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2월 23일 월요일
[사순 제1주간 월요일] 최후의 심판(審判) (마태25,31-46)
제1독서<너희 동족을 정의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레위19,1-2.11-18)
1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2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에게 일러라.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11 너희는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속여서는 안 된다. 동족끼리 사기해서는 안 된다.
12 너희는 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너희는 너희 하느님의 이름을 더럽히게 된다. 나는 주님이다.
13 너희는 이웃을 억눌러서는 안 된다. 이웃의 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너희는 품팔이꾼의 품삯을 다음 날 아침까지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
14 너희는 귀먹은 이에게 악담해서는 안 된다. 눈먼 이 앞에 장애물을 놓아서는 안 된다. 너희는 하느님을 경외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
15 너희는 재판할 때 불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너희는 가난한 이라고 두둔해서도 안 되고, 세력 있는 이라고 우대해서도 안 된다. 너희 동족을 정의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
16 너희는 중상하러 돌아다녀서는 안 된다. 너희 이웃의 생명을 걸고 나서서는 안 된다. 나는 주님이다.
17 너희는 마음속으로 형제를 미워해서는 안 된다. 동족의 잘못을 서슴없이 꾸짖어야 한다. 그래야 너희가 그 사람 때문에 죄를 짊어지지 않는다.
18 너희는 동포에게 앙갚음하거나 앙심을 품어서는 안 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
<화답송>시편19,8.9.10.15(◎요한6,63ㄷ) ◎ 주님, 당신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시옵니다.
○ 주님의 법은 완전하여 생기 돋우고, 주님의 가르침은 참되어 어리석음 깨우치네. ◎
○ 주님의 규정 올바르니 마음을 기쁘게 하고, 주님의 계명 밝으니 눈을 맑게 하네. ◎
○ 주님을 경외함 순수하니 영원히 이어지고, 주님의 법규들 진실하니 모두 의롭네. ◎
○ 저의 반석, 저의 구원자이신 주님, 제 입으로 드리는 말씀, 제 마음속 생각, 당신 마음에 들게 하소서. ◎
복음<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마태25,31-46)
예수님께서 31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32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33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
34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35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36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37 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38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39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40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41 그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42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43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44 그러면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45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46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사순 제1주간 월요일 제1독서 (레위19,1-2.11-18)
너희는 마음 속으로 형제를 미워해서는 안된다. 동족의 잘못을 서슴없이 꾸짖어야 한다. 그래야 너희가 그 사람 때문에 죄를 짊어지지 않는다." (17)
레위기 19장 16절의 "너희는 중상하러 돌아다녀서는 안된다. 너희 이웃의 생명을 걸고 나서서는 안된다." 는 말씀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 행동들의 근원에는 결국 사람의 '마음' 이 있다.
'마음속으로'에 해당하는 '삘르바베카'(billbabeka; in your heart)는 '마음'을 뜻하는 '레바브'(lebab)에 전치사 '뻬'(be)와 대명사 접미어가 결합된 형태로 '너의 마음 안에' 또는 '너의 마음으로' 라는 뜻이다.
여기서 전치사 '뻬'(be)는 '~안에'라는 장소의 의미나 '~으로'라는 도구와 수단의 의미를 다 나타낼 수 있다. 어느 경우이든 그 사람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직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감추어져 있는 것을 보여 준다.
카인이 아벨을 살해할 때에도 먼저 마음에 화를 품었기 때문이고(창세4,5), 예레미야 예언자도 마음을 가리켜 만물보다 더 교활하고 치유될 가망이 없는 것이라고 헀다(예레17,9).
