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2월 12일 목요일
[연중 제5주간 목요일] 페니키아 부인의 믿음 (마르7,24-30)
제1독서<네가 계약을 지키지 않았으니, 이 나라를 떼어 내겠다.>(1열왕11,4-13)
솔로몬 임금이 4 늙자 그 아내들이 그의 마음을 다른 신들에게 돌려놓았다. 그의 마음은 아버지 다윗의 마음만큼 주 그의 하느님께 한결같지는 못하였다.
5 솔로몬은 시돈인들의 신 아스타롯과 암몬인들의 혐오스러운 우상 밀콤을 따랐다.
6 이처럼 솔로몬은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르고, 자기 아버지 다윗만큼 주님을 온전히 추종하지는 않았다.
7 그때에 솔로몬은 예루살렘 동쪽 산 위에 모압의 혐오스러운 우상 크모스를 위하여 산당을 짓고, 암몬인들의 혐오스러운 우상 몰록을 위해서도 산당을 지었다.
8 이렇게 하여 솔로몬은 자신의 모든 외국인 아내를 위하여 그들의 신들에게 향을 피우고 제물을 바쳤다.
9 주님께서 솔로몬에게 진노하셨다. 그의 마음이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에게서 돌아섰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그에게 두 번이나 나타나시어,
10 이런 일, 곧 다른 신들을 따르는 일을 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는데도, 임금은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
11 그리하여 주님께서 솔로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뜻을 품고, 내 계약과 내가 너에게 명령한 규정들을 지키지 않았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너에게서 떼어 내어 너의 신하에게 주겠다.
12 다만 네 아버지 다윗을 보아서 네 생전에는 그렇게 하지 않고, 네 아들의 손에서 이 나라를 떼어 내겠다.
13 그러나 이 나라 전체를 떼어 내지는 않고, 나의 종 다윗과 내가 뽑은 예루살렘을 생각하여 한 지파만은 네 아들에게 주겠다.”
<화답송?시편106,3-4.35-36.37과 40(◎4ㄱ) ◎ 주님, 당신 백성 돌보시는 호의로 저를 기억하소서.
○ 행복하여라, 공정하게 사는 이들, 언제나 정의를 실천하는 이들! 주님, 당신 백성 돌보시는 호의로 저를 기억하시고, 저를 찾아오시어 구원을 베푸소서. ◎
○ 백성들이 이민족들과 어울리면서 그 행실을 따라 배우고, 그 우상들을 섬기니, 제 스스로 덫에 걸렸네. ◎
○ 백성들은 자기네 아들딸을 마귀에게 바쳤네. 주님은 당신 백성을 향하여 분노를 태우시고, 당신 소유를 역겨워하셨네. ◎
복음<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마르7,24-30)
24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으로 가셨다. 그리고 어떤 집으로 들어가셨는데, 아무에게도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으셨으나 결국 숨어 계실 수가 없었다.
25 더러운 영이 들린 딸을 둔 어떤 부인이 곧바로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와서, 그분 발 앞에 엎드렸다.
26 그 부인은 이교도로서 시리아 페니키아 출신이었는데, 자기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주십사고 그분께 청하였다.
27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8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응답하였다.
29 이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가 보아라. 마귀가 이미 네 딸에게서 나갔다.”
30 그 여자가 집에 가서 보니, 아이는 침상에 누워 있고 마귀는 나가고 없었다.
연중 제5주간 목요일 제1독서 (1열왕11,4-13)
"솔로몬은 시돈인들의 신 아스타롯과 암몬인들의 혐오스러운 우상 밀콤을 따랐다. 그때에 솔로몬은 예루살렘 동쪽 산 위에 모압의 혐오스러운 우상 크모스를 위하여 산당을 짓고, 암몬인들의 혐오스러운 우상 몰록을 위해서도 산당을 지었다." (5.7)
'아스타롯'(Ashtaroth)은 바알신의 아내로 여겨지고, 티로와 시돈 사람들에 의해 풍요와 번식의 신 그리고 쾌락과 사랑의 신으로 숭배되었다. 따라서 이 여신을 위한 제사에는 보통 음란한 행위가 의식의 한 순서로 행해졌다 (판관2,13; 10,6; 1사무7,4; 12,10).
