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수요일]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 (마태6,1-6.16-18)

2026. 2. 16. 오전 6:5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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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8일 수요일

[재의 수요일]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 (마태6,1-6.16-18)



재의 수요일은 사순 시기를 시작하는 날이다. 교회가 이날 참회의 상징으로 재를 축복하여 신자들의 머리에 얹는 예식을 거행하는 데에서 재의 수요일이라는 명칭이 생겨났다. 이 재의 예식에서는 지난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축복한 나뭇가지를 태워 만든 재를 신자들의 이마나 머리에 얹음으로써, ‘사람은 흙에서 왔고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창세 3,19 참조)는 가르침을 깨닫게 해 준다. 재의 수요일에는 단식재와 금육재를 함께 지킨다.

 

1독서<너희는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요엘2,12-18)

12 주님의 말씀이다. 이제라도 너희는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13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 하느님에게 돌아오너라. 그는 너그럽고 자비로운 이, 분노에 더디고 자애가 큰 이, 재앙을 내리다가도 후회하는 이다.

14 그가 다시 후회하여 그 뒤에 복을 남겨 줄지 주 너희 하느님에게 바칠 곡식 제물과 제주를 남겨 줄지 누가 아느냐?

15 너희는 시온에서 뿔 나팔을 불어 단식을 선포하고 거룩한 집회를 소집하여라.

16 백성을 모으고 회중을 거룩하게 하여라. 원로들을 불러 모으고 아이들과 젖먹이들까지 모아라. 신랑은 신방에서 나오고 신부도 그 방에서 나오게 하여라.

17 주님을 섬기는 사제들은 성전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아뢰어라. “주님, 당신 백성에게 동정을 베풀어 주십시오. 당신의 소유를 우셋거리로, 민족들에게 이야깃거리로 넘기지 마십시오. 민족들이 서로 저들의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 하고 말해서야 어찌 되겠습니까?”

18 주님께서는 당신 땅에 열정을 품으시고 당신 백성을 불쌍히 여기셨다.

 

<화답송>시편51,3-4.5-6ㄱㄴ.12-13.1417(3) 주님, 당신께 죄를 지었사오니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느님, 당신 자애로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크신 자비로 저의 죄악을 없애 주소서. 제 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제 잘못을 깨끗이 지워 주소서.

제 죄악을 제가 알고 있사오며, 제 잘못이 언제나 제 앞에 있나이다. 당신께, 오로지 당신께 잘못을 저지르고, 당신 눈앞에서 악한 짓을 하였나이다.

하느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제 안에 굳건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당신 앞에서 저를 내치지 마시고, 당신의 거룩한 영을 제게서 거두지 마소서.

구원의 기쁨을 제게 돌려주시고, 순종의 영으로 저를 받쳐 주소서. 주님, 제 입술을 열어 주소서. 제 입이 당신을 찬양하오리다.

 

2독서<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2코린5,20-6,2)

20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권고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빕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21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6,1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권고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2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은혜로운 때에 내가 너의 말을 듣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복음<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6,1-6.16-18)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1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2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3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4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5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6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16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17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18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재의 수요일 제1독서(요엘2,12~18)

 

 "주님의 말씀이다. 이제라도 너희는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 하느님에게 돌아오너라. 그는 너그럽고 자비로운 이, 분노에 더디고 자애가 큰 이, 재앙을 내리다가도 후회하는 이다." (요엘2,12~13)

 

'이제라도'에 해당하는 '웨감 앗타'(wegam atha) '모든 것이 다 끝장 나버린 상황에서라도''다시는 회복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되는 때라도' 라는 뉘앙스를 지니고 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는 다시 일어날 용기를 갖지 못한다. 더우기 돌아가야 할 대상이 거룩하신 하느님 더군다나 심판의 재앙을 단행하여 그들을 고통스럽게 하신 당사자이신 하느님이다.

 

그러기에 하느님께서 먼저 손을 내미시면서 그들에게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돌아오라고 권면하시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어떤 분인지, 그분이 베푸시는 사랑이 얼마나 은혜로운 것이지를 엿볼 수 있다.

본문은 하느님의 백성이 어떤 자세로 하느님께 돌아가야 하는지를 말한다.

