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2주간 월요일] 용서하여라.(루카6,36-38)

2026. 2. 28. 오전 6:3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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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2일 월요일

[사순 제2주간 월요일] 용서하여라.(루카6,3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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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저희는 죄를 짓고 불의를 저질렀습니다.>(다니9,4-10)

4 , 주님! 위대하시고 경외로우신 하느님,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 계약과 자애를 지키시는 분!

5 저희는 죄를 짓고 불의를 저질렀으며 악을 행하고 당신께 거역하였습니다. 당신의 계명과 법규에서 벗어났습니다.

6 저희는 저희의 임금들과 고관들과 조상들과 나라의 모든 백성들에게 당신의 이름으로 말하는 당신의 종 예언자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7 주님, 당신께서는 의로우십니다. 그러나 저희는 오늘 이처럼 얼굴에 부끄러움만 가득합니다. 유다 사람, 예루살렘 주민들, 그리고 가까이 살든 멀리 살든, 당신께 저지른 배신 때문에 당신께서 내쫓으신 그 모든 나라에 사는 이스라엘인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8 주님, 저희의 임금들과 고관들과 조상들을 비롯하여 저희는 모두 얼굴에 부끄러움만 가득합니다. 저희가 당신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9 주 저희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시고 용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저희는 주님께 거역하였습니다.

10 주 저희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당신의 종 예언자들을 통하여 저희 앞에 내놓으신 법에 따라 걷지 않았습니다.

 

<화답송>시편79,8.9.1113(103,10) 주님, 저희 죄대로 저희를 다루지 마소서.

선조들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마소서. 어서 빨리 당신 자비를 저희에게 내리소서. 저희는 너무나 불쌍하게 되었나이다.

저희 구원의 하느님, 당신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저희를 도우소서. 저희를 구하소서. 당신 이름 위하여 저희 죄를 용서하소서.

포로들의 탄식이 당신 앞에 이르게 하소서. 죽을 운명에 놓인 이들을 당신의 힘센 팔로 보호하소서. 저희는 당신의 백성, 당신 목장의 양 떼. 끝없이 당신을 찬송하고, 대대로 당신을 찬양하오리다.

 

복음<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루카6,36-38)

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37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38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사순 제2주간 월요일 제1독서(다니9,4ㄴ~10)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시고 용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저희는 주님께 거역하였습니다. 주 저희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당신의 종 예언자들을 통하여 저희 앞에 내놓으신 법에 따라 걷지 않았습니다." (9~10)

 

선민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다니엘이 바빌론 유배를 초래한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하여 3가지 단락으로 회개하는 내용이 다니엘서 9장 5~15절에 나온다.

 그 가운데 첫번째 단락인 다니엘서 9장 5~8절에서는 바빌론 유배가 하느님의 공의(公義)와 심판의 실현으로 이루어졌음을 회상하며 회개하였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제 다니엘서 9장 9~12절은 모세 율법에 규정된 내용이 실현되어 이루어졌음을 회상하며 회개하는 내용이다.

 

다니엘서 9장 9절의 '그러나'로 번역된 접속사 '키'(ki)는 '~에도 불구하고'라는 양보의 의미로 번역하여야 한다.

즉 다니엘서 9장 9절은 하느님께서 크나큰 자비와 용서를 베푸셨음에도 불구하고 선민 이스라엘이 주님께 크나큰 거역을 저질렀음을 지적하는 내용이다.

 

다니엘서 9장 9절에서 하느님의 속성 내지는 선민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처신으로 소개되고 있는 '자비와 용서를 베푸심'에 해당하는 '하라하밈 웨핫쎌리호트'(harahamim wehassellihoth)는 둘 다 복수형 명사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의 정도를 매우 강조하는 표현이다. 즉 하느님의 자비가 여러 방면에서 나타나고 그분의 용서하심이 매우 풍성하다는 사실을 이중적으로 강조하는 표현이다.

 

특히 '자비'에 해당하는 '하라하밈'(harahamim)의 원형 '라함'(raham)은 본래 어머니의 자궁(womb) 혹은 사람의 내장(bowel)을 의미하는 어원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어머니가 자기 자녀에게 대해 나타내는 강력한 사랑의 감정과 이에 수반하는 행동을 나타낸다.

이처럼 선민 이스라엘에 대해 하느님께서 뜨거운 사랑의 마음, 자비의 심정을 품으셨기에, 이스라엘의 거역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자비와 용서를 베푸시는 것이다.

