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영적독서 및 묵상

2015. 3. 23. 오전 10:11:36

글자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미다”

파스카와 무교절 이틀 전이었다.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속임수를 써서 예수님을 붙잡아 죽일까 궁리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백성이 소동을 일으킬지 모르니 축제기간에는 안 된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베타니아에 있는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의 일이다. 마침 식탁에 앉아 계시는데, 어떤 여자가 값비싼 순 나르드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그분 머리에 향유를 부었다. 몇 사람이 불쾌해하며 저희끼리 말하였다. “왜 저렇게 향유를 허투루 쓰는가?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그 돈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줄 수도 있을 터인데.” 그러면서 그 여자를 나무랐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이 여자를 가만 두어라. 왜 괴롭히느냐? 이 여자는 나에게 좋은 일을 하였다.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으니, 너희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그들에게 잘해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 여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 내 장례를 위하여 미리 내 몸에 향유를 바른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선포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유다 이스카리옷이 예수님을 수석 사제들에게 팔아넘기려고 그들을 찾아갔다. 그들은 그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그에게 돈을 주기로 약속하였다. 그래서 유다는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무교절 첫날 곧 파스카 양을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가서 차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제자 두 사람을 보내며 이르셨다. “도성 안으로 가거라. 그러면 물동이를 메고 가는 남자를 만날 터이니 그를 따라가거라. 그리고 그가 들어가는 집의 주인에게, ‘스승님께서 ’내가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음식을 먹을 내 방이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하여라. 그러면 그 사람이 이미 자리를 깔아 준비된 큰 이층 방을 보여 줄 것이다. 거기에 차려라.” (마르 14, 1~15).

묵             상

부활을 향한 40일간의 여정은 주님 수난 성지주일을 시작으로 성주간의 전례를 통해 장엄하게 마무리됩니다.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이 어떻게 하면 속임수를 써서 예수님을 붙잡아 죽일까 궁리하고 있는 가운데 예수님은 베타니아에 있는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머무르고 계셨습니다. 어떤 여자가 값비싼 나르드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것을 보고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그 돈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줄 수도 있을 터인데.” 하며 그 여자를 나무라는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으나,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고 말씀하시며 “이 여자는 내 장례를 위하여 미리 내 몸에 향유를 바른 것이다.’ 고 당신의 죽음을 예견하는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유다 이스카리옷이 예수님을 수석 사제들에게 팔아넘기려고 그들을 찾아가서 돈을 받고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리고 있는 가운데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을 준비하게 됩니다.

오늘 제1독서인 이사야서 ‘주님의 종’의 셋째 노래는 고통 중에서도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다른 이를 위로할 수 있는 여유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하기에 확신을 갖고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음을 볼 수 있습니다.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이사야 50, 6~7).

십자가는 바로 이러한 수난과 모욕, 고통과 수치심 앞에서도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리라는 절대적인 신뢰와 믿음의 표징입니다.

제2독서는 초대교회 전례에서 부르던 ‘그리스도의 찬가’이며 신앙고백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필리비 신자들에게 ‘우리의 구원을 위해 사람이 되어 오신 그리스도와 죽음을 이겨내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승리’를 전합니다.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특징짓는 강생과 구원입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필리비 2, 6-11).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교활한 방법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희생시켰으나 예수님은 인류 구원의 제물로 당신을 성부께 바치신 것입니다.

당시의 수석 사제나 율법학자, 유다 이스카리옷 같은 인간의 반역이나 배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음을 봅니다. 우리의 잘못으로 꽃다운 나이의 자식을 보내고 단식하며 슬퍼하는 세월호 가족들 앞에서 폭식하며 조롱하는 이들, 자신들의 위선과 비 양심· 불의한 행위를 은폐하고 자신의 무지와 편견을 합리화하며 교만에 빠진 사이비 지식인과 언론인들, 자기들만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온갖 비난과 중상모략을  일삼는 위정자들, 양심을 팔아 유다처럼 돈을 챙기기에만 급급한 악덕 기업인들….

우리는 사순시기를 보내며 그리스도의 수난과 고통을 묵상하고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을 함께 걷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 너머에는 부활의 영광과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모든 것을 이겨냅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개인적인 고통이나 어려움도 우리가 극복하고 이겨내야 하는 대상입니다. 이제 사순시기의 마지막 성주간을 맞으며 나는 얼마나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왔는지 생각해 봅시다. 십자가가 버거워서 내버려두고 사순시기를 무의미하게 보내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봅시다.

예수님의 죽음과 고통을 통하여 자신을 내어주신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무한하신 사랑과 아버지 하느님에 대한 예수님의 절대적인 복종과 사랑이 우리를 구원하셨음을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있기에 우리도 영원한 생명을 얻으며, 죽음을 극복하고, 부활의 영광을 얻으리라는 희망을 갖는 것입니다. 사순시기의 마지막 성주간이 시작되는 주님 수난 성지주일을 맞아 성 주간을 거룩하게 보내며 성삼일 전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기쁜 부활을 맞이합시다.

조광현 (그라시아노) /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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