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4주간 목요일]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는 날 (루카21,20-28)

2024. 11. 27. 오후 2:32:40

글자

 

20241128일 목요일

[연중 제34주간 목요일]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는 날 (루카21,20-28)

 


1독서<무너졌다, 대바빌론이!>(묵시18,1-2.21-23; 19,1-3.9ㄱㄴ)

나 요한은 1 큰 권한을 가진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의 광채로 땅이 환해졌습니다.

2 그가 힘찬 소리로 외쳤습니다. “무너졌다, 무너졌다, 대바빌론이! 바빌론이 마귀들의 거처가 되고 온갖 더러운 영들의 소굴, 온갖 더러운 새들의 소굴, 더럽고 미움받는 온갖 짐승들의 소굴이 되고 말았다.”

21 또 큰 능력을 지닌 한 천사가 맷돌처럼 큰 돌을 들어 바다에 던지며 말하였습니다. “큰 도성 바빌론이 이처럼 세차게 던져질 터이니 다시는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22 수금 타는 이들과 노래 부르는 이들, 피리 부는 이들과 나팔 부는 이들의 소리가 다시는 네 안에서 들리지 않고 어떠한 기술을 가진 장인도 다시는 네 안에서 찾아볼 수 없으며 맷돌 소리도 다시는 네 안에서 들리지 않을 것이다.

23 등불의 빛도 다시는 네 안에서 비치지 않고 신랑과 신부의 목소리도 다시는 네 안에서 들리지 않을 것이다. 너의 상인들이 땅의 세력가였기 때문이며 모든 민족들이 너의 마술에 속아 넘어갔기 때문이다.”

19,1 그 뒤에 나는 하늘에 있는 많은 무리가 내는 큰 목소리 같은 것을 들었습니다.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권능은 우리 하느님의 것.

2 과연 그분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우시다. 자기 불륜으로 땅을 파멸시킨 대탕녀를 심판하시고 그 손에 묻은 당신 종들의 피를 되갚아 주셨다.”

3 그들이 또 말하였습니다. “할렐루야! 그 여자가 타는 연기가 영원무궁토록 올라간다.”

9 또 그 천사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은 행복하다.’고 기록하여라.”

 

<화답송>시편100,1-2.3.4.5(묵시19,9)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은 행복하여라.

온 세상아, 주님께 환성 올려라. 기뻐하며 주님을 섬겨라. 환호하며 그분 앞에 나아가라.

너희는 알아라, 주님은 하느님이시다. 그분이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는 그분의 것, 그분의 백성, 그분 목장의 양 떼라네.

감사하며 그분 문으로 들어가라. 찬양하며 그분 앞뜰로 들어가라. 그분을 찬송하며 그 이름 찬미하여라.

주님은 참으로 좋으시고, 그분 자애는 영원하시며, 그분 진실은 대대에 이르신다.

 

복음<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루카21,20-28)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예루살렘이 적군에게 포위된 것을 보거든, 그곳이 황폐해질 때가 가까이 왔음을 알아라.

21 그때에 유다에 있는 이들은 산으로 달아나고, 예루살렘에 있는 이들은 거기에서 빠져나가라. 시골에 있는 이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마라.

22 그때가 바로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이루어지는 징벌의 날이기 때문이다.

23 불행하여라, 그 무렵에 임신한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 이 땅에 큰 재난이, 이 백성에게 진노가 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24 사람들은 칼날에 쓰러지고 포로가 되어 모든 민족들에게 끌려갈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25 그리고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 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26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27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사람들이 볼 것이다.

28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연중 제34주간 목요일 제1독서 (묵시록 18,1-2.21-23.19,1-3.9ㄱㄴ)

 

"무너졌다. 무너졌다. 대바빌론이!  바빌론이 마귀들의 거처가 되고, 온갖 더러운 영들의 소굴, 온갖 더러운 새들의 소굴,  더럽고 미움 받는 온갖 짐승들의 소굴이 되고 말았다."  (2)

 

하느님의 영광을 반사하는 천사(묵시18,1)가 외치는 내용이다.

특히 '무너졌다. 무너졌다. 대바빌론이!' 라는 외침은 이미 묵시록 14장 8절에서 언급된 다른 두 번째 천사가 외쳤던 바로 그것이다.

