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이유'를 찾으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는데도,
거의 조건 반사적으로 '못 줄 이유'를 찾은 것은
아마도 이제껏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다져 온
나의 마음가짐 탓일 것이다.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미워할 때 그를 '용서해야 할 이유'보다는
'용서하지 못할 이유'를 먼저 찾고,
누군가를 비난하면서 그를 '좋아해야 할 이유'보다는
'좋아하지 못할 이유'를 먼저 찾고,
마음의 문을 꽁꽁 닫아건 채 누군가를 '사랑해야 할 이유'보다는
'사랑하지 못할 이유'를 먼저 찾지는 않았는지.
나는 '구심'병을 손에 꼭 쥐고 하느님께 용서를 빌었다.
당당하고 열정적으로 짝사랑하라.
사람을 사랑하고, 신을 사랑하고, 학문을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고, 저 푸른 나무 저 높은 하늘을 사랑하고,
그대들이 몸담고 있는 일상을 열렬히 사랑하라.
언젠가 먼 훗날 나의 삶이 사그라질 때
짝사랑에 대한 허망함을 느끼게 된다면 미국 소설가
잭 런던과 같이 말하리라.
"먼지가 되기 보다는 차라리 재가 되겠다"고,
그 말에는 무덤덤하고 의미 없는 삶을 사는 것보다는
고통을 수반하더라도 찬란한 섬광 속에서
사랑의 불꽃을 한껏 태우는 삶이 더 나으리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내 생애 단 한번 / 장 영희
생후 한살에 걸린 소아마비로 일급 장애우로 평생을 살다, 몇차례의 암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서강대 장영희 교수님 글입니다.
이글 전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만, 가물가물한 기억에,
사순 시기인가, 성당에 갔는데 신부님께서 자신이 가진 것 중에 소중한 것 하나를 옆에 있는 사람에게 주라고 하셨답니다. 이 브로치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 스카프는 누구의 선물인데... 아... 이렇게 줄게 없네 하다가 주머니 속에 있던 어느 음식점에서 받은 사탕 하나를 발견하고 옆에 앉은 할머니께 드렸는데, 할머니는 "구심" (아마 심장에 이상이 있을 때 응급약으로 나왔던 듯 싶습니다)을 자신에게 주었다는... 그리고 위의 글이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