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17일 연중 제2주일] 가나의 혼인잔치(요한2,1- 11)

2016. 1. 16. 오전 8:2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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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1월17일중제2주일] 가나의 혼인잔치(요한2,1- 11)

이사야 예언서는 주님께서 예루살렘을 다시 사랑해 주실 날을 노래한다. 신랑이 신부를 사랑하듯 하느님께서는 예루살렘을 사랑해 주시고 예루살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실 것이다.(이사야 62,1-5)
1 시온 때문에 나는 잠잠히 있을 수가 없고, 예루살렘 때문에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그의 의로움이 빛처럼 드러나고, 그의 구원이 횃불처럼 타오를 때까지.
2 그러면 민족들이 너의 의로움을, 임금들이 너의 영광을 보리라. 너는 주님께서 친히 지어 주실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리라.
3 너는 주님의 손에 들려 있는 화려한 면류관이 되고, 너의 하느님 손바닥에 놓여 있는 왕관이 되리라.
4 다시는 네가 ‘소박맞은 여인’이라, 다시는 네 땅이 ‘버림받은 여인’이라 일컬어지지 않으리라. 오히려 너는 ‘내 마음에 드는 여인’이라, 너의 땅은 ‘혼인한 여인’이라 불리리니, 주님께서 너를 마음에 들어 하시고, 네 땅을 아내로 맞아들이실 것이기 때문이다.
5 정녕 총각이 처녀와 혼인하듯, 너를 지으신 분께서 너와 혼인하고, 신랑이 신부로 말미암아 기뻐하듯, 너의 하느님께서는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시리라.


시편 96(95),1-2ㄱ.2ㄴ-3.7-8ㄱ.9와 10ㄱㄷ(◎ 3 참조)
◎ 모든 민족들에게 주님의 기적을 전하여라.
○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주님께 노래하여라, 온 세상아. 주님께 노래하여라, 그 이름 찬미하여라. ◎
○ 나날이 선포하여라, 그분의 구원을. 전하여라, 겨레들에게 그분의 영광을, 모든 민족들에게 그분의 기적을. ◎
○ 주님께 드려라, 뭇 민족의 가문들아. 주님께 드려라, 영광과 권능을. 주님께 드려라, 그 이름의 영광을. ◎
○ 거룩한 차림으로 주님께 경배하여라. 온 세상아, 그분 앞에서 무서워 떨어라. 겨레들에게 말하여라. “주님은 임금이시다. 그분은 민족들을 올바르게 심판하신다.” ◎      


바오로 사도는 같은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 안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일으키신다고 전한다. 같은 성령께서 사람들에게 서로 다른 은사들을 주심으로써, 그 모든 은사들이 전체의 공동선에 기여하게 하시는 것이다.( 코린토전 12,4-11)
형제 여러분, 4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5 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6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7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8 그리하여 어떤 이에게는 성령을 통하여 지혜의 말씀이,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에 따라 지식의 말씀이 주어집니다. 9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 안에서 믿음이, 어떤 이에게는 그 한 성령 안에서 병을 고치는 은사가 주어집니다. 10 어떤 이에게는 기적을 일으키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예언을 하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영들을 식별하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여러 가지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신령한 언어를 해석하는 은사가 주어집니다.
11 이 모든 것을 한 분이신 같은 성령께서 일으키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자에게 그것들을 따로따로 나누어 주십니다.


이사야 예언서와 마찬가지로 요한 복음에서도 혼인 잔치는 메시아 시대에 실현되는 구원의 때를 나타낸다.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시는 표징을 통하여 당신께서 메시아이심을 드러내신다.(요한 2,1-11)
그때에 1 갈릴래아 카나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다. 2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그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으셨다.
3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였다. 4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5 그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말하였다.
6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정결례에 쓰는 돌로 된 물독 여섯 개가 놓여 있었는데, 모두 두세 동이들이였다. 7 예수님께서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물독마다 가득 채우자, 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 하셨다. 그들은 곧 그것을 날라 갔다.
9 과방장은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지만, 물을 퍼 간 일꾼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과방장이 신랑을 불러 10 그에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
11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연중 제2주일 제1독서 (이사야62,1-5)