 

네가지로 제시되는데 원문상으로는 네 가지 태도 가운데서 '마음을 다하며'란 어구가 맨 먼저 나온다.

이에 해당하는 '뻬콜 레바브켐'(bekol lebavkem)은 결코 거짓된 태도가 아닌 진실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돌아가야 할 뿐 아니라 온 힘을 다해 하느님께 나아가야 할 것을 강조한다.

 

여기에서 '마음' 지칭하는 단어는 '레바브'(lebav; heart)이다. 이는 인간의 지성과 의지와 감성을 내포하는 인간의 본질적 부분을 가리킨다. 마음이 빠진 외적 행위만의 회개는 진정한 회개라 할 수 없다. 

 

두번째로 '단식해야' 한다고 권면한다.

이에 해당하는 '우베촘'(ubetsom)의 어근 '촘'(tsom)은  번역 그대로 음식을 섭취하지 않는 행위 의미한다. 율법에서 공식적 단식은 일년에 한 번 있었다.  그들은 대속죄일에 전국적으로 단식했다. 

 

그러나 경건한 히브리인들은 깊이 회개할 때도 단식하고, 국가적, 민족적 위기와 재난의 상황 앞에서도 단식하고 기도했다(1열왕 21,27-29 ; 요나3,3-10참조). 이같은  진실한 단식에는 하느님의 마음을 뒤바꾸는 큰 힘 담지되어 있다.

 

15절에도 ' ~단식을 선포하고 거룩한 집회를 소집하여라'고 하면서 '단식'이 또 나온다.  원문은 '캇데슈 촘'(qadeshu tsom)인데, '단식일을 거룩하게 하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거룩하게 하라'는 표현은 구별하여 떼어 두라는 의미이다.

즉 어느 한 날을 '단식일'(tsom)로 정해서 사람들이 그 날을 다른 날들과 철저하게 구별하여 모두 단식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집회' 해당하는 '아차라'(atsara)는 14절에도 나온 표현으로서 집단적인 회개를 목적으로 한 집회를 지칭한다. 

 

세번째로 유다 백성은 '울어야' 한다고 권면한다.

이에 해당하는 '우베베키'(ubabaki)의 어근 '베키'(beki)는 어원적으로 큰소리를 내면서 눈물이 펑펑 쏟아지도록 우는 행위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요셉이 총리가 된 후, 형제들을 만난 후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억누르다가 자기 방으로 가서 대성통곡할 때 이 단어가 사용되었으며(창세 45,2), 히즈키야 왕 하느님으로부터 죽음의 선고를 받은 후에 하느님께 목숨을 구하면서 대성통곡할 때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2열왕 20,3). 이같은 사례를 고려할 때 하느님께 회개하며 나아가는 자들은  가슴을 치면서 통곡해야 함을 알 수 있다.

 

넷째 유다 백성은 '슬퍼해야'(애통해야)한다고 권면한다. 이에 해당하는 '우베미쓰페드'(ubemisped)의 원형 '미쓰페드'(misped)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머리카락을 쥐어 뜯거나 가슴을 치는 행위를 나타내는데 사용되는 표현이다. 

 

이는 특별히 페르시아 제국 내에서 하만의 간계로 멸절 위기에 처한 유다인들이 자신들의 절망적 운명을 생각하면서 부르짖은 행위를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에스4,3).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 하느님에게 돌아오너라."(13) 

 

12절에서 요엘은 주님의 날의 도래에 앞서 진심으로 회개하라는 주님의 메시지를 전하였다. 이제 이어지는 본절에서 요엘은 자신의 목소리로 다시 한 번 유다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한다. 

요엘은 그들에게 '마음'을 찢으라고 명한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에서는 사람이 극심한 슬픔에 사로잡히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하느님 대전에 진심으로 회개할 때 옷을 찢곤했다(창세37,34; 여호7,6; 1열왕21,27참조).

 

그러나 요엘 예언자는 유다 백성들에게 옷을 찢지 말라고 말한다. 옷을 찢는 것은 회개의 표시로 비쳐질 수도 있지만 그것은 자칫 형식적 행위로 끝나고 말 것이라 우려했기 때문이다. 또한 외적 의식은 마음을 변하지 않고 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찢는다는 것 은유적 표현인데, 이것은 가슴에 상처를 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부서진 심령으로 통회하는 것 의미한다.

