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1주간 화요일] 주님의 기도(祈禱) (마태6,7-15)

2026. 2. 22. 오전 11: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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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4일 화요일

[사순 제1주간 화요일] 주님의 기도(祈禱) (마태6,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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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나의 말은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리라.>(이사55,10-11)

10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11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화답송>시편34,4-5.6-7.16-17.18-19(18) 하느님은 의인들을 모든 곤경에서 구해 주셨네.

나와 함께 주님을 칭송하여라. 우리 모두 그 이름 높이 기리자. 주님을 찾았더니 응답하시고, 온갖 두려움에서 나를 구하셨네.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이 넘치고,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네.

주님의 눈은 의인들을 굽어보시고, 그분의 귀는 그 부르짖음 들으신다. 주님의 얼굴은 악행을 일삼는 자들에게 맞서, 그들의 기억을 세상에서 지우려 하시네.

의인들이 울부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해 주셨네. 주님은 마음이 부서진 이를 가까이하시고, 영혼이 짓밟힌 이를 구원해 주신다.

 

복음<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마태6,7-15)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8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12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13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14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사순 제1주간 화요일 제1독서 (이사55,10-11)

 

"만나 뵐 수 있을 때에 주님을 찾아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분을 불러라. 죄인은 제 길을, 불의한 사람은 제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오너라. 그분께서 그를 가엾이 여기시리라. 우리 하느님께 돌아오너라. 그분께서는 너그러이 용서하신다." (6~7)

 

오늘 독서 이사야서 55장 10~11절의 말씀은 55장 6~7절의 말씀이 천지가 개벽해도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하느님께서 정하신 자연법칙을 예로 들면서 강조하고 있다.

이사야서 55장 6~7절은 하느님을 만날 기회가 영원 무궁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내며 자신에게 기회가 주어질 바로 그 때에 회개하여 주님을 찾으라고 촉구하는 내용이며, 이 말씀에 따라 죄인이 돌아올 때 용서하고 자비를 베푸시겠다고 하시는 주님의 약속의 말씀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비는 땅에서 아무런 효력도 발휘하지 않고 다시 하늘로 돌아가는 법이 없다. 이러한 자연 현상과 마찬가지로 한 번 주 하느님의 입에서 나간 말씀은 반드시 그 목적한 바를 성취하고야 만다. 하느님께서는 한 번 뱉은 말씀이 성취되기도 전에 그것을 다시 주워 담는 분이 아니시다.

 

하느님께서는 민수기 23장 19절에서 발라암의 신탁을 통해서도 분명히 말씀하셨다.

"하느님은 사람이 아니어서 거짓말하지 않으시고 인간이 아니어서 생각을 바꾸지 않으신다. 그러니 말씀만 하시고 실천하지 않으실리 있으랴? 이야기만 하시고 실행하지 않으실리 있으랴?"

비가 내리면 그 중에서 수증기로 증발해 버리는 양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에서 한 번 내린 비는 반드시 땅을 적시게 되어 있으며 그로 인해 땅은 생산력을 갖게 되어 있다.

 

본문의 진정한 의도는 하느님께서 목적하시는 바는 결코 헛되이 끝나지 않고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는 데 있으며, 하느님의 말씀이 그와 같은 성취를 이루어낸다는 것을 자연 법칙을 통해 비유하는 데 있다.

적절한 시기에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눈은 땅을 촉촉히 적셔서 싹이 돋게 하고 자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며 인간에게 양식을 준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도 인간 영혼을 살리며 삶을 풍성하게 하는 영적 양식이 된다. 하느님의 말씀은 반드시 인간 영혼을 살리며 그 말씀을 듣는 자들의 삶은 풍성해지게 마련이다.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하느님께서는 완벽한 판단력과 완전한 지식과 총체적 계획과 영원한 경륜속에서 말씀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입에서 나간 말씀이 헛되이 사라지거나 허망한 것으로 끝맺는 일은 결코 없다.

하느님의 말씀은 한 번 입에서 나가기만 하면 반드시 계획한 목적을 달성하고야 마는 것이다.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이유 접속사 '키'(ki)로 시작하는 본문은 왜 하느님의 입에서 나가는 말씀이 헛되이 그냥 돌아오지 않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준다. 그것은 그 말씀이 하느님의 기뻐하시는 뜻과 밀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본문의 '내가 뜻하는바'에 해당하는 '아셰르 하파츠티'(asher hapatsthi)는 문자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 혹은 '내가 기뻐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것은 다 선하고 의롭고 진실하며 생명을 구원하는 일과 관련된다는 사실인데, 이것은 당신의 의롭고 선하시고 진실하신 속성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그분의 전지전능하심, 절대 주권에 근거해서 반드시 성취되며, 궁극적으로 그 모든 일들은 그분의 성품에 부합된 것으로서 사람들의 삶에 있어서 축복이 되고 아름다운 결과로 귀결될 것이다.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하느님의 입에서 나간 말씀은 그의 마음속에서 계획하신 뜻을 표현한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구원자이시기 때문에 그 말씀이 그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권세가 있고 운동력과 생명력이 있으며 재창조의 능력이요 치유하는 광선이고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다.