 

 대바빌론(큰 성 바빌론)의 멸망은 이미 묵시록 14장 8절에 암시되었고, 묵시록 16장 19절에 묘사된 일곱째 대접 재앙에서 본격적인 멸망에 이른 것으로 묘사된 것이다.

여기서 '무너졌다'로 번역된 '에페센'(epesen;fallen)은 '무너지다', '떨어지다' 라는 뜻을 지닌 '핍토'(pipto)의 예언적 부정 과거로서, 이것이 이중으로 언급되어, 향후 반드시 도래할 대바빌론의 완전한 멸망을 확신에 찬 어조로 드러낸다.

 

그런데 본문에서 선언된 바빌론의 멸망은 명백히 '무너졌습니다. 무너졌습니다. 바빌론이!'(이사21,9) 라고 말한 이사야의 언급과 연관되는 것이다.

그리고 '대'(큰)로 번역된 '메갈레'(megalle)가 '바빌론'과 함께 사용된 용례가 자주 발견되는데, 이것은 그 성의 실제 크기나 위대함을 가리킨다기보다는, 네부카드네자르처럼 스스로를 과대 평가하는 교만함에 대한 상징적 묘사이다.

 

묵시록에서 바빌론은 문자적 의미의 고대 바빌론이 아니라, 일차적으로 사도 요한 당시 로마 제국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따라서 대바빌론은 일차적으로 네부카드네자르와 같이,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교만한 로마 제국의 정치 권력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1베드5,13).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 제국이 바빌론의 궁극적인 상징은 아니다. 왜냐하면, 묵시록은 단순히 로마의 멸망을 예언하는 예언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은 단순히 로마를 거점으로 하여 종교적, 도덕적 타락의 극치를 바빌론으로 형상화한 것일 뿐이다.

 

다시말해서, 사도 요한이 바빌론으로 상징하고 있는 것은 종말에 드러날 '악의 총체'이다.

따라서 대바빌론의 멸망은 곧 사탄에 의해 통제되던 악의 총체가 괴멸당할 것이라는 의미를 축하고 있는 것이다.

 

대바빌론은 '땅의 탕녀들과 역겨운 것들의 어미'(묵시17,5)로서, 이 탕녀에게 내려질 심판은 묵시록 17장에,그것의 패망은 묵시록 18장에 더욱 확대되어 자세하게 묘사된다.

'바빌론의 마귀들의 거처가 되고, 온갖 더러운 영들의 소굴, 온갖 더러운 새들의 소굴, 더럽고 미움 받는 온갖 짐승들의 소굴이 되고 말았다'

 

하느님의 영광을 반사하는 천사는 힘찬 소리로 바빌론의 함락을 선포하고, 그 결과 그곳이 마귀들의 거처와 온갖 더러운 영들의 소굴과 온갖 더러운 새들의 소굴, 더럽고 미움받는 온갖 짐승들의 소굴이 되고 말았다고 언급한다.

 

묵시록 16장 13절,14절에서 사도 요한은 "그때에 나는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예언자의 입에서 개구리같이 생긴 더러운 영 셋이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마귀들의 영으로서 표징을 일으키는 자들입니다" 고 언급한다.

즉 사도 요한의 어법에서 '더러운 영'과 '마귀들의 영'은 상호 교환이 가능한 표현으로서,'마귀'(다이모니온;daimonion)는 곧 '더러운 영'(프뉴마토스 아카다르투; pneumatos akathartu)과 동격 관계를 형성한다.

 

따라서 바빌론이 '온갖 더러운 영들의 소굴, 온갖 더러운 새들의 소굴, 더럽고 미움받는 온갖 짐승들의 소굴이 되고 말았다'라는 언급은 '바빌론이 마귀들의 거처가 되었다'라는 언급을 더욱 풍부하게 부연 설명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여기서 '거처'로 번역된 '카토이케테리온'(katoiketerion)과 세 차례나 '소굴'로 번역된 '퓔라케'(phyllake)는 언어적으로 병행한다.

 

그런데 '퓔라케'는 단순히 삶의 근거지(dwelling place)나 모이는 곳만이 아니라 '감옥', '소굴'이란 부정적 의미도 지닌다(묵시20,7).

