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그 구성원이 시대에 깨어 아픔을 느끼고 살아내야함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몫을 하게 되고, 물방울이 모여 바다가 되듯이 그 작음이 모여 변화를 만듦에 틀림없다 생각합니다.
저는 제가 명예욕은 있지만, 권력에는 별 욕구가 없다고 생각하는데도 불구하고, 종종 제 행동의 배경에서 니체가 “Will to power”, 권력에의 의지.는 본능이다 (정확한 의미는 그가 전달하고자 했던 것과 다를지 모르지만)라는 말을 이래서 했나보다…라 생각하며 섬뜩 놀랍니다. 그래도 신앙인은 자신의 욕구에 따라 행동이 무분별하게 흘러가지 않도록, 끊임없이 그분의 말씀에 따라 중심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일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욕구를 따라 살기 아주 쉽겠지요. 중심이 서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그 중심이 “자신”의 가치관과 열정에 근거한다면 편협되기 쉽고 그 파장은 이웃에 큰 고통을 줄 것입니다.
사람은 모두 공통적이지만 또 조금씩 다른 성향과 열망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이것도 하느님께서 공동선을 위해서 쓰이길 "소망하시며" 태초부터 섭리하고 지어내신 것일 겁니다). 어디에 더 민감하고 그에 투신하느냐. 그리고 그 근거가 나이냐, 이웃이냐, 혹은 하느님이냐에 따라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같은 하느님에 중심을 잡고 있다 할 지라도, 성향과 열망에 따라 봉사나 행동의 분야가 다양할 것이고요. 제가 보는 나자렛 “사람” 예수의 한 면은, 그 당시 정치적으로 힘이 있는 종교지도자에 의해 영적으로 살해 당하고 사회에서도 소외 받고 고통당하는 보통 사람들에 대한 끊어질듯한 연민과, 왜곡 당하는 하느님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에 완전히 투신했다는 것입니다. 즉, 그 분이 당시의 정치와 상황을 외면했느냐, 절대 그렇지 않고 오히려 그분은 그 당시 가장 큰 아픔으로 느낀 것에, 치밀한 전략을 세우고(제자단을 모은 것과 행동의 노선을 한가지로-사랑- 확실하게 정한 것), 자신을 온전히 버리고 완전히 투신했다는 것입니다.
영혼을 보살피고 구원하는 것은 현실을 떠나 생각할 수 없다 생각합니다. 가장 영적일수록,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종교가, 신앙인이 그것을 과거 나자렛 사람 예수처럼 하고 있는가. 어쩌면 자신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채 종교라는 이름을 빌려 예언자적 소임을 하려고 하고 있지는 않은가 끊임없이 성찰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분명히 행동해 내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그러나 끊임없이 흔들리고 나도 모르게 치우치고, 완전히 버리는 것이 잘 안됩니다. 거기서 나오는 불협화음과 파장들도 그러나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현재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나를 끊임없이 성찰하고, 시대를 살아내는 것. 그것이 진정 해야할 일이 아닌가. 많은 희생과 고통이 따를 것이고, 당장 눈에는 오로지 패배로만 보일지언정 말입니다. 만약 희생과 고통이 따르지 않는다면, 승리해 내려한다면 어쩌면 나를 위한 것이 되는지도 모르겠지요…
이런 문제에 옳고 그름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내 생각에 맞추려 할 수도, 가르칠 수도 없구요. 그러나, 어떤 말이나 생각이 보편적 진리이라면, 그것이 모든 이들의 마음에 공감되어 하나의 마음과 행동으로 함께갈 수 밖에 없음에는 틀림없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시공을 초월해 매 순간 세상에서 함께 하시는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일 것입니다....
이상은 "지금 현재"의 제 생각이었습니다 ^ ^, 더 깊어질 수 있기를, 더 하느님께 중심을 가지고 저를 버릴 수 있기를 소망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