"다시는 네가 '소박맞은 여인'이라, 다시는 네 땅이 '버림받은 여인'이라  일컬어지지 않으리라.  오히려 너는 '내 마음에 드는 여인'이라, 너의 땅을 '혼인한 여인'이라 불리리니,  주님께서 너를 마음에 들어하시고,  네 땅을 아내로 맞아들이실 것이기 때문이다." (4)

시온이 주님의 축복을 온전하게 회복함을 예언하는 이사야서 62장 2-5절 가운데서, 62장 4절과 5절시온에 대한 주님의 축복이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축복된 순간인 혼인에 비유되어 묘사된다.

그 가운데 4절은 과거 시온을 버리운 자로 칭해지거나(이사54,6.7) 스스로 그런 존재로 여겼였지만(이사49,14), 주님의 회복된 은총을 받은 후에는 그 어느 누구도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과거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말미암아 그들을 바빌론의 손에 넘겨주고, 또한 약속의 땅을 황폐하게 내버려 두셨지만, 그것은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아니었다. 주님께서는 키루스를 통해 당신 백성을 회복시키셨으며, 나아가 그 민족을 통해 메시아가 나오게 하심으로써 그들을 영원히 버리신 것이 아님을 입증해 주셨다.

본문에는 히브리어에서 가장 강한 의미의 부정어 '로'(lo)'다시는'에 해당하는 '오드'(od)가 쓰여 과거와 달라진 시온의 면모를 한층 더 강조해 준다.

뿐만 아니라 "다시는 네 땅이 '버림받은 여인'이라 일컬어지지 않으리라" 란 표현에도  역시 부정어 '로'(lo)와 부사 '오드'(od)가 사용되어, 하느님의 백성과 더불어 그들의 땅 역시 과거의 황폐한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축복을 누릴 것을 강조한다.

본문은 선민 이스라엘이 누리는 축복이 총체적 축복임을 동일한 형식의 문장을 반복 사용하여 강조하는 것이다.

"오히려 너는 '내 마음에 드는 여인'이라, 너의 땅은 '혼인한 여인'이라 불리리니"

시온 백성이 다시는 버리운 자, 또한 그 땅이 다시는 황무지라 불리지 않을 것임을 언급 한 데 이어, 그들이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며 그 이름으로 불릴 것을 선언한다.

여기서 '내 마음에 드는 여인'에 해당하는 '헤프치 바흐'(hephtsi bah)'나의 기쁨이 그녀에게 있다'(My delight is in her)라는 의미이다. '헤프치'(hephtsi)의 원형 '하파츠'(haphats)는 원래 간절히 염원하거나 기뻐하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이다.

그리고 '바흐'(bah)는 전치사 '뻬'(be)에 '그녀'라는 여성 3인칭 접미어가 결합된 형태의 표현이다. 여기서 여성 3인칭은 이사야서 62장 1절의 시온을 지칭한다.

시온이 하느님의 뜨거운 기쁨이 되는 것은 하느님의 주도적 은총에 기인하며, 이것은 궁극적으로 하느님께서 새롭게 당신의 거처로 세우실 교회가  메시아의 구원사업 근거하여 하느님의 뜨거운 사랑과 기쁨의 대상이 될 것임을 나타낸다.

또한 '혼인한 여인'에 해당하는 '뻬울라'(beullah)는 원래 '혼인하여 주인이 되다'는 의미의 동사 '뻬알'(baal)의 수동태 분사 여성형으로서,혼인을 하여 남편의 소유가 된 여인을 의미한다.

위의 '헤프치 바흐'(내 마음에 드는 여인)'뻬울라'(혼인한 여인)는 이사야서 62장 4절 후반절에서 '주님께서 너를 마음에 들어 하시고'와 '네 땅을 아내로 맞아들이실 것'으로 해설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과거에 하느님의 영광이 떠나 버렸던 땅(이사54,6)에 다시 그 영광이 돌아와 옛 지위를 회복하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에제43,2-5).

