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2월 19일 목요일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제 십자가를 지고 (루카9,22-25)
제1독서<보아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축복과 저주를 내놓는다>(신명30,15-20)
모세가 백성에게 15 “보아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을 내놓는다.
16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느님의 계명을 듣고,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길을 따라 걷고, 그분의 계명과 규정과 법규들을 지키면, 너희가 살고 번성할 것이다. 또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너희가 차지하러 들어가는 땅에서 너희에게 복을 내리실 것이다.
17 그러나 너희의 마음이 돌아서서 말을 듣지 않고, 유혹에 끌려 다른 신들에게 경배하고 그들을 섬기면,
18 내가 오늘 너희에게 분명히 일러두는데, 너희는 반드시 멸망하고, 요르단을 건너 차지하러 들어가는 땅에서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19 나는 오늘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고,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내놓았다. 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
20 또한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그분께 매달려야 한다. 주님은 너희의 생명이시다. 그리고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주시겠다고 맹세하신 땅에서 너희가 오랫동안 살 수 있게 해 주실 분이시다.”
<화답송>시편1,1-2.3.4와6(◎40,5ㄱㄴ) ◎ 행복하여라,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
○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
○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아, 제때에 열매 맺고 잎이 아니 시들어,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되리라. ◎
○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 바람에 흩날리는 검불 같아라. 의인의 길은 주님이 아시고, 악인의 길은 멸망에 이르리라. ◎
복음<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카9,22-25)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22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제1독서(신명30,15~20)
"보아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을 내놓는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느님의 계명을 듣고,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길을 따라 걷고, 그분의 계명과 규정과 법규들을 지키면, 너희가 살고 번성할 것이다. 또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너희가 차지하러 들어가는 땅에서 너희에게 복을 내리실 것이다." (15-16)
본문에서 '보아라'(레에; reeh)라는 말이 쓰인 것은 이제 최종적인 선택이 각 개인에게 남았으니 마지막으로 모든 주의를 기울여 생각하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너희 앞에'(레파네카; lepaneka;'네 얼굴 앞에'라는 뜻)와 '오늘'(하욤;hajom)이 전하는 뉘앙스는 하느님의 축복과 저주의 두 길에 대한 제시가 매우 도전적이며 현재적이란 사실이다.
즉 결코 비밀속에 감추인 신비스러운 그 무엇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얼굴 앞에서 볼 수 있는 실제적인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을 제시하는 것이다.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 (15)
여기서 '행복'(복)으로 번역된 '토브'(tob)는 '좋은'(good)이라는 의미이며 정관사 '하'(ha)와 결합하여 '좋은 것' 또는 '선'(善)을 의미한다.
그리고 '불행'(화)으로 번역된 '라'(la)는 '악'(惡; evil)을 의미한다.
여기서 '행복과 불행'은 '선과 악'을 말하는데, '선과 악'은 어떤 도덕적인 개념이 아니라 각각 율법에 순종하는 삶이 약속하는 '축복' ('번영'; 신명4,40; 5,29.33; 6,3.18.24; 10,13)과 그와 반대되는 '저주'(신명4,26; 8,19)를 말하는 것이다(신명11,26).
'축복'을 의미하는 '선'과 '저주'를 의미하는 '악'은 현세적인 성격이 강한 반면에 '생명'과 '죽음'은 내세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리고 예레미야 21장 8절에도 "이제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을 놓아 둔다." 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그 두 길을 가르는 기준이 되는 것은 바로 하느님 말씀에 대한 순종의 여부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주어진 부가물이 아니라 우리 삶의 생명 자체이기에 비록 계약의 백성인 이스라엘 앞에 선택 사항인 양 주어졌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그 말씀을 지키는 것만이 생명을 위한 유일한 선택임을 알 수 있다.
"너희가 살고 번성할 것이다." (16)
15절에 명사로 소개된 생명과 행복을 동사를 사용하여 한층 더 생생하게 표현한 것이다.