 

사실 다니엘이 이것을 진술하는 것은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에도 불구하고 범죄와 거역을 자행하는 이스라엘의 죄상을 고백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사실에 대한 진술은 이처럼 하느님을 거역한 이스라엘이 회복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외에 없음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 저희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다니엘서 9장 10절과 11절의 내용은 기본적으로 9장 5절, 6절의 진술과 유사하며, 선민 이스라엘이 주님께 대하여 크나큰 범죄를 자행했음을 자백하는 기도이다.

다니엘서 9장 10절의 '듣지 않고'에 해당하는 '웰로 사마으누'(wello samahnu)는 '그리고 저희가 결코 듣지 않았습니다'라는 의미로 번역할 수 있다.

 

특히 '저희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에서 '하느님의 말씀'으로 번역 '뻬콜 예호와'(beqol yehowa)는 '주님의 목소리'로 번역되고, 이 표현은 선민 이스라엘이 단순히 순종하기를 거부하는 태도뿐만 아니라 아예 하느님의 말씀 자체를 싫어하는 태도를 취했음을 나타낸다.

 

'당신의 종 예언자들을 통하여 저희 앞에 내놓으신 법에 따라 걷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주님의 종 예언자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전파한 말씀뿐 아니라(다니9,6) 하느님께서 그들의 손을 의탁하여 이스라엘 앞에 내놓으신 율법까지(다니9,10) 선민 이스라엘이 듣지 않고 행하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주님께서 ~~(부탁하여) 저희 앞에 내놓으신'에 해당하는 '나탄 레파네누' (nathan lepanenu)는 문자적으로 '그가 우리 앞에 주신'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처음 율법이 부여된 모세 시대에 관한 회상이 아니라 이미 부여된 그 율법들이 각각의 시대마다, 세대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언자들을 통해 생생하게 선민 이스라엘에게 다시 각성되고, 그것에 대한 이행이 지속적으로 촉구되었음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본문에서 '법에 따라'에 해당하는 '뻬토로타이우'(bethorothaiu)의 원형 '토라'(thora)는 가르치는 행위를 의미하는 어원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주님의 교훈을 말한다.

본문에서 이 단어는 복수형으로 쓰였는데, 이것은 단순히 십계명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규정들과 법령들 및 율법의 구체적인 조항들을 포함한다.

 

  

 

  


[사순 제2주간 월요일 (정진만 안젤로 신부)

 

오늘 복음은 ‘평지 설교’(루카 6,20-49 참조)의 한 부분입니다.

행복 선언(6,20-23 참조)과 불행 선언(6,24-26 참조), 원수 사랑의 가르침(6,27-35 참조)은

심판과 용서에 대한 가르침에 앞서 소개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에서 내려오시어 평지에서, 당신의 말씀과 행적을 증언할 증인들을 파견하시기에 앞서 그들에게 가르침을 베푸십니다.

 

루카 복음 6장 36절은 원수 사랑에 대한 가르침을 ‘마무리’하면서, 심판과 용서에 대한 가르침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루카 복음 6장 37-38절은 사중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명령과 그 결과가 같은 형식으로 네 차례 반복되는데, 처음 두 번은 부정 명령이고 다음 두 번은 긍정 명령입니다.

 루카 복음서의 저자는 이러한 대조적 구조를 통하여 남을 심판하거나 단죄하지 말고,

용서하며 베풀어야 한다는 행위의 절대적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의 권고와 명령에 따른 실천은 긍정적 결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의 명령을 따르는 이는 하느님께 심판도 단죄도 받지 않으며 그분의 용서와 선물을 체험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예수님에게서 파견되어 그분을 증언해야 하는 이들을 위한 행동 기준이자 그들이 지향해야 하는 목표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심판과 용서에 관한 가르침으로 제자들이 자비로운 아버지의 속성을 배우고 닮도록 촉구하십니다.

 

(정진만 안젤로 신부)

 

    


    


 [사순 제2주간 월요일]

 

좋은 가르침은 우리 마음을 꿰찌른다.

 

(루카6,27.36-38)

27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 오늘 말씀은 세상이 아닌 교회(하느님 백성)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 인간의 하느님처럼 자비로울 수는 없다. 다만, 하느님께 입은 자비를 삶으로 살고 전하라는 말씀이시다.