예수님께서도 인간의 나쁜 생각을, 살인, 중상이 마음에서 나온다고 말씀하셨다(마태15,19). 결국 형제를 죽이는 것은 외부로 드러나는 현상일 뿐이며, 그 근원에는 형제에 대한 분노와 미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마태5,21-23; 1요한3,15).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살피고 속을 떠보는 주님이시기 때문에(예레17,10), 레위기 19장 17절의 명령은 형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하느님 앞에 점검하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마음속에 나쁜 생각들을 거두어 두지 말고 공개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여 착한 마음으로 돌이킬 것을 촉구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서슴없이 꾸짖어야 한다'로 번역된 '호케아흐 토키아흐'(hokeah thokiah)는 '꾸짖다'(1역대16,21)라는 뜻을 가진 동사 '야카흐'(yakah)의 부정사형과 미완료형이 함께 나온 형태인데, 이렇게 동일한 어근이 반복될 때에는 그 의미가 매우 강조되어 '분명히 ~할 것이다', '반드시 ~할 것이다'라는 뜻을 가진다. 따라서 본문은 '너는 분명히 꾸짖을 것이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야카흐'(yakah)동사는 '꾸짖다'는 뜻 뿐만 아니라 '변론하다', '가리다'(이사1,18), '책망하다', '따지다'(창세21,25), '견책하다', '훈계하다'(잠언19,25) 등으로도 번역된다.
이것은 신분이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일방적으로 훈계하라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이 있으면 분명하게 드러내어 스스로 깨닫게 하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형제나 이웃이 어떤 잘못이나 범죄한 일이 있으면, 이것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잘못을 분명히 인식시키고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꾸짖어야 하는 상대방을 지칭하는 단어로 '동족'을 뜻하는 '아미트'(amith)를 사용했다.
새 성경은 '아미테카'(amitheka)를 번역하여 앞에 나온 '형제'를 다시 가리키는 것처럼 해석했지만, '아미테카'의 보다 정확한 의미는 '너의 동료'(your neighbour)라는 뜻이며, 이것은 이 교훈을 듣는 사람들이 미워하지 않고 꾸짖어야 하는 대상의 범위를 구체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미워하지 말아야 할 대상은 '형제' 만이 아니라 그의 '동족'까지 확장되어, 꾸짖어야 할 대상 역시 '동족' 뿐만 아니라 피를 나눈 '형제' 까지 확장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형제와 동족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가리키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이해해야 함으로 같은 뜻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마지막 구절은 접속사 '와우'(wau; and)로 시작하여 바로 앞에 나오는 동족을 꾸짖은 결과로 따라오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 '짊어지다'로 번역된 '팃사'(thissa; suffer)는 '들어올리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나사'(nasa)의 미완료형으로, 보통 '죄'를 목적어로 취할 때에 '죄를 짊어지다', '죄의 책임을 지다'라는 뜻을 가진다(레위5,1.17; 민수18,32).
그리고 '그 사람 때문에'로 번역한 '알라이우'(allaiu)는 '~때문에'라는 뜻을 지닌 전치사 '알'(al)과 앞에 나온 명사 '아미트'(amith)를 받는 대명사 접미어가 결합된 형태로 '그 (동족)로 말미암아'라는 뜻이다. 따라서 본문은 '그 사람 때문에 네 자신에게 죄가 생겨나지 않도록 하라'고 번역된다.
그러므로 앞 문장과 관련해서 보면, 형제를 꾸짖게 되면 죄에서 해방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과 함께 죄를 당하게 된다는 뜻이다(에제3,18-21; 33,8-9).
이처럼 공개적으로 그를 꾸짖는 것은 그 사람의 영혼을 구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자칫 그 감정을 마음에 품고 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감정의 폭발과 그로 인해 상대를 헐뜯게 되며,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는 무서운 결과를 막기 위한 방책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것은 '하고 안하고'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행해야 할' 행동이다.
[사순 제1주간 월요일] 매일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오늘 복음의 구조는 무척 단순합니다.
서론(25,31-33)에 이어 완벽한 병렬 구조로 이루어진 두 번의 대화(25,34-40; 41-46)가 이어집니다.
예수님 시대의 라삐들은 가르칠 때 대개 두 번 반복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긍정의 형식으로 다음에는 부정의 형식으로 반복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다른 말씀(가르침)도 이와 비슷한 형식이 있습니다(행복 선언과 불행 선언[루카 6,20-26 참조]; 슬기로운 이와 어리석은 이의 집 짓는 방식[마태 7,24-27 참조]).
