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1주간 금요일] ‘바보! 멍청이!’ (마태5,20ㄴ-26)

2026. 2. 24. 오전 9: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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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7일 금요일

[사순 제1주간 금요일] 바보! 멍청이!’ (마태5,20-26)



1독서<내가 정말 기뻐하는 것이 악인의 죽음이겠느냐?>(에제18,21-28)

21 “악인도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를 버리고 돌아서서, 나의 모든 규정을 준수하고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22 그가 저지른 모든 죄악은 더 이상 기억되지 않고, 자기가 실천한 정의 때문에 살 것이다.

23 내가 정말 기뻐하는 것이 악인의 죽음이겠느냐? 주 하느님의 말이다. 악인이 자기가 걸어온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이 아니겠느냐?

24 그러나 의인이 자기 정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불의를 저지르고, 악인이 저지르는 온갖 역겨운 짓을 따라 하면, 살 수 있겠느냐? 그가 실천한 모든 정의는 기억되지 않은 채, 자기가 저지른 배신과 자기가 지은 죄 때문에 죽을 것이다.

25 그런데 너희는, ‘주님의 길은 공평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집안아, 들어 보아라. 내 길이 공평하지 않다는 말이냐? 오히려 너희의 길이 공평하지 않은 것 아니냐?

26 의인이 자기 정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불의를 저지르면, 그것 때문에 죽을 것이다. 자기가 저지른 불의 때문에 죽는 것이다.

27 그러나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른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그는 자기 목숨을 살릴 것이다.

28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악을 생각하고 그 죄악에서 돌아서면, 그는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화답송>시편130,1-2.3-4.56ㄴㄷ-7.7ㄴㄷ-8(3) 주님, 당신이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깊은 구렁 속에서, 주님,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주님, 제 소리를 들어 주소서. 애원하는 제 소리에, 당신 귀를 기울이소서.

주님, 당신이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당신은 용서하는 분이시니, 사람들이 당신을 경외하리이다.

나 주님께 바라네. 내 영혼이 주님께 바라며, 그분 말씀에 희망을 두네. 내 영혼이 주님을 기다리네.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기보다, 이스라엘이 주님을 더 기다리네.

주님께는 자애가 있고, 풍요로운 구원이 있네. 바로 그분이 이스라엘을, 모든 죄악에서 구원하시리라.

 

복음<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마태5,20-26)

20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1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23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25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26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사순 제1주간 금요일 (에제 18,21-28)

 

"악인도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를 버리고 돌아서서,  나의 모든 규정을 준수하고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그가 저지른 모든 죄악은 더 이상 기억되지 않고,  자기가 실천한 정의 때문에 살 것이다. 내가 정말 기뻐하는 것이 악인의 죽음이겠느냐?  주 하느님의 말씀이다. 악인이 자기가 걸어온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이 아니겠느냐?" (21-23)

 

에제키엘 18장 21절에서 32절까지는 일시적 선악을 불문하고, 궁극적 선악에 따라 심판이 임한다는 사실을 반복하여 강조함으로써, 회개를 촉구한다. 즉 하느님의 준엄한 심판을 피하는 방도로서회개를 통한 구원의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그 가운데 첫번째 단락인 21-24절은, 사람의 과거가 현재나 미래를 지배할 수 없으며사람은 언제든지 새로운 운명으로 진보하거나 퇴보할 수 있는 잠재성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킴으로써, 의인은 더욱 의롭게 살고, 악인은 악에서 돌이켜 회개할 것에 대한 기대를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악한 죄를 저지른 악인이라 할지라도, 진실로 회개하고 주님 대전에 의를 행할 경우, 심판을 모면하고 생명을 얻을 것이다. 또한 아무리 의로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의로운 길에서 벗어나 악한 삶에 빠져들 경우, 과거에 행한 의로운 일은 주님 대전에 죄를 용서받기 위해 제기할 수 있는 공로가 전혀되지 못한다.

