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영적 독서 및 묵상

2016. 9. 7. 오후 6:34:55

글자

                                                              “부활하시다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습니다.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한 20,1~9).

 

묵             상

 

  마리아 막달레나는 텅 빈 무덤 앞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요한 20,11).

사랑하는 예수님의 시신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합니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 이후에 부활하실 것임을 수차례 말씀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마리아 막달레나는 깨닫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기쁨에 가득차기 보다는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슬픔에 잠겨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본당 신부로 있던 본당에서 부활성야 전례를 준비하던 때였습니다. 제의실에서 시작하기만을 기다리던 저에게 전례분과장님과 제대회장님이 다급하게 뛰어왔습니다. “신부님, 큰일 났습니다. 애들이 부활초 옆에서 장난치는 바람에 부활초가 떨어져서 세 동강이 나버렸습니다.” 얼굴이 사색이 되어버린 이들에게 제가 한마디 했습니다. “투병 테이프로 붙이세요.” 사실상 그 순간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투명테이프로 붙이는 것뿐이었습니다. 전례분과장님과 제대회장님에게 부활초 관리를 어떻게 했기에 애들 장난에 부러지게 되었느냐고 야단친들 부러진 부활초가 다시 붙을 리도 없고, 부활성야 전례 시작이 5분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부활초를 다시 사러갈 수도 없고, 부활초 판매하는 곳에 가도 살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투명테이프로 붙인 부활초를 들고서 무사히 빛의 예식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강론 시간이 되었습니다. 강론 대에서 보니 여전히 전례분과 위원들과 제대회원들은 얼굴빛이 사색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또 한마디 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잘 보이 실지는 모르겠지만, 부활초가 미사 전에 세 동강으로 부러져서 죽었다가, 투명테이프 붙여서 다시 부활했습니다.” 신자들 사이에 한바탕 웃음이 일었습니다. 본당 신부에게서 어떤 불호령이 떨어질지 몰라 불안해하던 전례분과 위원들과 제대회원들 얼굴이 그제야 화색이 돌았습니다.

그리고 뒤이어서 예수님 부활의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지에 대한 내용으로 강론을 했습니다. 실상 제가 준비했던 부활성야 강론은 다른 내용이었지만 그깟 부활초 하나 부러졌다고 예수님 부활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던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부활의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지 깨우쳐 주고 싶었습니다. 비록 준비된 강론이 아니라 즉흥적으로 나온 강론이었지만, 성령께서 제 입에 당신의 말씀을 담아주셔서 예수님 부활의 기쁨에 대해서 참으로 신명나게 강론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기쁨은 그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도 없고, 빼앗아 갈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나오는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사소한 것에 사로잡혀 부활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본당신부님이나 수녀님, 또는 본당 신자 간에 생긴 사소한 오해나 다툼 때문에 신앙생활을 쉬어버리기도 합니다. 사소한 것 때문에 큰 것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음입니다. 세상일에 눈을 빼앗겨 주일미사를 소홀히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우리가 돈을 벌어서 쌓아 둔다 한들 그것이 우리의 생명을 얼마나 더 연장시킬 수 있을까요? 우리가 쌓아올린 부와 명성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보장해 줄 수 있을까요? 썩어 없어지고 사라질 세상의 것만을 추구함으로 인해서 천상의 것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음입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어디에선가 신기한 현상이 일어났다고 하면 우르르 몰려다니면서도 매일매일 주님의 식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체의 기적은 도외시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미사 전에는 평범한 밀떡과 포도주가 성체성사 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하는 것이야말로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매일매일 이 기적의 현장에 함께 할 수 있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을 모시고 주님과 일치를 이룰 수 있는데도 다른 데에 눈을 돌리고 환호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러한 모든 어리석음은 예수님 부활의 기쁨이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해주셨고(마태 28,20),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하는 기쁨은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하고 큰 기쁨입니다.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나를 구원해 주시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어 나와 함께 계셔주십니다. 우리에게서 예수님 부활의 기쁨을 빼앗아 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소한 것 때문에 부활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고재경 레오 신부 (광주대교구 꾸르실료 담당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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