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2월 13일 금요일
[연중 제5주간 금요일] “에파타!” (마르7,31-37)
제1독서<이스라엘은 다윗 집안에 반역하였다.>(1열왕11,29-32; 12,19)
29 그때에 예로보암이 예루살렘에서 나가다가 실로 사람 아히야 예언자를 길에서 만났다. 그 예언자는 새 옷을 입고 있었다. 들에는 그들 둘뿐이었는데,
30 아히야는 자기가 입고 있던 새 옷을 움켜쥐고 열두 조각으로 찢으면서,
31 예로보암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 열 조각을 그대가 가지시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소. ‘이제 내가 솔로몬의 손에서 이 나라를 찢어 내어 너에게 열 지파를 주겠다.
32 그러나 한 지파만은 나의 종 다윗을 생각하여,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에서 내가 뽑은 예루살렘 도성을 생각하여 그에게 남겨 두겠다.’”
12,19 이렇게 이스라엘은 다윗 집안에 반역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화답송>시편81,10-11ㄱㄴ.12-13.14-15(◎11ㄱ과9ㄴ) ◎ 나는 주님, 너의 하느님이니 너는 내 말을 들어라.
○ 너에게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너는 낯선 신을 경배해서는 안 된다. 내가 주님, 너의 하느님이다. 너를 이집트 땅에서 끌어 올렸다. ◎
○ 내 백성은 내 말을 듣지 않고, 이스라엘은 나를 따르지 않았다. 고집 센 그들의 마음을 내버려두었더니, 그들은 제멋대로 제 길을 걸어갔다. ◎
○ 내 백성이 내 말을 듣기만 한다면, 이스라엘이 내 길을 걷기만 한다면, 나 그들의 원수들을 당장 꺾고, 내 손을 돌려 그들의 적들을 치리라. ◎
복음<예수님께서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셨다.>(마르7,31-37)
31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 데카폴리스 지역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오셨다.
32 그러자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33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34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35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36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분부하셨다. 그러나 그렇게 분부하실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알렸다.
37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놀라서 말하였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연중 제5주간 금요일 제1독서 (1열왕11,29-32;12,19)
"그때에 예로보암이 예루살렘에서 나가다가 실로 사람 아히야 예언자를 길에서 만났다. 그 예언자는 새 옷을 입고 있었다. 들에는 그들 둘뿐이었는데 " (29-30)
'아히야'(ahiya)는 '주님의 형제' 라는 뜻이다. 그는 에프라임 지파의 성읍인 실로(shiloh)의 사제 가문 출신으로 다윗과 솔로몬 초기에 활동했던 나탄 예언자의 뒤를 이어, 르호보암 시대까지 하느님의 말씀을 대변함으로, 이스라엘에 큰 영향을 끼친 충실한 선견자였다.
그는 일생동안 철저히 하느님만을 따랐으며, 훗날 예로보함이 하느님께 범죄하였을 때까지도 하느님의 말씀으로 냉철하게 그에게 경고와 심판의 말씀을 전했다.(14,1-13)
새 성경은 예로보암이 아히야 예언자를 만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원문은 반대이다. '와이므차 오토' (waimtsa otho)는 '그를 만나니'로 번역되는데, '만나니'에 해당하는 '와이므차'는 '발견하다' (창세36,24), '찾아내다' (1사무12,5)라는 뜻을 가진 '마차'(matsa)의 단순 능동태(Qal)에, 행동이 즉각적으로 이어짐을 나타내는 계속적 '와우' (wau)가 결합된 형태이다.
그러니까 직역하면 '그리고 그가 그를 찾아내었다.' (that ,,,, found him)이다. 이것은 두 사람이 자연스럽고 우연하게 만난 것이 아니라, 예언자 아히야가 적극적 의지를 갖고 예로보암을 찾아가 만났음을 나타낸다.
