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이 있다면 하느님을 믿을까요?”

2010. 4. 12. 오전 4:46:47

글자

14. 야곱의 우물 원고

 

“외계인이 있다면 하느님을 믿을까요?”

 

다소 엉뚱한 질문 같지만 근래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물음들이 있다. “만일 우주에 우리와 같은 지적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그들도 하느님의 존재를 믿을까?” 혹은, “외계인이 존재한다면 우리의 믿음과 가톨릭 교리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 영화팬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E.T부터 외계인들의 지구 방문을 주제로 다룬 영화들, UFO(미확인 비행물체)의 존재를 탐구하는 사람들, 외계인과 만난 사람들, 더 나아가 예수님이 외계인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오늘날의 과학적 호기심과 탐구가 종교적 신념에 끼칠 영향에 대한 관심은 표면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사람들 마음 속에 늘 호기심으로 남아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얼마 전 바티칸 교황청에서 생명의 기원과 외계의 생명체에 대한 세미나를 통해 “생명의 기원과 외계생명체의 존재여부는 많은 철학적, 신학적 함의를 갖고 있다”고 밝히고, 이는 “심각하게 고려할 가치가 있는 주제”라며, 가톨릭 사제로 이 회의를 주관한 호세 푸네스 바티칸 천문대장의 주제를 공론화한 바 있다. “지구에 신이 창조한 다양한 피조물이 있듯이, 지구 바깥에도 다른 피조물들과 심지어 지적 능력을 가진 존재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합리적이지만, 오랫동안 이를 뒷받침할 만한 명백한 증거를 찾지는 못했다고 그는 밝혔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사실이 우리의 신앙심을 위축시키지는 않는다는 점과 그 이유를 “우리가 신의 창조의 자유에 한계를 정할 수 없기 때문”이자, “외계에 지능을 갖춘 존재가 있다면 그도 역시 신(神)의 창조물”이기 때문이라고 밝힌 점이다.

 

내가 기초신학 강의 주제로 잘 인용하는 영화 “콘택트(1997)”에서는 세계적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말을 빌어, “이 넓은 우주에 우리만 존재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공간의 낭비다.”란 말이 나온다. 외계인의 존재를 찾는 여주인공과 영화 속에 나온 종교 담당관과의 대화 속에서는 만일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떤 방식으로던 명백히 증명해내기 힘들다면 세상에 만연하는 재앙과 악, 불의의 현실을 통해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은가라는 과학자의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모든 것을 증명 가능한 것으로만 살고 있는가? 영화의 백미는 어린 시절 돌아가신 아버지를 정말 사랑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는 대답 끝에 “그럼 증명해 보시오”란 단도직입적 물음과, 영화 말미에 자신이 체험한 우주의 광활함과 외계인과의 만남을 어떤 형태로던 증명할 수 없었던 과학자의 종교적 체험에 대한 고백이었다. 너무 아름다워 과학자가 아닌 시인만이 이 체험을 그려낼 수 있다는 고백말이다.

 

솔직히 외계인이 존재하는지, 우주에 또 다른 지적 생명체가 있다면 그들도 하느님의 창조물인지 묻는 일은 우리 일상과 동떨어진 질문 같아 보인다. 하루 먹고 살기도 바쁜 일상 속에서 하루 앞도 모르는데 외계인에 대한 이야기는 팔자 좋은 사람들의 동화이야기같이 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그 분의 인류를 향한 구원이 역사의 한 인물이었던 나자렛 사람 예수를 통하여 궁극적으로 성취되었다는 교회의 고백이 외계인의 존재를 어떻게 다루게 될 지 솔직히 궁금하기도 하다. 만일 지구 밖에 우리와 같은 또 다른 인류가 수 없이 많이 존재한다면, 그들도 예수님을 알고 있고, 그 분을 알지 못하는 외계인들은 하느님의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될까? 위대한 창조주 하느님이 우주의 광활함에 비한다면 보이지도 않을 보잘 것 없는 지구의 작은 땅 덩어리에서 사람이 되어 오셨다는 그리스도 신앙의 고백이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