'너희가 살고'로 번역된 '하이타'(haitha)는 '살다'는 뜻을 가진 '하야'(haja)동사의 2인칭형이다.
'하야'동사가 풍기는 뉘앙스는 '생명과 존재를 지켜가다' 혹은 '생명을 소유하다' 이다.
하느님의 율법을 지키는 것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생명과 존재를 지켜가게 하는 결과를 가져다 주는 것이다. 또한 '번성할 것이다'로 번역된 '라비타'(rabitha)는 '많아지다'란 뜻을 가진 '라바'(rabah)동사의 2인칭형이다.
'라바'동사는 특별히 수적인 증가를 나타내는 말로서 본문에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후손의 축복이(창세15,5) 성취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볼 때 율법의 순종을 통해서 하느님의 백성이 누리게 되는 궁극적인 축복은 생명과 계약 공동체의 백성의 확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율법이 지향하고 있는 최종 목적지가 단순히 물리적이고 육적인 이스라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신약의 영적 이스라엘을 거쳐 새 예루살렘까지 향해 있음을 암시해 준다.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매일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사순 시기를 시작하며 교회는 우리에게 모세(제1독서)와 예수님(복음)의 공통된 말씀에 대하여 생각해 보도록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선택’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보아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을 내놓는다.
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을 보여 주셨고, 그것을 선택할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황님 말씀처럼 선택이 쉽지 않습니다.
매일 매번 선택하는 것보다 습관과 타성에 따라 사는 것이 더 편하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사십 년의 광야 생활을 함께한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에 앞서 다시 한 번 하느님의 계명에 따라 사는 삶을 선택하라고 호소합니다.
이집트의 노예 생활을 벗고 약속의 땅에서 살아갈 삶의 방식을 새롭게 선택하라고 촉구합니다.
세례로써 새로운 삶을 선택한 우리의 신앙생활은 어떠합니까?
우리의 삶이 이스라엘 백성처럼 ‘마음이 돌아서서 하느님의 말을 듣지 않고 유혹에 끌려 다른 신들에게 경배하고 그들을 섬기며’(신명 30,17 참조) 예수님께서 주신 생명과 구원의 길에서 멀어져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하느님을 신뢰하며 그분 앞에서 우리의 삶을 선택하기보다 모짜르트의 오페라 제목 ‘코지 판 투테’(‘모두가 그렇게 한다’)처럼, 다른 이들이 하는 대로 많은 이가 가는 방향으로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자기 인생이 어떠한지 스스로 두 가지 질문을 해 보라고 권고하십니다.
첫째, ‘나에게 하느님은 누구이신가?’, 그래서 ‘나는 오늘 주님을 선택하고 있는가?’
둘째, ‘나와 내 부모, 내 형제, 내 아내, 내 남편, 내 아이들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하느님과 가족들과의 관계는 소홀히 하면서 다른 것들에 몰두해 있다면 오늘 복음 말씀처럼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는” 삶이 되어 버리지 않겠습니까?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하던 생각을 멈추고 우리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바라봅시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걷는 삶을 다시 선택합시다.
(정용진 요셉 신부)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잠시뿐인 세상을 얻고 영원한 하늘의 생명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는 것, 즉 둘을 하나로 말하는 것이 생명이다.
(신명30,15-20)
15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보아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을 내놓는다.
= 하느님의 말씀을 하느님의 듯, 길, 계명으로 받으면 영원한 생명으로 영원한 행복을 살 것이고, 인간의 듯, 길, 계명으로 받으면 영원한 죽음을 맺는 불행이라는 말씀이다.
16ㄱ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느님의 계명을 듣고,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길을 따라 걷고, 그분의 계명과 규정과 법규들을 지키면, 너희가 살고 번성할 것이다.
= 하느님의 계명과 규정과 법규란 - 이집트(세상)를 탈출해 약속의 땅 가나안(하늘)으로 가는 길에 나무 하나의 계명과 규정 법규다.