예언자 아히야가 보여주는 이같은 신탁에 대한 적극적인 증언 자세는 솔로몬에 대한 예로보암의 반란이, 단순히 지파간의 갈등 즉 세력 다툼의 과정에서 빚어진 정치적 결과물이거나, 한 개인의 야심 즉 예로보암 자신의 탐욕에 의해 이루어진 결과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도적으로 예로보암을 사용하셔서, 솔로몬의 죄악을 징계하시기 위한 목적에서 발생한 심판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 예언자는 '새 옷'을 입고 있었다고 되어 있는데, '새 옷'(새 의복)은 남북으로 분열된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이 신생왕국에 지나지 않는다는 상징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입은 적이 없는 새 옷은 앞으로 이루어질 심판이 어떤 인간적인 요소의 개입됨이 없이, 오로지 하느님에 의해 비롯되고 준비될 것이라는 신적 기원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옷'으로 번역된 '살르마' (salma)는 어떤 사람의 신분을 드러내는 정식 의복이라기 보다는 밤에 덮고 잘 수 있는 '담요' (신명22,17)나 물건을 쌀 수 있는 '보자기'(1사무21,9)를 의미하는 물건이다.
그러니까 아히야가 하느님의 말씀을 효과적이고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해, 찢기에 용이한 담요같은 것을 의도적으로 걸치고 왔음을 뜻한다.
"아히야는 자기가 입고 있던 새 옷을 움켜쥐고 열두 조각으로 찢으면서" (30)
찢어진 옷을 통해 왕권의 이동을 상징하는 것은, 이미 예언자 사무엘이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달할 때에도 사용된 바 있다.(1사무15,27-29)
그러나 솔로몬의 경우는 사울의 경우와 차이가 있다. 사울은 사무엘 예언자로부터 폐위 선고를 받고, 급한 나머지 사무엘을 붙잡는 과정에서 그 옷이 찢어져, 자신에 대한 하느님의 섭리와 심판의 결과를 스스로 드러낸 반면, 여기서는 예언자 아히야가 스스로 자신의 옷을 잡아서 찢음으로 하느님의 강력한 심판 의지를 의도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예언자는 하느님의 대리인이기 때문에, 본문의 행동은 하느님 자신의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열두 조각'은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하는데, 결국 이스라엘 왕국 분열이란 우연한 사건이거나 사람의 계획에 의한 결과가 아니고, 하느님의 주권적 계획과 의지에 의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열조각을 그대가 가지시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소. '이제 내가 솔로몬의 손에서 이 나라를 찢어 내어 너에게 열 지파를 주겠다. 그러나 한 지파만은 나의 종 다윗을 생각하여,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에서 내가 뽑은 예루살렘 도성을 생각하여 그에게 남겨 두겠다.'" (31-32)
열두 조각은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하는데, 유다와 유다지파에 흡수된 시메온 지파를 제외한 열 지파(열 조각)를 예로보암에게 허락하신 것으로 이해한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을 남북으로 가르시는 하느님의 주도적 행위를 통하여, 예로보암이 북부 이스라엘에 대한 왕권을 획득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상징을 통해 보다 분명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솔로몬의 손에서 ~~너에게 주겠다' 에서 '손'은 '야드'(yad)로서 단순히 인체의 한 부분을 지칭하는 경우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관용적으로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책임, 돌봄 그리고 지배를 포함하는 권한을 나타내는 데도 사용된다. 그러니까 솔로몬의 권세와 관할 에서 이스라엘의 10지파를 취하여 너에게 준다는 말이다.
예로보암은 요셉 지파의 공사를 독려하고 감시하는 일개 감독으로서, 통일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솔로몬의 거대한 권세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조그만한 권세를 가진 자인데, 전능하신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느님께서 친히 약속하시고, 그분의 손에 의해 시행될 사건이기에, 하느님꼐서 친히 솔로몬의 권능을 파하여 그의 관할 아래있던 10지파를 찢어내어 예로보암에게 필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한 지파만은" 솔로몬에게 남겨둔다는 말이 나오는데, 12지파에서 10지파를 빼니, 두 지파가 남는다. 그런데 한 지파라고 말하는 것은, 시메온 지파와 유다 지파를 하나의 지파로 보았기 때문이다.
