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세례 축일] 세례 (루카 3,15-16.21-22)

2016. 1. 10. 오전 7:3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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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세례 축일] (루카 3,15-16.21-22)

‘주님 세례 축일’은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주님의 세례는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드러낸 사건이다. 그러므로 주님 공현 대축일과 깊은 관련이 있다. 전례력으로는 이 주님 세례 축일로 성탄 시기가 끝나고, 다음 날부터 연중 시기가 시작된다.


주님의 종의 첫째 노래에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종에 대해 말씀하신다. 하느님께서 택하시고 그분의 마음에 드는 이 종은 주님의 영을 받아 세상에 공정을 세우고 민족들의 빛이 될 것이다.(이사야42,1-4.6-7)<또는 40,1-5.9-11>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2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3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4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6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7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


시편 29(28),1ㄱ과 2.3ㄱㄷ과 4.3ㄴ과 9ㄷ-10(◎ 11ㄴ)
◎ 주님이 당신 백성에게 강복하여 평화를 주시리라.
○ 하느님의 아들들아, 주님께 드려라. 그 이름의 영광 주님께 드려라. 거룩한 차림으로 주님께 경배하여라. ◎
○ 주님의 소리 물 위에 머무네. 주님이 넓은 물 위에 계시네. 주님의 소리는 힘차고, 주님의 소리는 장엄도 하네.
○ 영광의 하느님 천둥 치시네. 그분의 성전에서 모두 외치네. “영광이여!” 주님이 큰 물 위에 앉아 계시네. 주님이 영원한 임금으로 앉으셨네. ◎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행적을 요약하여 전하면서,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성령을 부어 주셨음을 선언한다.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에 그분께서는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셨다.(사도행전 10,34-38)

그 무렵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나는 이제 참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35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 36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곧 만민의 주님을 통하여 평화의 복음을 전하시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을 37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이 세례를 선포한 이래 갈릴래아에서 시작하여 온 유다 지방에 걸쳐 일어난 일과, 38 하느님께서 나자렛 출신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 주신 일도 알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성령께서 그분 위에 내리셨는데, 그때에 하느님께서는 이분이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 당신 마음에 드는 아들이심을 선포하셨다.(루카 3,15-16.21-22)
그때에 15 백성은 기대에 차 있었으므로, 모두 마음속으로 요한이 메시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 16 그래서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말하였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21 온 백성이 세례를 받은 뒤에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주님 세례 축일 제1독서 (이사42,1-4.6-7)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1)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2~4)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 (6~7)

'위로의 책'(이사야서 40~55장)의 첫 대목은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40,1)로 시작된다. 이 시작말은 히브리 예언 역사의 전환점을 알리는 말씀이다.

이전의 예언자들은 전쟁과 기아, 역병으로 대표되는 징벌의 신탁을 선포했으나, 이후의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구원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포한다.

바빌론 유배가 끝났음을 알리는 이사야서 40장 2절후반부에서 역사적 상황을 명시하는 유일한 곳이다.

'위로의 책'(40~55장)에서 특별히 주목할 부분 네 개의 노래로 되어있는 '야훼의 종'(Yawhe ebed; 야훼 에베드) 또는 '주님의 종' 관한 신탁이다(42,1-9; 49,1-7; 50,4-11; 52,13~53,12).

여기서 주님의 종이 누구를 가리키는가를 두고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비빌론을 멸망시키고 유배자들을 풀어준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 숱한 고난을 이겨낸 이상적 이스라엘 백성(이사41,8~10) 또는 소수의 경건한 남은 자들, 모세, 이사야, 예레미아와 같은 예언자, 요시아, 여호야킨, 즈루빠벨 같은 유다 왕족, 아니면 무명의 제2 이사야서 저자 등 다양한 대상이 제시되었지만, 본문 자체로는 확실하게 규명하기 힘들다.

또한 네 노래동일한 대상을 묘사하는지, 아니면 저마다 다른 대상을 묘사하는지도 판가름하기 어렵다.신약 성경 저자들은 한결같이 예수님'주님의 종'으로 이해했다.

우리는 일단, 바빌론을 멸망시키고 유다인들을 풀어 준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주님의 종'을 이해하고, 구약은 신약의 예표요 암시요 약속이므로, '주님의 종' '예수님'께 적용하기로 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북방에서 새로운 정복자를 일으켰고, 이 좋은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할 사자(使者)를 파견하라고 이스라엘에 명했다는 증거를 제시하셨다(이사40,1~9).