또한 당대의 라삐들은 심판의 어조를 잘 사용하였습니다.
성경에서 이런 경우가 오늘 복음 말고도 때때로 나옵니다(다니엘서 7장 참조).
라삐들과 성경의 몇몇 대목이 이런 문학 유형을 사용한 의도는 분명합니다.
세상 끝 날에 일어날 일들을 말하기보다는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구조도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임금은 선언합니다. 그리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의 말이 나오고 이에 대하여 임금이 대답하는 형식입니다.
이를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소중한 우리 삶의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어떤 가치들에 인생을 걸어야 하는지를 가르치십니다.
그것들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비유 속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두 번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는 여섯 가지 행위입니다.
모든 사람이 이 땅에서 자기의 이야기(역사)를 마칠 때 자기 자신과 하느님만 남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사람의 인생은 비유 속의 여섯 가지 고통과 가난의 상황에서 그가 어떤 선택을 하였는지에 따라 성공과 실패 여부를 판단 받게 될 것입니다.
그 상황은 바로 배고픔, 목마름, 유배, 헐벗음, 병듦, 감옥입니다.
지옥은 존재합니다. 지옥이란 적어도 죄가 만들어 놓은 불행과 절망의 시간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이 불행한 지옥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가 그 말씀을, 그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정용진 요셉 신부)
사순 제1주간 월요일
사람의 의로움(빛)의 비유입니다.
해가 없으면 달은 빛을 낼 수가 없지요. 달이 빛을 내고 있다고 착각하는 달들이 너무 많습니다.
(마태 25,31-46)
31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32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33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
= 오른쪽, 오른 나라, 하느님 나라입니다. 왼쪽 - 그 반대 나라입니다. 양들이 오른 일, 하느님나라의 일을 했다는 뜻입니다.
34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양)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 사람들이 아닌 임금, 예수님의 오른쪽입니다.
35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36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37 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38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39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40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 성전에서 보이는 신앙을 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이웃과 나누는 신앙을 산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웃에게 먹고 마실 것을 주고 병들어 있을 때, 감옥에 있을 때 찾아가 돌봐 주면 그 의로움으로 하느님 나라에 갈 수 있나요?
그러면~
(마태5,20) 2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이웃을 철저히 돌봤던 의로운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의로움이 아닌 다른 차원의 의로움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로마10,2-3) 2 나는 그들에 관하여 증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위한 열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깨달음에 바탕을 두지 않은 열성입니다. 3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알지 못한 채 자기의 의로움을 내세우려고 힘을 쓰면서, 하느님의 의로움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하늘의 의로움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 의로움을 나눈 사람 오른쪽 양입니다. 그리고 인간들의 자기 의로움으로 하느님 나라에 갈 수 있다고 한다면~ 하늘의 의로움이신 대속의 십자가, 그 예수님의 죽음이 헛된 것이 됩니다. 하늘의 의로움만이 구원의 능력이 있습니다. 사람의 의로움은 능력이 없습니다.(에제33,12 히브9,22참조)
그러니 인간의 계명에 의한 의로움이 아닌 하느님의 계명에 의한 의로움이어야 합니다.
(마태6,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로마3,23-24)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요한14,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 그 십자가의 길을 생명(구원)의 진리로 깨닫지 못한, 그래서 그 진리에 굶주린 이들에게, 그리고 율법과 인간들의 계명에 묶인 이들에게 그 하늘의 진리를 먹고 마시고 입을 수 있도록 영원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나누는 그 돌보는 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좋은 일입니다.