(탈출15,22-23)22 모세가 이스라엘을 갈대 바다에서 떠나게 하니, 그들이 수르 광야로 나아갔다. 광야에서 사흘 동안을 걸었는데도, 그들은 *물을 찾지 못하였다. 23 마침내 마라에 다다랐지만, 그곳 마라의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 이름을 마라(마리아)라 하였다.
= 약속의 땅 가나안, 곧 하늘에 들어가기前 땅(세상)의 모든 물은 먹을 수가 없는 쓴물 이라는 것이다.
(탈출15,24-26) 24 백성은 모세에게 “*우리가 무엇을 마셔야 한단 말이오?” 하고 불평하였다. 25 모세가 주님께 부르짖으니, 주님께서 *나무 하나를 보여 주셨다. 모세가 그것을 물에 던지자 그 물이 *단 물이 되었다.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백성을 위한 규정과 법규를 세우시고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백성을 시험하셨다. 26 그리고 말씀하셨다. “너희가 주 너희 하느님의 말을 잘 듣고, 주님의 눈에 드는 옳은 일을 하며, 그 계명에 귀를 기울이고 그 모든 규정을 지키면, 이집트(세상)인들에게 내린 어떤 질병도 너희에게는 내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희를 낫게 하는 주님이다.”
= 나무 하나를 담으면 질병의 쓴물이 단물이 되는 것이 하느님의 규정, 법규다. 그것이 에덴의 생명나무와 선악의 나무를 하나로 받는 것이다. 곧 선이 악(죄)을 대속해 생명을 주는 나무 하나인 것이다. 그것이 대속의 십자나무다. 도덕과 윤리, 그 선악의 둘이 아닌 생명, 그 하나로 받는 것이 하느님의 계명이다. 그 하느님의 뜻, 길, 계명을 진리로 믿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하늘의 생명, 복을 받는 것이다.
16ㄴ또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너희가 차지하러 들어가는 땅에서 너희에게 복을 내리실 것이다. 17 그러나 너희의 마음이 돌아서서 말을 듣지 않고, 유혹에 끌려 다른 신들에게 경배하고 그들을 섬기면,
= 다른 신들은 없다.(요엘2,27참조) 하느님의 말씀을 선악으로 곧 뱀의 유혹, 거짓 가르침에 끌려 우리의 뜻, 욕망을 들어 주시는 그 다른 신으로 섬기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다.
(2코린11,3-4) 3 하와가 뱀의 간계에 속아 넘어간 것처럼, 여러분도 생각이 미혹되어 그리스도를 향한 성실하고 순수한 마음을 저버리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4 사실 어떤 사람이 와서 우리가 선포한 예수님과 다른 예수님을 선포하는데도, 여러분이 받은 적이 없는 *다른 영을 받게 하는데도, 여러분이 받아들인 적이 없는 *다른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는데도, 여러분이 잘도 *참아 주니 말입니다.
다른 예수님으로, 다른 영으로 , 다른 복음을 믿는다면~
18 내가 오늘 너희에게 분명히 일러두는데, 너희는 반드시 *멸망하고, 요르단을 건너 차지하러 들어가는 땅에서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19 나는 오늘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고,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내놓았다. 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
= 다시 강조하신다. 나무 하나의 희생, 대속, 그 계명, 그 하느님의 규정과 법규로 돌아오라고...
(1베드2,24) 24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당신의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 나무에 달리시어, 죄에서는 죽은 우리가 의로움을 위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분의 *상처로 여러분은 병이 나았습니다.
20 또한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그분께 매달려야 한다. 주님은 너희의 *생명이시다. 그리고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주시겠다고 *맹세하신 땅에서 너희가 오랫동안 살 수 있게 해 주실 분이시다.”
우리의 생명이신 주님이시다. 오늘 복음의 주님이시다.