 

 묵상글에~<하느님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우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려면 먼저 우리가 하느님께 용서받은 일들을, 하느님께 넘치도록 받은 것들을, 그리고 내가 얼마나 나약하고 옹졸한 사람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자비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받은 사랑과 용서를 되새기고, 그분께 감사해야 합니다. 먼저 감사함을 찾으십시오.>

= 자비(慈悲, 스폴랑코니조마임), 생명을 키워내는 여자의 자궁을 뜻하며, 애 끓는, 애간장이 녹는 사랑을 뜻한다. 그 利他의 사랑으로 죄에서 살려 내시는 것이 자비이다.

 

(창세19,15-16) 15 동이 틀 무렵에 천사들이 롯을 재촉하며 말하였다. “자, 이 성읍에 벌이 내릴 때 함께 휩쓸리지 않으려거든, 그대의 아내와 여기에 있는 두 딸을 데리고 어서 가시오.” 16 그런데도 롯이 망설이자 그 사람(천사)들은 롯과 그의 아내와 두 딸의 손을 잡고 성읍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주님께서 롯에게 *자비를 베푸셨기 때문이다.

= 육의 욕망으로 죄악이 가득한 소돔이 멸망을 당할 때, 롯은 망설였다. 소돔의 그 화려한 삶에 미련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비가 그를 억지로 끌고 나오셨다. 롯의 그 육의 욕망에서 건져내신 것이다. 곧 肉(욕망)을 죽이시고 靈을 살리신 것이다.

 

(마르5,18-19) 18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마귀 들렸던 이가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19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 더러운 영, 곧 육의 욕망을 위한 뱀(사탄)의 말을 들어 무덤(어둠, 죽음)에 살았던 그 사람에게서 그 더러운 영(말)들을 쫓아 내시어 살려내신 것이다.

 

(티토3,5) 5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비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고 새로워지도록 물로 씻어 *구원하신 것입니다.

= 육이 욕망으로 죽어야 했던 롯이나, 더러운 영이 들렸던 사람이나, 또 우리 죄인들이나 모두 하느님의 자비, 그 애간장이 녹는 사랑으로 구원 받은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 잘못, 죄를 다 가져가신 것, 자비다.

 

(이사53,4-6) 4 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 받은 자, 하느님께 매 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5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6 우리는 모두 양 떼처럼 길을 잃고 저마다 제 길을 따라갔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

= 하늘의 代贖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이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십자가로 용서받아 거저 의롭게 십자가로 용서받아 거저 의롭게 되어 구원받는 것이다. 그러니 十字架, 그 하느님의 자비에 감사하는 삶을 살며 이웃에게 하느님 사랑을 전해주는 것, 자비로운 사람이다.

 

37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 하느님의 자비, 십자가의 대속으로 용서 받았음을 믿는 사람은 다른 이를 심판할 수 없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 다른 이의 죄도 대속하신 자비이시다.

 

38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 자비의 말씀, 곧 십자가의 복음을 주라는 말씀이시다. 주는 만큼, 주는 대로 받는다.

 

(마태10,7-8)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 세상이 말하는 자비의 말을 하느님의 자비로 전해주면, 세상의 칭찬은 받겠지만 하느님의 용서, 하늘의 생명은 받지 못한다. 그러니 하느님의 용서, 구원 그 자비는 자기 비움, 버림, 否認으로 받는 것이다.

 

(루가1,50-55) 50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54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 교만의 생각을 흩으셔서 살리신다. 하느님은 당신 자녀들에게 그 자비를 베푸신다. 하느님의 자비는 육을 죽이시기에 육의 시련(고통)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다.

 

(마태10,34) 34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루가2,35) 35 그리하여 당신(마리아, 쓴물)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 그러니 교만한 자에게 잘못을 깨닫게 해 주시고 굶주린 이에게 하느님의 양식, 말씀을 주어 그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 자비다. 말씀 선포는 사람의 마음을 칼로 꿰찔리듯 한다는 것이다.

 

(2티모3,16.4,1-5) 3,16 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靈感)으로 쓰인 것으로, 가르치고 *꾸짖고 바로잡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 데에 유익합니다.