(요한6,55.63)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41 그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자들(염소)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42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43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44 그러면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45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46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 41절이하 왼쪽의 염소들~ 그들은 했다는 겁니다. 열심히 시중드는 그 행위의 신앙을 했는데 ‘왜 안했다 하냐’고 따지는 것입니다. 그들은 위에 로마서에서처럼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알지 못한채 자기 의로움을 내세우려고 힘을 쓰면서 하느님의 의로움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늘의 의로움을 찾는 그 깨달음을 위한 신앙을 못해 이웃과도 나누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가 예수님 말씀을 실천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우리의 양식, 마음을 나누는 일 반드시 해야 할, 사람나라의 착한일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의로움은 참빛이 아닌 반사체 달빛입니다. 참 빛은 발광채 햇빛이신 하늘의 의로움입니다.(묵시22,5)
하느님 나라는 그 사람의 빛으로 갈 수 없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달빛이 참빛이 아님을 깨닫고 참빛인 햇빛을 받아들이는 그 방향을 바꾸어 돌아서기만 하면 갈 수 있는 나라가 또한 하느님나라입니다.
아멘!!
사순 제1주간 월요일 복음 (마태25,31~46)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히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엇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31~40참조)
마태오 복음 25장에는 주님의 재림을 대비하는 사람의 자세와 관련된 세 가지 비유가 있다. 1~13절에 나오는 '열 처녀의 비유'는 주님의 재림을 대비하는 사람의 준비성을 강조하고 있고, 14~30절에 나오는 '탈렌트의 비유'는 주님의 소명에 대한 성실성과 책임을 강조하고 있으며, 31~46절에 나오는 '양과 염소의 비유'는 사랑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최후의 심판에 대한 '양과 염소의 비유'는 심판하시는 주님이 오셔서 그 옥좌에 앉는 장면이 서두에 묘사된다.
그 심판주는 '사람의 아들', '인자'(人子)로 번역된 '호 휘오스 투 안트로푸' (ho hyos tu anthropu; the Son of Man)이다.
이 호칭은 다니엘서 7장 13절의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께 가자 그분 앞으로 인도되었다'는 표현으로 최후의 심판 때에 오실 심판주로서 '사람의 아들'을 소개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서 '사람의 아들'을 이러한 개념으로 사용하셨다.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마태16,27)
이 때에 소개된 '사람의 아들'은 제1차 수난 예고(마태16,21~26) 직후에 나온 것으로서, 예수님 자신은 비록 수난과 죽음을 당하시지만, 장차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모든 사람의 심판주로 재림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도입하는 매개체 구실을 한다.
이것은 최후 심판에 대한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도 유사한데, 마태오 복음 26장 1~2절에 의하면 이 비유가 예수님께서 수난 당하시기 3일 전에 행해진 이야기이며,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수난을 당하시지만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재림하실 것이고, 당신 자신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고 사랑을 베푼 이들에게 영광스러운 축복으로 갚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사람의 아들'이라는 호칭이 드러낸다.
마태오 복음 25장 31절(ㄱ)에서 3인칭 소유격 단수 대명사 '아우투'(autu; his, him)가 두 번 쓰였다.
이것을 다시 번역하면, '그의 영광으로, 그리고 그와 함께 모든 천사들이'이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인 자신을 1인칭이 아닌 3인칭으로 사용하셨는데, 이것은 심판주의 엄격하고 공정한 권위를 한층 드러내기 위한 의도적인 기법으로 보인다.
그리고 '영광'에 해당하는 '독세'(dokse; glory)의 원형 '독사'(doksa)는 어떤 권세나 명예 따위를 소유할 자의 내부에서 발산되어 그 배후에 강력한 인상을 남기는 그 어떤 것을 말한다.
성경에서 '독사'(doksa)는 하느님께 속한 특성으로서, 성부 하느님에 의해서 성자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 '영광'으로 오신다는 것은 세상을 통치하시고 심판하시는 전우주적 구원자, 전우주적 심판주이시며 재판장의 자격으로 오신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강생(육화)때 베들레헴 마굿간에 초라하게 오신 것과는 달리, 재림 때에는 전우주적인 심판주의 자격으로 위엄과 권세를 떨치시면서 오신다는 것인데, 그것이 '모든 천사가 함께 온다'는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편 마태오 복음 25장 32절에는 '모든 민족들이' 주격이 되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여 드는 것으로 되어 있다.