자신의 최종 운명을 결정하는 요소는 주님 대전에 판단을 받는 당시의 영적 상태이며, 이는 인간 자신이 과거에 행한 죄악의 족쇄를 풀 능력이 있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즉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이 이와같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셨으며, 누구에게든지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을 허락하셨다. 그만큼 주님께서 인간의 자유를 존중하시면서 회개를 원하고 계시는 것이다

 

한편 본문에서 '돌아서서' 해당하는 '아슈브'(yashub)는 원래 가던 방향으로부터 완전히 돌이켜 정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 '슈브'(shub)의 미완료형으로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 대한 가정적 진술이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말하는 회개가 어떤 것인지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곧 성경에서 말하는 회개는 과거에 자기 죄악된 본성을 쫓아 행하던 그 길에서 완전히 돌아서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향하여 걸어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 대전에 죄를 회개하고 돌아와 말씀대로 살면,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 이며, '그가 저지른 모든 죄악은 더  이상 기억되지 않는다' 고 하니, 그 얼마나 기쁜 소식이며 복된 소식인가?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자신이 실천한 정의'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기가 실천한 정의 때문에 살 것이다'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과거에 저지른 죄악을 조금도 묻지 않으시고, 오직 지금 현재 어떠한 태도로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만약 과거의 죄악을 따진다면, 현재 아무리 정의를 행한다 할지라도, 심판을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비록 과거에 죄악을 저질렀다고 할지라도, 그 모든 죄악에서 돌이켜서 정의를 행한다면, 의인으로 인정하시고 구원하여 주실 것이다. 

결국, 이러한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각자 지금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과거의 죄악으로부터 돌이켜서 하느님의 구원하심을 바라보며 회개하여 그분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악인이 자기 정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불의를 저지르고  악인이 저지르는 온갖 역겨운 짓을 따라 하면, 살 수 있겠느냐? 그가 실천한 모든 정의는 기억되지 않은 채, 자기가 저지른 배신과 자기가 지은 죄 때문에 죽을 것이다." (24) 

앞에서 밝힌 대로, 악인이 만약 과거의 죄악을 철저히 회개하여 심판을 모면하고 살 수 있다면, 이와 동일한 원리로, 의인이 과거의 의로운 행위를 버리고 죄악의 길에 들어서 죄악을 행한다면, 그는 과거의 의로운 행위의 공로로 구원받지 못하고, 현재의 악한 삶으로 심판을 받아 죽게 될 것임이 분명함을 선언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과거의 공로는 현재의 심판에 그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함을 잘 드러낸다. 하느님의 심판 기준은 현재의 삶이지, 결코 과거의 삶이 아니다.

 

유다 왕 우찌야 경우 선견자 즈가르야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하느님 대전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나, 후에 왕권이 강화되자 교만한 마음이 들어, 마침내 패악한 짓을 저지른 사건을, 오늘 성경 본문을 이해하게 하는  실제적 사례로 들 수 있겠다. 그는 사제들만이 할 수 있는 분향을 주님의 성전에 들어가서 행하려다가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기는 벌을 받는다. (2역대 26,1-21)

사도 바오로 코린토 후서 10장 12절에서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라는 말씀을 함으로써, 본문의 교훈을 상기시킨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영적 능력에 자만하지 말고, 항상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는 가운데 겸손의 길을 걸어감으로써 주님이 제시하는 의로운 길에서 벗어나서는 안 되겠다.

 

 

 

 

[사순 제1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허규 베네딕토 신부)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는 신약 성경에서 자주 언급되는 인물들로 유다교 안에서 율법을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율법 학자는 율법을 공부하고 그것을 해석하며 사람들에게 가르쳤습니다.

바리사이는 율법을 철저하게 지킴으로써 의롭게 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유다인들에게 율법은 성전에서 바치는 제사와 함께 종교 생활에서 중요한 축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율법 학자나 바리사이의 의로움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살인해서는 안 된다.”는 계명에 대하여 설명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새로운 해석은 글자 그대로의 의미보다 더 폭넓습니다.

실제로 생명을 빼앗는 행위만이 아니라 형제에게 성을 내거나, 그들에게 ‘바보, 멍청이’라고 하는 것도 처벌 대상이 됩니다.

따라서 하느님께 바치는 제사도 중요하지만, 원망을 품은 사람이 있다면 하느님께 예물을 바치기 전에 먼저 화해해야 합니다.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의 의로움을 넘어서는 것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들은 계명과 율법에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침은 외적으로 계명을 지키는 데 머물지 않고 계명이 가리키는 것들도 따르라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외적인 행동만이 아니라 내적으로 가진 원망이나 미움도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에 포함됩니다.