4,1 나는 하느님 앞에서, 또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님 앞에서, 그리고 그분의 나타나심과 다스리심을 걸고 그대에게 엄숙히 지시합니다. 2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계속하십시오. 끈기를 다하여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타이르고 꾸짖고 *격려하십시오. 3 사람들이 건전한 가르침을 더 이상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때가 올 것입니다. 호기심에 가득 찬 그들은 자기들의 욕망에 따라 교사들을 모아들일 것입니다. 4 그리고 *진리에는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고 *신화 쪽으로 돌아설 것입니다. 5 그러나 그대는 어떠한 경우에도 정신을 차리고 고난을 견디어 내며, 복음 *선포자의 일을 하고 그대의 직무를 완수하십시오.

= 신화 쪽으로- 육의 욕망을 위한 에덴의 뱀의 말을 다시 듣겠다는 것이다. 요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사람들이 미쳐가는 것을 본다. 인간의 욕망을 위해 자신들의 지능, 노력, 과학 등을 통해 인간 괴물을 낳게 하는(만들어 내는), 또 자신의 욕망을 위해 남을 짓밟고 잔인하게 죽이는 그 惡, 존비의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임을 직시해야 한다.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존비들의 세상에 꾸짖고 꿰찔리는 말씀을 먹고, 전하는 것, 하느님처럼 자비로운 사람이다.

 

☨ 천주의 성령님! 우리 모두를 충만하게 하시어 육의 만족, 그 유혹,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사순 제2주간 월요일 복음(루카6,36~38)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36)

 

사람의 대인 관계에 있어서 절정은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본받아 이웃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다. 믿는 이들의 자비의 모델은 바로 하느님이시다.

 

루카 복음 6장 36절에서 '~처럼'으로 번역된 '카토스'(kathos; as)는 '~을 따라서' '~에 부합하여' 등과 같이 유사성과 동질성을 나타내는 전치사 '카타'(kata)와 '~같이', '~처럼'이라는 뜻이 있는 부사 '호스'(hos)의 합성어로서 '~와 같이', '~와 동일하게'라는 매우 강조적인 의미를 지닌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나약하여 늘상 죄(罪)를 저지르지만, 그 목표만큼은 절대선(善)에 두어야 하며, 그 절대선의 모델이 바로 하느님이심을 '카토스'(kathos)라는 부사가 잘 나타내고 있다.

 

또한 루카 복음 6장 36절은 '~하신(것)'에 해당하는 '에스틴'(estin; is)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영어의 be 동사에 해당하는 희랍어 '에이미'(eimi)의 현재형이다.

 

희랍어의 현재형은 하느님의 자비하심이 불변할 것이라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는데, 항상 자비하신 속성을 유지하고 계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 준다.

 

하느님의 자비하심은 하느님의 뜻을 거스러 죄지은 인류가 멸망과 저주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해,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외아들, 무죄하신 예수님까지 아낌없이 주시는 사랑으로 드러나며, 그 사랑은 일회적이 아니라 오늘날 뿐만 아니라 영원토록 계속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절대적 사랑과 자비의 실천은 아담의 타락한 본성과 원죄성(原罪性)을 지닌 인간의 노력으로 불가능하기에, 예수님의 십자가와 성체, 말씀 앞에 부단히 인간의 자아와 본성을 내려놓고 비울 때, 주님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할 수 있는 신적 덕행이다.

 

 

   

20260302일 월요일

[사순 제2주간 월요일] (김재형 베드로 신부)


사도신경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우리는 창조주 하느님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그분께서는 당신의 창조 사업에 협력하도록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하느님의 협력자로서 그분의 창조 사업에 동참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바로 자비와 용서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합니다. “사제가 죄를 용서할 때,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실 때 사용하신 권능보다 더 큰 권능을 사용하신다.”

하느님께서는 창조 때 베푸신 그 사랑을 지금도 자비와 용서로써 계속 흘려보내고 계십니다.

창조 때부터 우리에게 전해 온 그 사랑을 기억한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자비로운 사람”(루카 6,36)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로운 마음을 품을 때, 우리는 남을 심판하거나 단죄하는 마음에서 벗어나 서로 용서하고 자선을 베풀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자비와 용서는 실현 불가능한 이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감상적인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동참하는 우리가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 행위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 죄를 용서해 주셨음을 감사드립시다.

그리고 우리가 자비로운 마음으로 내미는 용서의 손길은, 하느님께서 불어넣어 주신 생명의 숨결처럼 이 세상에 새로운 생명을 전하는 힘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함께하시고 싶지 않나요? 우리가 받은 하느님의 생명을 이웃에게 건네시고 싶지 않나요?