 

"하느님께 맞갖은 제물은 부서진 영, 부서지고 꺾인 마음을   하느님,당신께서는 업신여기지 않으십니다." (시편51,19)

 

왜 그들은 진정으로 회개하고 하느님께로 돌아가야 하는가?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받아주시고 작정하신 심판을 철회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본문에 제시된 주 하느님의 속성은 이미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계시해주신 하느님 자신의 속성이기도하다(탈출34,6-7).

 

 먼저 '너그럽고' 해당하는 '한눈'(hanun)은 지체가 높은 윗사람이 지체가 낮은 아랫 사람에게 호의(친절)을 베푸는 행위를 의미하는 어원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이 단어는 여기에서 자격없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느님의 과분한 호의 나타내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이는 신약의 희랍어에서 '카리스'(charis)에 해당하며, 오늘날 가장 많이 사용되는 '은총'(grace)으로 번역된다.

 

둘째 '자비로운'에 해당하는 '라훔'(lahum)은 산모가 자기 몸에 잉태된 태아를 출산하기까지 보호하고 양육하는 자리인 자궁을 의미하는 어원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자신이 직접 낳은 자녀에 대한 부모 특별히 어머니의 뜨거운 사랑 나타내는 단어이다.

흔히 구약성경에는 '불쌍히 여기다','자비롭다'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신명4,31; 느헤9,17).

더욱이 특징적인 사실은 이 단어가 하느님의 속성을 지칭하는 경우 외에는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느님께서는 친히 계약을 맺어 백성으로 삼으신 자들이기에 유다 백성이 죄를 지어 참혹한 심판에 떨어져 크나큰 고통을 당하고 있는 현실을 결코 방치하시지 않으신다.

 

 셋째 '분노에 더딘'분으로 소개한다.

여기서 '더디고'에 해당하는 '에레크'(erek)는 어떤 물체를 잡아 늘이거나 시간 등을 연장시키는 것을 의미하는 어원에서 유래한다.

요엘은 유대 백성들이 주님께서 길게 참으시는 성품을 충분히 이해하여 더 극심한 심판을 당하기 전에 그분에게로 돌아와야 함을 촉구한다. 

 

넷째 '자애가 큰'분으로 말한다.

여기서 '자애' 해당하는 '헤세드'(hesed)는 계약의 백성에 대해 베푸시는 주 하느님의 지속적이고 변함없는 사랑 강조하는 단어이다.

 

요엘 선견자가 이같이 주 하느님의 성품을 네 가지로 나열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유다 백성을 사랑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강조하여 그들로 하여금 지체하지 말고 주님께로 돌아오도록 동기를 부여하기 위함이다.

 

"주님을 섬기는 사제들은 성전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아뢰어라." (17)

 

중재(중보)기도 예언자들도 할 수 있었지만, 중재적 성격을 지닌 제사는 사제들만이 드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따라서 요엘 예언자는 당시 상황에서 온 백성이 단식하고 집회를 이루어 주님 대전에 회개해야 함을 강조하면서도 특히 사제들이 백성들을 대신해서 중재 기도해야 함을 강조했던 것이다.

 

'성전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에서 '성전 현관'(하울람; haulam)은 성소로 들어가는 동쪽 현관 말하며 '제단' 해당하는 '미즈빼아'(mizbeha)는 성전의 성소 밖에 위치한 번제단을 지칭한다.

그 번제단과 성전 현관사이는 흔히 <사제들의 뜰>로 불리워지며 그곳에서 사제들은 제사가 집전되는 중 하느님께 기도를 올렸다(에제8,16).

 

특별히 여기서 요엘은 그들이 울면서 기도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이에 해당하는 '이브쿠'(ibku)의 원형 '빠카'(baka)는 단순히 우는 정도가 아닌 큰 소리를 내어 통곡하는 것을 의미 하는 동사이다(창세21,16; 27,38). 

 

본문에서 이 단어는 미완료 시제로 사용되었는데, 그는 그러한 통회와 자기 복종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사죄와 회복이 임할 때까지 계속되어야 함을 나타낸다.