과거 야곱이 그의 아들들에 대하여 예언할 때, 레위 지파와 더불어 시메온 지파는 흩어져 버림을 당할 것으로 예언되었다.(창세49,5-7) 이 예언대로 시메온 지파는 한 지파로서의 독특성을 잃어 버렸으며, 유다 지파에 할당된 지역인 남부 지역에 거주하게 되었다.(여호19,1-9)
따라서 여기서도 시메온 지파는 유다 지파와 한 지파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다윗과의 계약을 지키시기 위해, 이스라엘의 일부를 다윗 후손의 통치하에 남기셨음을 의미한다.
열 지파를 받은 예로보암에 비교하면, 다윗 왕조의 왕권은 극히 미약하다고 볼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다윗의 위를 영원히 보존하시겠다는 약속을 잊지 않고, 성실히 수행하셨던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하느님의 약속은 다윗의 계보를 통하여 나신, 영원한 왕이시요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분명하게 성취되고 영원토록 지속되는 것이다.
2024년 02월 09일 금요일
[연중 제5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오늘 전례의 모든 말씀은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따라야 함을 전합니다.
제1독서는 이스라엘 왕국이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갈라진 사건을 전하는데, 그
이유는 솔로몬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11,11-13 참조).
“듣는 마음”을 청하였던 솔로몬의 마음은 점차 하느님에게서 돌아섰고,
결국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는 주님의 명령에(11,2; 신명 7,1-4 참조) 귀를 닫았습니다.
“너에게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너는 낯선 신을 경배해서는 안 된다.”(화답송)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듣지 않은 결과로 이스라엘은 두 왕국으로 갈라졌습니다.
복음은 귀먹은 이를 낫게 하시려고 온 정성을 다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한마디 말씀으로 고쳐 주시지 않고, 일련의 행위를 통해서 치유하십니다.
그를 군중에서 따로 데리고 나가시고, 손가락을 그의 귀에 넣으시며,
손에 침을 발라 혀에 대시고, 하늘을 향하여 한숨을 내쉬시며, “에파타!”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행위가 끝났을 때 비로소 병자의 입과 귀가 열립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서를 통해서, 교회 문헌과 가르침을 통해서, 전례와 기도를 통해서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사건을 통해서, 우리 안의 양심을 통해서도 끊임없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믿음이 부족한 우리는 그 말씀을 온전하게 듣지 못합니다.
우리의 닫힌 귀를 열어 주시려고 다양한 방식과 여러 행위로 애쓰시는 주님을 믿으며,
마음을 열어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따르도록 합시다.
“주님, 저희 마음을 열어 주시어 당신 아드님 말씀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복음 환호송).
(최정훈 바오로 신부)
[연중 제5주간 금요일]
사람의 말로 받은 에수님, 성경속 예수님, 어떤 예수님을 따르십니까?
(마르 7,31-37)
31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 데카폴리스 지역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오셨다.
= 데카폴리스-열개의 도시(고을)라는 뜻, 그 열 한가운데에 들어있는, 곧 열 계명 그 한가운데 있는 사랑.
다시- 십계명 그 열 개의 계명, 그 각 계명 안에 숨어있는 대속의 죽음, 그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의 속죄 제물로 그 사랑으로~ 더러운 죄를 없애시러 오셨다는 뜻입니다.
32 그러자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 성경, 말씀을 하늘의 진리로 알아듣지 못하는 '귀먹은 이', 그래서 그 진리를 올바로 말할 줄 모르는 '말더듬는 이'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 우리 죄의 속죄 제물로 오신 예수님, 그 속죄 대속의 십자가가 되는, 그 이치 그 하늘의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면 아무도 하느님나라에 갈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2코린5,21) 21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 그 구원을 위한 하늘의 의로움은 십자가의 대속을 진리로 믿었을 때 얻어집니다.(로마3,24)
그런데~
(마르7,7-8) 7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8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 하느님의 계명을 사람의 계명, 전통으로 가르치면, 하늘의 진리를 들을 수 없는 귀머거리가 또 그 진리를 올바로 말할 수 없는 말 더듬는 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말을 더듬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계명과 사람의 계명을 섞어 분명하게 말을 못하는 헛된말, 빈말이 됩니다. 그러면 기도 또한 구원을 위한 그 하느님의 뜻이 아닌 우리의 욕망 그 빈말기도를 하게 되어 구워(용서)을 못 받게 됩니다.