 

제발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 영육의 구원과 성화를 위해 절대적 생명의 말씀으로 받아들여 매일 말씀을 읽고 곱씹고 암송하고 묵상하고 살아서 참으로 말씀이 주는 기쁨과 평화, 행복과 자유를 누리자. 그럴 때 우리의 삶이 회복되고 의미가 있게 되고 가치롭게 된다. 말씀은 그리스도 예수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루카 복음 4장 4절, 8절, 12절에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말씀을 하시며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을 세번 다 구약 성경의 말씀으로 물리치신다. 그런데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고 번역된 '게그라프타이'(gegraptai; It is written)는 원형 '그라포'(grapho)의 완료 수동태이다. 희랍어에서 완료형은 과거에 이루어진 동작이 현재에 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기능을 가진다.

 

따라서 과거에 기록되어 이미 완성된 구약 성경의 그 말씀이 기록된 그 시대뿐만 아니라 그 이후로도 계속하여 효력을 지님을 나타내는 것이다. 또한 수동태가 된 것은 그 말씀이 사람이 쓴 문자로 남겨져 있음을 나타낸다.

성경은 비록 외형적으로 인간 저자나 필사자에 의해 기록된 것이지만, 그 배후에 특별 계시의 주체가 되시는 하느님의 계시이므로 근본적으로 하느님께서 기록하신 말씀이 되는 것이다.

 

 

 

 

    

[사순 제1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정진만 안젤로 신부)

 

마태오 복음 6장은 세 가지 종교적 신심 행위, 곧 자선(6,2-4 참조)과 기도(6,5-15 참조)와 단식(6,16-18 참조)을 소개합니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자선과 단식에 대한 가르침은 짧은 반면에 기도에 대한 가르침은 상대적으로 분량이 많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기도’에 대한 가르침에 속하는데, 다음과 같이 구성되었습니다.

첫 번째, 이방인의 예를 들면서 말 많은 기도를 경고합니다(6,7-8 참조).

두 번째, 주님의 기도를 소개합니다(6,9-13 참조).

세 번째, 용서를 권고합니다(6,14-15 참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방인들처럼 기도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빈말을 되풀이하면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의 본보기를 가르쳐 주십니다.

‘주님의 기도’는 먼저 하느님을 부르며 시작합니다.

기도의 대상이 누구인지 명확합니다.

제자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향하여, 그분께 기도해야 합니다(6,9ㄴ 참조).

이어서 하느님의 영광, 하느님 나라의 도래, 하느님 아버지 뜻의 성취에 대한 희망을 표현합니다(6,9ㄷ-10 참조).

이어지는 후반부에서 표현되는 청원들도 종말론적 기대를 전제합니다.

다가오는 날을 위한 양식(6,11 참조), 죄의 용서(6,12 참조), 그리고 마지막 날 시험에서 하느님의 보호(6,13 참조)를 청합니다.

 

모두 여섯 개의 짧은 청원들로 구성된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 나라가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필요를 표현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먼저 하느님의 영광, 나라, 뜻과 관련한 청원이 자리하고, 이어서 인간의 필요에서 비롯한 청원이 나오는 순서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인간의 바람보다 하느님의 뜻이 우선함을 전제합니다.

마태오 복음서의 저자는 우리에게 ‘주님의 기도’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이 기도는 개인이 혼자, 또는 공동체와 함께 매우 자주 바칩니다.

그런데 너무나 친숙한 나머지 습관적으로 바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주님의 기도를 어떤 마음가짐으로 바치고 있습니까?

 

(정진만 안젤로 신부)

 

 

 


 

 사순 제1주간 화요일

 

주님의 기도를 개구리처럼 하지 말라

 

(마태6,7-15)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 다른 민족(세상)들이 구하는 것을 위해 같은 소리를 반복해서 하는 것, 빈말, 그 헛된 기도로 하지 말라는 말씀이시다.

빈말 (바톨로게오-듣지 못해 말 못하는 것), 어원- 바트라코스-개구리

 

8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 다른 민족(인간)들이 청하고 싶은 것, 곧 사라질 한줄기 연기일 뿐인 목숨을 위한 것이 아닌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구하라는 말씀이다.

 

(마태6,33)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 인간의 뜻(욕망, 의로움)이 구원의 힘, 무력함을 깨닫고 인정하는 자기부인으로 거저 얻는 하늘의 의로움이다.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신다는 것이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 아버지의 이름, 그분의 뜻이 거룩하심은, 아버지께서 드러내 주셔야 알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기도하라 알려 주신 것이다. 흙의 없임인 존재가 창조주 하느님의 뜻을 어찌 알겠는가- 알려 주셔야 알 수 있다. 그래서 하느님 당신의 뜻(말씀)을 인간의 모습으로 보내신 것이다.(요한1,14)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으로 하느님의 사랑, 자비, 의로움, 계명을 깨달아 구원 받으라고,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그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섬길 것을 아셨기에 예수님께서 구원의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려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우리의 머리(지혜)로는 깨달을 수 없는 그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믿게 해 주실 성령을 약속하신 것이다.