(루카9,22-25)
2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3)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
=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 하시고 당신의 생명을 주시는 하늘(3)의 죽음이시다.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 예수님의 대속, 그분의 십자 나무를 구원의 진리로 믿어, 하늘의 용서, 의로움을 얻으려면, *각자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통해서 만 깨닫고 믿어 얻을 수 있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용서, 생명) 갈 수 없다.
= 삶의 고통과 절망, 그것들로 인한 미움, 시기 등 끊임없이 일어나는 죄들을 통해 하늘의 대속, 그 용서의 필연성을 절절히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 福音, 곧 십자나무의 희생, 대속, 그 복음을 들었을 때 자기 열심, 자기 희생의 무력함을 깨닫는 그 자기부인으로 붙들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시련의 십자가를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이다.(히브12,7~) 그러나 끝까지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부인하면, 십자가의 대속이 주시는 하늘의 용서, 의로움, 생명, 구원을 못 받는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 자기열심, 희생의 가치, 그 목숨을 고집하면, 자기 의로움으로 용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진리라 생각 한다면 영원한 흙의 삶, 영원한 죽음(지옥)인 것이고~ 그 자기 의로움의 무력함을 깨닫고 부인하면(버리면, 죽이면) 그리스도의 십자 나무로 영원한 용서, 영원한 의로움, 생명을 얻는다는 말씀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 잠시 뿐인 세상을 얻고 영원한 하늘의 생명을 잃으면 무슨 소용인가.
(루가12,4-5) 4 나의 벗인 너희에게 말한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 교회 안에 제사와 윤리의 율법주의자 들이다. 세상의 罪와 義, 그 선악의 심판자들이다.
5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바로 그분을 *두려워하여라.
*하늘과 땅의 권한을 가지신 분, 주님만을 의지하자. 싸워 주신다고 약속하셨쟌은가 오늘 입당송에서~
(시편55,17-20.23) 17 주님께 부르짖으면, 그분은 내 목소리 들으시고, 많은 사람들이 대적하여도 나를 구하시리라. 너의 근심 걱정 주님께 맡겨라. 그분이 너를 붙들어 주시리라.그러나 내가 하느님께 부르짖으면 주님께서 나를 구하여 주시리라.
= 곧 십자 나무의 대속, 그 하느님의 계명, 복음 말씀을 믿는 것이다.
☨ 천주의 성령님! 사랑이시며 주권이신 당신만 의탁합니다.~아멘!!!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복음(루카 9,22~2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24~25)
베드로는 예수님께 대하여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루카9,20)라는 위대한 신앙을 고백했지만, 그가 가진 메시아관은 고난받는 메시아가 아니라 영광만을 받는 메시아였다.
따라서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에게 임할 수난에 대해 처음으로 예언하셨을 때 (루카9,22) 강력히 반발하였다(마태16,2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만이 십자가 고난을 당하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따르는 자는 누구나 자신을 부인하고 날마다 자신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루카9,23).
루카 복음 9장 23절에는 '날마다'에 해당하는 '카트 헤메란'(kath' hemeran)이라는 부사가 나오는데, 날마다 자신의 죄스런 본성과 결별하고 죽는 훈련을 거듭해야 함을 암시하고 있다.
이제 루카 복음 9장 24절에는 '나때문에'라는 표현을 통해(병행 구절인 마르코 복음 8장 35절에는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까지 버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으로 볼 때에는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가치관을 정면으로 거부하시고 '당신과 복음'에 더 우선적 가치를 두셨다.
한편, 이러한 역설적 진리는 역사 가운데 그대로 실현되었는데, 가리옷 사람 유다를 제외한 예수님의 사도들 중에 사도 요한 만이 장수를 누렸을 뿐, 다른 사도들은 모두 순교하였다.
그들은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가슴 깊이 품었기 때문에 순교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이 복음이 쓰여지고 읽혀지던 초대 교회 당시의 극심한 박해와 핍박을 당하던 그리스도인들에게 배교와 순교의 갈림길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순교의 길을 선택하게 한 감동적인 생명의 말씀이 되었던 것이다.