 

 

 

 [재의 수요일 [오늘의 묵상(정진만 안젤로 신부)

 

오늘 복음은 ‘산상 설교’(마태 5─7장) 가운데 한 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 위에서 제자들에게 세 가지 종교적 신심 행위, 곧 자선(6,2-4 참조)과 기도(6,5-15 참조)와 단식(6,16-18 참조)에 대하여 가르쳐 주십니다.

자선과 기도와 단식은 유다교에서 중요한 신심 행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선과 기도와 단식에 대하여 가르치시기에 앞서 기본 원칙을 소개하십니다.

마태오 복음 6장 1절에 따르면, 제자들이 행하는 “의로운 일”은 사람들에게 보여 주려는 것이 아니어야 합니다.

그러한 행위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언급된 “의로운 일”은 이어서 소개되는 세 가지 신심 행위(자선, 기도, 단식)를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 가지 신심 행위를 수행할 때 걷게 될 ‘잘못된 길’과 ‘바른길’을 제시하십니다.

이것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전자는 겉으로 드러내 보이며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행위입니다.

이에 반하여 후자는 하느님께서만 보실 수 있는 ‘비밀스러운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위선자’나 ‘이방인’의 모습은 다른 면에서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개인적 또는 공동체적 신심 행위를 과시하여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유혹을 이겨 내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위선자’와 ‘이방인’의 행위를 대조하시면서 ‘잘못된 길’과 ‘바른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오늘의 복음은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에게 각자 신앙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점검해 볼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나는 지금 어느 길을 걸어가고 있는가?’

 

(정진만 안젤로 신부)

 

  

 

 


  [재의 수요일]

 

구약(율법)의 실체(實體)인 신약(십자가)

 

2독서 (2코린5,17-6,2)

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옛것(죄인)은 지나갔습니다보십시오새것(의인)이 되었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피의 새 계약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다 씻겨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죄가 없다고 의로움을, 구원을 받는 것도 아니다. 죄의 대속인 죽음과 부활을 믿었을 때, 의(義), 거룩, 구원이 된다.-로마4,25)

 

18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기신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19 곧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면서사람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따지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습니다. 20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권고하십니다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빕니다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 지금까지의 모든 말씀을 믿는 것, 하느님과 화해(和解)하는 것이다.

 

21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아멘.) 6,1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권고합니다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 지금까지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 하느님의 은총(恩寵), 은혜(恩惠)를 헛되게 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은혜로운 때에 내가 너의 말을 듣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아멘!)

 

(히브10,9-10) 9 “보십시오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두 번째 것(대속새계약)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제사와 윤리율법옛계약)을 치우신 것입니다. 10 이 에 따라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 ‘단 한 번에 되었습니다.’ 완료(完了)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께서 대속(代贖)의 십자가(十字架)에서 “다 이루었다”하신 은혜의 때, 구원이 이루어진 날에 살고 있다. 그런데 율법(제사, 윤리)의 행위를 단식하지 못하고 자기 열심, 의(義)를 진리라 고집한다면, 그리스도의 대속, 그 죽음, 그 의로움을 헛되게 하는, 죽이는 큰 죄악(罪惡)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화답송(和答頌)을 이루어진 새 화답송, *새 노래로 바치고자 한다.

<화답송> (시편51,3-6.9-13)

하느님당신 자애에 따라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당신의 크신 자비에 따라 저의 죄악을 지워 주소서.

*하느님 당신 자애에 따라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당신의 크신 자비에 따라 저의 죄악을 치워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의 죄에서 저를 말끔히 씻으시고 저의 잘못에서 저를 깨끗이 하소서.

* 저의 죄에서 저를 말끔히 씻으시고 저의 잘못에서 저를 깨끗이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의 죄악을 제가 알고 있으며 저의 잘못이 늘 제 앞에 있습니다.

* 제가 알고 있어 늘 제 앞에 있는 저의 죄악을, 잘못을 치워주시니 감사합니다.

 

당신께오로지 당신께 잘못을 저지르고 당신 눈에 악한 짓을 제가 하였기에 판결을 내리시더라도 당신께서는 의로우시고 심판을 내리시더라도 당신께서는 결백하시리이다.(아멘)

9 *우슬초로 제 죄를 없애 주소서제가 깨끗해지리이다저를 씻어 주소서눈보다 더 희어지리이다.