이런 의미에 유의할 경우, 본문은 틀림없이 바빌론의 과거의 화려했던 모습과는 대조되는 황폐하고 불결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부각시킴으로써, 멸망한 바빌론의 참상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되고 말았다'로 번역된 '에게네토'(egeneto)는 '발생하다', '일어나다' 라는 뜻을 지닌 '기노마이'(ginomai)의 부정 과거로서, 이러한 발생을 동적 이미지로 드러낸다.

영적 차원에서 보면, 바빌론은 이미 이전에도 마귀들의 '거처' 였지만(에이미,eimi), 본문에서는 그것을 마귀들의 거처가 '되고 말았다'(기노마이, ginomai)라고 묘사하여, 멸망당한 바빌론의 폐허를 더욱 선명하게 연상시킨다.

 

그러나 다른 한편, '퓔라케'(phyllake) '감시하는 곳' (watching place)이란 의미도 나타낸다.

이럴 경우 이것은 하바쿡서 2장 1절의 "나는 내 초소에 서서, 성벽 위에 자리 잡고서 살펴보리라" 라는 어구와 병행한다.

즉 반신적 세력들은 마치 먹이를 기다리는 더러운 새들처럼 멸망해 가는 그들의 파수대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더럽고 미움 받는'으로 번역된 '아카타르투 카이 메미세메누'(akathartu kai memisemenu)는 묵시록 17장 4절에 언급된 '손에는 자기가 저지른 불륜의 그 역겹고 더러운 것이 가득 담긴 금잔을 들고 있었습니다' 에도 나온다.

여기서 '더러운 것'으로 번역된 '아카타르타'(묵시17,4)는 부정 접두어 '아'(a)와  '깨끗한', '정결한' 이란 뜻을 가진 형용사 '카타로스'(katharos)에서 파생한 명사 '카타로테스'(katharotes)의 합성어로서, 탕녀가 자행한 불륜 때문에 역겹고 더러운 것들이 금잔 속에 담겨져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불륜의 역겹고 더러운 것'이란 우상 숭배로 인한 도덕적, 영적 타락 일체를 형상화한 것이다(마태23,25참조).

그리고 신명기 14장 12-20절에는 먹을 수 없는 부정한 새의 목록이 언급되고 있으며, 구약 성경은 도처에서 동물과 사람의 썩은 시체를 먹이로 찾는 새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므로 (신명 28,26;1열왕14,11; 21,24; 예레7,33; 15,3;1 6,4; 19,7; 34,20; 에제29,5; 32,4),

'온갖 더러운 새들'은 이러한 새들을 염두에 둔 표현이며, 앞에 나온 '마귀들', '더러운 영들' 등 악령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연중 제34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김상우 바오로 신부)

 

루카 복음서에서 예루살렘 멸망 예고는 세 차례 등장하는데(19,43-44; 21,20-24; 23,28-31 참조), 오늘 복음은 그 가운데 두 번째 예고입니다.

마태오 복음(24,15-21 참조)과 마르코 복음(13,14-19 참조)의 병행 구절에서는 묵시 문학적 문체를 사용하며 종말의 대 환난을 집중적으로 묘사합니다.

반면 루카 복음은 예루살렘 파괴를 역사적 사건에 더 초점을 맞춥니다.

 

루카 복음사가의 신학에 따르면, 이는 메시아 임금,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최종 심판의 예고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아가 예루살렘에만 한정되어 있던 구원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시작점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뻗어 나간다는 ‘보편적 구원’의 주제를 다룹니다.

“사람들은 칼날에 쓰러지고 포로가 되어 모든 민족들에게 끌려갈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라는 내용은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이 이제 유다인에게만 머물지 않고 만백성에게 선포될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복음은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에 집중합니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여기서 “사람의 아들”이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은 다니엘서 7장 13절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이는 종말론적 메시아에 대한 구약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다는 해석입니다.

우리는 ‘보편적 구원’을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이며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복음은 널리 선포되고 모든 이에게 전해져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복음화의 탁월한 도구가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김상우 바오로 신부)

 

 

 

 

 

 [연중 제34주간 목요일]

 

그리스도인은 세상 두려움에 흔들리지 않는다.

 ​

복음 (루카21,17-28)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7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18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19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인내의 힘을 위해 시련을 허락하셨으나 하느님께서 먼저 인내로 우리 죄인들을 기다려 주셨다는 것을 희망으로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까지 묵상했다. 오늘은 우리가 어떤 인내를 해야 할지 말씀하신다.