루카 복음 9장 25절에서 '잃거나'에 해당하는 '제미오테나이'(zemiothenai; lose; forfeit)는 루카 복음 9장 24절의 '잃을','잃는'에 해당하는 '아폴레세이'(apolesei; will lose)와 다르다.
'제미오테나이'(zemiothenai)의 원형 '제미오오'(zemioo)는 신약 성경에서 여섯 번 나오는데 모두가 수동태로 쓰였으며, '손상을 당하다'는 뜻이다.
여기서도 부정사 수동태로 쓰여 '손상을 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루카 복음 9장 25절에서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친다'는 표현은 인간이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제3자의 의지에 의해 자신의 목숨을 상실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루카 복음 9장 24절의 '아폴레세이'(apolesei)가 스스로의 의지와 적극성으로 상실하는 것과 비교가 된다.
말하자면, 루카 복음 9장 25절은 사람이 온 세상을 얻으려 하다가, 또는 이미 얻어 누리면서도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그 목숨과 생명을 박탈 당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라는 교훈을 던져 주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인간의 목숨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것이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진정한 의미의 생명은 이 세상 사람들이 가장 높은 가치를 두는,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질 육적인 생명이 아니라 '영원히 존재할 영적 생명'을 말한다.
본문에 나오는 '목숨'(생명)에 해당하는 '푸쉬케'(psyche; life)는 바로 '영혼 생명'(soul)을 말하는 것이다.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오늘의 묵상] (정진만 안젤로 신부)
루카 복음서의 저자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9,18-21 참조)에 이어 수난과 부활에 대한 첫 번째 예고(9,22 참조), 예수님을 따르는 방법과 조건(9,23-27 참조),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9,28-36 참조)를 차례로 전해 줍니다.
이와 같은 전개는 마르코 복음서와 마태오 복음서에서도 같습니다.
세 복음서의 저자들은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시작으로 예루살렘에서 일어날 예수님의 파스카 사건을 준비합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당신의 미래, 곧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십니다.
여기에서 루카는 ‘-해야 한다’를 뜻하는 비인칭 동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예수님께서 스스로 선택하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뜻에 따른 필연적 결과임을 강조합니다.
루카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성경에 기록된 것, 다시 말해 이미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하느님의 구원 약속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신 다음에, 제자가 되기 위한 조건을 제시하십니다.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버려야 합니다.’
여기에서 ‘자기 부인’은 관계의 재설정, 곧 하느님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여 제자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중심적인 생활 방식에서 벗어나 예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져야 합니다.’
이에 따라 예수님의 제자들은 십자가 형벌을 선고받은 것처럼, 선고받은 장소에서 처형당하는 장소로 옮겨 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실 ‘십자가의 길’은 제자들이 뒤따라 걸어갈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시선을 향하시면서, 먼저 당신께서 걸어가실 십자가의 길을 보여 주시고, 제자들에게 그 길을 함께 걸어가자고 초대하십니다.
이렇게 십자가의 고난과 영광으로 초대받은 우리에게 남은 것은 선택과 결정입니다.
(정진만 안젤로 신부)
땅에 하늘의 길이 있습니다.
(신명30,15-20)
15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보아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을 내놓는다.
= 생명과 죽음, 선택하라는 말씀? 그러면 생명을 선택하는 것 아닌가요?
그 당연한 것을 하느님은 왜?
16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느님의 계명을 듣고,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길을 따라 걷고, 그분의 계명과 규정과 법규들을 지키면, 너희가 살고 번성할 것이다. 또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너희가 차지하러 들어가는 땅에서 너희에게 복을 내리실 것이다.
= 너희의 계명이 아닌 하느님의 계명을 선택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계명과 규정과 법규를 사랑하고 그분의 그 길을 걷는 것, 복, 생명이라 하시는 겁니다.