그 다음에 하느님께서는 이 정복자를 당신의 종으로 소개하신다. 즉 당신의 천국 법정의 판결을 민족들에게 집행할 '주님의 종'이다.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40,1)

그는 이 일을 조용하고 은은하고 섬세하고 온화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수행할 것이다. 그는 이 일이 '세상에' 이루어질 때까지, 지치거나 기가 꺾이지 않을 것이다.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42,2~4)

하느님은 이 종을 불러 그를 '백성을 위한 계약과 민족들의 빛'으로 임명하신다. 그는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풀어 줄' 것이다.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 (42,6~7),

이사야서 42장 1절 이하에서 천국 법정의 사자로 '주님의 종'이 소개되었다. 그는 천국 법정에서 내려진 판견들을 이방 민족들에게 통지하고, 세상에서 그 판결들을 이행할 자이다.

우상들과 우상 숭배자들의 주장을 심의한 재판에서 드러난 이 공의는 이사야서 40장1~5절과 9~10절에서 예고된 공의다. 

이사야서 42장 1~4절에서 '공정'(mishipath; 미쉬파트)라는 단어는 3번 나오는데, 이 단어는 정관사가 없을 떄 '공의'(justice)를 의미할 수 있다. 

그러나 본 문맥에서는 훨씬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이 단어는 '증인들 앞에서 천국 법정에 의해(즉 주님에 의해) 내려진 판결'을 의미한다. 이 판결은 정책의 기초가 되어야 하며, 관심있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져 인정받을 필요가 있다.

키루스는 이 판결을 실행하기 위한 '주님의 종'(사자; 대행자)으로 선택받았다. 주님은 당신의 종(사자)에 대한 신뢰를 표현하시고, 그를 '붙들어 주신다' 그리고 당신 자신의 '영을 그에게' 주셨다(이사40,1). 

'주님의 종'이 주님의 뜻을 받들어 섬기는 태도의 성실성은  이사야서 40장 2~3절에 잘 표현되고 있다. 이 판결(공정; 정의)은 민족들(40,1)과 세상과 섬들(40,4)에  반드시 알려지고, 확립되어야 한다.

여기서 섬들은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리라는 주님의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예루살렘의 이웃들을 말한다.

'민족들''세상''섬들'이라는 말은 '주님의 종'의 권위가 다윗이 행사한 권위와 같이 더 넓은 팔레스티나에서 행사될 것임을 나타낸다. 

이사야서 40장 4절이 '그의 가르침'에서 '가르침'(교훈; torah; 토라)이라는 단어는 후에 모세오경을 나타내는 전문적인 용어가 되었다. 

토라(모세오경)는 예루살렘으로의 귀환 이전에 에즈라에 의해 바빌론에서 완성되고, 복사되고, 가르쳐지고, 권위가 주어졌다.

이사야서 42장 6~7절은 주님께서 키루스에게 직접하시는 말씀이다. '부르다, 붙잡다, 빚어 만들어 되게 하다(세우다)'라는 말은 주님의 종인 키루스에게 주어지는 것들을 나타낸다. 주님은 궁극적 목표(구원)에 있어 키루스의 후원자이시다.

키루스가 수행해야 할 역할은 두 가지 측면을 갖고 있다. 그는 '백성을 위한 계약''민족들의 빛'으로, 자신의 지배하에 있는 백성들에게  통치와 공의와 질서를 베풀 책임이 있다.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풀어 주는 일'은  하느님의 백성과 관련된 그의 역할이다. 이스라엘은 해방을 받고, 복권되어야 하며, 그들의 성전이 있는 성(城)은 재건되어야 한다. 

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이다.주님이 세례 받으셨을 때,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고, 하늘에서 들려온 말씀이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마르1,11)이다. 

오늘 독서의 이사야서 40장 1절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의 말씀이 복음의 말씀안에서 예수님의 세례 사건에서 실현되고 성취된 것이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시작으로, 하느님 나라를 위한 공적 활동 (공생활)을 시작하신다.

죄없으신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은, 단순한 겸손의 모범도 아니고, 요르단 강(자연수)을 거룩하게 축성하시기 위해서도 아니다. 

아버지 하느님께 가는 진리와 생명의 길이신(요한14,6) 예수님께서는 세례가 인간 구원의 절대 필수 조건임을 계시한 것이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주님의 간택을 받아 주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주님 마음에 드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세례 때, 죄와 죄 짓게 하는 악의 세력(사탄)을 끊어 버리고, 신앙의 진리대로 살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러니 다시 되찾은 '주님의 자녀'라는 품위와 지위와 신분의 소중함을 깨닫고,자신의 생명보다 더 소중하게 이 '거룩한 은총의 품위'를 잘 지켜 나가자.



