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요한 20,19~23).
묵 상
예수님께서 승천하신지 열흘 만에 보내주신 성령께서 사도들 위에 내려오신 것을 기념하고, 교회가 이 성령 강림으로 새롭게 탄생한 것을 경축하는 날이 바로 성령강림 대축일입니다. 그래서 성령강림 대축일을 교회의 생일이라고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해주신 성령을 받은 우리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독서와 복음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선 제1독서에서는 오순절날 성령께서 사도들 위에 내려오셨다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오순절에 대해서는 신명기 16장 9절 이하에 자세히 나옵니다. “수확할 곡식에 낫을 대는 날부터 시작하여 일곱 주간을 세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복을 내려 주시는 대로, 너희가 바칠 자원 제물을 들고 와서, 주 너희 하느님을 위하여 주간절 축제를 지내야 한다. 너희의 아들과 딸, 남종과 여종, 그리고 너희 성안에 사는 레위인, 너희 가운데에 있는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와 함께 주 너희 하느님 앞에서 기뻐하여라. 너희는 너희가 이집트 땅에서 종이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모든 규정을 명심하여 실천해야 한다.”
유다인들이 주간절이라고 부르는 오순절 축제를 지내는 목적은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하느님의 도움으로 자유와 해방을 얻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과거에 가난과 억압을 겪었던 자신들의 처지를 기억하여 자기 주변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하느님 앞에 나와서 그들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자유와 해방을 느끼게 하는 축제입니다. 따라서 성령께서 오순절날 우리에게 오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께 감사드리고 기뻐하라는 것이며, 내 주변에 있는 소외된 이들 억압받는 이들, 고통 받는 이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하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둘째, 성령께서 오시자 사도들이 하는 말을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모두 각자 자기 나라 말로 알아듣는 놀라운 일치를 체험하게 됩니다. 이 사건은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탑 사건을 연상시키게 됩니다. 사람들의 교만이 하늘 끝까지 이르자 하느님께서 이들의 말을 뒤섞어 놓으시고, 사람들을 온 땅으로 흩어 버리셨습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오시자 흩어졌던 이들이 모이고, 뒤섞였던 이들의 말이 하나로 일치를 이루게 됩니다. 언어와 인종과 국경을 초월하여 성령으로 뜨거워진 사도들과 사람들은 하느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놀라운 체험을 하였습니다. 성령을 받은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서로를 갈라놓는 각종 분열을 극복하고 사랑으로 서로 일치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리고 우리 꾸르실리스따들이 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셋째,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도 너희를 보낸다.”하시고 나서 용서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파견’과 ‘용서’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요?
예수님께로부터 파견을 받은 우리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도 첫째가는 일은 복음 선포입니다. 복음 선포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이 선포해야 할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음이란 구원의 기쁜 소식 즉 아무리 죄가 많고, 아무리 자격이 없다고 할지라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 죄를 용서해주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복음 선포는 한마디로 죄의 용서를 통한 우리의 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우리에게 파견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하시며 용서를 베푸셨습니다. 이것이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함이요 바로 이 용서를 통해 인류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하느님과 화해시켜 주셨습니다.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용서를 받아야할 사람만 불쌍한 것이 아닙니다. 용서를 베풀지 못하고 미움과 한을 품고 살아가는 자신도 괴롭고 마음이 병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주라고 우리를 파견해주고 계십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들이 아무리 잘못한다 하더라도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는 분이시며, 우리 모두가 당신의 사랑과 자비를 본받아 성령의 은총으로 서로 용서함으로써 화해의 기쁨 속에 살아가기를 바라십니다. 이것이 구원의 기쁜 소식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분열과 차별을 극복하고 우리를 당신의 사랑과 친교 안에서 하나로 묶어주십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하느님 안에서 기쁨과 자유를 누리도록 해주십니다. 우리 모두 성령 강림 대축일을 맞아 주님께서 보내주신 성령의 도우심에 힘입어 소외받는 이들, 고통 중에 있는 이들과 함께하고, 다른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주는 것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실천해 나가도록 합시다. 아멘.
고재경 레오 신부 (광주대교구 꾸르실료 담당사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