(탈출15,25-26) 25 모세가 주님께 부르짖으니, 주님께서 *나무 하나를 보여 주셨다. 모세가 그것을 물에 던지자 그 물이 단 물이 되었다.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백성을 위한 규정과 법규를 세우시고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백성을 시험하셨다. 26 그리고 말씀하셨다. “너희가 주 너희 하느님의 말을 잘 듣고, 주님의 눈에 드는 옳은 일을 하며, 그 계명에 귀를 기울이고 그 모든 규정을 지키면, 이집트인들(세상)에게 내린 어떤 질병도 너희에게는 내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희를 낫게 하는 주님이다.”
= 나무 하나, 곧 십자 나무를 받아들이는 것, 십자가의 길을 구원의 진리로, 복음으로 받아드리는 것이다.(요한14,6참조)
쓴물이 단물이 되는 ~ 생명의 하느님의 계명과 규정과 법규입니다. 그러면 그 반대가 죽음이다. 그 나무 하나의 하느님의 계명을 저버리고 사람의 계명과 규정과 교리를 따라 사는 것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마르7,7-9) 7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8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9 또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
17 그러나 너희의 마음이 돌아서서 말을 듣지 않고, 유혹에 끌려 다른 신들에게 경배하고 그들을 섬기면, 18 내가 오늘 너희에게 *분명히 일러두는데, 너희는 반드시 멸망하고, 요르단을 건너 차지하러 들어가는 땅에서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 우리가 어떤 유혹에 잘 넘어갈까? 세상(땅)의 재물, 명예 그 유혹에 약합니다. 그래서 하늘의 복을 주시는 하느님이 아닌 땅의 복을 위한 그 다른 神으로 하느님을 헛되이 섬깁니다. 그러면 죽음으로 끝납니다.
그리고 창조주 그 神은 홀로 하느님 한분 뿐입니다. (다른 神은 없습니다.)
19 나는 오늘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고,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내놓았다. 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
=하늘과 땅이 증인?
(로마1,18.19-20) 18 불의로 진리를 억누르는 사람들의 모든 불경과 불의에 대한 하느님의 진노가 하늘에서부터 나타나고 있습니다.
= 대속의 죽음, 그 하늘의 진리를 선악의 윤리 도덕이 구원의 참이라 우기는, 고집하는 그 억누르는 것-불의입니다.
19 하느님에 관하여 알 수 있는 것이 이미 그들에게 명백히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그것을 그들에게 명백히 드러내 주셨습니다. 20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본성 곧 그분의 영원한 힘과 신성을 조물을 통하여 알아보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
= 우주 만물에 하느님의 신성과 본성 그 구원의 사랑이 들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例> 우리의 농사법입니다. 땅에 씨가 반드시 들어가야 열매를 맺습니다. 그 씨가 우리는 하늘의 죽음, 3(사흩날)의 죽음으로~곧 하느님께서 우리(땅)를 너무나 사람하신 나머지 당신 아드님(씨)을 죄의 속죄 제물로 내주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후 사흗날에 부활하신 구원의 그리스도(열매)라 묵상했었습니다.
그래서~~
(요한14,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그 진리이신~~
(히브1,3)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 하느님 생명의 본체로서 오신 예수님 그분이, 그분의 말씀이 우리의 생명입니다.
20ㄱ 또한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그분께 매달려야 한다. 주님은 너희의 생명이시다.
= 말씀을 사람의 도덕과 윤리의 뜻이 아닌 죄를 덮으시기 위한 대속, 그 하느님의 뜻을 진리로 깨달아 받으면 영원한 생명입니다.
(요한1,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하느님의 뜻, 그 말씀을 전하면~~
(1데살2,13) 우리는 또한 끊임없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신자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 죄인을 용서로 생명으로 이끄시는, 활동하시는 말씀입니다.
20ㄴ 그리고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주시겠다고 맹세하신 땅에서 너희가 오랫동안 살 수 있게 해 주실 분이시다.”