마태오 복음 24장 31절에는 '천사들은 사람의 아들이 선택한 이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라고 나오는데, 여기서는 마지막 날에 모든 민족들이 영광의 옥좌에 앉으신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사방 곳곳에서 모여들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모든 민족들'에 해당하는 '판타 타 에트네'(panta ta ethne; all the nations)는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유대인과 이방인을 막론하고 '모든 인류'를 가리킨다. 그리고 심판의 때에 재판장은 세상 가운데 서로 뒤섞여 살던 의인과 악인을 철저하고 확실하게 분리해 낼 것이다.
여기서 '가르다', '분별하다'는 의미로 번역된 단어 '아포리세이'(aphorisei; will separate)의 원형 '아포리조'(aphorizo)는 둘 사이에 경계를 지어 철저하게 분리하고 구별짓는 것을 뜻하는 동사이다.
여기서는 이 동사가 미래 시제인 '아포리세이'(aphorisei; will separate)와 현제 시제 '아포리제이'(aphorizei; separates)로 각각 쓰였다.
현재 시제는 양과 염소를 구분짓고 따로 세우는 그 당시의 목축 관습을 묘사한 것이며, 미래 시제는 최후 심판의 날 재판장이 그렇게 할 것이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팔레스티나에서는 양과 염소가 같은 들판에서 뒤섞여 풀을 뜯는데, 밤이 되면 양은 양의 우리에서, 염소는 염소의 우리에 각각 들어감으로써 두 무리 사이에는 양을 치는 목자에 의해서 철저한 분리가 이루어진다.
또한 본문의 양과 염소는 각각 의인과 악인을 대표하는 상징적 매체인데, 그 당시의 양과 염소는 각각의 무리에 들어감으로써 분리되었지만, 여기서는 재판장의 오른쪽과 왼쪽에 세위짐으로써 분리될 것으로 진술된다.
여기서 '자기 오른쪽'에 해당하는 '덱시온 아우투'(deksion autu; his right)는 '재판장의 오른편'을 의미한다.
또한 '덱시온'(deksion)의 원형 '덱시오스'(deksios)는 오른쪽(right)을 의미하나 반드시 장소적 의미만을 지니지 않는다.
고대 희랍 세계에서는 명예롭거나 좋은 쪽을 오른 쪽이라고 했고, 플라톤이나 유대 랍비들의 서적에서는 구원이나 은총의 자리를 오른 쪽으로 상징한다.
예수님께서도 영도자와 구원자로 하느님의 오른쪽에 들어 올리시어(사도5,31) 원수들을 발판으로 삼을 때까지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시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사도2,34~35).
이것은 예수님께서 과거에 지니셨던 당신의 영광과 권세와 명예를 회복하셨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양을 재판장의 오른쪽에 세울 것이라는 말씀은 의인으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가지신 영예로운 자리, 혹은 구원과 은총의 자리에 세우신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25장 34절의 '복을 받은 이들아'에 해당하는 '호이 율로게메노이'(hoi eulogemenoi; who are blessed)는 앞으로가 아니라 과거에 이미 복을 받았다는 뜻이다.
이것은 '율로게메노이'(eulogemenoi)가 수동태 완료 분사로 사용되었기 때문인데, 이들이 복을 받은 시점은 이들이 주님께로부터 받은 은총으로 희생적인 사랑을 베푼 바로 그 시점이다.
동시에 마태오 복음 25장 41절의 '저주받은 자들아'에 해당하는 '호이 카테라메노이'(hoi kateramenoi; who are cursed)도 과거에 이미 저주를 받았다는 뜻이며, 저주받은 시점도 그들이 희생적인 사랑을 베풀지 않았던 그 시점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주님을 위해서 희생적인 사랑을 베풀고 베풀지 않은 그 시점부터 이미 마음으로 천국과 지옥을 경험하기 시작했고, 그러한 상태를 심판의 시점까지 유지해 오고 있는 것이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여기서 '내 형제들인 이'에 해당하는 '투톤 톤 아델폰 무'(tuton ton adelphon mu; these brothers of mine)는 '나의 이 형제들 중에'라는 뜻이다.