 

20 “예루살렘이 적군에게 포위된 것을 보거든그곳이 황폐해질 때가 가까이 왔음을 알아라.

= 예루살렘이 적군에 포위되어 무너진 것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AD70년경에 있었다. 그러나 성경은, 주님은 그것을 기억하라는 것이 아니다. ‘왜, 황폐해 졌는지 깨달으라.’ 하시는 것이다.

오늘날 하느님의 성전인 교회가, 성도들이 하느님의 적대자들, 곧 거짓 사도들의 ‘육의 욕망을 위한 거짓 가르침과 그 세상의 힘에 포위된 그 황폐함을 보라’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께 감사의 영광을 드리는 예배가 아닌, ‘자신들의 뜻(욕망)을 위한 제사로 드리는 신앙은 아닌지 보라’ 하시는 것이다. 하느님은 그런 이들을 찾지 않으신다.

 

(요한4,23-24) 23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지금이 바로 그때다사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이들을 찾으신다. 24 하느님은 영이시다그러므로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이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2티모4,3-4) 3 사람들이 건전한 가르침을 더 이상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때가 올 것입니다호기심에 가득 찬 그들은 자기들의 욕망에 따라 교사들을 모아들일 것입니다. 4 그리고 진리에는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고 신화 쪽으로 돌아설 것입니다.

 

(마르7,7-8. 13,22) 7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8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22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나타나할 수만 있으면 선택된 이들까지 속이려고 표징과 이적들을 일으킬 것이다.

 

(티토1,14) 14 유다인들의 신화그리고 진리를 저버리는 인간들의 계명에 정신을 팔지 않게 하십시오.

 

21 그때에 유다에 있는 이들은 *산으로 달아나고예루살렘에 있는 이들은 거기에서 빠져나가라시골에 있는 이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마라.

= 유대주의와 예루살렘, 곧 율법의 행위와 인간들의 신화, 계명(지혜)의 가르침에서 빠져나와 높은 산이신 하느님의 뜻인 그리스도의 대속, 그 구원의 진리, 새 계약(계명)으로 달아나라(믿어라)하시는 말씀이다.

사람의 뜻을 만족시켜주는(감동 시키는) 그 악인들의 헛된 가르침으로 다시 돌아가지 말라는 말씀이다.

 

(시편1,1-2) 1 행복하여라악인들의 뜻에 따라 걷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들지 않으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2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

 

22 그때가 바로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이루어지는 징벌의 날이기 때문이다.

= 지금 우리(교회)의 모습을 보자, 우리의 뜻(소원)을 들어주실 능력의 예수님만 계신 것은 아닌지.... 그래서 베드로 처럼(마르8,33) 그 능력의 예수님만을 따르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우리의 죄로 돌아가신 그리스도를 진리로 말하면 그 진리의 신앙으로, 그분의 지체로 의지(의탁)하며 살고 있는지... 신. 구약 모든 성경은 구원의 진리로 ‘그리스도’만 말하고 있다.

 

(루가24,25-27)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어리석은 자들아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26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27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 베드로처럼 그리스도를 원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위한 예수님을 믿고 있다면, 그것이 무서운 일이며 징벌의 날인 것이다.

 

(마르8,31-33) 31 예수님께서는 그 뒤에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32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히 하셨다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3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내게서 물러가라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셨다.

 

23 불행하여라그 무렵에 *임신한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이 땅에 큰 재난이이 백성에게 진노가 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 진노는 말씀을 열심히 먹었지만(임신) 하느님의 뜻을 낳지(깨닫지) 못한, 그래서 인간의 뜻, 육의 만족을 위한 말씀으로 따르게 되는데 젖을 먹고 사는 사람은 모두 아기이므로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에 서툽니다.’(히브5,13) 

그러면 여전히 자신의 죄가 그대로 남아있는 하느님의 진노의 상태에 있게 되는 불행이 된다는 말씀이다.

 

24 사람들은 칼날에 쓰러지고 (세상포로가 되어 모든 민족들에게 끌려갈 것이다그리고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세상)에게 짓밟힐 것이다.

= 실재로는 유대인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그것이 곧 세상 신의 노예로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다.

 

(루가4,6) 6 그분께 말하였다. “내가 저 나라들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당신에게 주겠소내가 받은 것이니 내가 원하는 이에게 주는 것이오.