예수님의 새로운 해석은 하느님 말씀의 속뜻도 깨달아야 한다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이 외적인 것에 치중하였다면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의로움은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까지 따르는 자세입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사순 제1주간 금요일]

 

​하늘(3)의 죽음으로 이 세상이 존재한다.

 

(마태5,20ㄴ-26)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 율법의 의로움을 능가하는 의로움, 곧 하늘의 의로움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하신, 매일 제사 드리며 안식일을 잘 지키고 온갖 축제와 기념행사에 참석하는 것(이사1,11~), 그리고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신, 강도짓, 불의, 간음도 하지 않고 소득의 십일조를 잘 바치며 단식도 자주하는 그 인간의 의로움(루가11,18~), 그 율법(제사와 윤리)과 인간의 의로움으로는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로마3,20-25) 20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통해서는 죄를 알게 될 따름입니다. 21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22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25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

= 십자가의 대속, 그 예수님의 의로움을 진리로 믿지 않고, 의지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 인간의 길, 인간들의 의로움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하는 것이 불의, 불법이다.(마태7,21참조)

 

21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 형제아벨에게 성을 내며 죽인 카인을 보자

 

(창세4,3-5.8) 3 세월이 흐른 뒤에 카인은 *땅의 소출을 주님께 제물로 바치고, 4 아벨은 *양 떼 가운데 맏배들과 그 굳기름을 바쳤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은 기꺼이 굽어보셨으나, 5 카인과 그의 제물은 굽어보지 않으셨다. 그래서 카인은 몹시 화를 내며 얼굴을 떨어뜨렸다. 8 카인이 아우 아벨에게 “들에 나가자.” 하고 말하였다. 그들이 들에 있을 때, 카인이 자기 아우 아벨에게 덤벼들어 그를 죽였다.

= 카인의 제사, 곧 자기 의로움을 지키려 형제의 제사, 곧 하느님의 뜻인 하늘의 의로움을 죽인 것이다. 다시- 우리의 모든 죄로 십자가에 대신 죽으신 우리의 형제이신 예수님께 바보짓, 멍청이 짓을 했다고 한다면, 곧 예수님의 십자가로 받는 거룩, 의로움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의로움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옳다고 한다면 그것이 불법, 불의가 되어 불붙는 지옥에 넘겨진다는 말씀이시다.

 

오늘 독서 (에제18,26) 26 의인이 자기 정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불의를 저지르면, 그것 때문에 죽을 것이다. 자기가 저지른 불의 때문에 죽는 것이다.

= 하늘의 의로움으로 의인이 된 이가 자기정의, 곧 하늘의 의로움(義)을 버리고 돌아서서 자기 의로움(不義)을 저지르면, 자기가 저지른 불의 때문에 죽는다는 것이다.

 

(마태7,21-23) 21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22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23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하고 선언할 것이다.”

= 내가 한 일, 열심, 그 자기 의로움이 아닌, 그 의로움을 능가하는 하늘의 대속, 그 십자가의 의로움을 구원의 진리로 깨닫고 믿는 것이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이다.

 

23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 하느님께서 굽어 보셨던 어린양의 죽음을 바친 형제(아벨)의 제사, 그 형제의 제물(예물)의 의미를 깨닫고 와서 다시 드리라는 말씀이다.

 

(히브10,1.4-5.10.18) 1 *율법은 장차 일어날 좋은 것들의 *그림자만 지니고 있을 뿐 바로 그 실체의 모습은 지니고 있지 않으므로, 해마다 계속해서 바치는 같은 제물로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이들을 완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4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없애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5 그러한 까닭에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10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18 이러한 것들이 *용서된 곳에는 더 이상 죄 때문에 바치는 예물이 필요 없습니다.

= 그리스도의 죽음, 그분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가 다 씻기어 거룩하게(의롭게) 되었으니 죄의 대속을 위한 제물(제사)이 아닌 모든 죄가 다 *씻겨 졌음에 감사드리는,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감사의 예물(미사)로 드리라는 말씀이신 것이다.