= 이 땅에 하느님의 맹세가 있습니다. 그 맹세- 하느님의 말씀으로 하늘을 살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영원히~~ 아멘 -*ㅇ*-
2026년 02월 19일 목요일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진슬기 토마스데아퀴노 신부)
사순 시기를 떠올릴 때면 우리는 십자가와 주님의 수난을 기억하며, 자연스럽게 절제와 고행의 삶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 시기에 절제와 고행의 삶을 봉헌해야 할까요?
오늘 복음은 바로 이에 대한 응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해마다 사순 시기에 절제하고 고행하는 까닭은, 먼저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나 이 동참이 다만 그분을 따라 고통을 겪어 보는 데 그친다면, 그것이 신앙인의 의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부모가 자신의 고통을 자녀가 똑같이 겪기를 바라지 않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금 주님의 말씀을 떠올립니다.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주님께서 말씀하신 십자가는 ‘제 십자가’, 곧 자기 몫의 짐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생명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머리로는 생명의 길을 알면서도, 몸은 여전히 죽음의 길에 머무르려는 내적 갈등을 겪습니다.
이런 긴장과 모순이 우리가 지는 십자가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화답송처럼 우리가 주님을 온전히 신뢰한다면, 그 어떤 고통도 우리를 그렇게까지 무겁게 짓누르지 못할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지는 십자가의 무거움은 결단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며, 사순 시기의 핵심은 고행의 강도가 아닌 주님과 함께하려는 결단의 진정성에 있지 않을까요?
2026년 사순 시기를 맞아 역설적인 꿈을 꾸어 봅니다.
이번 사순 시기 동안은 정말 ‘편안한’ 십자가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되기를. 곧 주님을 향한 결단이 두려움 없이 이루어지는 은총의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다음의 기도가 더 절실해집니다.
“하느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제 안에 굳건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영성체송).
(진슬기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2026년 02월 19일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선택(選擇)에는 책임(責任)이 따른다.
독서(신명30,15-20)
15 “보아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을 내놓는다. 16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느님의 계명을 듣고,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길을 따라 걷고, 그분의 계명과 규정과 법규들을 지키면, 너희가 살고 번성할 것이다. 또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너희가 차지하러 들어가는 땅에서 너희에게 복을 내리실 것이다. 17 그러나 너희의 마음이 돌아서서 말을 듣지 않고, 유혹에 끌려 다른 신들에게 경배하고 그들을 섬기면, 18 내가 오늘 너희에게 분명히 일러두는데, 너희는 반드시 멸망하고, 요르단을 건너 차지하러 들어가는 땅에서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 반드시 지켜야 할 하느님의 계명과 규정(規定)과 법규(法規)들은 쓴물이 단물이 되게 하는 나무 하나의 희생, 곧 죄인들을 의인 으로 구원할 새 계약인 십자나무의 대속(代贖), 그 사랑의 계명이 모형이다.
(탈출15,25-26) 25 모세가 주님(야훼)께 부르짖으니, 주님(야훼)께서 나무 하나를 보여 주셨다. 모세가 그것을 (쓴)물에 던지자 그 물이 단 물이 되었다.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백성을 위한 규정과 법규를 세우시고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백성을 시험하셨다. 26 그리고 말씀하셨다. “너희가 주 너희 하느님의 말을 잘 듣고, 주님의 눈에 드는 옳은 일을 하며, 그 계명에 귀를 기울이고 그 모든 규정을 지키면, 이집트인들에게 내린 어떤 질병도 너희에게는 내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희를 낫게 하는 주님이다.” (나는 야훼, 너희를 치료하는 의사이다.-공동번역)
= 성경 전체는 이 ‘십자나무’를 말씀하신 것이다.
(루가24,26-27) 26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대속의 십자가)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27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19 나는 오늘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고,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내놓았다. 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
= 하늘(天)과 땅(地)이 증인이다.(로마1,19-20)
20 또한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그분께 매달려야 한다. 주님(야훼)은 너희의 생명이시다. 그리고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주시겠다고 맹세하신 땅에서 너희가 오랫동안 살 수 있게 해 주실 분이시다.”