 

25 그리고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들이 나타나고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 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 교회인 우리가 예수님께서 ‘그릇되다’하신(요한16,8) 세상의 힘인 그 세상의 논리를 진리로 말하고 따른다면 공포에 휩싸일 것이라는 말씀이다. 곧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주시는 죄의 용서, 그 쉼, 안식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세상의 말을 하지 말라고 입을 막으신 것이고, ‘세상이 속이는 세상의 평화를 위한 제사를 드리지 말라’고 막으시는 것이다. 지금 ‘코로나19’로 공포에 떨고 있다면 세상의 것을 위해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26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 세상 사람들은 두려워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두려워하지도, 흔들리지도 않는다. 왜? 하늘의 세력인 사탄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곧 하느님의 말씀을 적대했던 사탄의 힘, 약속이 무너질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을 믿고 살았던 사람들은 두려워 떨지만,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서 주신 구원의 약속, 그 진리의 말씀이 영원히 지키시기에’ 두려워하지도, 흔들리지도, 않게 되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믿고, 인내로 기다리면......

 

27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사람들이 볼 것이다. 28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 율법(제사와 윤리)과 세상이 말하는 육을 위한 진리가 아닌, 영의 구원을 위해 우리의 죄로 죽으신 십자가의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곧 구원의 진리, 새 계약(계명)으로 깨닫고 믿어, 율법과 세상이 주는 헛된 가르침에 흔들리지 않고, 인내로 따르는 그리스도인(人)만이 누릴 수 있는 속량이다.

 

☨보호자 성령님! 사람의 말, 법과 하느님의 말씀, 진리를 잘 분별하여 십자가의 예수님으로, 구원의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깨달아 흔들리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 인내로 하느님의 속량을 누리도록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해 간구해 주소서. 우리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연중 제34주간 목요일 복음(루카21,20~28)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침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27~28)

 

루카 복음 21장 27절은 예수님의 영광스런 재림을 직접적인 어휘로 묘사하고 있다.

루카 복음 21장 25절과 26절은 종말에 두려워 떨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한 반면에, 21장 27절은 그리스도께서 권능과 큰 영광으로 오시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사실 21장 27절은 다니엘서 7장 13절과 14절의 배경을 가지고 있는 구절로서 '사람의 아들'(인자,人子)의 재림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특히 이 모습은 승천하신 예수님의 모습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사도1,9~12), 하늘로 올라가실 때의 영광스러운 모습이 재림 때에도 동일하게 재현될 것임을 보여 준다.

 

한편 루카 복음 21장 28절의 '이러한 일들'로 번역된 지시 대명사 '투톤'(tuton; these things)이 무엇을 가리키는 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많은 학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나타나는 우주적 징조를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재림 시기의 정확한 때와 시간을 알 수 없지만, 말씀에 예언된 나타나는 징조들을 통해 그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재림의 시간에는 사람들이 극단의 대조적인 모습을 보일텐데, 그것은 그 재림의 날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벌에 처해지는 두려움과 고통의 날이 될 것이며, 믿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얻는 완전한 기쁨의 날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사람들에게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로 권고하신다. 이 표현은 공관 복음의 병행 기사에서 루카 복음에만 나온다.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직접 천사를 보내어 선택하신 이들을 모으실 것이라는 예수님의 약속이 나온다(마태24,31; 마르13,27).

이러한 차이는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사가가 마지막 날에 하실 예수님의 일을 중심으로 기록하였고,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들을 중심으로 기록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말하자면,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사가의 시선은 하늘에 있었고, 루카 복음사가의 시선은 땅에 있었다.

루카 복음사가가 이렇게 기록한 것은 특별히 예수님을 따름으로 인해 고난을 당하는 이들에게 용기와 격려를 주기 위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허리를 펴고'라는 뜻으로 번역된 '아나큅사테'(anakypsate; stand up)의 원형 '아나큅토'(anakypto)는 '스스로 일으키다','치켜 올리다'는 뜻이다.

그러나 비유적으로는 사람의 정신이나 원기를 '돋우어주다','고무시키다'는 뜻도 있다. 그리고 '들어라'로 번역된 '에파라테'(eparate; lift up)의 원형 '에파이로'(epairo)는 자신의 신체의 일부, 즉 '손'(1티모2,8)이나 '머리'등을 '높이 들어올리다'는 뜻이다.