우리 주님은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마태6,10)
(마태6,7)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 자신이 그 귀먹고 말 더듬는, 그 빈말을 하는 이라는 것을 알고 치유를 청한다면 그가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손을 얹어 주셔서 치유해 주십니다. 구원자의 손으로 잘못을 덮어 주십니다.
(즈카8,23) 23 만군의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그때에 저마다 말이 다른 민족 열 사람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붙잡고, ‘우리도 여러분과 함께 가게 해 주십시오. 우리는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고 말할 것이다.”
= 하나의 옷자락, 다른 민족은 열 개의 계명을 참이라 지키지만 그리스도인은 하나의 계명, 곧 십자가의 대속 그 죽음 그 사랑을 하나의 계명으로 믿고 의탁하기에 용서(구원)의 하느님으로 지금부터 영원히 그분과 함께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복습합니다.~
(갈라5,14) 14 사실 모든 율법은 한 계명으로 요약됩니다.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하신 계명입니다.
= 하늘의 대속, 그 십자가의 죽음 그 사랑을 이웃에게 주어 그 이웃이 죄의 용서로 하늘의 생명을 받게 하는 것,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33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34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 한숨- 당신의 숨, 생명을 내쉬신(주신), 목숨을 건 ‘열려라’입니다. 그분의 생명- 주님의 영으로입니다. (요한19,30 20,22참조)
35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 당신의 목숨을 건, 구원의 손(옷자락)을 덮으심, 그 일이~ 1. 먼저 따로 분리 입니다. 2. 창조의 손가락으로 재 창조입니다. 3. 침-입에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4.말씀-선포입니다.
나를, 우리를 사람의 규정 계명에서 분리 시키십니다. 주님으로부터 다시 태어나게 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생명수로 먹이십니다. 그 말씀에 믿음을 주십니다. - 그래서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 진리의 말을 분명하게 하시어 하느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36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분부하셨다. 그러나 그렇게 분부하실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알렸다.
= 사람의 눈으로 보는 치유, 기적의 예수님으로 말하지 말라 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대로 듣고 신나서 말을 합니다. 그래서 그 많은 이들이 기쁜 소문을 듣고 신앙을, 예수님을 믿으려 합니다. 그러나 그 신앙은 헛된 것으로 예수님을 헛되이 믿게 하는 잘못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늘 사람들에게 (당신을 기적의 주님으로, 사람의 관점으로) 말하지 말라고 강하게 거듭 말씀하신 것입니다.
37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놀라서 말하였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 세상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하늘의 진리를 알아듣고 말하는 우리가 놀라운 기적입니다. 말할 수 있어서, 들을 수 있어서 우린 늘 행복합니다.
♡ 아멘 -*^ㅇ^*-
연중 제5주간 금요일 복음(마르7,31~37)
그러자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32~34)
'데카폴리스'에 해당하는 '데카폴레오스'(Dekapoleos; of Decapolis)는 숫자 '십'(ten)을 뜻하는 '데카'(deka)와 '도시'를 가리키는 '폴리스'(polis)가 결합된 형태로서 '열 개의 도시'라는 뜻이다. 이 도시들은 갈릴래아 호수 동쪽에 위치한 대부분 이방인들이 거주하는 헬라화된 열 개의 도시들을 말한다.
마르코 복음사가가 다른 복음사가들이 언급하지 않은 지역을 소개하는 것은 이방인에 대한 주님의 관심을 나타내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마르코 복음 7장 31~37절과 병행 단락인 마태오 복음 15장 29~31절에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 말고도, 예수님께서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과 다른 불구자들 여럿을 치유하신 것으로 나온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치유 행위를 광범위하게 기록한 반면에, 마르코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지역에서 행하신 치유 중에서 대표적인 한 사건만을 정선해서 그 치유 과정을 구체적으로 기록했다.