'내 형제들'에 대해서 '고난받는 모든 사람','주님의 제자들','주님의 자녀가 된 모든 성도들'로 다양하게 해석하고 있지만, 세번째인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하느님의 자녀들'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또한 '가장 작은 이들'로 번역된 '톤 엘라키스톤'(ton elachiston; of the least)에서 '엘라키스톤'(elachiston)의 원형 '엘라키스토스'(elachistos)는 '작은'이라는 뜻의 형용사 '미크로스'(mikros)의 최상급으로서 '가장 작은'이라는 뜻이다.
여기서는 관사와 함께 복수형으로 쓰여서 일반 명사의 의미가 되었다.
여기서 '가장 작은 이들'이란 키가 작거나 나이가 어린 자들이라는 뜻이 아니라, 참으로 무가치하게 여겨지는, 그래서 사람들의 관심도 전혀 끌 수 없을 정도로 간과되는 자들이라는 의미이다(마태10,42; 18,6).
의인들은 '사람들이 자칫 소홀히 여겨 간과하기 쉬운 사람들',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들', 그것도 한 사람 한 사람에게까지 자비를 베푼 자들인 것이다.
주님께서는 당신 자신과 고난받는 형제들을 동일시하신다.
이것이 마태오 복음 10장 40~42절에도 나타나는데, 제자들을 받아들이는 이가 곧 예수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나 다름없으며,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이가 그를 보내신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나 다름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잠언 19장 17절에도 나타나 있다.
'가난한 이에게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주님께 꾸어 드리는 이 그분께서 그의 선행을 갚아 주신다.'
주님께서는 고난받는 형제들이 당하는 그 고통을 같이 나누시는 분이시다. 이것은 주님께서 당신 형제들로 이루어진 교회의 머리이시고, 당신의 교회가 다름아닌 당신의 몸이기 때문이다(에페1,22.23)
따라서 지극히 작은 이들에게 자비를 베푼 의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자비를 베푼 것과 같은 상을 받게 되는 것이다.
[사순 제1주간 월요일] (한창현 모세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가장 작은 이들”(마태 25,40)의 실질적인 필요를 채워 준 의인들이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의 ‘가장 작은 이들’은 사회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이들로 가난하고 소외된 약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의인이 되려면, 이 가장 작은 이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작은 이들’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내용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마태오 복음서 18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작은 이들이 죄짓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6절 참조).
작은 이들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라고도 말씀하십니다(10절 참조).
그리고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14절 참조).
바로 이 작은 이들은 하느님 나라의 초대를 받아들이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고자 어린이처럼 스스로 작아진 이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작은 이들은 자신이 하느님의 피조물임을 고백하는 겸손한 의인들이기도 합니다.
사회적 약자들은 업신여김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난해서 입을 것과 먹을 것, 그리고 머물 곳이 없는 이들은 죄의 유혹을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모습으로 살아가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들과 함께하도록, 하느님께서 구원하시고자 하는 모든 이가 하느님 나라에 함께 들어갈 수 있도록 서로 도우라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우리는 ‘작은 이들’이 되어 ‘작은 이들’과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한창현 모세 신부)
[사순 제1주간 월요일]
영원한 생명이신 그리스도
복음(마태25,31-46)
31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 최후의 심판이다.
32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33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예수님)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
= 오른쪽은 ‘오른, 올바르다’의 하늘의 참 진리를 뜻하며, 왼쪽은 그 반대로 율법자들을 뜻한다. 곧 오른쪽의 양(羊)들은 본25장 1절이하 ‘열 처녀의 비유’에서 교회(燈)에 다니며 기름(聖靈)을 간직한, 그래서 신랑을 만난 슬기로운 처녀들이며, 왼쪽의 염소들은 교회는 다니지만 기름을 간직하지 못한, 그래서 신랑을 만나지 못한 어리석은 처녀들을 말한다.