 

(요한14,16.24.26) 16 그리고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 24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2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 아버지의 나라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통치하시는 나라다. 곧 자신을 죽여서 남을 살리는 십자가의 사랑, 그것이 하느님 나라의 법, 통치원리인 것이다. 그 아버지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청하는 것이 기도 이다.

 

(루가17,20-21) 20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서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21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 바리사이들에게 와 있다는 말씀이 아니다. 그들 가운데 계시는 예수님, 당신을 가리켜 하시는 말씀이시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려고 오신 하느님 나라시며 하느님의 의로움이시다. 곧 죄인들을 살리시려 당신의 목숨을 바치러 오신 하느님 나라이다.

 

(마태6,33)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1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 우리에게 꼭 필요한, 내일의 양식 *히브리어- 에피시우스(꼭 필요한 양식) *아람어- 마헬(내일의 양식)

그래서 오늘 복음 환호송이-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4,4)

 

(요한6,48.63) 48 나는 생명의 빵이다. 63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 오늘 주신 말씀이 구원의 일용할 양식이다.

 

12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 당시 죽을죄를 지어서 처형하는 것이 십자나무에 달아 죽이는 것이었다.(신명21,22) 그렇게 죽음으로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래야 하느님의 뜻(자비)으로 다시 살 수 있다. 십자나무의 대속으로 살아나는 것이다.

그것이 선이 악을 대속해 생명을 주는 생명나무, 쓴물을 단물로 만드는 나무 하나로, 곧 십자나무의 희생(대속)이 하느님의 법규, 계명이다. 그리스도인은 죽어야 산다는 것이다. 자기부인을 하라는 말씀이시다.

 

(에페1,7)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13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 세상의 선악의 법으로 열심히 지킨 그 자기 의로움으로 자신의 뜻(욕망)을 이루려는 그 유혹, 그 악에 빠지지 않게 해 주시길 기도하라 하신다. 사람은 스스로의 힘으로 그 유혹, 악에서 나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기도(祈禱) 없이는 안 된다.

 

14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 우리의 용서란- 우리의 일용할 양식, 곧 생명의 빵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용서)의 말씀을 주어 그의 죄가 십자가로 없어지게 하는 그 용서를 하라는 말씀이시다. 곧 그 십자가의 복음을 주라는 말씀이신 것이다. 하느님께서도 그 진리의 계명, 복음으로 우리를 용서하신다.

 

(마태18,21-22)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 일흔 일곱, 곧 희년의 정신으로 용서하라는 말씀이시다.

 

(레위25,8-10) 8 ‘너희는 안식년을 일곱 번, 곧 일곱 해를 일곱 번 헤아려라. 그러면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나 마흔아홉 해가 된다. 9 그 일곱째 달 초열흘날 곧 속죄일에 나팔 소리를 크게 울려라. 너희가 사는 온 땅에 *나팔 소리를 울려라. 10 너희는 이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한 해로 선언하고, 너희 땅에 *사는 모든 주민에게 해방을 선포하여라. 이 해는 너희의 희년이다. 너희는 저마다 제 소유지를 되찾고, 저마다 자기 씨족에게 돌아가야 한다.

= 자유다.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나라, 그 모든 것에서 자유다. *나팔소리를 울려 땅의 해방을 선포하는 것, 그것이 희년의 정신이다. *나팔은 뿔 나팔을 의미하는데- 어린양이 죽어 남긴 그 양의 뿔이다.

*나팔 소리는- 속죄 제물인 어린양의 죽음, 곧 예수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얻는 죄의 용서, 자유, 해방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것이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이다. 그것이 일흔 일곱 번의 용서다.

  

☨보호자 성령님! 저희가 받아 모신 오늘 말씀으로 현세의 욕망을 억제하며 천상 것을 사랑하게 하소서.~아멘!!!

 

 

 

   

[사순 제1주간 화요일매일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사순 시기는 기도의 시간입니다.

교회는 이 시기를 시작하며 우리가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기도를 통하여, 특히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를 통하여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와 아주 특별한 관계를 맺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기도’를 보면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창조주이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이시기를 바라심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 아버지를 신뢰하며 바치는 자녀들의 기도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께 드리는 이 기도는 말을 많이 하고 자신이 바라는 것을 얻고자 자기만의 비법으로 하는 다른 민족 사람들의 기도와는 매우 거리가 멉니다.

주님의 기도는 우리에게 어떠한 걱정이나 두려움도 가지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알고 계시는 아버지를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원문의 순서를 따라가면 주님의 기도의 첫 번째 말은 “아버지”입니다.