*우슬초로(대속의 피를 뿌릴 때 사용하는 풀) 저의 죄를 없애 주시어 제가 깨끗해 졌습니다. 저를 씻어주셨고 눈보다 더 희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10 기쁨과 즐거움을 제가 맛보게 해 주소서당신께서 부수셨던 뼈들이 기뻐 뛰리이다.

*기쁨과 즐어움을 제가 맛보게 하시어 당신께서 부수셨던 뼈들이 기뻐 뜁니다.

 

11 저의 허물에서 당신 얼굴을 가리시고 저의 모든 죄를 지워 주소서.

*저의 허물을 당신 얼굴에서 치우시고 저의 모든 죄를 지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12 하느님깨끗한 마음을 제게 만들어 주시고 굳건한 영을 제 안에 새롭게 하소서.

* 하느님, 깨끗한 마음을 제게 만들어 주셨고, 굳건한 영을 주셔서 제 안에 새롭게 해 주셨습니다.(1코린6,19)

 

13 당신 면전에서 저를 내치지 마시고 당신의 거룩한 영을 제게서 거두지 마소서.

*당신 면전에서 저를 내치지 않으시고 당신의 거룩한 영을 제게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렇게 지금 우리는 매우 은혜로운 때, 구원의 날에 살고 있다.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다. 그래서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말씀 안에 머물 때 얻는다. 그러니 율법(律法)의 의로움을 위해 행위를 단식하고 믿음을 얻기 위해 말씀 안에 머물며 숨겨진 하느님 구원의 약속을 진리로 깨달아야, 찾아야한다.

그것을 위한 기도(祈禱), 단식(斷食)을 오늘복음(마태6,1-18)에서 말씀하신 것이다.

 

(이사58,6) 6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찾았다면, 믿는다면 그에 합당한, 어울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그분의 말씀을 진리로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 자신을 낮추는 삶을 살아야하는 것이다.

 

사도(使徒) 바오로는 이렇게 권(勸)한다.~

(갈라5,13) 13 형제 여러분여러분은 *자유롭게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다만 그 자유를 육을 위하는 구실로 삼지 마십시오오히려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

 

(필립2,4-5) 4 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아 주십시오. 5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주님께서 함께 하시며 이끌어 주셔야 간직할 수 있는 믿음이며 할 수 있는 일입니다오늘 일용항 양식(말씀)을 주셨으니 잘먹고잘 소화시켜 믿음구원이 자라게 하소서힘을 주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재의 수요일 복음(마태6,1~6.16~18)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1)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2)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3)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5)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6)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16)  너희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17)

 

 마태오 복음 6장 1~18절까지는 당시 유대인들의 고질적인 병폐 중의 하나였던 위선에 대한 예수님의 경계의 말씀이 들어 있다.

 

B.C.586년 남부 유다 멸망 이후 포로 시대의 상황에서 유대인의 전통과 예식을 고수하려는 강한 민족주의적 배경 아래 생성 발전한 유다교는 구약 성경의 내용을 왜곡하여서 지나친 형식주의가 퍼져 나갔다.

그래서 그들의 종교적 행위 가운데는 위선적 요소가 많았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이 구약 율법을 빌미로 해서 저지르는 대표적인 위선을 거론하신다.

즉 종교적 위선에 대한 경고(마태6,1)에 이어, 특히 자선(마태6,2~4), 기도(마태6,5~15). 단식(마태6,16~18)에 있어서 근본 의미를 밝혀 주시며, 위선을 버릴 것을 촉구하신다.

 

'위선'이란 '사람에게 보이려고' 행하는 의(義)임이 지적된다.

'사람에게 보이려고'에 해당하는 '프로스 토 테아테나이 아우토이스'(pros to theathenai autois; to be seen by them)에서 '프로스'(pros; to)는 '~하기 위하여', '~을 목적으로'라는 의미를 가지며, '보이다'에 해당하는 '테아테나이'(theathenai; be seen)도 목적을 나타내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수동태이다.

 

여기서 다른 목적이 아니라 순전히 사람에게 보이려는 목적만으로 의로운 일을 행하는 위선에 대한 경계의 말씀이 아주 잘 드러난다.