 

따라서 세상의 마지막 때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징조를 볼 때, 신앙인들은 머리를 들고 그 징조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주님의 재림의 때를 기다리라는 것이다.

믿지 않는 이들은 세상의 마지막 때에 두려움으로 숨을 곳을 찾게 될 것이지만, 신앙인들은 그 때에 세상의 모든 것에 미련을 두지 말며 세상적인 관심을 내려놓고, 오로지 도래할 하느님 나라의 영광을 바라보며, 새롭게 펼쳐질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대하고 희망을 가지라는 말씀이다.

 



 

 

20241128일 목요일

[연중 제34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묵시 문학은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아무리 해도 바꿀 수 없으며 어떻게 벗어날 도리가 없는 억압의 굴레와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느님께서 개입하신다는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하느님 말씀을 거슬렀던 이들에게 이 상황은 두려움이며, 하느님 말씀을 충실히 따랐던 이들에게는 위로와 희망입니다.

믿음 안에서 마지막 날을 잘 준비한 이들은 이 마지막 날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희망하며 기다립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도 이러한 모습이 드러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종말의 날을 전혀 다른 두 가지 말로 표현하십니다.

징벌의 날속량의 날입니다.

회개하지 않은 이들은 심판과 벌을 받을 것이고, 주님을 믿고 회개한 이들은 구원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독서의 요한 묵시록도 같은 맥락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 날에 다다랐을 때, 악을 상징하는 바빌론은 파괴될 것이고, 하늘에 있는 무리들은 승리에 기뻐하며 하느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 마지막 날은 주님을 믿고 따르던 사람들에게는 삶의 완성과 구원의 날, 그러지 않았던 이들에게는 파괴와 징벌의 날이 됩니다.

개인적 차원에서 본다면, 개인 역사의 끝은 죽음으로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하여 달려가는 존재입니다.

죽음이 누구에게는 조금 이르게 올 수도, 누구에게는 조금 늦게 올 수도 있지만, 모든 이가 받아들여야 할 순간입니다.

죽음으로 맞는 마지막 날이 나에게 두려움이 아닌 희망이 되도록 잘 준비해야 합니다.

주님을 믿고 따르며 산다면 그날은 기쁨과 구원의 날이 될 것입니다.

 

(최정훈 바오로 신부)

 

 


 

 

 [연중 제34주간 목요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다

 

(루카21,20-28)

20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이 적군에게 포위된 것을 보거든, 그곳이 황폐해질 때가 가까이 왔음을 알아라.

 

= 적군 로마에게 포위될 것을 말씀하신데 하느님의 뜻을 적대하는 곧 사람의 욕망, 뜻을 만족시켜주는 그 세상(로마)의 힘, 말(법)이 이스라엘을 점령하여 황폐해질 것이라는 말씀이시다.

현세의 우리의 모습을 보라하신다. 세상화가 되어가는 교회, 우리의 모습이다.

 

21 그때에 유다에 있는 이들은 산으로 달아나고, 예루살렘에 있는 이들은 거기에서 빠져나가라. 시골에 있는 이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마라.

= 구원의 힘이 없는 세상화가 된 예루살렘에서 나와라. 들어가지 마라 하신다. 빠져 나와 산으로 달아나라 하신다.

예수님이 계신 산이다. 그곳이 우리의 도피처라는 말씀이시다. 죄인들의 도피처가 되시기 위한 그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시기 위해 기도 하시는 산이다.

 

(루가6,12) 12 그 무렵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루가22,39) 39 예수님께서 밖으로 나가시어 늘 하시던 대로 올리브 산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도피처란 죄인들을 위해 대신 죽으실 우리의 대사제, 예수께서 계신 곳이다.

(민수35,28) 28 살인자는 대사제가 죽을 때까지 반드시 도피 성읍에서 살아야 한다. 대사제가 죽은 다음에야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갈 수 있다.

  

22 그때가 바로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이루어지는 징벌의 날이기 때문이다.

= 성경에 예고된 징벌은 하느님의 뜻을 떠난, 버린 그 죄들이 받는 죄의 징벌인 것이다.

 

23 불행하여라, 그 무렵에 임신한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 이 땅에 큰 재난이, 이 백성에게 진노가 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 잉태는 했지만 낳지 못한 여자, 곧 말씀은 받았지만 그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하느님의 아들로 우리의 구원자 그 도피성으로 깨닫지 못하고 말씀을 문자 그대로 품고 있는 여자다.

