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영적 독서 및 묵상

2014. 8. 20. 오후 8:40:02

글자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그날 예수님께서는 집에서 나와 호숫가에 앉으셨다. 그러자 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예수님께서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물가에 그대로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말씀해주셨다. “자, 씨 뿌리는 사림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들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어떤 것들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또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왜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내가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이사야의 예언이 저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내가 그들을 고쳐 주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갈망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자 갈망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그러니 너희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새겨들어라. 누구든지 하늘나라에 관한 말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 길에 뿌려진 씨는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돌밭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그러나 그 사람 안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그는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 그런 사람은 열매를 맺는데, 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를 낸다.” (마태 13,1~23).


 묵 상

“왜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내가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통해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깊이 체험하는 연중 제15주일입니다. “너희에게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오늘 복음을 되새기다 보면 우리의 생활에서 눈과 귀를 열어 얼마나 받아들이고 실천하며 사는지, 하느님이 내려주시는 축복과 은총을 누리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예기치 않는 길, 돌밭, 가시덤불을 맞닥뜨릴 때가 있습니다. 그 어떤 씨앗이라도 나에게 와서 아름다운 꽃을 피울 뿐만 아니라 서른 배, 예순 배, 백배의 열매를 맺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잠시 지금의 마음상태를 살펴봅니다. ‘길’에 떨어진 씨앗처럼 마음에 와 닿기도 전에 무슨 말을 들었는지 흔적조차 없는 날도 있고, ‘돌밭’에 떨어진 씨앗처럼 뿌리내리기도 전에 스스로 환난이라 자초하며 자멸하는 날도 있으며, 숨이 막혀 살려달라고 애원하면서도 ‘가시덤불’속으로 더 깊이 걸어간 날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씨’는 분명 생명의 씨앗일진대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이 밝아지는 기쁨이요 희망임에도 불구하고 길, 돌밭, 가시덤불에 가둔 채 사는 날이 많습니다. 자신에 대한 불평, 주위에 대한 원망과 미움으로 인해 ‘길’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날도 있고, 자만, 이기심, 항구하지 못함에서 비롯되어 ‘돌밭’에 흩뿌리는 시간도 있으며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 앞에 스스로 가시철조망을 두르고 집착으로 만든 자물쇠로 잠가버리는 날도 있습니다. 기쁨과 감사로 새로 태어나는 ‘좋은 밭’은 주님의 말씀대로 실천하며 주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가운데 닮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얼마나 자주 넘어지고 샛길로 눈을 돌렸던가요? 감추고 있던 발톱을 드러내며 가시덤불이 더욱 튼튼하게 자라도록 힘을 쓰며 돌밭을 견고하게 쌓으며 살아가는 날이 허다합니다. 오늘의 복음에서 전하는 ‘씨’는 곧 ‘인간관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지금 현재 남편, 아내, 자녀, 친구, 일가친척과 이웃, 크고 작은 사회의 공동체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때로는 관계가 소홀하여 ‘길’에 떨어진 씨앗처럼 무심히 보내기도 하고, ‘돌밭’에 떨어진 씨앗처럼 반갑게 인사하며 듣기는 하나 온갖 욕심과 욕망으로 돌아서는 날도 있고, 또 자신의 자리와 명예를 지키기 위해 ‘가시덤불’을 지고 살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누구나 좋은 땅이 되어 씨앗이 풍성하게 자라기를 바라지만 자신의 내면을 얼마나 깊이 있게 들여다보느냐에 따라 ‘좋은 땅’의 넓이는 비례하겠지요. 시간을 내서 주말농장의 풀을 뽑아 채소를 가꾸듯 신앙의 밭에 돌과 가시덤불을 걷어내며 우리 각자 주님께 아뢰는 기도 역시 좋은 땅의 출발점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악한 자가 와서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가기 전에 하늘나라에 관한 말을 듣고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청하며 제266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성무일과서 안에 간직하고 있는 ‘할머니의 축복편지’는 영원한 생명의 나라인 ‘좋은 땅’을 더욱 기름지게 하는 말씀 열매가 아닐는지요. “나는 너희들이 오랫동안 행복한 삶을 살기를 기원한다. 하지만 언젠가 질병이 들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고통스런 나날들이 닥쳐 낙담케 되거든 가장 흠숭하올 순교자가 모셔진 감실 앞에서 마리아의 길고 긴 숨을 떠올려 보도록 해라. 거기 십자가 아래 마리아의 시선이 머문 곳을, 그 깊고 형언할 수 없어 쓰라린 깊은 상처 위에 한 방울의 향유(눈물)도 흘릴 수 없었던 성모를 기억하렴.” - 송미란 프란체스카 로마나 / 시인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복음 및 묵상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