그리고 '조심하여라'에 해당하는 '프로세케테'(prosechete; take heed; be careful)는  '주의하다', '삼가다'의 뜻을 가진 '프로세코'(prosecho)의 현재 명령형이다.

 

이것은 마치 걸음걸이가 서툰 어린 아이의 뒤를 따라가면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자상한 표현이다.

 

또한 '하지 않도록'에 해당하는 '메 포이에인'(me poiein; not to do)은 마태오 복음 6장 1절 이하의 내용이 실생활 가운데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는 행위에 관한 교훈이다.

 

마태오 복음 6장 2절부터 4절까지는 유다교에서 종교 규정으로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던 '자선'에 해당하는 '엘레에모쉬넨'(eleemosynen; thine alms)에 있어서의 위선에 대한 교훈이 나온다.

여기서 주어가 '너희'가 아니고 '너'라는 단수인데, 이것은 모든 사람 각자가 자선을 행할 때 이 규정이 엄격하게 적용된다는 것이다.

 

또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에서 '때'로 번역된 '호탄'(hotan; when)은 '~할 때는 언제든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만약 자선을 한다면' 정도의 가정법적인 뜻이 아니라, '각 사람은 반드시 자선을 베풀어야 하는데, 자선을 베풀 때에는'이라는 필연적 의미를 지닌다.

 

마태오 복음 6장 2절의 '위선자' 해당하는  '호이 휘포크리타이'(hoi hypokritai; the hypocrites)의 기본형 '휘포크리테스'(hypoktites)는 '가장하다', '꾸미다'는 뜻이 있는 '휘포크리노마이'(hypokrinomai)에서 유래하며, 원래는 '연극 배우'를 뜻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고, 마음 속에 있는 것을 솔직하게 밖으로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마치 그렇지 않은 것처럼 가장하여 자신의 이익을 꾀하는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되었다(마태15,7; 마르7,6).

 

이런 사람은 많은 사람들이 목격할 수 있는 회당과 거리에서 공개적으로 자선하고, 이것을 모든 사람들이 알도록 나팔을 불듯이 자랑까지 하여 그들의 행위가 실제로는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과시에 목적이 있음을 보여 주었다.

 

한편,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에 해당하는 '아페쿠신'(apechousin; they have)의 원형 '아페코'(apecho)는 희랍 고전 문헌에서 '어떤 것을 받고 영수증을 주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확실히 받았음을 나타내는 단어인데, 그러니까 여기서 등장하는 위선자는 자신에게 즉각적으로 돌아오는 확실한 반대 급부가 없으면, 자선을 베풀지 않는 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그들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 자선을 베풀므로, 자선을 베풀 때 이것을 목격한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게 됨으로써, 그들이 목적했던 것을 이룰 수 있기에 그들은 충분한 상을 이미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마태오 복음 6장 3절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에서 원문에는 '손'이라는 단어가 없고'너의 왼쪽~너의 오른쪽'만 나온다.

새 성경 번역문과 달리 원문에 '손'이라는 단어가 없는 것은 구체적인 형체보다 추상적인 개념을 보다 강조하기 위한 의도적인 표현이다.

 

말하자면, 행위로 이루어지는 자선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이루어지는 동정이나 또는 자선을 계획하는 것조차도 은밀히 하라는 깊은 뜻이 담겨져 있다.

성경에서는 오른쪽은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반면에 왼쪽은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선한 의지로 자선을 베풀려고 할 때, 이것을 저해하는  악한 충동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악한 충동이 일어나지 않도록 은밀하고 신속하게 자선을 베풀라는  심오한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기도할 때에'에 해당하는 표준 원문에는 '프로슈케스테'(proseuchesthe) 라는 2인칭 복수형이 아니고'프로슈케'(proseuche)라는 2인칭 단수형으로 나오므로 '또 네가 기도할 때에'로 번역된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실제로 기도하는 사람 개개인에 대해 교훈을 주시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기도하다'에 해당하는 '프로슈코마이'(proseuchomai)는 '~을 향하여'라는 방향을 나타내는 전치사 '프로스'(pros)와 '원하다', '고대하다'는 뜻이 있는 '유코마이'(euchomai)의 합성어이다.