 

<세례>송영진 모세 신부


"온 백성이 세례를 받은 뒤에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하늘이 열리며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 3,21-22)"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기 때문에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는 분입니다.
그런데도 세례를 받으신 것에 대해서는,
사람들에게 세례의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
겸손의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
요한의 세례를 인정하신다는 뜻으로,
아버지와 성령과 요한으로 하여금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증명하게 하기 위해서,
세례의 물을 축성하기 위해서,
유대교의 세례를 폐지하고 당신의 세례를 세우기 위해서, 등으로 해석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께서는 분명 천사들을 보살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보살펴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모든 점에서 형제들과 같아지셔야 했습니다.
자비로울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충실한 대사제가 되시어,
백성의 죄를 속죄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히브 2,16-17)."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일은,
"모든 점에서 형제들과 같아지신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를 위한 일입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가 있는 위치로 내려오신 일.)


복음 말씀의 본문을 보면, "온 백성이 세례를 받은 뒤에" 라고 되어 있는데,
이 말의 뜻은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있을 때에"입니다.
실제로 '온 백성'이 요한의 세례를 받은 것은 아닙니다.
또 요한의 세례가 완전히 마무리 된 다음에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은 아니고,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뒤에도
요한은 감옥에 갇히기 전까지 한동안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요한 3,23).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뒤에 기도를 하셨다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세례란 수동적으로 받기만 해도 되는 예식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어야 하는 '헌신'이라는 가르침입니다.
베드로 1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세례는 몸의 때를 씻어 내는 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힘입어
하느님께 바른 양심을 청하는 일입니다(1베드 3,21)."
이 말은, 세례는 단순히 형식적인 예식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는 일이고,
구원받기 위해서 하느님께 나아가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하늘이 열리며" 라는 말은
하느님의 계시가 내리는 상황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평소에는 하늘이 닫혀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예수님 위에 내리셨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성령을 받으셨음을 사람들이 목격하고 인간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성령이 비둘기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받으시는 모습을 보고
아마도 사람들은 비둘기가 날아와서 앉는 모습을 연상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한처음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이신 분이기 때문에(요한 1,1)
예수님께서 성령을 안 받은 상태로 지내시다가 처음으로 받게 된 것은 아닙니다.
또 활동을 시작하기 위해서 성령을 받아야만 했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이 내리고 하느님의 음성이 들린 일은
사람들을 위한 계시로 해석됩니다.
(일종의 시청각 교육 같은 것.)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신 뒤에 무슨 기도를 하셨을까?
아마도 앞으로 하시게 될 일들에 대해서
아버지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셨을 것입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바치신 기도는 안 나오지만,
하느님의 말씀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라는 말은 하느님께서 직접 말씀하셨다는 뜻입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하느님께서 직접 확인해 주시는,
또는 직접 선언하시는 말씀입니다.
겉으로는 예수님께 하신 말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메시아가 되셨음을 선언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원래 메시아이신 분이라는 것을 확인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메시아가 '되신' 분이 아니라, 원래 메시아이신 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께서 거룩하게 변모하실 때에도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루카 9,35)."
여기서 하느님 말씀의 뜻은,
"예수는 메시아이니 메시아의 구원을 받으려면 예수의 말을 들어라."입니다.
즉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있는 위치로 내려오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인데,
이것은 구원 사업의 시작일 뿐입니다.
우리를 데리고 올라가셔야 구원사업이 완성됩니다.
우리 쪽에서 표현한다면,
"세례를 받는 것은 구원의 시작일 뿐이고,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가야 구원이 완성된다."입니다.
(세례성사는 졸업식이 아니라 입학식입니다.)


'끝까지' 라는 말에서 바로 떠오르는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
신앙생활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속 한가운데에서 살면서 하느님 나라를 추구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최종 목적지를 잊지 말고 끝까지 견뎌야 합니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예수님 당시에 사해 부근의 쿰란에는 독실한 마음으로 수계 생활을 하면서 하느님 나라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오늘날의 수도 생활처럼 공동체를 이루고 엄격하게 고행하며 단체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 공동체에 입문하려면 물로 씻는 예식, 곧 정화 예식을 거쳐야 했습니다. 여기서 세례는 회개를 전제한 죄의 용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례가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고 죄의 용서를 받는 것이라면, 굳이 예수님께는 세례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가시어 세례를 청하실 때, 요한도 당황하여 그분을 말리려 하였습니다(마태 3,14 참조). 논리적으로 말한다면 요한이 옳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세례를 통하여, 죄인들과의 연대를 드러내십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심으로써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듯이,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우리와 결합하시어 우리의 죄를 용서받게 하십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주님의 종은 꺼져 가는 심지도 끄지 않음으로써 민족들의 빛이 됩니다. 제2독서에서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만민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은, 그분께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 모든 이를 낫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의인들과 건강한 이들만 당신 백성으로 삼으신다면, 예수님께서 모든 이의 주님이 되실 수는 없으셨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아드님으로서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권위와 능력은, 높은 이들의 복종을 받아 내시는 것이 아니라 약하고 죄스러운 모든 이를 받아들이시는 것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우리는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우리와 같은 운명을 받아들이셨습니다. 몸 둘 바를 모르겠고 그저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아름다운 퇴장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세례자 요한