그리고 '밀콤'(Milcom)은 암몬의 주신으로 '몰렉'(Molech; 2열왕23,10-13) 혹은 '말캄'(Malcam; 예레49,1; 아모1,15) 으로도 불리웠다. 이것은 팔레스티나 원주민들이 믿는 신으로서 밀콤을 위한 제사에는 어린 아이, 특히 신생아를 제물로 바치는 의식을 치르게 된다(2역대28,3).
이같은 의식에 사용된 밀콤 신상은 청동으로 만들어졌으며, 머리는 수소 형상이며 팔을 벌린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당시 암몬 자손들은 이를 불로 달궈지게 한 후에 그 팔에 아이를 안겨 태워서 제사를 바쳤다고 한다.
저자는 본문에서 '혐오스러운'에 해당하는 '쉭쿠츠'(shiqquts; the detestable, the abomination of)를 밀콤에 대해, 그리고 열왕기 상권 11장 7절에서는 모압의 우상인 '크모스'와 암몬의 우상 '몰록'에 대해 첨가해서 설명하고 있다.
'쉭쿠츠'(shiqquts)는 '싫어하다'(시편22,25), '역겨워하다'(신명7,26), '부정하다'(레위20,25)라는 뜻을 가진 동사 '샤카츠'(shaqats)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우상 자체나 우상 숭배 의식과 관련된 행위를 지시하는 데 주로 사용된다 (2열왕23,24; 예레16,18).
즉 이것은 보기에도 매우 혐오스럽고 가증스러운 행위임을 가리키는 강경한 어조의 단어로서, 여기서는 밀콤 등 여러 우상을 숭배하는 행위가 지니는 극도의 사악성과 비윤리성을 고발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다시 말해서 '쉭쿠츠'(shiqquts)는 '밀콤'을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가치관을 포함한 표현으로서,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우상이 비록 매력적으로 보이고 대중적이라고 할지라도, 그것들의 제사 행위를 통해 표면적으로도 부각되는 것들의 사악함과 잔인함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 아닌 우상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허망하고 가증스러운 것인지를 깨닫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이다.
한편 열왕기 상권 11장 7절의 '크모스'(Chemosh)는 모압의 수호신으로서 태양과 전쟁의 신으로 알려져 있다.
이 우상은 손에 창과 칼과 방패와 같은 무기를 들었고, 그의 양 옆에는 횃불이 불타고 있는 형상이 세워져 있었으며, 그를 섬기는 제사 의식은 매우 잔인하고 음란하였다.
모압인들은 자신들이 그 신의 자손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크모스'에게 자기들의 자녀를 제물로 바치기까지 하였다(2열왕3,27).
또한 '몰록'(Molech)는 '밀콤'의 다른 명칭이다. 이미 앞에서 설명했으니 설명은 생략하지만, 원래 '몰록'에 해당하는 '몰렉크'(mollek)는 그 자음에서 알 수 있듯이 '임금'이라는 뜻이다.
암몬인들은 자신들의 신을 '멜레크'(mellek) 즉 '임금', '왕'으로 불렀으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우상을 경멸하기 위해서 '치욕'을 뜻하는 명사 '뽀셰트'(bosheth)의 모음과 결합시켜 '몰레크'(mollek)로 발음한 것이다.
열왕기 상권 11장 7절은 과거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지었던 솔로몬이(1열왕5,3) 이제는 혐오스러운 우상들을 위해 산당('빠마';bamah; an high place)을 지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사실 솔로몬은 우상들을 위해 산당을 지은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산당을 지은 것이다.
즉 사랑하는 왕비들의 요구를 만족시키고, 이방 국가들과의 평화적 외교 관계를 유지하려는 자신의 실리적 목적을 이루고자 산당을 지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솔로몬의 가장 큰 우상은 하느님께서 마땅히 계셔야 할 자리에서 하느님을 밀쳐내고, 대신 그 자리에 자기 자신의 욕심을 채웠던 바로 자기 자신이었던 것이다.