 

25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 하느님께서, 곧 말씀이 고소하신다.(미카6,2참조) 하느님께서 우리 죄인들의 속죄 제물로 당신 아드님을 내어 주셔서 그 예수님의 피로 거룩하게 되어 구원 받게 하셨다. 그런데 많은 인간들이 자신의 의로움을 고집하느라 예수님의 대속, 죽음을 헛되게 하니 고소하신다. 그러니 얼른 타협을 해야 한다. 곧 인간의 의로움은 구원의 가치, 힘, 능력 없음을 인정하는 그 자기 부인(否認)으로 십자가의 예수님을 구원의 진리, 의로움으로 고백해야 한다.

 

(로마10,9-10) 9 그대가 예수님은 주님(주인)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0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26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 마지막 한 닢(에스카톨로지 코드란테스)- 마지막 한 변. 하늘의 숫자-3. 땅의 숫자-4.

하늘, 삼각형이 찢어져 땅, 사각형의 완성- 구원을 이루는 것이다. 곧 삼각형의 꼭 지점이 찢어져 벌어지면 나머지 한 변을 채워 사각을 이룰 때, 그 나머지 마지막 한 변을 채우는 것이 삼각형의 찢어짐, 곧 하늘(3)의 죽음, 그 사랑이다. 그것이 마지막 한 닢(변)인 사랑이다. 곧 하늘(삼각)의 찢어짐, 하늘의 대속의 죽음, 그 사랑이다. 그 사랑으로 모든 것에서 풀려나는 것이다.

 

(1요한4,14.16.19) 14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1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19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 하느님의 사랑을 이웃과 나누는 것이 구원, 사랑의 완성이다.

 

☨ 천주의 성령님! 저희를 充滿하게 하시어 당신의 사랑 안에서 서로 사랑하게 해 주소서~아멘!!!

 

 

 


  사순 제1주간 금요일 복음(마태5,20ㄴ~26)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 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 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22)

 

한글 새 성경에는 단순히 '형제'로 번역되어 나오지만, 원문에는 인칭대명사와 정관사가 붙어 '토 아델포 아우토'(to adelpho autou; to his brother)에 해당하는 '(바로)그의 형제에게'가 된다. 말하자면 '그에게 있어서 형제되는 바로 그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형제'는 혈육이나 같은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들 뿐만 아니라 비신앙인이나 자신과 친밀한 관계를 맺지 않았던 사람까지 포함할 수 있다(루카10,29~37).  

 

그러니까 그가 누구이든지간에 사랑으로 감싸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누구나'에 해당하는 '파스'(pas; whosoever)라는 단어는 '전체'를 강조하는 것으로서 '그러한 사람은 그 누구나 빠짐없이 모두'라는 뜻을 가진다. 이것을 자구적으로 해석하면,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예외없이 모두 심판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의로운 분노(의노)는 여기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이것은 과거 예수님이나 세례자 요한이나 사도 바오로도 악한 자들에게 대해 거룩한 분노를 발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에서도 잘 보여진다 (마태3,17; 마르3,5; 사도10,16). 

 

마태오 복음 5장 22절의 '성을 내는 자'에 해당하는 '오르기조메노스'  (orgizomenos; who is angry with-without a course)가 일시적인 흥분을 나타내는 '튀모스'(thymos)와 달리, 주로 악한 뜻을 가지고 남을 해치고자 하는 지속적인 분노를 가리킨다. 더욱이 표준 원문에 삽입된 '까닭없이'에 해당하는 '에이케'(eike)는 정당한 사유없이 자신의 감정이나 이기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분노를 가리켜준다.

예수님께서 이와같이 악한 뜻(악의)을 가지고 형제에게 성을 내는 것을 살인하는 죄로 규정하시는 이유는 많은 경우의 살인이 바로 성을 내고 미워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죽이는 실제적 행위만이 아니라, 그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내적인 동인(動因)인 그 마음에까지 살인하는 죄를 확대 적용하고 계신 것이다. 

  

여기서 '바보'에 해당하는 '라카'(Raca)는 히브리어 '레크'(req)에서 유래한 단어인데, '레크'(req)는 또한 '황폐하다', '비다'는 뜻을 지닌 '루크'(ruq)에서 유래하여 '빈말', '허사', '헛것'이라는 추상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이 단어가 사람에게 적용될 때 '(머리가 텅 빈) 모자란 자'나  도덕적인 정도가 낮은 '사악한 자'를 가리킨다.

성경에서는 '잡류', '건달'(판관11,3), '무뢰한'(2역대13,7) 등으로 번역되었는데, 이것은 상대방에 대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짓밟고 인격을 모욕하는 심한 욕설이다. 