 

한 음식단지에 갔다가 요란스런 간판들을 보고 좀 웃었습니다. 그야말로 ‘원조논쟁’이 벌어져있었습니다. 한집 간판이 50년 전통의 원조라고 강조하고 있었는데...조금 더 가니 원조도 모자라 ‘진짜 원조’라고 강조점을 뒀더군요. 좀 더 지나니 그것도 모자라 ‘진짜 오리지널 원조’라고 떡하니 붙여놓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원조’에 대한 집착은 각별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요르단 강에서의 세례 역시 한 때 원조논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 입장에서 보면 그럴 만도 합니다. 세례 하면 당연히 자신들의 스승인 요한이었습니다. 이름도 세례자 요한이지 않습니까?


세례자 요한은 한때 전국민적 세례 갱신 운동을 전개하며 전국구 인물로 떠올랐습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와서 물로 세례를 받았고 그의 거침없는 외침에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그에게 인품에 매료된 수많은 추종자들이 생겨났으며 ‘세례자 요하 당(黨)이라고까지 불렸습니다.

한때 그렇게 잘 나가던 스승 세례자 요한이었는데...요즘은 파리만 날리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최근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 때문이었습니다. 훨씬 강력한 빛과 존재감으로 구세사의 전면에 등장하신 예수님이었기에 순식간에 전세는 기울었던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얼마나 당혹스럽고 또 한편으로 억울했으면 이런 표현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스승님,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요한복음 3장 26절)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스승보다 늦게 개업해놓고 세례 베푸는 일에 있어 더 큰 성공을 보이는 예수님에게 일종의 반감까지 지니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상황이 그런데도 스승은 별 위기감이나 전세를 뒤집을만한 묘안도 내놓지 않으니 더 불만이 고조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세례자 요한이 보인 태도에 우리의 시선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쇄락과 반비례해서 급격히 떠오르는 예수님의 존재감 앞에 세례자 요한은 전혀 동요되지 않습니다. 억울함이나 적개심도 품지 않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과 자신 사이의 관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세례 원조 논쟁 앞에서 조금도 망설이거나 그 무엇 하나도 감추지 않고 명백하고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복음 3장 27~30절)


요한은 이제 자신이 무대에서 내려올 순간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예측했습니다. 자신은 주인이 아니라 종이며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을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신원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세례자 요한의 뇌리 속에 박혀 있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참으로 위대한 인물인 것은 분노하고 억울해하면서 무대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기뻐하고 경축하면서 무대에서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에게서 우리는 구세주 예수님을 향한 한없는 존경심과 깊은 겸손을 엿볼 수 있습니다. 구세주를 위한 자신의 퇴장 앞에서 그는 조금도 슬퍼하지 않고 행복해합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물러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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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복음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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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주일]은혜의 해 선포 (루카 1,1-4; 4,14-21)16.01.22조회 60[2016년 1월 17일 연중 제2주일] 가나의 혼인잔치(요한2,1- 11)16.01.16조회 78[주님 세례 축일] 세례 (루카 3,15-16.21-22)16.01.10조회 102[주님 공현 대축일]동방박사 (마태 2,1-12)16.01.02조회 10512. 27.[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순종 (루카 2,41-52)15.12.27조회 67[예수 성탄 대축일] 말씀이 사람이 되시다.(요한 1,1-18)15.12.25조회 109[예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예수님의 탄생 (루카 2,1-14)15.12.24조회 58[대림 제4주일]믿으신 분! (루카 1,39-45)15.12.20조회 340[대림 제3주일.장미주일. 자선 주일]성령과 불로 세례를 (루카3,10-18)15.12.12조회 61[12. 6. 대림 제2주일]광야에서 외치는 이 (루카 3,1-6)15.12.05조회 89[11월 29일다해 대림1주일] 깨어 기도하라 (루카 21,25-28.34-36)15.11.28조회 59[연중 제34주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성서주간 (요한 18,33ㄴ-37)15.11.22조회 56[연중 제33주일.평신도주일]무화과나무의 교훈 (마르 13,24-32)15.11.15조회 58[연중 제32주일] 가난한 과부의 헌금 (마르코12,38-44)15.11.08조회 128[연중 제31주간 모든 성인 대축일] (묵시 7,2-4.9-14; 1요한 3,1-3; 마태 5,1-12ㄴ)15.11.01조회 77[연중 제30주일] 예리코 소경치유 (마르 10,46ㄴ-52)15.10.25조회 58[연중 제29주일] 전교주일.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마태 28,16-20)15.10.17조회 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