“아버지!” 하고 자녀가 아버지를 부르는 말입니다.

두 번째 말은 “우리(의)”입니다. 아버지가 나만의 아버지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다음에 “우리(의)”라는 말을 주셨습니다(Pater noster).

그래서 주님의 기도는 자녀의 기도이며 형제들의 기도입니다.

“우리 아버지”라는 말은 우리가 그분의 자녀들이라는 사실과 우리가 모두 형제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그토록 용서를 강조하시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형제들의 잘못을 용서하지 못하면 우리는 그분의 자녀도 서로의 형제도 되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기도는 아버지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믿음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바칠 수 없는 기도입니다.

이 신뢰를 바탕으로 우리는 아버지께 빵을 달라고 청합니다.

이 빵은 나만의 빵이 아니라 ‘우리’의 빵이고 ‘일용할’ 빵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기도는 우리가 아버지와 형제들 앞에서 ‘부족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호화로움과 부유함을 요청하지도, 인생의 모든 부분을 걱정 없이 살만큼 채워 달라고 요청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이 빵이 우리의 영혼과 육신을 위하여 날마다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이것이 미사 때마다 영성체 전에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이유일 것입니다.

말씀의 식탁과 성찬의 식탁에서, 말씀과 성체로 언제나 우리를 먹이시고 기르시는 하느님 아버지를 찬미합시다.

 

(정용진 요셉 신부)

 

 

 

 


[사순 제1주간 화요일] 

 

우리는 (자유를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어 행복하다.

 

  (마태 6,7-15)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 땅의 재물, 건강, 명예 그 다른 민족이 청하는 것, 빈말 기도라 하시며 그 기도 담지 마라, 하지 마라, 하십니다.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 그런데 다른 민족이 청하는 것, 우리도 청하지 않나요? 우리도 똑같이 빈말 기도 합니다. 미사까지~

 

(요한16,24)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 지금까지 예수님께 받을 수 있는 올바른 기도를 하지 않았다 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 아버지(화테르) - 어린아이가 부르는 단어입니다. 그 아버지 창조주께서 그분의 피조물인 어둠인 우리를 덮으시는 그 거룩한 빛을 드러내 주시길~ 그러면 그 거룩한 빛(영)으로 하늘의 아들 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창세1,2참조)

우리가 아들로, 하늘의 존재성으로 바뀌는 상황입니다.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 하늘아버지의 뜻이 땅인 우리에게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 올바른 기도입니다. 그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러 오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요한6,39-40) 39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40 내 아버지의 뜻은 또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1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 앞 7절에서 청하지 말라 하셨던 그 다른 민족의 양식은 아니겠지요?

 

(마태6,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무엇을 마실까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 일용할(에피시우스)- '꼭 필요한, 위엣 것으로 존재하는'~ 아람어로는 ‘마헬’ 그 뜻은 내일의~ 다가올 날, 다른 차원의 그 내일을 뜻합니다. 하늘에 있는, 하늘을 위한 양식입니다.

 

(마태4,4)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요한1,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 루가복음에서는 기도를 가르쳐 주신 후 빵 세 개(직역하면 셋이라는 빵)와 성령을 구하라, 찾으라, 말씀하십니다.(루가11,5-9참조) 셋(3) 빵, 곧 예수님의 사흗날(3)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이~ 죄인들의 용서 구원(생명)의 진리임을 깨닫고 믿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실, 증언해 주실, 성령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다가올 날의 양식으로 구하라’ 하신 것입니다,(요한14,6 15,16참조) 한마디로 노후 준비가 아닌 영생(永生) 준비를 위한 양식입니다.

 

12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 그 빵 셋과 성령의 증언

 

(골로2,14)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들을 담은 우리의 빚 문서를 지워 버리시고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 가운데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 주님의 대속의 십자가로 모든 죄가 용서 받았음을~ 그래서 나에게 잘못한 이 또한 그 십자가의 용서받았음을 인정하는 그 용서로, 용서했으니 ~ 저희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입니다.

 

13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 그러나 우리는 자주 나에게 잘못한 이를 십자가의 진리가 아닌 사람의 계명으로 스스로 의롭다 하며 선악의 법으로 잘못한 이를 판단하려 합니다. 그리고 꼭 필요한, 다가올 날들을 위한 하늘 양식이 아닌 현세의 삶을 위한 양식 만을 구하고, 찾는 그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그 ‘악의 유혹에서 구해 달라‘ 기도해야 합니다.