 

그리고 '멍청이'로 번역된 '모레'(More; You fool)는 '모로스'(moros)의 호격이다. '모로스'(moros)는 '입을 다물다'는 뜻이 있는 '뮈오'(myo)에서 유래하여 '말하지 않는 자', '우매한 자'라는 뜻을 지닌다. 

그런데 집회서 22장 11절에서 이 단어는 '하느님을 부정하는 자'라는 의미로도 쓰여서, 유대인 사회에서는 도덕적인 단죄를 넘어선 종교적인 단죄이며, 멸망받은 자라는 뜻을 지닌 것으로 '라카'(Raca)보다 더 심한 욕설이 된다.

 

이러한 의미의 욕설을 하는 자는 바로 하느님의 고유 영역인 심판권을 남용한 죄를 범한 것이며, 영혼의 살인 행위까지도 서슴지 않는 죄를 범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사람의 육체적 목숨을 해치는 것 뿐만 아니라 인격을 모독하여 인간성을 상실케 하는 것까지 살인으로 규정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살인의 새로운 기준이요 동인인 내적인 분노에 대해서 말씀하신 후에, 그러한 자가 받게 될 형벌이 재판 받음, 최고 의회에 넘겨짐, 불붙는 지옥에 넘겨짐으로 묘사하신다. 이것은 그 형벌의 정도가 점차 심해지는 삼중 점층법적 묘사가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지옥'으로 번역된 '게엔난'(geennan; hell)의 원형 '게엔나'(geenna)는 '골짜기'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까이'(gai)와 예루살렘의 원주민 가운데 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힌놈'(hinnom)이 결합되어 '힌놈의 골짜기'라는 뜻을 갖는 '까이힌놈'(gaihinnom)의 음역(소리나는 데로의 번역)이다. 

'힌놈의 골짜기'(Valley of Hinnom)는 예루살렘 남쪽과 남서쪽 사이에 있는 깊은 골짜기인데, 역사적으로 이곳에서 가나안의 우상인 몰록에게 바치는 인신제사가 행하여졌으므로(2열왕23,10) '살육의 골짜기'로도 불리워졌다(예레19,6).

 

이처럼 이곳은 사람을 불태워 우상에게 제사지냈던 끔찍한 범죄의 장소였을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의 쓰레기들이 태워져서 늘 연기가 나며 불이 타오르는 더럽고 공포스러운 장소였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범죄한 자가 죽은 후 들어가서 영원한 형벌을 받는 장소인 '지옥'을 '힌놈 골짜기'에 비유하였다. '힌놈 골짜기'라는 뜻을 가진 희랍어 '게엔나'(geenna)가 '지옥'으로 번역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260227일 금요일

[사순 제1주간 금요일] (진슬기 토마스데아퀴노 신부)

 

제단에 예물을 바치기 전에 먼저 형제와 화해하라는(마태 5,23-24 참조) 오늘 복음은 사순 시기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자주 마주하는 권고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들으면서 왜 내가 먼저 화해해야 하나?’라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신학적으로 보면,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먼저 하느님께 용서받고 화해된 이들이기에, 우리가 먼저 화해에 나서야 한다고 배웁니다.

하느님 앞에서 죄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런 우리를 하느님께서 먼저 품어 주셨기에, 우리가 고집부릴 명분이 없다는 것이지요.

현실적으로도 정말로 상대가 백 퍼센트 잘못하였다고 자신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돌이켜 보면 내 잘못이 더 커서 관계가 어그러진 경험도 있었음을 우리는 압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용서와 화해를 말씀하시는 까닭은 다만 의무나 도덕적 으로 마땅하기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며, 우리 안의 굳은 마음이 풀려야 우리가 살 수 있음을 아시기 때문은 아닐까요? 한 가지 실험을 해 봅시다.

두 주먹을 힘껏 쥐어 보십시오. 그 상태에서 웃어 보십시오. 무언가 어색한 느낌이 들지 않나요?

마음도 그렇습니다. 미움과 원망을 움켜쥐고 있는 한, 기쁨과 평화를 누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화해를 권하시는 것은 다만 착한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먼저 자유롭고 행복해지기를 바라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좋은 관계라는 결과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먼저 미워하는 마음부터 내려놓기를 바라십니다.