그리고 14절 이하에서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그분의 재산인 ‘탈렌트(율법)’를 기도와 공부(工夫)로 다른 차원의 탈렌트로 더 벌은, 곧 하늘의 대속, 그 진리를 깨달아 ‘성실한 종(從)’이라고 칭찬 받은 이들이 오른쪽의 양들이며, 그러나 받은 한 탈렌트, 그 율법을 문자, 법, 그대로 보고 그대로 행한, 그래서 ‘구원에 쓸모없는 종’이 된 그가 왼쪽에 염소다.
34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35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36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 율법, 그 옛 계약의 행위가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 그 새 계약이 굶주리고, 목마르고, 병자(죄인), 헐벗은 이들의 ‘구원의 양식, 구원의 진리’임을 아는 것, 믿는 것이 예수님께 해드린 것이다.
37 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38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39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 그리스도의 대속, 그 진리를 깨달은 이들은 자신들이 행(行)한 모든 것을 ‘자기 의’로 쌓지 않기에 “저희가 언제 했어요?” 하는 것이다. 자랑할 수 없는 것이다.
40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 굶주리고, 목마르고, 나그네 된 이들, 헐벗고, 병들고, 감옥에 갇힌 이들, 이 작은 이들을 위해 예수님께서 오셨다. 곧 그들 모두는 예수님께 데려와야 할 그분의 지체들이다.
그러므로 그 작은이들에게 그리스도의 대속, 그 새 계약의 말씀을 구원의 진리로 주어 예수님께 돌아오도록 하는 것, 예수님께 해 드린 것이다. 그것이 또한 주님의 지체인 형제,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이웃 사랑’이다.
(요한10,14-16) 14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15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16 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
= 그러니 그리스도의 대속, 그 구원의 진리의 말씀에 굶주려 목마르고, 주님과 하나 되지 못한 그 나그네된 이에게, 그리고 대속, 그 진리로 거저 받은 죄의 용서, 하늘의 ‘의(義), 거룩’을 몰라 죄의식에 갇혀 병들고, 헐벗은 이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주어, 먹고, 마시고, 입게 해야 하는 것, 우리 신자들이 해야 할 착한 일, 의로운 행실이다.
*보충으로 희년의 말씀을 보자~
(루가4,18-19)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 율법, 그 옛 계약에 묶여 억압 받는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 그 기쁜 소식, 복음을 구원의 진리로 주어 죄의 용서, 그 해방을 선포하라는 말씀이다.
그러니까 율법의 행위로 또 말씀을 문자 그대로 보고, 굶주린 이에게 육(肉)의 음식을 주고, 목마른 이에게 육의 마실 것을 주며, 나그네 된 이들을 받아들이고, 헐벗은 이에게 육의 옷을 주고, 병들고 감옥에 갇힌 이들을 찾아가고, 한 것으로 “했습니다.
언제 안했습니까?” 하는 이들이 왼쪽에 염소다.
그 육(肉)을 위한 육의 의로움은 영원한 생명, 구원으로 이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육을 위한 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그냥 인간의 도리로 행하는 일이지, 신앙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의 의(義)를 구원의 진리로 말하면 영원한 생명을 받지 못하게 하는 죄가 되는 것이다. 또 그리스도의 대속, 그 구원의 의를 무시하는, 죽이는 악이다.
41 그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42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43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 예수님을 구원의 진리로 믿지 않았다는 말씀이다.
44 그러면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 주님께는 했다는 소리다. 주님은 믿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주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해, 육을 위한 육의 행위를 열심히 했기에 하는 변명의 소리다.
45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 이웃에게 예수님은 생명, 구원의 진리로 ‘전하지 않았음을 보라’하시는 것이다.
46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화답송(요한6,63)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요한6,27) 27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은총이시며 보호자이신 천주의 성령님!
썩어 없어질 육의 양식이 아닌 영원한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와 하나되게 하소서. 그래서 세상 창조때부터 준비된 영원한 빛의 나라에 들게하소서. 오른쪽 자리에 서게 해주소서. 힘을 주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2026년 02월 23일 월요일
[사순 제1주간 월요일] (진슬기 토마스데아퀴노 신부)
저는 기분이 울적해질 때면 재래시장에 가고는 합니다. 복작거리는 시장에서 활기를 얻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시장을 거닐다 문득 흥미로운 점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른 아침 가장 먼저 문을 여는 가게는 어김없이 채소 가게, 생선 가게, 과일 가게 같이 자연에서 나는 것들을 파는 곳이라는 점입니다.
