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계명”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얘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 뿐이다. 너희는 나를 찾을 터인데, 내가 유다인들에게 말한 것처럼 이제 너희에게도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요한 13,31-33ㄱ. 34~35).
묵 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우리들에게 사랑을 계명으로 주고 계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것일까요?
그 해답의 실마리는 예수님의 말씀 안에 담겨져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대로 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사랑의 행동들은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이번에 선포하신 칙서 ‘자비의 얼굴’에 그 내용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우선 교종께서는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는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아버지처럼 자비로워져라”를 성년의 표어로 삼으셨습니다. 아버지의 자비는 우리들의 죄에 대한 ‘용서’에서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는 되찾은 양, 되찾은 은전과 되찾은 아들의 비유(루카 15,1~32참조)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얼마나 자비로우신 분이신지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당신 자신을 희생 제물로 봉헌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로부터 용서를 받고 살아가는 우리들이기에 우리들도 다른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면서 살아야 함을 매정한 종의 비유(마태 18,23~35)를 통해 가르쳐주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마태 18,33).
과감하게 용서하고 살면 참으로 편안할 것을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이들을 용서해주지 못하고 꽁꽁 묶어놓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묶어놓고 풀어주지 못한 이들을 용서를 통해서 풀어버리라고 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마태 18,35). 이번 희년 기간 동안 나에게 잘못한 이들을 비롯하여 내가 잘못한 이들과 화해하는 은총의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마음속에 무겁게 달고 다니는 미움과 아집의 돌덩이를 던져버리고 기쁨으로 가득찬 가벼운 발걸음으로 주님께 나아갔으면 합니다.
두 번째로 아버지의 자비는 ‘함께 함’에서 드러납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생활할 때, 그들이 밤낮으로 행진할 수 있도록 그들 앞에 서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 속에서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 속에서 그들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탈출 13,21).
예수님께서도 항상 가난한 사람들, 고통 받는 사람들, 소외된 이들, 죄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시기 직전 제자들과 우리들에게 약속해주셨습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칙서 ‘자비의 얼굴’15장에서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냉소주의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눈을 뜨고 세상의 비참함을, 존엄을 박탈당한 우리 형제자매들의 상처를 보라고 하십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마태오 복음 28장 최후의 심판 내용을 상기시켜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피해 갈 수 없으며 그 말씀에 따라 우리는 심판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배고픈 이에게 먹을 것을 주었는지, 목마른 이들에게 마실 것을 주었는지, 나그네들을 따뜻이 맞아 주었는지, 헐벗은 이들에게 입을 것을 주었는지, 병든 이들을 돌보아주었는지, 감옥에 있는 이들을 찾아가 주었는지 심판받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의 요한 성인이 한 말을 잊지 맙시다. ‘우리의 삶이 저물었을 때 우리는 사랑에 대하여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15항)
우리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의 모범에 따라 사랑을 실천해감에 있어서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점을 오늘 복음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께서 일러주십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말씀은 사랑 실천이 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해야 하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의무라는 것입니다.
인도의 간디 선생님이 영국군 장교들 모임에서 했던 유명한 연설 내용입니다.
“당신들이 가는 곳마다 십자가가 달린 교회를 짓는데, 당신들이 그리스도인이라면 교회 건물이나 선전 벽보가 아니라 당신들의 삶으로 그리스도를 보여주시오.
당신들이 믿는 그리스도가 부당하게 폭력을 휘두르며 살인하라고 가르쳤습니까?
당신들의 그리스도가 나약한 여인들을 겁탈하라고 가르쳤습니까?
당신들의 그리스도가 가난한 이들의 재산을 약탈하라고 가르쳤습니까?
당신들의 그리스도가 재물을 빼앗기 위해 약한 나라를 침략하라고 가르쳤습니까?
내 조국 인도를 그냥 두시오!(Let it be). 당신들 그리스도가 아니더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당신들이 믿고 떠받드는 저 십자가를 치워 주시오. 내 부탁은 이것뿐이오.”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이라면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서로 사랑합시다.
고재경 레오 신부 (광주대교구 꾸르실료 담당사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