 

여기서 전치사 '프로스'(pros)는 단 하나의 방향을 나타내는 단어이기에, 기도는 오로지  하느님께 응답받는, 단 하나의 목적만을 가져야 하며, 타인에게 과시하거나 칭찬을 받기 위한 다른 목적이 포함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당시 유다인들은 유다인 시간으로 3시(오전9시), 6시(정오), 9시(오후3시)가 공식적인 기도 시간이었고, 위선자들은 이 시간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회당이나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했다.

기도를 엎드리거나 무릎을 꿇거나 앉아서도 할 수 있지만, 굳이 서서 기도하는 것은 자신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신앙심을 과시했던 것이다.

 

마태오 복음 6장 6절 '골방'에 해당하는 '타메이온'(tameion; closet)는 '창고', '내실', '침실'의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가장 일차적인 뜻은 식료품 등의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루카12,24)이다.

 

당시 피지배 국민으로서 가난과 빈곤에 시달리던 유다인들은 가족들을 위해 아무도 모르는 '창고'에 식량을 숨겨 두었고, 식량을 가지러 들어갈 때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극도로 조심해야 했다.

 

이렇게 유다인들에게 있어서 '식량 창고'는 생명과도 같은 가장 중요한 비밀 장소로 여겨졌다.

 

 

  

20260218일 수요일

[재의 수요일] (진슬기 토마스데아퀴노 신부)

 

“Ecce homo.”(에체 호모) 매를 맞으시고 초라해지신 예수님을 빌라도가 군중 앞에 내보이며 던진 이 말은, ‘이 사람을 보라.’는 뜻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이것이 사람이다.’로 옮깁니다.

라틴 말 ‘ecce’가 단순한 감탄사가 아니라 존재의 실재를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문법이 아니라, 이 말이 가리키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성찰입니다.

과연 무엇이 사람이라는 것일까요?

상처투성이가 되신 예수님, 아무 힘도 없이 조롱당하시는 그분을 두고 이것이 사람이다.”라고 말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다시 말해서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 결코 자신의 힘만으로는 완전에 이를 수 없지만, 완전을 꿈꾼다는 점에서 더욱 좌절할 수도 있는 존재, 그것이 바로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를 짓고 싶어서 짓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수없이 넘어집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안 돼.”라며 자책하는 것이 과연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모습일까요?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오히려 그렇게 넘어질지라도 우리가 당신을 붙잡고 다시 일어서기를 바라십니다.

넘어지는 것이 바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Ecce homo.”(이것이 사람이다)

자신이 얼마나 자주 넘어지는 존재인지 절실히 깨닫는 그 순간, “너 어디 있느냐?”(창세 3,9)라는 하느님의 물음에 비로소 진심으로 ,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 고백이 바로 신앙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넘어지는 사람으로서, 처절히 자신을 마주한 사람으로서 맞이해야 합니다.

사순 시기를 시작하는 오늘, 머리에 재를 얹으며 듣는 주님의 말씀에 깊이 머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진슬기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2026년 02월 18 [재의 수요일]

 

 단식기도, 

내 목숨을 걸고 하는 훌륭한 기도이다. 그러나 헛 것이 될 수 있다. 하늘의 뜻을 먹는 것이 단식이다.

 

(마태6,1-6.16-18)

1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하시는 것이다.(마태6,33)

 

(루가16,15) 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2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3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 오른손은 오른, ‘올바르다’의 하느님 나라를 뜻한다. 그러니 왼손, 곧 땅의 나라 일이 아닌 그 세상이 알 수 없는, 그래서 숨겨진 하늘의 일, 생명의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이다.

 

(2코린5,21) 21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 세상이 알 수 없는 하느님 나라의 진리다. 그 하늘의 진리를 주는 것이 참 자선이다. 죄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거저 의롭게 되어 구원 받을 수 있도록 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땅(세상)에는 그 진리가 숨겨져 있어 자신들의 양식, 재물의 일부를 나누는 것을 자선이라 한다. 인간이면 누구나 해야 하는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신앙의 목적은 아니다.

 

(2코린4,18) 18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가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 그러니 이 세상이 알 수 없는, 숨겨져 있는 하늘 양식을 우리는 주어야 하는 것이다. 하늘 진리, 양식을 깨닫고 전하는 이는 자신의 양식도 자연히 나누게 된다.