젖먹이가 딸린 여자, 아이를 낳기는 했는데 곧 말씀을 깨닫기는 했지만 젖먹이 수준인 여자다.

 

(히브5,12-13) 12 사실 시간으로 보면 여러분은 벌써 교사가 되었어야 할 터인데, *아직도 하느님 말씀의 초보적인 원리를 *다시 남에게서 배워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단단한 음식이 아니라 젖이 필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13 젖을 먹고 사는 사람은 모두 *아기이므로,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에 서툽니다.

= 말씀을 하느님의 뜻으로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 신앙은 종교 행위등, 자기 의로움으로 구원에 이르려 애쓴다. 스스로가 도피성을 쌓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대신 죽어줄 구원자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땅의 의로움, 곧 사람의 열심으로 얻을 수 있는 구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옳고 그름, 곧 말씀을 받을 때, 가르침을 들을 때. 사람의 뜻으로 주는 그름과 하느님의 뜻으로 주는 오름을 분별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도피처가 없다. 도피처가 어디 있는지, 도피처가 되어 줄 이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임신한 여자, 깨달음이 젖먹이 같이 분별 못하는 여자, 모두 불행한 것이다.

 

24 사람들은 칼날에 쓰러지고 포로가 되어 모든 민족들에게 끌려갈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 다른 민족, 세상의 삶을 사는 한, 하늘의 참 평화는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태6,7)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 하느님의 뜻이 아닌, 사람의 뜻을 구하는 기도가 빈말 기도이다.

 

25 그리고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 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26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 말씀을 하느님의 뜻으로 깨닫지 못한 여자, 그래서 말씀에서 피신처를 찾지 못한 여자, 자기 행위 자기 열심을 의지하는 여자에게서 이다. 그런데 그 모든일이 ,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라 하신다.

하느님의 말씀(씨)을 하느님의 뜻으로 깨닫지 못하도록 빼앗아 먹는, 그래서 구원을 못 받게 하는 하늘의 새, 사탄이다.(마르4,4 14참조) 하느님의 일을 방해하는 사탄, 그들의 그 거짓된 일을 더 할 수가 없게 되었다는 말씀이시다. 그들의 거짓된 말, 가르침이 힘을 쓸 수 없는 구원의 완성의 때가 다 되었다는 것이다.

 

27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사람들이 볼 것이다.

= 비를 품은 구름이다. 곧 하늘의 물, 말씀으로 오신다는 것이다. 구원의 진리, 그 말씀으로 오시는 것이다.

 

28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아멘.

 

(이사55,10-11) 10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11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오늘 말씀)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아멘!!!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나를 따르라. (마태4,18-22)24.11.29조회 31[연중 제34주간 금요일] 시대의 징조 (루카21,29-33)24.11.28조회 11[연중 제34주간 목요일]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는 날 (루카21,20-28)24.11.27조회 12[연중 제34주간 수요일] 내 이름 때문에 (루카21,12-19)24.11.26조회 18[연중 제34주간 화요일] 하늘에 큰 표징 (루카21,5-11)24.11.25조회 60[연중 제34주간 월요일] 렙톤 두 닢 (루카21,1-4)24.11.24조회 35[연중 제33주간 토요일] 산 이들의 하느님 (루카20,27-40)24.11.22조회 52[연중 제33주간 금요일] 하느님의 집 (루카19,45-48)24.11.22조회 9[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 (마태12,46-50)24.11.20조회 57[연중 제33주간 수요일] 미나(은화)의 비유 (루카19,11ㄴ-28)24.11.20조회 21[연중 제33주간 화요일] 세관장 자케오 (루카19,1-10)24.11.18조회 31[연중 제33주간 월요일] 예리코 소경치유 (루카18,35-43)24.11.17조회 51[연중 제32주간 토요일] 올바른 판결 (루카18,1-8)24.11.15조회 16[연중 제32주간 금요일]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 (루카17,26-37)24.11.15조회 54[연중 제32주간 목요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루카17,20-25)24.11.10조회 27[연중 제32주간 수요일] 나병(癩病) 치유 (루카17,11-19)24.11.09조회 9[연중 제32주간 화요일] 종(奴)의 자세 (루카17,7-10)24.11.09조회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