 

14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이 진리임을 믿는다면~ 다른 이에게 사흗날(셋)의 대속의 죽음, 그 십자가의 용서 그 말씀으로 용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죄의 용서가 다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심입니다. 용서는 신(神)의 단어이지 사람의 단어가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거기까지는 알았지만~

 

(마르2,5-7) 5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율법 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7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하느님을 모독하는군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 예수님께서 죄인들의 속죄 제물로 오셔서 사흗날의 대속으로 죄를 용서해 주신 그 성자 하느님이심을 그들은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이의 허물도 용서 못하고 자신들의 허물도 용서 받지 못했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하늘의 양식을 구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말씀을 먹어야 하느님께서 홀로 거룩하신 분으로 알 수 있고 말씀을 알아야 하느님의 뜻인, 우리의 구원인 용서가 이루어질 수 있고 말씀을 깨달아야 세상의 악법, 그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느 신학자가“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

 

(요한5,39)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아멘.

-전에 굿뉴스에서- <‘신천지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성경공부를 하지 않으면 된다. 모든 이단은 성경공부로 시작해서 성경공부로 끝난다. 아무래도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는 개신교 신자들이 신천지에 넘어갈 것이라 생각한다.-중략- 우리 가톨릭교회는 성경보다 교리가 우선되어야 한다. 진리의 기둥은 성경이 아니라 교회다.’ -수원교구 요셉사제>

=말이 됩니까? 진리의 기둥이 성경이 아니라 교회라니요? 성경이 예수님을 진리로 말씀하셨고 그 성경 말씀(반석)위에 세워진 것이 교회입니다.

 

(에페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 이 말씀을 전한 사도들, 예언자들입니다.

 

(에페2,20)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 성경을 모르면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고 성경을 모르는 교회는 있을 수 없습니다. 성경 속에 꼭 필요한 구원의 양식이 있는데~ 우리 이대로 따라 가도 되는 것인지요. 그 성경 속에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을 진리로 올바로 배워야, 깨달아야 잘못된 길, 그런 신천지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요한5,38-40) 38 너희는 또 그분의 말씀이 너희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지 않기 때문이다. 39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40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 참 답답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오늘~ 내일의 양식으로 깨닫는 이에게는 자유가 있습니다.

 

(요한8,31-32)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아멘~~!!!!

 

 

 


 

  사순 제1주간 화요일 복음(마태6,7~15)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7~8)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에 해당하는 '메 밧탈로게세테'(me battalogesete; do not keep on babbling; do not use vain repetitions)에서 '빈말을 되풀이하다'로 번역된 '밧탈로게세테'(battalogesete)의 원형 '밧톨로게오' (battologeo)는 '말을 많이 하다', '생각없이 말하다', '쓸데없이 말하다'등의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기도는 카르멜 산에서 바알의 예언자들이 했던 기도나(1열왕18,26), 에페소에서 거의 두 시간 동안이나 외쳐댔던 아르테미스 숭배자의 예에서 찾아볼 수 있다(사도19,34).

또한 하느님을 대상으로 기도한다고 하더라도, 하느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기도를 반복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된다.

 

믿는 이들 가운데서도 은총의 지위를 상실하고 죄중에 기도하거나, 하느님의 뜻과 상관없이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기도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이들이 때로는 눈물로 애원하고, 때로는 논리적으로 하느님을 설득하는 조로 미사여구를 늘어 놓으며 장황하게 기도한다 하더라도, 이것은 하느님 앞에 아무 의미없는 말들을 많이 쏟아내는 것에 불과하며, 이런 기도는 하느님 대전에 올라갈 수가 없다.

 

마태오 복음 6장 8절의 '알고 계신다'에 해당하는 '오이덴'(oiden; knows)은 완료형이다.

희랍어에서 완료형은 말하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이미 동작은 끝났지만, 그 동작의 결과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상태를 나타낸다.

여기서도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이미 기도하는 이의 형편을 과거로부터 알고 계셨음을 보여 준다.

 

우주의 삼라만상과 인류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께서 모르시는 것이 있을 수 없다. 당신께서 직접 창조하신 피조물이며, 당신께서 선택한 자녀의 청원 내용을 모르실 리가 없다. 

따라서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위선적인 기도가 아니고,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진실한 기도라면 반드시 하느님께서 들어주신다.

 

하지만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라고 하더라도, 그 기도의 응답이 늦어질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때와 사람의 때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방법으로 가장 적절하게 응답해 주시는 분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주님의 기도'에 대한 해설은(루카11,1~4)을 참조하십시오~~^*^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2ㄷ-4)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 처음 등장하는 단어가 '아버지'인데, 이것은 기도의 대상이 하느님 아버지이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아버지'에 해당하는 '파테르'(Pater; Father)는 당시 유대인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던 아람어 '압바'(Abba; 마르14,36)를 번역한 것이다. 주로 어린 아이가 아버지를 친근하게 부를 때 사용되는 말이다.

 

구약에서 창조주로서의 두려움과 엄위를 전제한 전능하신 하느님의 호칭 '엘로힘'과 스스로 자존(自存)하시며 계약에 충실하심을 보여 주는 고유 명사 '야훼'를 사용한 것과 달리, 예수님께서는 이제 하느님을 '압바'(Abba)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과 하느님 아버지 사이가 얼마나 긴밀하고 친근한 것인가를 확실하게 보여 준다.