 

4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5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 사람들이 알게 하는 기도, 곧 그 사람의 뜻, 소원, 욕망을 위한 기도는 그 사람의 감사로 이미 상을 받는다. 그 육을 위한 빈 말, 기도하지 말고(마태6,7) 하늘의 생명을 위한 기도를 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6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 골방은 제사에 필요한 제물, 등잔대, 기름 등이 있는 곳으로, (지금의 제대 옆방, 제의실과 비슷한 곳) 그 모든 것 안에 하느님의 구원의 뜻이 숨겨져 있다.

 

제물☞(히브10,12) 12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한 번 *제물을 바치시고 나서, 영구히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불을 밝히는 등잔대☞(묵시1,12-13) 12 나는 나에게 말하는 것이 누구의 목소리인지 보려고 돌아섰습니다. 돌아서서 보니 황금 *등잔대가 일곱 개 있고, 13 그 *등잔대 한가운데에 *사람의 아들(예수) 같은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발까지 내려오는 긴 옷을 입고 가슴에는 금 띠를 두르고 계셨습니다.

 

기름☞(레위24,2) 2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올리브를 찧어서 짠 순수한 등잔 *기름을 가져오도록 명령하여, 늘 등불이 타오르게 하여라.

= 올리브를 찧어 짠, 곧 하느님을 찧어서 짠 기름으로 빛을 내는, 어둠을 밝히는 성령 하느님을 뜻한다. 그래서 신랑이신 예수님을 기다릴 때, 등(교회)과 기름을 준비하라 하신 것이다.

 

(마태25,3-4.10) 3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4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10 기름을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 골방 안에 제물, 등잔대, 기름 등, 그 보이는 것 안에, 보이지 않는(숨겨져 있는) 대속의 그리스도, 그 하느님의 뜻을 청하고, 구하여 이웃과 나누는 것, 올바른 일이며 자선이다. 보이는 것은 잠시 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2코린4,18)

 

16 너희는 단식(행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17 너는 단식(참)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18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 이 말씀이 요엘서에서 말씀하신 ‘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요엘2,13) 이다. 

본문 6장 1절을 시작으로 ‘보이는 의로운 일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2절 이하 - 올바른 자선을, 5절 이하 - 올바른 기도를 말씀하셨고 9절 이하 - 주님의 기도를 주셨는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듯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16절 이하에서 올바른 단식을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올바른 단식 역시 보이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단식을 해야 하는 것이다. 

곧 내뜻, 내 양식이 이루어지기를 바랬던 그 빈말 기도를 단식하고, 아버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하늘의 생명의 양식, 말씀을 먹게 해 주시기를, 그래서 이 땅, 모든 죄인들이 그 생명의 양식인 그리스도의 대속, 그 십자가의 복음으로 용서와 구원, 생명을 받는 그 하느님의 뜻,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참 단식이다.

 

(이사58,5-6) 5 이것이 내가 좋아하는 단식이냐? 사람이 고행한다는 날이 이러하냐? 제 머리를 골풀 처럼 숙이고 자루옷과 먼지를 깔고 눕는 것이냐? 너는 *이것을 단식이라고, 주님이 반기는 날이라고 말하느냐? 6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 옷만 찢는 행위의 단식을 버리고, 받은 생명의 말씀, 그 하늘의 양식으로 해방을 주는 것, 참된 단식이다.

 

*오늘 입당송 ‘모든 사람에게 자비하시고, 당신이 만드신 것을 하나도 미워하지 않으시며, 사람들이 회개하도록 죄를 덮어 주시고 용서하시니, 저희 하느님이십니다.’ 저희 마음에 간직되는 참된 단식이 되게 하소서.

 

*(지혜서11,24-26 12,1) 24 당신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시며 당신께서 만드신 것을 하나도 혐오하지 않으십니다. 당신께서 지어 내신 것을 싫어하실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25 당신께서 *원하지 않으셨다면 무엇이 존속할 수 있었으며 당신께서 *부르지 않으셨다면 무엇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겠습니까? 26 생명을 사랑하시는 주님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기에 당신께서는 모두 소중히 여기십니다. 12,1 당신 *불멸의 영이 만물 안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영(성령)이시여 늘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하나이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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