[연중 제5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제1독서는 솔로몬의 타락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이야기는 죄가 어떻게 시작되며 어떻게 인간을 무너뜨리는지에 대하여 묵상하게 합니다.
솔로몬의 타락은 인간적으로 매우 지혜로운 선택과 함께 시작합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번영을 위하여 가장 좋은 결정을 한 것처럼 보입니다.
정치적 안정을 위하여 혼인으로 동맹하였고, 경제적 발전을 도모하고자 이웃 나라와 물자 교역을 늘렸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이웃 나라의 신들을 받아들인 것은 그 나름대로 문화적 다양성과 풍요로움에 이바지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이 번영과 함께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됩니다.
솔로몬이 하느님에게서 마음이 멀어지는 과정은 서서히 진행됩니다.
그는 다른 나라와 조약을 맺었고, 조약을 공고히 하고자 정략혼인을 하였습니다.
또한 이민족에서 데려온 아내들을 위해서 그들이 섬기는 신을 위한 신당을 짓고서 그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게 됩니다.
이스라엘을 위한다는 좋은 의도가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결국 다른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최악의 결과로 끝이 납니다.
솔로몬은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뿐이라 변명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죄는 이처럼 “어쩔 수 없는 일이야.”라는 말로 우리의 경계심을 늦추며 조금씩 조금씩 자기 자리를 차지합니다.
몰라서 짓는 죄보다 그것이 죄인 줄 알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어 짓는 죄가 더 많아 보입니다.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죄악과 타협하며 살아갑니다.
물신주의, 무관심, 이기심과 같은 세속적 정신과 손을 잡고, 자리를 내주며, 결국 그 세속적 신념에 동의하고 그것에 제물(삶)을 바치게 됩니다.
그렇게 합리화하고 자기 정당화를 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죄악에 빠져듭니다.
세상 안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도록(요한 17,14-16 참조) 죄악을 근본적으로 끊어 버리는 단호함과 용기를 청하여야 하겠습니다.
(최정훈 바오로 신부)
[연중 제5주간 목요일]
자녀가 먹을 빵
(마르7,24-30)
24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으로 가셨다. 그리고 어떤 집으로 들어가셨는데, 아무에게도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으셨으나 결국 숨어 계실 수가 없었다.
= 예수님께서 왜 당신이 알려 지시기를 원하지 않으세요? 당신을 알리러 오신 것 아닌가요?
앞부분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의 마음으로 들어가 사람의 생각과 뜻으로 바뀌어 사람의 규정과 교리로 밖으로 나오면 나쁜 생각들, 온갖 죄가 됩니다. 라고 묵상 했습니다.
그렇듯 예수님은 하느님의 일, 곧 하늘의 생명(구원), 그 福을 주시기 위해 오셨는데 -사람들은 땅의 평화, 그 복을 주시는 분으로 자신들의 생각, 관점으로 찾으려 하나~ 그 주님으로는 아무에게도 알려지기를 원치 않으셨던 것입니다.
25 더러운 영이 들린 딸을 둔 어떤 부인이 곧바로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와서, 그분 발 앞에 엎드렸다.
= 더러운 영, 거짓 영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바꾸어 하느님의 뜻을 거짓으로 더럽히는 말입니다. 뱀이 아담을 속였던 그 거짓말입니다.
26 그 부인은 이교도로서 시리아 페니키아 출신이었는데, 자기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주십사고 그분께 청하였다. 27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 왜 강아지. 개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묵시22,15) 15 개들과 마술쟁이들, 불륜을 저지르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 그리고 거짓을 좋아하여 일삼는 자들은 밖에 남아 있어야 한다.