여기서 '귀먹고 말 더듬는 이'는 한 사람인데, '말더듬는 이'로 번역된 '모길랄론'(mogilalon; had an impediment in his speech; could hardly talk)의 기본형 '모길랄로스'(mogilalos)는 '어렵게'라는 뜻의 부사 '모기스'(mogis)와 '말하다'는 뜻의 동사 '랄레오'(laleo)에서 유래하여 '말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상태'를 가리킨다.
여기서 '말더듬는 이'는 말을 한마디도 못하는 '벙어리'라는 뜻보다는, 비록 어느 정도 소리를 내지만, 그것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의 상태로서 말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마르코 복음 7장 35절에서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손을 얹어 주십사고'
유대 사회에서는 '손을 머리에 얹어 하는 기도'를 가리키는 안수(按手)는 널리 베풀어졌다. '손을 얹어'에 해당하는 '에피테 아우토 텐 케이라'(epithe auto ten cheira; put his hand upon him; place his hand on him; lay on by hands)는 상속권 수여(창세48,14-20), 직책 수여(민수27,18.23), 축복(마태19,13.15) 등을 위해서도 베풀어졌지만, 여기서는 특별히 건강 회복을 위한 안수(마태9,18; 사도9,12.17)를 가리킨다.
예수님께서는 머리에 손을 얹어 기도하는 단순한 안수가 아니라, 마르코 복음 7장 33절에 나오는 데로 행동을 통해 그 병을 즉각적으로 완전하게 고쳐 주신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당신을 온전히 의지하는 자에게 요구하는 것보다 더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을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신다. 여기서 '따로'에 해당하는 '카트 이디안'(kat' idian; aside)는 '사적으로'라는 뜻의 관용어로서 비밀리에 행한 것을 말한다.
예수님께서 비밀리에 그를 고쳐 주시려고 한 것에 대해 학자들마다 의견이 많다.
환자과 개인적으로 인격적인 관계를 나누기를 원하셨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고, 예수님의 치유 기적을 보고 군중이 흥분해서 또 다른 기적을 요구하는 것과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그리고 자신의 메시야되심을 숨기기 위해서, 또한 군중 가운데서 호기심만을 추구하는 이들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예수님께서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의 딸을 치유하실 때에는 말씀으로만 하셨는데 (마르7,29.30), 여기서는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당시 사람들에게 침은 치료의 효능이 있는 것으로 여겨졌고, 그리고 아픈 부위에 손을 대는 것도 흔히 행하던 방법이었다.
예수님께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을 때, 그리고 침을 발라 혀에 손을 대셨을 때, 이 병자는 예수님의 극진한 자상함을 느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병자에게 말씀하신 당신 치유의 손길을 직접 느끼게 하셔서, 치유된 후에도 당신 사랑과 축복의 생생함을 깊이 간직하며 살아가도록 배려하신 것이다.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여기서 '한숨을 내쉬신'에 해당하는 '에스테낙센'(estenaksen; he sighed; with a deep sigh)의 기본형 '스테나조'(stenazo)는 '좁은'이라는 뜻의 형용사 '스테노스'(stenos)에서 유래했다. 그러니까 '스테나조'(stenazo) 동사는 '매우 답답한 상태에 있다'는 뜻이다. 이 동사는 사람의 심정을 답답하게 하는 외적 요소에 의해 심적으로 몹시 압박감을 받는 상태(로마8,23)를 가리킨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의 '귀먹고 말더듬는 것'에 대해 심적으로 압박감을 느끼셨다는 말인데, 그만큼 큰 사랑과 관심을 갖고 계셨다는 뜻이다. 이러한 매우 답답한 상태는 마르코 복음 7장 34절 후반부의 '열려라'는 말과 대조를 이룬다.
'에파타'(aphphatha)는 문자적으로 '완전히 열리다'는 뜻의 아람어 (예수님의 모국어) 음역이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이방인 독자를 위해 희랍어 동사 '디아노이크테티'(dianoichtheti; be opened)로 풀어 주고 있다. '디아노이크테티'(dianoichtheti)는 '열다'(루카24,45)는 뜻의 동사 '디아노이고'(dianoigo)의 수동태 명령법으로서 '너는 열려져라'는 뜻이다.