오늘부터 자비로운 마음으로 먼저 용서하고, 먼저 베푸는 삶을 시작해 봅시다.

 

(김재형 베드로 신부)

  

 


 

 [사순 제2주간 월요일]

 

율법 나무에 하늘 대속으로 얻는 용서의 열매가 맺혀야

 

복음(루카6,36-39)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 하느님의 자비(慈悲)를 깨닫고 그 자비 안의 삶을 살며 그 하느님의 자비를 이웃에게 주는 것, 하느님 처럼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느님은 사람의 잘못, 죄를 보고 깨닫게 하신 후, 그의 죄를 외아들(獨生子) 예수님의 몸에 넣어 그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심으로 없애신다. 새 계약의 피로 죄를 씻어 용서하시는 것이다.

 

(히브10,17) 17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나는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의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

= 하느님의 자비다. 그래서 기쁜 소식, 복음이다. (도덕과 윤리의 말씀이 아니라는 것이다)

 

(2코린5,17)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옛것은 지나갔습니다보십시오새것이 되었습니다.

= 그래서 하느님 자비의 복음을 아는, 믿는 그 자비로운 사람은 그 누구도 심판할 수 없다. 주님의 용서를 줄 뿐이다. (도덕과 윤리는 심판을 줄 수밖에 없다)

 

37 남을 심판하지 마라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남을 단죄하지 마라그러면 너희도 단죄 받지 않을 것이다용서하여라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 다시 새겨서 듣자. *하느님의 자비(대속)로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의 자비(새 계약)로 남을 단죄 하지 마라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 하느님의 자비(십자가 복음)로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 받을 것이다.

 

38 주어라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 *하느님의 자비를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자비를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곧 새로운 피조물, 새 사람, 새것이 된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하느님의 자비인 대속, 그 새 계약이 아닌 옛 계약, 율법으로 준다면 율법의 되로, 되받을 것이다. 곧 법의 되로 심판과 죄, 죽음이 돌아오게 된다.(로마3,20 6,23 참조)

 

39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 눈 먼 이, 죄를 알게 할 뿐인 옛 계약인 율법, 곧 제사와 윤리를 지킨 그 자기 의로움에 가리워, 그 제사와 윤리를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새 계약이신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하늘의 의로움을 보지 못하는 것, 눈이 먼 것이다.

 

(마르8,22-25) 22 그들은 벳사이다로 갔다그런데 사람들이 눈먼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는 그에게 손을 대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23 그분께서는 그 눈먼 이의 손을 잡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그의 두 눈에 침을 바르시고 그에게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보이느냐?” 하고 물으셨다.

= 침은 물이다. 곧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다.

24 그는 앞을 쳐다보며, “사람들이 보입니다그런데 걸어다니는 나무처럼 보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 첫 번째, 곧 옛 계약으로 받으면 똑바로 보이지 않는다.

25 그분께서 *다시 그의 두 눈에 손을 얹으시니 그가 똑똑히 보게 되었다그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된 것이다.

= 다시- 두 번째, 곧 새 계약으로 받으면 구원(救援)이 똑똑히 보인다.

 

(히브10,9-10.19-20) 9 그다음에는 보십시오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을 치우신 것입니다. 10 이 에 따라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19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우리는 예수님의 피 덕분에 성소(하늘)에 들어간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20 그분께서는 그 휘장을 관통하는 새롭고도 살아 있는 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셨습니다곧 당신의 몸을 통하여 그리해 주셨습니다.

= 미사(missa)를 내 뜻을 위한 제사로 드리는가? 하느님의 뜻으로 제사가 다 이루어진 혼인잔치로, 감사의 예배로 드리는가? 자신의 의(義)를 위해 율법, 곧 제사와 윤리에 열심한 신앙으로, 십자가(十字架)의 대속(代贖), 그 그리스도의 의(義)를 얻기위한 진리의 신앙을 적대하는 눈 먼 신앙은 아닌지...

 

(필리2,1-2.4-5) 1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격려를 받고 사랑에 찬 위로를 받으며 성령 안에서 친교를 나누고 애정과 동정을 나눈다면, 2 뜻을 같이하고 같은 사랑을 지니고 같은 마음 같은 생각을 이루어나의 기쁨을 완전하게 해 주십시오. 4 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아 주십시오. 5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진리이신 천주의 성령님!

늘 함께 하시니 감사합니다오늘도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을 주셨네요겸손한 마음을 주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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