그것이 곧 우리 저마다의 삶을 위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생명을 걸고 말한다. 나는 죄인의 죽음을 바라지 않는다. 죄인이 돌아서서 살기를 바란다”(영성체송).

 

(진슬기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사순 제1주간 금요일]

 

하느님의 말씀은 인간의 생각을 갈아엎어야 들어오신다. (알아듣는다)

 

복음(마태5,20-26)

20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 우리는 얼마나 의롭게 살았는가? 살고 있다면 613가지 율법을 철저히 지키며 산 율법학자들의 의로움을 능가하는 의로움인가? 자신이 없다면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는 틀렸다. 그러나 길은 있다. 자신의 뜻, 욕망, 의(義)를 위한 율법의 행위에서 돌아서서(悔改) 하늘의 대속, 그 구원의 의로움을 전가 받으면 된다. 믿음으로.........

 

(로마3,21-25) 21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22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25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구원)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

 

(로마10,1-3) 1 형제 여러분내 마음의 소원그리고 내가 그들(율법학자)을 위하여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는 그들이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2 나는 그들에 관하여 증언할 수 있습니다그들은 하느님을 위한 열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그러나 그것은 깨달음에 바탕을 두지 않은 열성입니다. 3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알지 못한 채 자기의 의로움을 내세우려고 힘을 쓰면서하느님의 의로움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자기 스스로의 의로움을 구원의 진리로 생각하고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하늘의 의로움을 구원의 진리로 믿지 못한다면 그리스도의 대속, 그 하늘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불의가 되는 것이다. 인간의 자기 의로움으로는 이를 수가 없다.(야고2,8-10 참조)

 

21 ‘살인해서는 안 된다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 우리의 형제이신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형제(兄弟)라고 부르셨다.(마태28,10 요한20,17 참조)

그러니까 우리의 죄로 죽으시고 의롭게 하시려 십자가에서 속죄 제물로 죽으실, 죽으신 예수님께 왜 그런 바보짓, 멍청이 짓을 했냐며 성을 내면, 곧 세상의 율법자들 처럼 어리석은 짓 했다며 믿지 않으면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라는 말씀이다.

 

(1코린1,23) 23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23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 열심히 제사 드리며 착하게 살았던 율법학자들에게 “너희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지옥형 판결을 어떻게 피하려느냐?”(마태23,33) 그러니까 예수님의 말씀이나 누군가가 ‘사람의 뜻, 자기 의를 위한 제사 예물을 바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 한 말이 생각나거든 돌아가 화해, 곧 말씀을 다시 배우고 깨닫고 돌아와 우리 죄의 속죄 제물로 당신 아드님을 내주신 그 하느님께, 감사의 예물로 드리라는 말씀이다.

죽음의 제사 예물이 아니라, 기쁨의 잔치 예물로 드리라는 말씀이다. 제사는 단 한번으로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 졌기 때문이다.

 

(히브10,10-12) 10 이 에 따라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11 *모든 사제는 날마다 서서 같은 제물을 거듭 바치며 직무를 수행하지만그러한 것들은 결코 죄를 없애지 못합니다. 12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한 번 제물을 바치시고 나서, *영구히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25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 화해하라는 말씀이다. 어떻게? 형제이신 예수님이 구원의 새 계약, 진리의 말씀임을 믿는 것이다.

 

(요한1,14)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 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2코린5,17-19)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옛것은 지나갔습니다보십시오새것이 되었습니다. 18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기신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19 곧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면서사람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따지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습니다.

= 하느님나라는 율법(제사와 윤리)을 열심히 행한 그 ‘자기 의(義)’의 행위를 갖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얻는 하늘의 용서, 의로움, 그 새 계약의 말씀을 구원의 진리로 마음에 간직하고 가는 것이다.

 

26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 ‘마지막 한 닢’은 ‘에스카탈로지 코드란테스’로 ‘마지막 한 변’이다. *마지막 한 변- 삼각형의 맨 꼭지점이 찟어져 양쪽으로 벌어지고 나면 그어야(채워야) 할 한 변이 생기는데 그 변이 마지막 한 변이다. 곧 마지막 한 변을 그어야(채워야) 사각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 마지막 한 변을 긋는 것, 채우는 것이 곧 사각을 위한 삼각의 찢어짐, 그 희생, 사랑이라는 것이다. 하늘(삼위일체)은 삭각, 땅(동서남북)이 사각이다.

