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8주간 월요일] 영원한 생명 (마르10,17-27)

2025. 3. 2. 오후 3:5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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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03일 월요일

[연중 제8주간 월요일] 영원한 생명 (마르10,17-27)


   


1독서<지극히 높으신 분께 돌아와 하느님의 심판을 깨달아라.>(집회17,24-29)

하느님께서는 24 회개하는 이들에게는 돌아올 기회를 주시고 인내심을 잃어버린 자들은 위로하신다.

25 주님께 돌아오고 죄악을 버려라. 그분 앞에서 기도하고 잘못을 줄여라.

26 지극히 높으신 분께 돌아오고 불의에서 돌아서라. 그분께서 너를 이끄시어 어둠에서 구원의 빛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또 너는 그분께서 역겨워하시는 것을 혐오하여라.

27 살아서 감사하는 이들을 대신하여 누가 저승에서 지극히 높으신 분께 찬미를 드리겠느냐?

28 존재하지 않는 자처럼 죽은 이에게서는 찬양이 그치지만 건강하게 살아 있는 이는 주님께 찬미를 드리리라.

29 주님의 자비는 얼마나 크시며 당신께 돌아오는 이들에 대한 그분의 용서는 얼마나 크신가!

 

<화답송>시편32,1-2.5.6.7(11)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행복하여라, 죄를 용서받고, 잘못을 씻은 이! 행복하여라, 주님이 허물을 헤아리지 않으시고, 그 영에 거짓이 없는 사람!

제 잘못을 당신께 아뢰며, 제 허물을 감추지 않았나이다. “주님께 저의 죄를 고백하나이다.” 당신은 제 허물과 잘못을 용서하셨나이다.

당신께 충실한 모든 이들이, 곤궁할 때 기도드리나이다. 큰물이 닥친다 하여도, 그에게는 미치지 못하리이다.

당신은 저의 피신처. 곤경에서 저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환호로 저를 감싸시나이다.

 

복음<가진 것을 팔고 나를 따라라.>(마르10,17-27)

17 예수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어떤 사람이 달려와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

19 너는 계명들을 알고 있지 않느냐?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횡령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20 그가 예수님께 스승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1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이르셨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22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23 예수님께서 주위를 둘러보시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24 제자들은 그분의 말씀에 놀랐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거듭 말씀하셨다. “얘들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25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26 그러자 제자들이 더욱 놀라서,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27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바라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연중 제8주간 월요일 제1독서(집회17,24~29)


"주님께 돌아오고 죄악을 버려라. 그분 앞에서 기도하고 잘못을 줄여라.  지극히 높으신 분께 돌아오고 불의에서 돌아서라. 그분께서 너를 이끄시어, 어둠에서 구원의 빛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또 너는 그분께서 역겨워하시는 것을 혐오하여라." (25~26)


집회서의 신학적 주제들 중에 하나가 '자유의지'에 관한 가르침이다. 동일선상에 있는 선과 악을 선택하는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이다.

구약 성경에서 집회서는 처음으로 인간을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라고 선언한다 (집회15,11~20). 하느님께서는 인간 스스로 원하는 대로 살아가도록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으신다(집회15,14).

따라서 인간은 자유의지로 선을 택할 수도 있고 악을 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인간 자신에게 주어져 있기에 집회서는 인간의 윤리적, 신앙적 책임을 강조한다(집회4,20; 17,25~32 참조).


오늘 독서의 말씀이 집회서 17장 24~29절인데, 진리를 깨닫는 능력인 지성으로 지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바로 깨닫고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 자유의지의 선용으로 깨달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회개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주님께 돌아오고 죄악을 버려라. 그분앞에서 기도하고 잘못을 줄여라.(25)  지극히 높으신 분께 돌아오고 불의에서 돌아서라.  그분께서 너를 이끄시어, 어둠에서 구원의 빛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또 너는 그분께서 역겨워하시는 것을 혐오하여라.' (26)


이러한 맥락에서 집회서가 가르치는 개념 중 가장 부정적인 것  '죄'와 '악'이 아니라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재앙에  빠지는 무책임한 인간의 '어리석음'이다(집회13,8; 15,7; 19,11~12 등등).

그러면서 집회서는 '예배'의 신학을 전개하는데, 참된 예배는 결국 지혜를 추구하는 일이기에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집회17,25; 39,12~35).


