 없다는 것을 안 사람들은 주변의 환경을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수용합니다. 들 것을 든 사람들도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확고하고, 중풍 병자를 예수님께 데려가야만 살릴 수 있다는 신념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방법으로 그들은 지붕으로 올라갑니다. 들 것을 들고 지붕으로 오르기 때문에 그들은 더욱 조심하고, 더욱 힘이 들었을 것입니다. 지붕을 뜯고, 줄로 들것을 달아서 밑으로 내려 보내는 일도 이만저만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네 사람이 한 사람의 마음 같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고, 조화와 균형을 잘 맞추어야만 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누가 남의 지붕을 허느냐?” 고 집주인은 펄펄 뛰었을 것이고, 사람들은 먼지가 내려온다고 고함을 질러댔을 것이고, ‘저 사람들이 미친 짓을 한다.’고 비난을 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예수님께 먼지나 나무나 벽돌이 떨어질까 봐 최측근인 제자들은 화를 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조심하면서 환자를 예수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그 사람들의 모습은 진지하고 신중하지만 예수님께서 고쳐 주실 것을 확신하는 모습입니다. 땀과 먼지로 얼룩진 얼굴은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모습일 것입니다. 그 일은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고, 많은 사람의 영혼을 구하는 일이었습니다. 용서는 받고 사랑을 완성하는 일이며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의 봉사를 곁에서 지켜 본 사람들은 감동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중풍 병자를 구할 수 있었고, 예수님의 협력자로서 역할을 성실히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고쳐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이 시대에 들 것을 들 사람들은 꾸르실리스따들입니다. 세상의 꾸르실리스따들은 세상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공동체를 구성하고 서로 협력하면서 조화와 균형을 이루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중풍 병자와 같이 죽어가는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기주의와 무관심, 바리사이적 위선과 로봇과 같은 기계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입니다.
2월 16일은 김수환 추기경님이 선종하신지 벌써 3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느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살았어도 그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살고 있으니 바보’라고 자신을 지칭하신 분입니다. 사랑으로 현실적인 삶을 사셨던 사제이며 사도였던 추기경님을 닮은 꾸르실리스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