= 개는 온갖 죄악을 뜻합니다. 하느님의 말씀, 그 양식(씨)을 먹고 그 말씀을 깨닫기 위한 일을 해야 할 신앙인들이 사람의 말로 받아 법이 되어 열심한 행위로 해 버리면 짐승(개),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창세1,29-30) 29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내가 온 땅 위에서 씨를 맺는 모든 풀과 씨 있는 모든 과일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이 너희의 양식이 될 것이다. 30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모든 생물에게는 온갖 푸른 풀을 양식으로 준다.”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 온갖 푸른 풀- 잎만 무성한, 열매 없는~ 인간들의 온갖 열심한 종교행위를 말합니다. 아담이 자신의 부끄러움, 그 죄를 가리려 스스로 해 입은 그 열심, 그 행위의 옷이 무화과나무 잎 옷입니다.(창세3,7)
그러나 진짜 죄를 없애 주시기 위해, 덮으시는 옷, 곧 하느님께서 친히 준비하신 어린양이 죽어 남긴 가죽, 그 의로움의 옷을 다시 입혀주십니다.(창세3,21)
그 어린양의 죽음, 그 희생, 그 예수님의 대속,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그 복음말씀을 하늘의 일, 구원의 참 진리로 께닫게 되면~ 그리스도의 피로 온갖 더러운 부끄러운 죄, 악에 물든 양심까지 모두 씻겨 깨끗해 졌음을 깨닫고 믿게 될 것입니다.(히브10,22)
사람은 - 그 복음, 약속의 말씀으로 깨끗해진다. 하셨습니다.(1티모4,4-5참조)
28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응답하였다.
= 자신이 개, 하느님의 뜻이 아닌 사람의 뜻을 위해 살아온 짐승임을 바로 인정합니다. 그리고는 자녀들이 먹는 하늘의 참 양식을 청합니다.
백인대장이 자신의 열성 그 모든 것은 자격 없음을 깨닫고 주님의 한 말씀을 청했던 그 믿음인 것입니다.
(마태8,8) 8 백인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29 이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가 보아라. 마귀가 이미 네 딸에게서 나갔다.”
= 자신이 하늘의 참 양식- 그 한 말씀이 개, 죄인임을 고백했기에 ~ 이제 주님의 그 한 말씀이 여자를 용서, 자유로 지배하십니다. 그 한 말씀이 그 여자 안에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1테살2,12 로마5,20-21참조)
그러니 사람에게 선악의 말, 그 법으로 속였던 그 마귀의 힘, 그 법의 힘을 잃은, 곧 법의 그 단죄의 힘이 쫓겨 나간 것입니다.
30 그 여자가 집에 가서 보니, 아이는 침상에 누워 있고 마귀는 나가고 없었다.
= 마귀는 나갔지만 누워 있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이제 엄마가 딸에게 자기가 받은 하늘의 참 양식을 먹여야 합니다. 그것이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의 큰 계명의 완성인 것입니다.
사람의 도덕과 윤리의 말, 사람의 규정과 교리 그 계명이 아닌 하느님의 말씀, 계명인 십자가의 복음- 그 예수님을 참 진리, 참 양식으로 먹여 일으켜야 합니다.
(탈출15,25) 25 모세가 주님께 부르짖으니, 주님께서 나무 하나를 보여 주셨다. 모세가 그것을 물에 던지자 그 물이 단 물이 되었다.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백성을 위한 규정과 법규를 세우시고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백성을 시험하셨다.
= 십자 나무로, 쓴물이 단물로~ 죄인이 의인이 되는 하느님의 규정과 법규- 계명입니다.
그 계명, 말씀을 진리의 양식으로 먹이지 않으면~ 나갔던 마귀, 곧 사람의 말이 다시 들아와 다시 죄인으로 만듭니다.(마태12,43-참조)
(히브1,3) 3 아드님(예수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내)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 아멘 -*^ㅇ^*-
연중 제5주간 목요일 복음(마르7,24~30)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원문의 성경은 마르코 복음 7장 26절에서 그 여자가 청하고 있는 것과 마르코 복음 7장 27절에서 예수님 역시 그 여자의 요청을 거부하시는 대답을 모두 미완료 과거시제로 표현하고 있다.