'헤프치 바흐'(빨리 읽어서 '헵시바')와 '뻬울라'(빨리 읽어서 '쁄라')는 이사야서 62장 2절에서 예언되었던 '새로운 이름'과 관련되어 시온의 회복이 완전할 것임을 보여준다.

'주님께서 너를 마음에 들어 하시고, 네 땅을 아내로 맞아들이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유 접속사 '키'(ki)로 시작하는 본문은 왜 시온이 '헵시바'로 칭해지며, 그 땅이 '쁄라'로 일컬어지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한다.

여기에서 '마음에 들어 하시고'에 해당하는 '하페츠'(haphets)완료 시제로 되어 있고, '아내로 맞아들이실 것이기'에 해당하는 '팁바엘'(thibbael)미완료 시제로 묘사되어 있다. 문맥적으로 볼 때 여기의 시제는 미완료가 타당하다. 그렇다면, 완료 시제로 된 '하페츠'(haphets)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이해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는데, 하나는 주님께서 언제나 시온을  마음에 들어하신다는 해석이며, 다른 하나는 주님께서 시온을 돌이키실 일이 비록 미래의 일이지만, 너무나 확실하기 때문에 마치 과거에 이루어진 일처럼 표현되었다는 해석이다.

문맥상 여기서 사용된 완료 시제는 예언적 완료라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주님의 기쁨을 표현한 '헵시바'라는 칭호는 시온이 받을 새로운 이름이기 때문이다.

과거 얼마의 기간동안 시온은 주님의 기쁨을 잃어버렸지만, 훗날 메시아 구원 사업의 결과로 새로운 이름인 '헵시바'로 칭해짐으로써, 그의 기쁨을 회복하였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주님께서 시온을 마음에 들어하시는 시점은 이 예언이 주어진 시점보다 미래에 이루어질 일을 말하는 것이다.

 


 오늘의 묵상

요한 복음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수많은 기적 가운데서 공관 복음이 전하지 않는 일곱 가지 기적을 ‘표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전하는데,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기적이 첫 번째 표징입니다.
호세아와 예레미야 예언자 시대를 거치면서,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남편’으로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이 남편이신 하느님께 충실치 않았고 그래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셨다고 선언하지만, 끝없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그분께서 언젠가 다시 사랑을 베풀어 주시리라고 약속합니다. 이사야서 62장도 이러한 맥락에서, ‘소박맞은 여인, 버림받은 여인’이 되었던 예루살렘이 다시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여인, 혼인한 여인’이 되리라고 선포합니다.
혼인 잔치는 그렇게 하느님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아껴 주시는 구원의 때를 암시합니다. 그래서 복음서도 예수님을 밤중에 신부를 찾아오시는 신랑으로(마태 25,1-13 참조), 하느님 나라를 혼인 잔치로 비유합니다(마태 22,1-14 참조).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다는 것은, 이제 바야흐로 구원의 때가 다가왔음을 뜻하는데,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아직 때가 오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요한 2,4).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가 바로 그 ‘때’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카나의 혼인 잔치의 기적은 이 기다림을 완성하실 분이 이미 와 계심을 보여 주는 ‘표징’입니다. 머지않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써 이제는 포도주가 아닌 당신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주실 때, 이 표징이 뜻하는 바가 성취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봉헌하는 이 미사는, 이 혼인 잔치의 표징이 이미 완성되었음을 기념하는 거룩한 잔치입니다. 또한 그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맹물같이 보잘것없는 우리 인생이, 포도주 같이 값진 인생으로 변모되었습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  송영진 모세 신부


갈릴래아 카나의 어떤 집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과 성모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초대를 받았습니다(요한 2,1-2). 그런데 잔치 도중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아신 성모님께서 예수님께 그 사실을 말합니다(요한 2,3).
당시에는 혼인 잔치 도중에 포도주가 떨어진다는 것은 신랑에게는 큰 수치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포도주가 없구나." 라는 성모님의 말씀은, 단순히 포도주가 떨어졌고, 그래서 신랑이 몹시 난처한 상황이 되었다는 사실만 알려드린 것입니다.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는 예수님께 맡긴 것이고.