'주님께 돌아오고 죄악을 버려라. 그분 앞에서 기도하고 잘못을 줄여라.'(25)


'살아서 감사하는 이들을 대신하여, 누가 저승에서 지극히 높으신 분께  찬미를 드리겠느냐?  존재하지 않는 자처럼 죽은 이에게서는 찬양이 그치지만,  건강하게 살아 있는 이는 주님께 찬미를 드리리라.  주님의 자비는 얼마나 크시며, 당신께 돌아오는 이들에 대한  그분의 용서는 얼마나 크신가!" (27~29)


하느님의 절대적 생명의 말씀에 승복하고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아온 사람들은 자비와 용서로 표출되는 하느님의 선하심과 사랑을 체험하게 되고, 그것을 감사와 찬양의 기도로 드러내는 진정한 예배를 봉헌할 수 있음을 계시해 주고 있다.






연중 제8주간 월요일 복음(마르10,17~27)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21)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25)


여기서 '부족한 것이 있다'에 해당하는 '휘스테레이'(hysterei; lack)는 '휘스테레오'(hystereo) 동사의 현재형이다.

부자 청년은 자신이 계명을 다 지켜 왔기에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여 예수님께  자신있는 말투로 대답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가 계명들을 다 지켰다 하더라도, 지금 현재 결정적으로 부족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현재형 동사로 사용해서 지적한 것이다.

동사 '휘스테레오'(hystereo)는 생활 형편과 관련해서 '부족하다', '모자라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부자 청년은 물질적인 부족이 없었기에, 이 '부족'이라는 단어가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생소한 단어로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가 물질로는 풍요로와도 그것은 진정한 풍유로움이 아니며, 오히려 부족함이라는 사실을 그의 허점을 찔러 지적한 것이다.


마르코 복음 10장 19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십계명의 제4~10계명만을 언급하셨다. 이 계명들은 모두 인간 사랑과 관련된 것으로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가야 할 수평적 사랑들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외형적으로는 율법을 준수한다 하더라도, 그 이면에 내면적 순종에 따른 진실된 사랑이 결여되어 있다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특히 부자 청년이 집착하고 있었던 물질과 관계된 표현을 사용해서, 그의 부족한 것이 내적 순종에서 비롯되는 진실된 사랑과 자기 희생임을 깨우치시는 것이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25)


여기서 '바늘귀'에 해당하는 '트뤼페마토스 라피도스'(trypematos raphidos; the eye of a needle)를 예루살렘 성(城)에서 주로 밤에 이용되던 속칭 '바늘귀문'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이 문은 입구가 너무 좁고 낮아서 낙타가 걸어서는 통과할 수 없으며, 짐을 지고 있을 때에는 더 그러했다.

따라서 낙타는 모든 짐을 내려 놓고, 무릎을 꿇은 채 이 문을 통과해야 했으므로, 그것은 매우 고통스러워 불가능한 일이었다.

만일 우리가 이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부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통을 감수하며 자신을 낮출 때, 비로소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두번째로 '낙타'에 해당하는 '카멜로스'(kamelos; a carmel)을 '밧줄'을 의미하는 '카밀론'(kamilon)으로 이해하는 입장인데, '밧줄'이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문'으로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입장을 취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더 쉽다'에 해당하는 '유코포테론'(eukopoteron; easier)은 비교급인데, 이 비교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강조하여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2018년 5월 28일 연중 제8주간 월요일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부자 청년에 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부자 청년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하였지만,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을 따르라고 하시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갑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십니다.

복음 이야기가 만약 여기서 끝나 버린다면, 오늘 복음의 주제는 부자는 구원받기 어렵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놀라서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서로 말하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이야기하십니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이 표현은 예수님께서 마지막 전날 밤 겟세마니 동산에서 또 한 번 사용하십니다. 곧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마르 14,36 참조).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시기에 예수님을 위하여 다른 길을 마련해 주실 수도 있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원하시는 바를 실현하는 분이시고, 예수님 역시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살고자 모든 것을 받아들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부자 청년에게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을 따라나서라고 부르십니다.

그러나 부자 청년은 예수님과 달리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을 버리려 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가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는 것은 그가 부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고유하게 마련해 놓으신 그 길을 걷지 않기 때문입니다.


(염철호 요한 신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연중 제8주간 월요일 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써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옛날 도자기를 시장에 내다 파는 멕시코 인디언들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유한 관광객들이 지나가던 인디언들에게 물건을 모두 좋은 값에 사겠노라고 제의를 했습니다.

그러자 인디언들은 그 제의를 거절하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네들, 우리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읽거나 쓸 줄을 모른답니다.

우리 마을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라디오도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 소식을 알려면 매주 누군가가 도시로 나가야 하는데, 팔 도자기가 없으면 시장에 자리 잡고 앉을 수도 없답니다.

그러니까 이 도자기가 우리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라 당신들에게 전부 팔수는 없습니다.

선생님네들, 우리가 달랑 돈만 가지고 마을로 돌아가면 욕을 먹는 답니다. 라고 말입니다.