그러니까 하늘(3)이 찢어지는 그 죽음, 그 사랑으로 땅(4)의 완성, 곧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듯 그리스도의 대속, 희생, 그 사랑으로만 풀려날 수 있다는 말씀이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구원 받았다. (그것이 하늘의 정의다. 율법의 자기 의, 열심히 불의다)

영원한 어둠 속에서 영원히 어둠을 살아가야 할 우리가, 영원한 빛 속에서 영원히 빛을 살게 된 것이다. “마지막 한 변” 그리도의 대속, 그 희생, 사랑으로 ....

 

(로마12,1) 1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내가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

= 율법(제사와 윤리)의 나를 부인하고, 죽고, 거룩한 제물이신 그리스도께로 돌아와 그분께 들어가 그분과 하나, 한 몸이 되어 드려지는 것, 산 제물이다.

다시, 율법의 행위를 통해 세상의 것을 얻어, 세상이 주는 평화를 위해 바쳤던 그 헛된 제물의 신앙의 삶을 부인하는 자기 버림(죽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 한 몸이 되는 것이다.

 *거룩(하기야죠-구별되다. 분리되다.) 그렇게 세상과 구별, 분리되는 것이 거룩한 산 제물이 되는 것이다.

정리해보면, 자기 스스로의 의로움을 구원의 진리로 생각하고 그리스도의 대속, 그 하늘의 의로움을 구원의 진리로 믿지 못한다면, 그리스도의 대속, 그 하늘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불의가 되는 것이, 예수님 인에서 이루어진 대속, 그분의 속량을 통해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되는 것이 하늘의 정의라는 것이다. 곧 율법의 자기 의(義), 열심히 불의(不義)다.

 

독서(에제18,21-26)

21 “악인도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를 버리고 돌아서서나의 모든 규정을 준수하고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 율법을 진리라 믿고 행한 그 악인은 하느님의 규정과 공정, 정의인 그리스도의 대속, 그 새 계약으로 돌아와야 산다는 말씀이다.

 

22 그가 저지른 모든 죄악은 더 이상 기억되지 않고자기가 실천한 정의 때문에 살 것이다.

= 하느님의 정의(새 계약)로 돌아와 하느님께서도, 자신에게서도 모든 죄가 없어졌음을 믿는 실천이다.

 

23 내가 정말 기뻐하는 것이 악인의 죽음이겠느냐주 하느님의 말이다악인이 자기가 걸어온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이 아니겠느냐? 24 그러나 의인이 자기 정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불의를 저지르고악인이 저지르는 온갖 *역겨운 짓을 따라 하면살 수 있겠느냐그가 실천한 모든 정의는 기억되지 않은 채자기가 저지른 배신과 자기가 지은 죄 때문에 죽을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의인이 된 그가, 자기 명예인 율법의 의로움에 흔들려 율법으로 돌아가면 그 배신 때문에 죽게 된다는 말씀이다.

 

(루가16,15) 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25 *그런데 너희는, ‘주님의 길은 공평하지 않다.’고 말한다이스라엘 집안아들어 보아라내 길이 공평하지 않다는 말이냐오히려 너희의 길이 공평하지 않은 것 아니냐?

= 인간의 길, 세상의 선악의 법이 공평하지 않다는 말씀이다.(요한16,8)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 하느님의 은총, 그 은혜로 받는 구원이 공평하다는 말씀이다. 흙(없음)의 존재인 인간이 자기 스스로의 의, 열심히 하늘에 오르겠다는 그 교만이 불공평한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것이 곧 바벨탑을 쌓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주신 말씀대신 사람의 말로 자신들의 의를 쌓는 것, 하느님께서 부수신 불의의 바벨탑이다.

 

26 의인이 자기 정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불의(율법)를 저지르면그것 때문에 죽을 것이다자기가 저지른 불의 때문에 죽는 것이다.

= 율법은 죄를 줄 뿐이기 때문이다. (로마3,20)...

 

은총이시며 보호자이신 천주의 성령님!

우리에게 귀를 열어 주소서마음을 열어 주소서저희 생각을 갈아엎으시어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고 따르게 하소서우리 모두 하느님 앞에 산 제물로 서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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