성모님과 그 잔치 주인이(신랑이) 친척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습니다. 또 누군가가 성모님께 뭔가 부탁이나 하소연을 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어떻든 이 일은 성모님의 '자애심'을 나타냅니다. (자녀의 딱한 사정을 먼저 알고 보살펴 주는 어머니의 사랑.)


아마도 그 상황은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곤란한 상황이었을 것이고, 잔치를 그냥 끝내야만 하는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든 그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다고 믿으셨고, 그래서 예수님께 그 상황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모님께서 말씀하시기 전까지는 그 사실을 모르고 계셨을까? 아니면, 알고 계시면서도 지켜보기만 하셨을까?
복음서의 내용만으로는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예수님이 인간들의 사정에 무관심한 분이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성모님께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십니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요한 2,4)."
이 말씀에서 '여인이시여' 라는 말은, 우리에게는 상당히 불경스럽게 들리지만, 실제로는 깊은 존경을 나타내는 높임말입니다. (우리말을 기준으로 해서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라는 말씀을 겉으로만 보면 '거절'로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곧바로 기적을 행하셨기 때문에 이 말씀을 '거절'로 해석할 수는 없고, 좀 더 깊은 뜻이 들어 있는 말씀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여기서 '저의 때' 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당신이 메시아라는 것을 결정적으로 드러내시는 때"를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뒤에 아버지께 기도를 바치실 때, '때' 라는 말을 사용하셨습니다.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도록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요한 17,1)." '카나의 혼인 잔치'는 예수님의 '때'가  아직 오지 않은 시점이고,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부활이 바로 그 '때'입니다.


그런데 뒤의 11절을 보면, 복음서 저자는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요한 2,11)."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직 당신의 때가 아닌 혼인 잔치에서 드러내신 '영광'과 당신의 때가 되어 드러내신, 즉 십자가 수난과 부활로 드러내신 '영광'은 같은가, 다른가? 같은 영광이지만, 혼인 잔치 때에는 제자들에게만 드러내셨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는 온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내셨습니다.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목격한 사람은 성모님과 제자들과 일꾼들입니다(요한 2,9). 그들은 모두 기적의 증인들인데, 복음서에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말만 있고, 그 일꾼들이 믿게 되었다는 말은 없습니다.
제자들은 원래 예수님을 믿었던 사람들이고, 그 믿음 속에서 더욱 깊은 믿음을 갖게 되었는데, 예수님을 안 믿었던 일꾼들은 기적을 목격하고서도 믿음을 갖지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기적을 행하시긴 했지만,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온 세상 사람들에게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지는 않았다는 것.


지금까지 말한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보면,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라는 말씀은, "아직은 제가 메시아라는 것을 드러낼 때가 아닙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 부탁하시니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무엇을 할까요?"로 해석됩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이것은 어머니를 극진히 섬기는 아들의 모습입니다. ("무엇을 할까요?"는 몰라서 묻는 질문이 아니라,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라는 적극적인 응답의 말씀으로 해석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신 성모님께서는 즉시 일꾼들을 불러서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 모든 것을 믿고 맡기시는 말씀입니다. 기적을 행하시든지, 어떤 인간적인 방식으로 해결하시든지 간에... (아니면 그냥 잔치를 끝내라고 하시더라도...)
그래서 이 말씀은 성모님의 "예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의지와 순종"을 나타내는 아주 아름다운 말씀입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은 주님의 권능으로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분, 그래서 우리의 어려움을 금방 해결해 주시는 메시아이신 분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런 예수님을 믿으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안 믿는 사람들' 쪽에 초점을 맞춰서 생각하면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됩니다.
기적을 직접 목격했으면서도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일꾼들, 난처한 상황이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모르는 채로 좋아하기만 하는 주방장, 이 상황의 당사자이면서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신랑...
그들의 모습은, 하느님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어도 속 편하게 잘 살고 있는 세상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또는, 안 좋은 일이 생기면 하느님을 원망하면서도, 좋은 일이 생기면 자기가 얻은 행운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의(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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