 

이제 나아가서 예수님과 하느님 아버지 사이의 친밀함이 제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가르치며, 예수님처럼 제자들도 그렇게 부르라고 가르치신다. 그리고 '아버지'라는 호칭 다음에 두 종류의 간구가 나온다.

 

하나는 하느님과 관련된 것이며(2절), 다른 하나는 인간과 관련된 것이다(3~4절).

하느님께 대한 첫번째 간구인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드러내시며'에서, '이름'에 해당하는 '오노마'(onoma; name)는 존재 자체를 의미하며, 하느님의 선하시고 공의로운 속성 등 그 이외의 모든 속성이 그 이름 안에 들어 있음을 나타낸다.

 

또한 '거룩히 드러내시며'로 번역된 '하기아스테토'(hagiastheto; hallowed be)는 '거룩하게 하다'는 뜻을 지닌 '하기아조'(hagiazo)의 부정과거 수동태 명령형인데, 이것은 기도의 대상이신 하느님께서 공경을 받으셔야만 한다는 당위성을 나타낸다(이사8,13; 29,23; 에제36,23).

말하자면, 이것은 하느님의 이름이 '인간들에 의해서' 거룩해지기를 '하느님께' 간구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하느님을 모독하고 거역해서 범죄하는 대신에, 하느님을 경외하고 예배할 수 있는 상황과 기회를 베풀어 달라는 간구인 것이다.

따라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드러내시며'라고 기도하는 것은 하느님의 존재 자체가 영광과 존귀와 경배의 대상이 되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하느님께 대한 두번째 간구는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이다.

여기서 '오게 하소서'로 번역된 '엘테토'(eltheto; come)는 '가다', '오다'를 뜻하는 '에르코마이'(erchomai)의 부정과거 명령형이다. 희랍어에서 부정과거 명령형은 그 내용이 결과적으로 완전히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열망할 때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여기서는 하느님의 나라가 '속히 도래하여', '결과적으로 완성되기를' 바라는 강한 욕구를 포함한다. 또한 '나라'로 번역된 '바실레이아'(basileia; kingdom)는 정관사 '헤'(he)와 같이 사용되어 '그 나라'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 '바실레이아'(basileia)라는 단어는 특정한 영토와 장소, 공간을 의미하지 않고, '하느님의 통치와 지배, 다스림'을 의미하는 역동적 개념(reign; govern)이다.

 

다시말해서 '하느님의 주권'에 대한 언급으로서, 하느님께서 직접 왕이 되셔서 사탄의 통치를 종식시키고, 당신이 직접 다스리시는 그 마지막 종말의 때가 속히 올 것을 갈망하는 간구인 것이다(루카4,43; 마르9,1).

 

이제 기도의 내용 중에서 예수님의 관심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필요과 관련된 '일용할 양식'과 '죄에 대한 용서' 그리고 '유혹에서의 구원'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언급하신다.

 

첫째로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간구에서 '일용할'로 번역된 '에피우시온' (epiusion; daily)은 '바로 오늘 필요한 것'과 '오는 날', 즉 '내일의 양식'이라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 '날마다'라는 '카트 헤메란'(kath hemeran; by day; each day)이라는 관용구를 사용해서 '일용할 양식'을 제한하고 있으므로, 대체로 그날그날의 실존적 삶에 필요한 실제적 양식을 의미한다.

이것은 '주다'의 뜻인 '디도미'(didomi)가 현재 능동태 명령형인 '디두'(didu; give)로 사용되어 계속과 반복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그렇게 보아야 한다.

 

인간의 필요를 구하는 두번째 간구는 '죄의 용서'에 관한 것이다. 새 성경에 번역되지 않은 '가르'(gar; for)가 '왜냐하면 ~ 이기 때문에' 라는 이유 부사절을 이끈다.

하느님께 죄의 용서를 청하려면, 전제 조건이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해 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죄에 대해 하느님께 용서를 청할 수 있다.

만일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지 못하면,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이 기도는 아무소용이 없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잘못한'으로 번역된 '오페일론티'(opheilonti; that is indebted; who sins)는 '빚지다'는 의미를 가진 '오페일로'(opheilo)의 현재 분사형이다. 따라서 이 문장은 '우리가 우리에게 빚지고 있는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죄도 용서해 주시고'라는 뜻이다.

 

당시 유대 풍습대로 빚을 진 사람들이 채권자의 노예가 되거나 옥에 가두거나 하지 말고, 탕감해 주고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마태18,23~35).

이러한 사실은 '용서하오니'에 해당하는 '아피오멘'(aphiomen; we forgive)에도 잘 드러나는데, 이 단어는 현재 능동태로서 계속해서 용서할 자세를 가져야 함을 의미한다.

 

인간의 필요를 구하는 마지막 간구는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이다.

