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7일 부활 제4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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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 (요한 14,4-1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8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한다. 다른 민족들은 이들의 증언에 기뻐하였으나 유다인들은 시기심으로 가득 차 그들을 박해하고 그 지방에서 내쫓는다. 그래서 두 사도는 이코니온으로 떠난다(제1독서). 필립보가 예수님께 하느님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사고 청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서 하느님 아버지를 볼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필립보는 아직 예수님과 하느님 아버지께서 긴밀한 일치를 이루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였던 것이다(복음).
오늘 복음에서 필립보는 예수님께 이렇게 청합니다.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신학생 때였습니다. 어느 날 밤 성체 조배를 하면서 주님께 이렇게 청하였습니다. “주님, 지금 제 귀에다가 대고 무언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시면 저는 그것을 제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겠습니다.”
저는 무언가 제 귀나 눈으로 주님을 느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것만 있다면 사제직을 준비하는 데 충분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서 몇 분이 지났습니다. 제 마음에 이러한 울림이 퍼졌습니다. ‘얘야, 나는 이미 너에게 내가 할 말을 다했단다.’
저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주님께서는 제게 모든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성경을 통해, 성인들의 고귀한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통해 당신께서 제게 하고자 하셨던 모든 말씀을 다 건네신 것입니다. 그런데 제 자신은 그것을 소홀히 여긴 채 무언가 특별하고 새로운 것을 청하였던 것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보고도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필립보처럼, 우리도 성경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과 일상의 수많은 사건 속에서 주님을 발견하지 못한 채 새롭고 특별한 계시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다 이루어주겠다 반영억라파엘신부
충북 음성군 감곡면의 특산물은 복숭아입니다. 매년 복숭아 꽃 축제를 합니다. 오늘은 축제일입니다. 풍성한 수확을 희망하며 기도하는 날입니다. 올 한 해 복된 결실을 이루기를 기원하며 두 손을 모읍니다. 변덕스런 날씨에도 다행히 꽃을 피우고 있어 기대가 됩니다.
복숭아나무는 추위에 약합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겨울을 준비합니다. 짚으로 나무를 감싸주는 이도 있고 페인트를 발라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전에 비해 동해를 많이 받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나무 둘레의 땅을 파고 퇴비 등 밑거름을 주는 대신 비료 등 웃거름을 주는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나무의 뿌리는 거름을 향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밑거름이 충분하면 뿌리를 땅속 깊게 내리게 됩니다.
그러나 웃거름에 의지하게 되면 뿌리가 겉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러니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신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속으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쉽게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뿌리를 제대로 내려야 합니다. 밑거름이 풍성해야 합니다. 그것은 곧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신앙을 잃어버립니다. 기도는 신앙인의 호흡입니다. 호흡을 멈추면 죽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를 회피하는 것은 신앙인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십시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숨을 곳을 찾으려고 땅을 파는 두더지처럼 몸과 마음을 땅으로 굽힙니다. 그들은 현세적이고 지나가는 세상 것에 집착하기 때문에 높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지 못합니다”(성 요한 비안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는 주님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내 이름으로 내 바람을 청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바람을 알아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더 데레사 수녀님은 “기도하기 위해서는 먼저 침묵해야 합니다. 제대로 기도하는 사람은 침묵하는 사람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깊은 침묵 안에서 주님의 뜻을 찾고 그 뜻에 따르는 것입니다. 사실 눈과 입은 닫고 가슴과 귀를 열면 무엇인가를 느끼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책에서 하느님을 탐구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분을 발견하는 것은 기도 안에서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그분 손에, 그분의 처분에 맡기고, 마음 깊은 곳에서 그분의 음성을 조용히 들으십시오.
피아노를 치면서 피아노를 배우듯 기도를 하면 할수록 더 잘하게 됩니다. 기도를 자주함으로써 기도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은 기도의 참 맛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잘 하려거든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기도를 시작한다는 것은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시작하는 것이며, 진정으로 하느님을 섬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본질적 요소는 많이 생각하는 데 있지 않고, 많이 사랑하는 데 있습니다”(예수의 성녀 데레사). 따라서 많이 사랑하십시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한 그 사랑으로 사랑하십시오.
혹 구해도 얻지 못하면 주님의 이름으로 청했는지 짚어보십시오. 분명 주님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주겠다” 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의 기쁨이며 희망이길 바랍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