과일 가게 옆 신발 가게는 아직도 문을 걸어 잠그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 까닭은 아마도 ‘신선도’ 때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러자 문득 ‘사람에게도 신선도 같은 것이 있을까?
신선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하는 군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러고는 생각이 이어졌습니다. 어떤 사람이 스스로 신선하다고 말한다고 해서 정말로 그가 그러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누군가의 신선함은 그가 사람들과 맺는 관계에 있지 않을까요? 그 핵심은 ‘먼저’라는 단어에 담겨 있고요.
채소 가게와 과일 가게가 자연에서 막 거둔 것들을 신선하게 내놓고자 누구보다 ‘먼저’ 문을 열고 새벽부터 부산한 것처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먼저’ 다가가고, ‘먼저’ 이해하고, ‘먼저’ 사랑할 때 신선한 사람이 되리라 믿습니다.
문득 초등학교 시절 생각이 납니다.
내가 좋아하던 짝이 나를 싫어한다 해도, 다음 날이면 또 먼저 말을 걸던 그때의 순수함 말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복음의 이 말씀에 마음이 머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진슬기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최후의 심판
복음(마태25,31-46)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31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앞 탈렌트비유 참조
(마태25,14) 14 “하늘 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
= 우리의 죄로 십자가에서 살해 되었다가(대속) 의롭게 하시려 부활하시어 하늘로 떠나신 후 다시 오시는 영광, 재림의 예수님이시다. 오늘 복음은 그 탈렌트 비유 말씀의 결과물이다.
32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33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
= 오른쪽엔 다섯 달렌트와 두 탈렌트, 곧 하느님의 말씀을 활용, 열심히 공부해서 하늘의 대속, 그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착한 종(의인)이라 칭찬을 받으며 주님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자 하셨다.
왼쪽에는 한 탈렌트, 곧 하느님의 말씀을 공부하지도 않고 성경책을 고이 잘 모셔둔 사람이다. 그래서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야단맞고 어둠속으로 던져진 사람이다.
34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에페1,14) 14 우리가 하느님의 소유로서 속량될 때까지, 이 성령께서 우리가 받을 상속의 보증이 되어 주시어,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십니다.
(히브4,3) 3 믿음을 가진 우리는 안식처로 들어갑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그리하여 나는 분노하며 맹세하였다.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고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안식처는 물론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들은 세상 창조 때부터 이미 다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35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36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 말씀이 생명의 양식이며 물이다. 또한 치유, 자유이며 의로움의 겉옷이다.
(로마13,14) 14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말씀)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욕망을 채우려고 육신을 돌보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
37 그러면 그 의인(착한 종)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38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39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40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 온갖 시련(試鍊)으로 몸과 마음이 힘들어 지친 사람에게 자신이 깨달은 말씀을 진리로 주어 하느님의 위로와 힘, 사람을 주었음이다.
(이사49,15-16) 15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16 보라, 나는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은 늘 내 앞에 서 있다.
(야고1,12) 12 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렇게 시험을 통과하면, 그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
(2코린5,17)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로마8,32-34) 32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33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을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의롭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34 누가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신 분, 또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 우리 모두는 주님의 지체(肢體)들로서 이웃에게 해 준 것이 곧 주님께 해드린 것이다.
(1코린12,26-27) 26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27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41 그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42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43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44 그러면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45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 이 삶은 열심히 병원과 감옥을 방문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 사랑과 상관없이 자신의 마음, 시간과 재물을 나누며 열심히 살았기에 언제 안했느냐고 반문하는 것이다. 곧 사람의 사랑, 의(義)를 능가하는 하느님의 사랑, 의(義)를 주는 것이 선(善), 착한 일로 하느님께서 좋아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