'유혹'으로 번역된 '페이라스몬'(peirasmon; temptation)의 원형 '페이라스모스'(peirasmos)는 사람을 죄짓게 만드는 유혹을 뜻한다 (야고1,12; 1티모6,9).

 

여기서는 예수님의 제자들로 하여금 믿음과 거룩함으로 벗어나 타락하도록 하는 외적, 내적 유혹거리들을 의미한다.

여기서 '빠지지'에 해당하는 '에이세넹케스'(eisenehkes; lead)는 '들어가다'라는 의미를 지닌 원형 '에이스페로'(eisphero)의 가정법 과거형이다. 그래서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 달라'는 뜻이 아니라 '유혹에 굴복하지 않도록 우리를 이끌어 달라'(And lead us not into temptation)는 뜻이 된다.

 

한편, 마태오 복음 6장 13절에서는 '다만 악에서 구해주소서'라는 말이 주님의 기도 끝에 더 붙어 있다.

여기서 '악'으로 번역된 '투 포네루'(tu poneru; from evil; from the evil one)라는 단어는 중성으로 볼 수도 있고, 남성으로 볼 수도 있다.

중성으로 보면 '악'(evil)은 추상적인 의미를 갖게 되고, 남성으로 보면 '악한 자'(evil one)라는 보다 구체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그래서 앞의 문장과 연관지어 보면, 우리로 하여금 유혹에 빠트리는 악한 자, 즉 마귀로부터 구하여 달라는 간구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하겠다.

 

 

 

  

20260224일 화요일

[사순 제1주간 화요일] (진슬기 토마스데아퀴노 신부)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일상은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요즈음은 누구나 휴대 전화를 들고 다닙니다.

그러면서 내가 필요할 때 바로 연락하고, 상대도 바로 응답하기를 기대하지요.

그러나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는 휴대 전화처럼 바로 연결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제가 기도를 드릴 때마다 곧바로 응답해 주시지는 않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하느님께서도 기도를 골라서 받으시는 걸까?’ 하고 서운해질 때도 있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도는 어쩌면 삐삐’, 오래전에 있었던 무선 호출기와 더 닮았는지도 모르겠다고요.

삐삐는 문자 대신 숫자로만 마음을 전하던 기계였지요.

이쪽에서 먼저 메시지를 남기고 나면, 상대의 응답을 진득하게 기다려야 하였습니다.

물론 때때로 ‘8282’처럼 빨리빨리라는 뜻을 담은 숫자를 덧붙이기도 하였지만, 그 시절 그 기다림 안에서 마음이 더 깊어졌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일까요. 한편으로는 기도가 오히려 삐삐보다도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한 편지와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순간의 감정에 따라 급히 거는 전화가 아닌, 한 자 한 자 눌러써 내려가는 마음을 다한 편지 말입니다.

편지를 부친 뒤에는 설렘으로 답장을 기다렸던 기억이 납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우리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사순 시기를 지나는 지금, 우리의 기도도 이와 같으면 좋겠습니다.

정성을 다하여 기도를 드리되, 응답이 없다고 조급해하지 않고, 오히려 설레어 하면서 기다릴 줄 아는 그런 기도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마태 6,8).

 

(진슬기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사순 제1주간 화요일]

 

말씀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은 창조의 힘이 있는 것.

 

1독서(이사55,10-11)

10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11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 하느님의 말씀은 하느님의 뜻이며 사명을 반드시 이루신다.

 

복음 환호송(마태4,4) 4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 사람은 말씀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씨를 양식으로 주셨다.(창세1,29) 씨는 하느님의 말씀이다.(루가8,11)

 

(예레17,1.5.9) 1 유다의 죄악이 철필로 기록되었다. 금강석 촉으로 그들의 *마음 판에, 그들의 *제단 뿔에 새겨졌다. 5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 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의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 있다. 9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더 교활하여 치유될 가망이 없으니 누가 그 마음을 알리오?

= 가망없는 죄인들에게 말씀을 생명 양식으로 주신 것이다. 그러니 말씀을 구원의 진리로 깨닫지 못하고 하늘의 용서, 생명, 구원에 이를 수가 있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사람이 자신의 열심한 행위를 의지해 하늘에 오르겠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헛된 말, 빈말인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만이 사람의 금강석(다이아몬드)같이 강한 죄악의 마음을 깨실 수 있다. 곧 말씀이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 부수시고, 그 사람을 살리는 새 창조, 구원의 일을 하신다.

 

복음(마태6,7-15)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 빈말, 씨 없는 말, 곧 하느님의 말씀이 없는 사람의 말로 생명을 주지 못하는 헛된 말이다.

 

(신명32,47) 47 이 말씀은 *빈말이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또한 너희는 이 말씀 덕분에, 너희가 요르단을 건너 차지하러 가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 그러니까 다른 민족 사람들, 곧 사람들의 뜻, 소원을 위한 기도는 빈말 기도로, 그 같은 기도를 계속 되풀이 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내 뜻, 소원을 위해 말씀의 신비, 곧 하느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하는 기도 책이 닳도록 하고 하는 묵주기도, 빈말 기도인 것이다.