 

흥미로운 사실은 우주의 탄생의 정설로 알려진 ‘빅뱅이론’, 즉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면, 우주의 탄생은 하나의 작은 점에서 출발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톨릭 신부가 제기했고, 이 번에 외계인 존재에 대한 연구 역시 교황청 천문대장인 가톨릭 신부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가톨릭 교회는 우주의 존재가 절대 신비이신 하느님의 손길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과 외계인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인간이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하느님의 창조의 위대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갈릴레이 재판 이후 가톨릭 교회는 현대 과학의 성과를 수용하려는 분명한 입장을 갖고 있다. 그것이 창조론의 부정도 아니고, 그리스도 신앙의 왜곡도 아닌 것은 분명하다. 가장 큰 것은 가장 작은 것과 맞닿아 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주의 광활한 만큼이나 우리 몸에 담아둔 미세한 세포 속에 담긴 생명의 신비를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설화는 하느님의 창조에 대한 인간의 경외와 신앙을 고백한 것이지, 우주와 인간생명에 대한 과학적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우주처럼 절대 신비 그 자체이시다. 하지만 하느님은 우리에게 우주를 담을 수 있는 마음과 무한한 상상력, 신비를 향해 노래할 줄 아는 영혼을 선사하셨다. 어쩌면 우리가 받은 선물들은 하느님 자신의 속성일지도 모른다. 그 분을 닮았다는 ‘하느님의 모상’으로서의 체험이야말로 인류가 하느님께 받은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기 때문이다. 지구 밖의 어떤 인류가 존재한다면, 그들 역시 하느님의 창조물이고, 이 아름다운 선물의 주인공이 될 것임을 믿는 것이 우리 신앙에 문제가 될까? 그들이 명시적으로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 안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얼굴들, 십자가에서 보여준 절대적 자기 비움의 사랑, 이웃을 향한 헌신과 나눔, 죄와 악의세력과 맞서는 숭고한 신념 들을 그들이 함께 공유하게 되는 것이 우리 신앙에 걸림돌이 될까?

 

우리는 여전히 외계인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그리고 생명에 대한 과학적 탐구가 언제나 신앙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근래 생명의 영역을 침해하는 과학자들의 비윤리적인 행태가 그렇다. 하지만 과학적 신념이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세계를 향한 인간 이성의 탐구와 열정에 근거한다면, 하느님을 닮은 인간이 미지의 세계를 향해 영혼이 품은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종교적 신념과 만나는 일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가톨릭 신앙이 ‘보편적’인 신앙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접하는 모든 과학의 영역조차도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신의 신비’를 만나게 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고 믿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교회의 입장이기도 하다.

 

 

 

 

 

송용민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댓글 3

  • 2010년 4월 12일 오전 6:35

    만유 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톤의 말입니다: 나는 내가 세상에 어떻게 보일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에게 나는, 가끔씩 다른 것보다 매끄러운 조약돌이나 예쁜 조개 껍질을 발견하는데 주의를 돌리는 해변가에서 놀고 있는 작은 소년에 불과하다…진리의 위대한 바다는 내 앞에 전혀 밝혀지지 않은 채 있는.

  • 2010년 4월 12일 오전 6:37

    어느 분야이든..심지어 가장 깊게 지성을 이용하는 듯한 분야에서조차도, 깊어질수록 우리는 우리의 작음과 아는 것이 없음을 더 알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저 동시대에 허용되어 있는 한도 내에서의 앎을 경외심을 가지고, 그리고 미지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즐길 뿐이 아닐까 싶습니다...

  • 2010년 4월 13일 오전 3:31

    다른 우주에 다른 생명체가 있다면..하느님은 인간을 위해 예수님을 보내셨는데, 그 동네에는 무슨 일을 하셨을라나..뭐 그런 이상스런 생각도 하게됩니다만, 우주에 대해서도, 보이지않는 작은 세계에도 무지를 인정하고 경외심을 가지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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