결국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돈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우리네 삶에서 물질이란 필요하고 좋은 것임에는 누구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물질의 노예가 되어 물질에 만족하지 않고 욕심을 부리거나 집착하는 데서 야기됩니다.


복음에서도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라는 말씀으로 재물을 하느님보다 낫게 여기며 재물 때문에 하느님께 가까이 오지 못하는, 하느님 위에 재물을 놓고 재물에 집착하는 청년을 통하여 오늘날의 우리 모든 이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권고 합니다.

어느 종교 잡지에

“그렇지만 주님~~”이라는 제목으로 이런 기도문이 실렸었다.

“주님이 말하라는 대로 말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주님, 장사할 때는 예외로 하여 주십시오.

 주님이 가라고 하시는 대로 가겠습니다. 그렇지만 주님, 매 주일 교회에 가는 것만큼은 예외로 하여 주십시오.

주님이 바치라는 대로 헌금을 바치겠습니다. 그렇지만 주님, 체면 유지 정도로만 조정해도 된다고 해 주십시오.

주님이 짊어져라 하시는 대로 십자가를 지겠습니다. 그렇지만 주님, 짐꾼을 사서 대신 지게 해도 그게 그거겠지요?

주님이 사랑하라고 하시는 대로 사랑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주님, 지금 당장 하라고는 마시고 내일로 미루어 주십시오.

주님이 봉사하라고 하시는 대로 봉사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주님,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봉사는 다른 이가 해도 되겠지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기도입니다.

현실과 신앙의 삶에서 갈등하는 우리네 삶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내용입니다.

세속적인 물질, 명예, 쾌락 때문에 언젠가는 사라지고 말 것에 집착하여 살고 있기 때문에 알면서도 “그렇지만 주님, 그렇지만 주님... ” 하는 우리의 삶이라면 꾸불어진 밭고랑이 되듯 꾸불어진 인생길을 갈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언제까지 우리는 “그렇지만 주님...”하면서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할 것입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참된 보물을 얻기 위하여 자신을 모든 것을 팔아 그것을 얻는 것처럼 변화하고 일시적인 행복에 만족하기 보다 영원한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우리 자신을 맡기고 하느님의 보물, 하느님의 나라 곧 영원한 생명을 차지 하도록 합시다.

박명제 신부






 

 

 

20250303일 월요일

[연중 제8주간 월요일] (한창현 모세 신부)

 

오늘 복음에 나오는 부자가 예수님을 선하신 스승님”(마르 10,17)이라고 부른 것을 보면, 그분을 특별한 분으로 생각하였던 것이 분명합니다.

유다인들은 선하다는 낱말을 모든 선의 절대 근원이신 하느님께만 붙였습니다. 부자는 영원한 생명을 받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그 답을 선하신 예수님께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하였나 봅니다.

십계명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이중 계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에게 십계명 가운데 하느님 사랑에 해당하는 계명들을 잘 지키고 있는지를 물으십니다.

그가 이 계명들을 충실히 지켜 왔다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는 부자에게 이웃 사랑의 실천으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들은 부자는 울상이 되어”(10,22) 슬퍼하며 떠나갑니다.

울상이 되어충격을 받고또는 소스라쳐 놀라등으로 의역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부자에게 놀랍고도 충격적인 도전이 되고, 부자는 이 도전 앞에서 영원한 생명을 받기를 포기합니다.

부자가 자신이 가진 것을 팔아야 하듯이, 우리도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도전을 받고는 합니다.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하여 사과해야 할 때도 있고, 자존심이 상해도 상대의 말을 일단 들어주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도저히 알 수 없을 때, 그 도전이 너무 충격적이고 감당할 수 없을 때, 이웃 사랑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이때 우리는 선하신 하느님께서 어떠한 환난과 고통 가운데서도 우리를 이끌어 주신다는 믿음으로 그 도전 앞에서 용기를 낼 수 있는 은총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10,27)라고 말씀하십니다.

 

(한창현 모세 신부)

 

 


[연중 제8주간 월요일]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

 

복음(마르10,17-27)

17 예수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어떤 사람이 달려와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선하신 스승님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 우리는 알고 있다.

 

(요한17,3) 3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 아는 것, 믿음으로 하나, 한 몸이 되는 것이다. (알다- 히브리어 ‘야다’로 ‘함께 눕다. 하나 되다.’ 라는 뜻)

 

(요한3,16)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속죄 제물)을 내 주시어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요한5,10-11) 10 하느님의 아드님을 믿는 사람은 이 증언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습니다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에 관하여 하신 증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1 그 *증언은 이렇습니다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하느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

= 예수님께서 선아니시라는 말씀? -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로 완전한 죄가 되실 것을 예고하신 것이다.

