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09월 영적독서 및 묵상

2011. 9. 14. 오전 9:54:37

글자

 “예수님을 어떻게 따라야 하는가”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루카 9,23~26)

 묵             상

 남자 아이들끼리 다툴 때 가끔 자기 아빠나 형의 힘자랑을 하곤 합니다. ‘우리 아빠(형)는 힘이 무지 세다!’ ‘우리 아빠(형)는 무지 무지 힘세다!!’ 따지고 보면 자기 아빠나 형이 힘 센 것하고 자기들 싸우는 것하고는 별 상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길 자신이 없을 때 가족의 힘자랑으로 기선을 제압하고자 합니다. 명예와 신분 과시를 좋아하면서도 막상 자기 것이라고 내세울게 없는 어른들도 ‘우리 집안은 뼈대있는 집안이다, 우리 집안에는 이런 저런 벼슬을 했던 집안이다.’ 하면서 입신양명(立身揚名)한 조상을 들먹이고 가문이 좋다는 자랑을 하기도 합니다. 사실 가문이 좋고 조상들 가운데 훌륭한 분들이 많다고 한들, 자신이 그에 걸맞게 살지 못한다면 오히려 조상들 보기에 부끄러운 일인데도 말입니다. 신앙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순교자가 많은 나라라고 해서 우리 믿음이 그만큼 크다는 이야기는 아니지 않은가? 마치 아이들이 자기 가족 힘자랑 하듯이, 내세울게 없는 사람이 가문 자랑하듯, 순교자가 많다고 해서 우리가 저절로 잘 산다는 말은 아니지 않는가? 순교자들의 믿음이 강했다고 내 믿음이 저절로 강해지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구교우 집안이고, 태중교우이고, 몇 대 째 믿어오고, 세례 받은 지 오래 됐어도 지금 내 삶이 신입신자들의 모범이 될 만하지 못하다면 긴 신앙생활 기간과 직책은 자랑할게 못됩니다. 오히려, 아무리 세례 받은 기간이 짧고 교회 직책이 없어도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살려고 애쓴다면, 차라리 그 사람이 순교자의 후예라고 불려야 마땅할 것입니다. 점점 커져가는 교회 규모와 신자 수 증가 등 외적인 성장은 이루었지만 이에 걸맞은 신앙(믿음)의 질(質)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생각도 많습니다. 아마도 순교자들은 믿음에 ‘목숨’을 걸었고 우리에겐 그런 절박함이 없기 때문에 믿음의 무게가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이해관계에 찌든 언론과 낡은 이념에 더 큰 영향을 받는 우리들과, 예수님의 말씀과 복음적 가치관에 대한 믿음이 삶의 기준이던 순교자들과의 차이, 곧 삶의 무게 중심의 차이가 줄어들 때, 그때에 비로소 순교자가 많은 ‘가문의 영광’ 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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