물론 여기서 귀가 먼저 열려지고, 그 다음으로 혀의 묶인 것이 풀리는 것을 뜻하지만, 앞의 예수님의 마음이 답답한 상태를 가리키는 '한숨을 내쉬신'과 대조된다는 점에서 '열려라'의 의미는 예수님의 마음을 답답하게 하는, 병자의 전체적인 상황이 풀리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2026년 02월 13일 금요일
[연중 제5주간 금요일] (진슬기 토마스데아퀴노 신부)
제가 일반 대학에 다닐 때의 일입니다. 그때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름난 선배가 있었는데, 하루는 이제 막 출간된 책을 읽다가 버럭 화를 내며 말하였습니다.
“이렇게 완벽한 책에 오타라니! 에이, 짜증 나!” 그런데 옆에 있던 또 다른 선배가 책을 집어 들고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렇게 멋있고 완벽한 책에, 그까짓 오타 몇 개 가지고 왜 그래?”
같은 상황도 이렇게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점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작은 흠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단순한 취향의 차이를 넘어 우리 마음의 ‘열림’과도 깊은 관련이 있으니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쳐 주시면서 “‘에파타!’, 곧 ‘열려라!’”(마르 7,34)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싶었던 신앙인의 자세가 이것이겠지요. 진정한 열림으로서, 사소한 흠보다 전체를 보는 넉넉한 시선 말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뿐인 ‘나의 삶’이라는 멋진 책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 삶에 날마다 새롭게 감격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같은 탄소로 이루어진 연필심과 다이아몬드의 차이는 희귀성에 있듯이 이 세상 어디에도 나와 똑같은 존재는 없기에,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하느님 보시기에 귀한 존재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뒤, 우리의 수많은 악행에도 당신 아드님을 내주신 까닭도 결국 이 한 가지를 알려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소중하고,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요.
오늘 복음 환호송을 노래하며 먼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기쁨을 되찾기를 기도드립니다.
“주님, 저희 마음을 열어 주시어 당신 아드님 말씀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
(진슬기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연중 제5주간 금요일]
“용서이신 주님이 내 마음에 계시면!
주님이 지나가신 자리에 피는 용서, 생명, 구원이다.
복음(마르7,31-37)
31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 데카폴리스 지역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오셨다.
=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을 적대(敵對)하는 죄인들의 지역을 가로질러 가신 것이다. 죽어야 할 죄인들이다. 그들의 그 죽음의 길을 지나오신 것인데, 그들의 그 죽음의 길을 지나오신 것이, 곧 그 죄인(罪人)들의 죽음을 당신이 품어 대신 죽으시고 그들의 죽음을 갈라버리신 것이다.
그리고 하늘의 용서, 구원을 주시는 그 구원자로 돌아오신 것이다. 곧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재림을 뜻한다. 우리는 그 지나가심에 대하여 여러 번 하느님과 아브람의 계약에서 공부했다.(창세15,1-18참조)
아브람이 하느님께서 ‘가져오라’ 하신 제물을 인간의 뜻대로 반(半)으로 쪼개어 가지고 오는 바람에, 곧 하느님의 뜻을 잘라버려 그릇되게 함으로 그에게 어둠(죽음)이 덮쳐왔고, 하느님께서 그 죽음 사이를 홀로 지나가심으로, 대신 죽으심으로 아브람과 계약(契約)을 완성하신다. 그렇게 구원의 계약은 하늘의 대속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창세15,17-18) 17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자, 연기 뿜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이 그 쪼개 놓은 짐승들 사이로 지나갔다. 18 그날 주님께서는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 강에서 큰 강 곧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르는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준다.
= 하느님의 모습으로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오신 구원자(救援者) 예수님이시다. 그분과 함께 할 때. 우리의 모든 고난(苦難), 시련(試鍊), 죄(罪)까지 모두, ‘훗날 하늘나라에서 그분과의 사랑의 추억(追憶)이 될 것’임을 잊지 말자.
(마르10,45) 45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섬기는데 열성(熱誠)을 부린다. 땅의 복(福)을 받으려고 헛된 추억(追憶)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제사(祭祀), 기도(祈禱)드리고 선행(善行)도 한다. 그것이 구원의 능력, 가치가 없는 율법신앙(律法信仰)이다.