 

1너는 계명들을 알고 있지 않느냐? ‘살인해서는 안 된다간음해서는 안 된다도둑질해서는 안 된다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횡령해서는 안 된다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20 그가 예수님께 스승님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 착하게, 선하게 살아온 의로운 사람이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의 의로움을 구원과 상관없는 자기 의로움, 부자라고 한다. 믿음의 의로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로마4,3) 3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믿으니하느님께서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 하였습니다.

= 그러니까 오늘 복음의 재물을 인간의 자기 의로 봐야한다. 독서에서 사도가 말하듯 ‘신앙의 목적은 영혼의 구원’이기 때문이다.

 

21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이르셨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생명)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 자기 의로움을 버리라는 말씀이다. 곧 자기 의를 부인하고 그리스도의 대속, 그 하늘의 의로움을 구원의 진리로 알고 믿어, 그 하늘의 의를 이웃에게 전하는 삶으로 이웃을 살리는 삶을, 신앙을 살라는 말씀이다.

 

(마태6,33)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22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 성경은 인간, 자신이 열심히 축적해 놓은 그 자기의를 절대 부인하지 못함을 보여준다. 그래서 의로웠던 사제들, 율법 자들이 예수님을 죽인 것이다.

(세상 재물은 우리 인간이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꼭 필요한 하느님의 선물이다. 그러나 이 땅의 재물에 집착하며 탐욕의 마음으로 축적할 때, 신앙의 목적으로 삼을 때, 죄가 되는 것이다.)

 

23 예수님께서 주위를 둘러보시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 세상 재물(명예, 권세)이 많은 그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참으로 어렵듯, 자기 의로 만족해하는 사람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말씀이다. 자기 의에 만족하는 사람은 자신의 의를 줄 줄도 모를 뿐더러 자신이 하늘의 의를 간직하지 못했으니 이웃에게도 줄 수도 없다.

 

24 제자들은 그분의 말씀에 놀랐다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거듭 말씀하셨다. “얘들아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25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26 그러자 제자들이 더욱 놀라서,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27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바라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아멘

= 사람의 불가능을 하느님께서 가능으로 만드시겠는 것이다. 곧 부수심이다. 사람을 살리시기 위해 그 사람의 의, 재물을 부수셔서 사람이,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나가게 하신다. 그것이 곧 하느님의 자비다.

 

(루가1,50-53) 50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흩으시고, 끌어 내리시고, 내 치심으로 가난하게 하심으로 가능하게 하신다.

 

(1베드1,6-7) 6 그러니 즐거워하십시오여러분이 지금 얼마 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며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그러나 그것은 불로 단련을 받고도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훨씬 값진 여러분의 믿음의 순수성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밝혀져여러분이 찬양과 영광과 영예를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 하늘의 대속, 그 하늘의 의를 진리로 알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의, 재물이 자신의 생명이기에 절대 흩고, 버리고, 내치는 자기부인, 버림의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리를 깨달아 아는 사람은 자신의 의, 생명이 부질없음을 깨달아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의, 생명으로 알고 이웃에게 그 하늘의 의, 생명을 전한다. 나눈다.

그 하늘의 일을 하기 위해 자신의 시간, 힘인 재물을 쓰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의 죄로 죽으시고 의롭게 하시어 하늘의 생명을 영원히 살게 하신 그 이타의 사랑을 알기에 감사로 하는 것이다.

 

* 교중미사후 마침 성가로 61번이 연주 되었다. 그동안 좋은 성가라고 맞다고 애창한 노래다.

♪ 주 예수 그리스도와 바꿀 수는 없네이 세상 부귀와 영화와 권세도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신 예수의 크옵신 사랑이여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명예도 버렸네주 예수 그리스도와 바꿀 수는 없네 세상 어떤 것과도...

이 가사의 내용이 우리 신앙의 목적지다. 예수님께서도 다른 민족이 청하는 것, 곧 세상의 부귀와 영화와 권세를 청하지 말라 하셨는데, 어떻게 오늘날 우리는 매일 미사와 신자들의기도로 청하고 있으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이상한 신앙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대속(代贖)으로 얻는 참 행복, 자유를 몰라 신앙이 짐이 되어 버렸다. ①첫째 말씀을 모르기 때문이다. ②둘째 잘못 듣고, 잘못 배웠기 때문이다.

 

(마르13,22) 22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나타나할 수만 있으면 선택된 이들까지 속이려고 표징과 이적들을 일으킬 것이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가 하느님의 자비를 받을 때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시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심도 잊지 않게 하소서마지막 때에 나타날 준비가 되어있는 구원을 얻도록하느님의 힘으로 보호를 받고 있음도 잊지 않게 하소서하늘 부자로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을 주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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