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 15장 22~26절에는 마르코 복음보다 더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데, 먼저 그 여자가 예수님께 소리지르며 자신의 딸을 고쳐 주기를 원하고, 예수님께서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않으신다.
이에 제자들이 그 여자의 소원을 들어 주어 빨리 보낼 것을 요청하니까, 예수님께서는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마태15,24)고 딱 잘라 대답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자는 믿음과 희망을 잃지 않고, 여전히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며 도와주기를 간청한다.
바로 이런 상황 아래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마르코 복음 7장 27절에 나타나고 있는 부분이다.
그러니까 마르코 복음사가는 다만 그 여자의 계속적 청원과 예수님의 계속적인 거부 사실만을 기록한 것이다.
마르코 복음사가가 마태오 복음에 나오는 과정을 생략하고, 예수님께서 한 번만이 아니라 계속해서 거부의 말씀을 하신 사실을 소개하며, 의도적으로 그 여자의 소원에 대해 보다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 준다.
이러한 사실은 반대로 예수님의 계속적 거부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간청하는 그 여자의 믿음을 더욱 부각시키는 효과도 있는 것이다.
마르코 복음 7장 27절은 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 15장 26절에는 나오지 않는 부분이 있다.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직역하면 '너는 먼저 자녀들이 배불리 먹게 되기를 허락하라'는 뜻이다.
여기서 '한다'에 해당하는 '아페스'(apes; let)의 기본형 '아피에미' (aphiemi)는 '허락하다'는 뜻이며, 명령형으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이 동사는 잃어버린 양으로서의 유대인들을 향한 사목이 예수님께는 우선이기 때문에(마태15,24), 그 일을 하도록 당신을 '내버려 두라'는 뜻으로 사용된 것이다.
그리고 '먼저'로 번역된 '프로톤'(proton; first)은 여러개 중에서 '첫번째'라는 뜻으로서, 이 단어 또한 지금 예수님의 관심이 우선적으로 유대인에게 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 단어는 둘째, 셋째 등의 다음 순서가 있는 것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구원이 유대인에게만 독립적인 것이 아니고, 추후에 이방인에게도 있을 것을 전제하는 말이다(로마1,16참조).
예수님께서는 당신 말씀을 가까이에서 듣고 수많은 기적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했어도, 여전히 영적 무지와 불신앙적 거부 가운데 있었던 유대인들로 말미암아 많은 슬픔과 연민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비록 유대인들이 당신을 거부하더라도,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양을 찾으려는 자신의 사명을 다시 고취하기 위하여 지금 이곳에 와 있는 상황이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유대인이 아닌 이방 여자가 도움을 구하니까, 예수님께서는 지금 그가 갖고 있는 유대인을 향한 당신의 관심을 그 여자에게 내비추고 계신다.
말하자면, 지금 예수님께서는 비록 표현적으로는 이방인인 그 여자를 무시하는 투의 말씀을 하시고 계시지만, 그 이면에는 그 여자가 이방인이었기에 경멸적으로 대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순간에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신 유대인을 향한 자신의 관심을 말씀하신 것이고, 또한 그 여자가 하느님의 은혜로운 기적을 과연 수용할 믿음이 있는지를 시험해 보신 것이다.
한편, '강아지들에게'로 번역된 '토이스 퀴나리오이스'(tois kynariois; to their dogs)의 기본형 '퀴나리온'(kynarion)은 야생 들개가 아니라 집에서 기르는 '애완용 개'나 '작은 강아지'를 가리킨다.
여기서 '강아지들'이란, 앞에 사용된 유대인을 의미하는 '자녀들'과는 대조적으로 '이방인'을 가리킨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경멸하여 '개들'(강아지들)로 지칭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을 향하여 갖고 있는 당신의 우선적 관심을 당시의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표현을 빌려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고자 하신 것이며, 동시에 그 여자의 믿음을 시험하시기 위해서 그 여자를 향한 경멸조의 말씀을 던지신 것이다. 결코 예수님께서 이방 여자를 경멸하시기 위해 이런 표현을 사용하신 것이 아니다.