하느님의 뜻, 말씀을 문자 그대로, 곧 선과 악, 도덕과 윤리로 보고, 들었기 때문이다. 선(善)이신 예수님께서 악인(惡人)들, 곧 죄인(罪人)인 우리를 품으시고, 우리의 죽음을 가르시고 구원을 이루시는 그 기쁜 소식, 새 계약으로 오신 것인데 그 ‘새 계약의 복음이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가리어져 있다.’ 인간의 길, 계명을 너울이 덮고 있기 때문이다.
(2코린3,15-16) 15 사실 오늘날까지도 모세의 율법을 읽을 때마다 그들의 마음에는 *너울이 덮여 있습니다. 16 그러나 주님께 *돌아서기만 하면 그 너울은 치워집니다.
= 율법은 선(善)이다. 그러나 그 율법을 다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 누구도 하늘에 오를 수 없는 죄인(罪人)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의 죗값으로 당신의 목숨을 내주심으로, 곧 우리의 죄로 죽으심으로 우리가 하늘의 용서, 생명, 구원을 받게 된 것이다.(로마3,19-24참조)
그런데 그 주님의 대속(代贖), 구원의 새로운 길, 새 계약의 십자가(十字架)를 구원의 진리로 듣지 못하고, 볼 줄 몰라, 용서(거룩)를 주시는 그 주님의 십자가를 제 십자가로지지 못해 더러운 죄가 그대로 있는 죄인(罪人, 병자)이 되었다.
*오늘 죄(罪)로 병들게 하는 그 너울을 벗기려 하신다. 곧 예수님의 대속, 그 십자가의 길이 구원, 생명, 진리의 새 계약임을 듣고, 보고, 깨닫게 하심으로 구원을 이루시겠다고 찾아오신 것이다.
32 그러자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33ㄱ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 모두가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들인데 그들 중 자신이 귀먹고 말더듬는 병자인 줄 아는 그사람을 깨끗한, 거룩한 새 사람으로 고치시기 위;해 따로 구별, 분리시키신 것이다. *거룩(하기아죠- 분리, 구별되다)
33ㄴ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34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35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 옛 창조(創造)의 손가락, 말씀으로(창세1장) 새 창조, 곧 구원을 이루신 것이다. 옛 계약을 대속으로 이루시고 다시 세우신 그 새 계약으로 땅(흙)의 존재를 거룩한 하늘이 되게 하신 것이다.
(히브11,3) 3 *믿음으로써, 우리는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마련되었음을, 따라서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음을 깨닫습니다.
(야고1,18) 18 하느님께서는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시어, 우리가 당신의 피조물 가운데 이를테면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갈라6,15) 15 사실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새 창조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36ㄱ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분부하셨다.
= 하늘의 일, 말씀이 사람의 말로 나가면 꼭 변질되기 때문이다.
36ㄴ 그러나 그렇게 분부하실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알렸다. 37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놀라서 말하였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 감추어진 하느님의 새 계약의 말씀을 듣고, 보고, 말 할 수 있는, 그래서 그의 영(靈)이 치유, 구원받았음을 깨닫고 놀라워한 것일까? 아니다. 변질되게 들었다. 곧 귀먹은 이기 듣게 되고, 말 못하는 이가 말하게 되는 그 육적치유, 기적으로 보고 놀라워한 것이다.
그래서 다음 8장1절이 “ 다시 많은 군중이 모여 있었는데 먹을 것이 없었다.”로 시작된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 말씀을 생명, 구원의 새 계약으로 먹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육(肉)의 치유자, 능력자로 예수님을 섬기며 따르는 신앙을 산다면, 그런 예수님을 이웃에게 전한다면 자신도 죽고, 이웃도 죽이는 것이다.
(마태15,14) 14 그들을 내버려 두어라. 그들은 눈먼 이들의 눈먼 인도자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우리의 삶속에서 지나시는, 곧 대신 죽으시는 그 예수님을 깨닫게 하소서. 그 사랑을 놓치지 않고 그 사랑에 머무르며 주님과의 추억이 되게 하소서, 저희 모든 이들이 간절히 기도,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