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12일 부활 제2주간 금요일
"이 사람들을 다 먹일 만한 빵을
우리가 어디서 사올 수 있겠느냐?”
(요한 6,1-15)
말씀의 초대
사울(바오로)의 스승이기도 한 율법 교사 가말리엘이 최고 의회에서 사도들의 복음 선포에 대해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라고 권고한다. 사도들의 활동이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온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제1독서). 갈릴래아 호수 건너편에 계신 예수님께 많은 군중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불리 먹이시는 기적을 베푸신다(복음).
☆☆☆
오늘의 묵상
(요한 6,1-15)
먼저 감사하라
반영억신부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천 명이 먹고도 남았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이해가 되지 않는 일도 믿음 안에서는 가능한 일입니다. 주님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먹고도 남았다’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면 이 이야기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먹고도 남았지만 결국은 때가 되면 또 배가 고플 것이고, 또 먹어야 하는데 그때마다 기적을 베풀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천 명을 먹이신 빵의 기적 안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야 하겠습니다.
필립보나 안드레아는 인간적인 계산에 밝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군중의 배고픔에 대한 걱정을 하실 때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하고 말했습니다. 단순한 생각을 그대로 말한 것입니다. 계산이 밝으니 주님을 몰라봅니다. 결국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항상 부족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권능을 믿을 것 같으면 ‘제가 가진 것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모두를 내 놓으니 나머지는 당신이 채워주십시오!’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주님께서는 차고 넘치도록 베푸십니다. 베풀면 베풀수록 베풀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하찮게 보일 수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것에 대한 감사를 드렸고 나누었습니다. 필립보와 안드레아가 이백데나리온 이상의 세상적 가치에 골몰해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논리로는 이해하지 못할 또 다른 세상의 가치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빵을 손에 들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물고기도 그렇게 하시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남은 것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습니다. 주님께서는 차고 넘치도록 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은총을 주시는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분으로부터 주어진 은총의 결과물에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채워주실 수 있는 분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똥은 쌓아놓으면 냄새가 나지만 뿌려지면 거름이 됩니다. 물질도 마찬가지입니다. 뿌려지면 선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하찮고 의미 없어 보이는 것이라도 먼저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물질적인 결과물에 매여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억지로라도 임금으로 삼으려고 한 것을 보면 그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습니다. 깨닫지 못하는 군중들을 피해 외로이 하느님 곁에 머물렀습니다. 예수님께서 홀로 있다는 것은 곧 ‘하느님 아버지와 같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늘 한적한 곳을 찾으시며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는 곧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계산을 모두 주님께 맡기고 그분의 권능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네가 하는 일을 주님께 맡겨라. 계획하는 일이 이루어질 것이다”(잠언16,3). “네 길을 주님께 맡기고 그분을 신뢰 하여라, 그분께서 몸소 해 주시리라”(시편37,5). 사랑합니다.
오늘 복음은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장정만도 오천 명쯤 되는 군중을 먹이시려고 하자, 안드레아가 예수님께 말씀드립니다.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여기에서 ‘아이’가 가진 음식이 안드레아의 눈에 뜨였다는 사실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많은 사람 가운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정도를 가진 사람이 어디 아이 하나뿐이었을까요? 더구나 아이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호수 건너편까지 오면서 먹을 것을 그만큼 챙겼다면, 어른들은 어떻겠습니까?
아마도 어른들은 예수님께 자기의 것을 봉헌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기가 가진 것으로는 도저히 이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도 않을뿐더러 자신도 제대로 먹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것만이 예수님께 봉헌되었습니다. 계산도 빠르고 앞가림도 잘하는 어른들이 자기의 것을 숨겨 두고 있을 때, 아이의 것은 예수님께 봉헌되어 가치 있게 쓰였습니다. 아이는 계산도 하지 않은 채 예수님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것을 바쳤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비록 보잘것없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그분의 힘을 믿고 기쁘게 봉헌한다면 참으로 가치 있게 쓰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