놀랍게도 그 여자는 그런 경멸조의 말을 듣고도, 오히려 자신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강아지의 처지라고 스스로 인정하며 겸손하게 주님 앞에 엎드렸다.
그 결과로 그 여자의 딸은 즉각 치유받았으며, 그로써 이방 여자의 놀라운 믿음이 증명되었고, 예수님께 칭찬까지 받게 되었으며(마태15,28),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역사(役事)가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 여자는 유대인이 식탁에 차려진 풍성한 음식을 먹는 것처럼 하느님의 은혜를 받아 마음껏 누린다면, 자신은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와 같은 은혜라도 받아야 하겠다는, 지극히 겸손하고도 진실로 강한 의지와 적극적인 생각을 가지고 믿음으로써 이렇게 놀라운 주님의 축복을 이끌어 낸 것이다.
2026년 02월 12일 목요일
[연중 제5주간 목요일] (진슬기 토마스데아퀴노 신부)
20-30대 무뚝뚝해 보이는 군인 청년들의 눈시울도 단박에 붉어지게 하는 낱말이 바로 ‘엄마’,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는 하느님과 함께 지금의 나를 세상에 선물해 주신 분이기에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 복음을 되새겨 봅니다.
식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라도 좋다며 딸을 살려 달라고 간청하는 이방인 여인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굳은 믿음만이 아니라 끊임없이 우리를 붙드는 어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를 만드신 하느님의 사랑도 이러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거듭 죄를 저지르며, 때로는 그것이 죄인지조차 모른 채 분노와 시기와 절망에 빠져 있다면, 이토록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슬퍼하시도록 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결코 포기하시지 않습니다.
만일 그분께서 우리를 단념하셨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실 이유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간절히 노래합니다. “주님, 당신 백성 돌보시는 호의로 저를 기억하소서”(화답송).
이렇게 좋으신 하느님을 앞에 두고, 우리는 계속 철없는 아이처럼 살아도 괜찮을까요? 아닙니다.
철없는 자식이라도 언젠가는 부모의 마음을 깨닫는 날이 오기 마련입니다.
그 시기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철이 들기까지는 ‘자랄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너무 일찍 철이 든 아이를 보면 안쓰러운 것처럼, 신앙도 제 나이답게 자라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려면 우리를 살리는 성사와 말씀으로 양육되어야 합니다.
좋으신 하느님을 모시며 마냥 철없는 자녀로 머물지 않기를 바랍니다.
든든한 성체와 힘이 되는 말씀의 달콤한 맛을 알아 가는 하루하루가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진슬기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연중 제5주간 목요일]
인간의 自己사랑이 하느님의 뜻을 죽인다.
독서(1열왕11,1-13)
1 솔로몬 임금은 파라오(富의 상징)의 딸뿐 아니라 모압 여자와 암몬 여자, 에돔 여자와 시돈 여자, 그리고 히타이트 여자 등 많은 외국 여자를 사랑하였다. 2 이들은 주님께서 일찍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렇게 경고하신 민족의 여자들이었다. “너희는 그들과 관계를 맺지 말고 그들도 너희와 관계를 맺지 못하게 하여라. 그들이 반드시 너희 마음을 그들의 신들에게 돌려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솔로몬은 그들과 사랑에 몰두하였다.
= 하느님의 지혜(智慧)를 받은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막 살 수가 있었을까?
3 솔로몬에게는 왕족 출신 아내가 칠백 명, 후궁이 삼백 명이나 있었다. 그 아내들은 그의 마음을 돌려놓았다.
= 하느님의 지혜(智慧)보다, 아니 하느님보다 자신(自身)을 더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肉)의 본능대로 사는 폐악을 저지른 것이다.
4ㄱ 솔로몬이 늙자 그 아내들이 그의 마음을 다른 신들에게 돌려놓았다.