그러나 말씀을 깨닫고 말씀에 의탁 하기 위한 묵주 기도는 참 기도로 올바른 기도이다. 말씀을 받아 말씀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은 새 창조의 능력, 힘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하느님의 뜻, 사명인 우리의 구원을 완수 하고 야 마시기 때문이다.(이사55,11참조)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 나 자신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아버지 하느님이시다. 우리 자신보다 하느님을, 그분의 말씀을 더 믿고 의지해야 하지 않겠는가?

 

(시편22,11) 다윗의 고백, 11 저는 모태에서부터 당신께 맡겨졌고 제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당신은 저의 하느님이십니다.

 

(갈라1,15) 바오로의 고백, 15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나를 따로 뽑으시어 당신의 은총으로 부르신 하느님께서 기꺼이 마음을 정하시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 창조주이신 주님의 아버지를 피조물인 우리에게 아버지로 주신 것이다. 모든 것을 감싸주시는 한 없이 따뜻하고 충만한 사랑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이름(사랑)이 거룩하시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친히 드러내 주셔야 알 수 있기에 ‘기도하라’하신 것이다. 거룩은 아버지께만 있다. *거룩(하기야죠-구별되다.) 곧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것이 거룩이다.

세상과 다른 그 거룩, 사랑을 세상인 우리의 지각으로는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그래서 보호자를 약속하신 것이다. 보호자 성령께서 깨닫고, 믿게 해 주신다.(요한14,26)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게 하소서 이다. 곧 우리의 노력, 열심히 이뤄 나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먹었다면,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와 있음을 알 수 있다. (마태12,28 루가17,21)

 

아직 인가? 그러면~

(마태6,33)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 성경에서, 말씀 안에서 찾는 것이다.

 

1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 물론 하늘의 양식인 말씀이다. 매일의 독서와 복음을 먹는 것이다. ~주셨는데, 곧 말씀을 받아 놓고, 공부는 하지 않고 자꾸만 행위로 내 놓으려는 엉뚱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미사에 참석하면 다 되는 것으로 착각한다. 미사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하느님의 뜻이 아닌 사람의 뜻을 위한 도덕과 윤리의 그 빈말로 듣고는 말이다. 그것은 다른 민족들이 하는 신앙이다. 그러니 어찌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와 계심을 믿겠는가?

 

12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 말씀을 안다면, 깨달았다면, 용서란 우리 인간의 언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곧 모든 인간은 죄인으로 하느님께 용서 받아야 할 존재들이지 용서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당신 외아들(獨生子)을 모든 인간들의 속죄 제물로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주신 용서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용서는 하느님과 그분의 외아들 예수님의 언어다.(마태9,6) 그래서 십자가의 예수님을 구원의 진리로 서로 나누며 그분의 대속으로 서로 용서 받았음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용서이다. 또한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그랬을 때 인간의 용서, 사랑도 나오는 것이다.

 

13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 사람의 본능은, 스러질 자신의 열심, 능력, 그 힘을 의지해 이 땅의 것으로 잘 먹고, 잘 살고, 만족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영원한 죽음으로 이끄는 그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해야 한다. 또한 거짓 사도들의 거짓 가르침 또한 인간의 열심, 노력으로 세상에서 잘 사는 것이 진리라고, 구원의 길이라고, 거짓말하기에 그 악에서도 구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아무리 자기 의로움이 큰, 그 누구도 십자가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으로 하늘의 용서와, 의로움을 얻지 못하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히브10,10.14.22) 10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14 한 번의 예물로,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22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 우리의 몸은 맑은 물(말씀, 성령)로 말끔히 씻겨 졌습니다.

= 거룩은 하늘에서 받는 것이지 흙인 사람이 이루어가는 것이 아니다. 보호자 성령으로만 깨닫고, 믿어, 거룩할 수 있다.

 

14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 내가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을 구원의 진리로 믿어, 그분 십자가로 하느님의 용서 받았음을 믿는다면, 당연히 다른 이도 하느님의 용서 받았음을 믿고 인정하게 된다. 그것이 우리의 용서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용서하고, 용서 받는 것이다. 그것이 내게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하느님의 용서를 믿지 않는 것이고 그 믿지 않는 것이 받지 않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히브리 문학법인 ‘카이즘 구조’로 보면 일용 할 양식인 말씀을 구원의 진리로 깨달으면 아버지의 나라가 이루어져 유혹에 빠지지 않고 악에서 구해지는 것이고, 일용 할 양식인 말씀을 구원의 진리로 깨달으면 아버지의 뜻인 용서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은총이시며 보호자이신 천주의 성령님!

하느님의 비밀까지도 통찰하셔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깨닫고 기억하게 하심을 믿습니다저희를 위해 탄식하시며 간구해 주심도 믿습니다감사함을 담아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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