= 하늘의 생명, 축복, 곧 구원을 받으려면 반드시 구원의 의사, 새 계약이신 십자가의 예수님을 구원의 진리,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라는 말씀이다. 즉 자신의 욕망을 위한 예수님으로, 그 같은 말씀(쓴물)을 따르지 말라는 말씀이다.
복음(루카9,22-25)
2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
= 우리의 죄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우리의 단물, 곧 의롭게 하시기 위해 되살아나심이다. (로마4,24)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 지금까지의 욕망의 자신을 버리고 따르라는 말씀이다. 곧 자신의 뜻을 위한 신앙을 살면 분명히 영원한 멸망, 지옥 속으로 들어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독서18절참조)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목숨을 잃는, 하느님의 뜻이 아닌 우리의 뜻을 선택하게 된다. 하느님께서 내놓으신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 중 죽음과 불행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갈라5,17) 17 육이 욕망하는 것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께서 바라시는 것은 육을 거스릅니다. 이 둘은 서로 반대되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됩니다.
= 하느님은 그 모든 것을 아셨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 선택하라 하신 것일까. 우리가 한,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통해,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그 죄의 힘의 결과가 얼마나 고통인지 배우고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글허한 잘못된 선택들을 통해서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이다.
예쁜 우리 손녀(2살 때)가 내가 마시던 커피잔을 잡으려고 계속 보채 길래 살짝 커피잔을 대 주었다. 그랬더니 뜨겁다는 것을 알고는 다시 만지려 하지 않았다. 그렇듯 하느님은 우리의 올바르지 못한 선택으로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분명 우리는 늘 올바른 선택만 할 수 없다. 대다수 우리의 선택은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쪽을 향해간다. 우리가 죄인 이었을 때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선택했느냐 하면 우리 안에 있는 ‘통제성향’과 ‘자기보호’에 의해 선택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집착(執着)과 중독(中毒)이다.
‘통제성향(統制性向)’ 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을 내 기분에 맞도록 조절하고 싶은 ‘이기적 성향’으로 인간의 타락으로 생기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내 뜻대로 움직이고 싶어, 말을 듣지 않으면 화(禍)를 내고, 거짓말로 속이고, 죽이기도 하는 것이다.
자기 방어도 역시 타락한 인간에게서 나타나는 것이다.
자기 삶에 자기를 보호해주실, 책임져주실 하느님이 안 계시기 때문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이다. 곧 미움, 시기, 질투, 다툼 등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타락한 인간은 자기를 유익하게 보호하기 위해서 자기가 좋은 쪽을 선택한다.
그러니까 제대로 된 선택을 할 리가 없다. 깨달았다는, 믿는다는 사람에게도 여전히 ‘통제성향과 자기방어’의 습관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하느님은 우리에게 선택을 하게 하신다.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해서 낭패를 당하고 고통을 당할 것을 아시지만 하느님께서는 선택하게 놔두신다.
우리는 그러한 잘못된 선택으로 시행착오를 통해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배우게 된다. “내가 좋아 선택했는데 이것이 하느님과 이웃에게 아픔을 주는 죽음의 길이구나” 하고 체득(體得)하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선택(選擇)하시고 하느님께서 책임지시고 구원을 완성(完成)하셨다는 것이다.~
(이사46,3-4) 3 내 말을 들어라, 야곱 집안아 이스라엘 집안의 남은 자들아, 모태에서부터 업혀 다니고 태중에서부터 안겨 다닌 자들아. 4 너희가 늙어 가도 나는 한결같다. 너희가 백발이 되어도 나는 너희를 지고 간다. 내가 만들었으니 내가 안고 간다. 내가 지고 가고 내가 구해 낸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오늘 저희를 선택하시고 책임져 주시는 야훼 하느님을 의지하기로 저희 모두는 선택합니다. 끝까지 가도록 힘을 주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