= 다른 신(神)들, 곧 하느님의 뜻을 적대(敵對)하는 더러운 영(靈)들이다.
4ㄴ그의 마음은 아버지 다윗의 마음만큼 주 그의 하느님께 한결같지는 못하였다. 5 솔로몬은 시돈인들의 신 아스타롯과 암몬인들의 혐오스러운 우상 밀콤을 따랐다. 6 이처럼 솔로몬은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르고, 자기 아버지 다윗만큼 주님을 온전히 추종하지는 않았다. 7 그때에 솔로몬은 예루살렘 동쪽 산 위에 모압의 혐오스러운 우상 크모스를 위하여 산당을 짓고, 암몬인들의 혐오스러운 우상 몰록을 위해서도 산당을 지었다. 8 이렇게 하여 솔로몬은 자신의 모든 외국인 아내를 위하여 그들의 신들에게 향을 피우고 제물을 바쳤다.
= 인간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무서움 힘이다. 곧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적대하는) 그 육(肉)의 본능(本能), 그 악한 힘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영(靈)을 죽이는 어둠(무덤)의 삶임을 모르는 어리석음이다.
(마르5,2-5) 2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3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가 없었다. 4 이미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다. 5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다.
9 주님께서 솔로몬에게 진노하셨다. 그의 마음이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에게서 돌아섰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그에게 두 번이나 나타나시어, 10 이런 일, 곧 다른 신들을 따르는 일을 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는데도, 임금은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 11 그리하여 주님께서 솔로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뜻을 품고, 내 계약과 내가 너에게 명령한 규정들을 지키지 않았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너에게서 떼어 내어 너의 신하에게 주겠다.
= 왜 그 죽을죄인(罪人)에게서 나라(재물)의 일부만 빼앗으시고 당장 죽이지 않으셨을까?
(신명8,19-20) 19 만일 너희가 정녕 주 너희 하느님을 잊고, 다른 신들을 따라가 그들을 섬기고 그들에게 경배한다면, 내가 오늘 분명히 경고하는데, 너희는 *반드시 멸망하고야 말 것이다. 20 너희가 주 너희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주님께서 너희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처럼 너희도 *멸망할 것이다.”
솔로몬을 구해 내시겠다는 것이다. 어떻게?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주신 계약, 그 구원의 약속으로...
(2사무7,10) 10 나는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고, 그곳에 그들을 심어 그들이 *제자리에서 살게 하겠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다시는 전처럼, 불의한 자들이 그들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 한 곳, 하늘의 대속, 그 구원의 새로운 길인 그리스도 피의 새 계약, 그 십자가(十字架), 그 자리다. 대속(代贖)의 그리스도는 창조 이전부터 계셨다.(에페1,4)
12 다만 네 아버지 *다윗을 보아서 네 생전에는 그렇게 하지 않고, 네 아들의 손에서 이 나라를 떼어 내겠다. 13 그러나 이 나라 전체를 떼어 내지는 않고, 나의 종 다윗과 내가 뽑은 예루살렘을 생각하여 *한 지파만은 네 아들에게 주겠다.”
= 한 지파, ‘유다 지파’다. 곧 다윗에게 약속하신 하늘의 대속(代贖)인 새 계약의 십자가(十字架), 그 한 곳에 세워지실 그리스도께서 오실 유다 지파다. 솔로몬에게 용서(구원)를 줄 지파인 것이다.
그러면 솔로몬은 죄악의 그 상태에서 그냥 영원한 죽음(지옥)을 면하게 된 것인가? 물론 아니다. 솔로몬은 하느님께 돌아왔다. 자신의 삶이 짐승(개)과 같은 삶임을 깨닫고 돌아와 믿음으로 구원 받았다.
*하느님께 받은 지혜께서 그가 돌아오도록 이끄셨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걸었던 그 세상의 힘의 모든 삶이 ‘헛되고 헛되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서 헛되다는 코헬렛(전도서)을 썼고, 무조건적인 하느님의 사랑을 노래한 아가서를 썼다.
(코헬1,1-3.14.17. 3,18) 1 다윗의 아들로서 예루살렘의 임금인 코헬렛의 말이다. 2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3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모든 노고가 사람에게 무슨 보람이 있으랴? 14 나는 태양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을 살펴보았는데 보라, 이 모든 것이 허무요 바람을 잡는 일이다. 17 나는 지혜와 지식, 우둔과 우매를 깨치려고 내 마음을 쏟았다. 그러나 이 또한 바람을 붙잡는 일임을 깨달았다. 3,18 나는 인간의 아들들에 관하여 속으로 생각하였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어 그들 자신이 다만 짐승일 뿐임을 깨닫게 하신다고.
(아가1,1.9) 1 솔로몬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 9 나의 애인이여 나 그대를 파라오의 병거를 끄는 준마에 비기리다.
= 솔로몬이 애인(愛人) 술람밋을 왕의 최고의 힘, 보물(寶物)로 노래하는 것이다. 솔로몬은 예수 그리스도를, 술람밋은 용서받은 죄인, 곧 우리를 뜻한다. 곧 그리스도로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와의 사랑이다. (솔로몬은 남성형, 술람밋은 여성형으로 같은 이름이다.) 곧 솔로몬(평화의 왕)은 참 평화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 자신(술람밋)이 받고 있음을 깨닫고 노래한 것이다.
(아가1,10.15 2,2.7) 10 귀걸이 드리워진 그대의 뺨과 목걸이로 꾸며진 그대의 목이 어여쁘구려. 15 정녕 그대는 아름답구려, 나의 애인이여. 정녕 그대는 아름답구려, 당신의 두 눈은 비둘기라오. 2,2 아가씨(자칭의인)들 사이에 있는 나의 애인은 엉겅퀴 사이에 핀 나리꽃 같구나. 7 예루살렘 아가씨들이여 노루나 들사슴을 걸고 그대들에게 애원하니 우리 사랑을 방해하지도 깨우지도 말아 주오, 그 사랑이 원할 때까지.
= 예루살렘 아기씨들, 율법의 의로움으로 깨끗하다고 하며 용서(容恕)받은 죄인들을 무시(無視)하는 진짜 죄들이다. 율법<(律法)은 선(善)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 율법을 지킬 수 없기에 저주(咀呪)가 된 것이다.>
하느님은 아브람처럼 솔로몬이 죄인(罪人)이었기에 당신의 지혜(예수)를 주셨고, 구원(救援) 하신 것이지(1코린1,23-25), 그가 무슨 훌륭한 일을 해서 용서(容恕)하시고 구원(救援)하신 것이 아니다.
(갈라3,10) 10 율법(제사와 윤리)에 따른 행위에 의지하는 자들은 다 저주 아래 있습니다. “율법서에 기록된 모든 것을 한결같이 실천하지 않는 자는 모두 저주를 받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에페2,8-9) 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9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복음(마르7,24-29)
24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으로 가셨다. 그리고 어떤 집으로 들어가셨는데, 아무에게도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으셨으나 결국 숨어 계실 수가 없었다. 25 더러운 영이 들린 딸을 둔 어떤 부인이 곧바로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와서, 그분 발 앞에 엎드렸다. 26 그 부인은 이교도로서 시리아 페니키아 출신이었는데, 자기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주십사고 그분께 청하였다. 27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8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응답하였다. 29 이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가 보아라. 마귀가 이미 네 딸에게서 나갔다.”
= 솔로몬처럼 자신이 살았던 세상의 삶이 개(짐승), 죄인의 삶이었음을 깨달은 여자가 주님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빵, 곧 주님의 대속, 그 새 언약(言約)의 한 말씀이면 된다는(나을 수 있다는) 그 믿음으로 청(請)했기에 구마(驅魔), 구원(救援)을 받은 것이다.
☨은총, 진리, 지혜이신 천주의 성령님!
오늘의 시련, 아픔의 모든 삶이 내일의 하느님 나라에 희망이며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희 모두의 발을 붙잡아 이끌어 주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