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4주간 화요일] 하늘에 큰 표징 (루카21,5-11)

2024. 11. 25. 오전 9:31:07

글자

 

20241126일 화요일

[연중 제34주간 화요일] 하늘에 큰 표징 (루카21,5-11)


   


1독서<땅의 곡식이 무르익어 수확할 때가 왔습니다.>(묵시14,14-19)

나 요한이 14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그 구름 위에는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이 앉아 계셨는데, 머리에는 금관을 쓰고 손에는 날카로운 낫을 들고 계셨습니다.

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에서 나와,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께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낫을 대어 수확을 시작하십시오. 땅의 곡식이 무르익어 수확할 때가 왔습니다.”

16 그러자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이 땅 위로 낫을 휘두르시어 땅의 곡식을 수확하셨습니다.

17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왔는데, 그도 날카로운 낫을 들고 있었습니다.

18 또 다른 천사가 제단에서 나왔는데, 그는 불에 대한 권한을 지닌 천사였습니다. 그가 날카로운 낫을 든 천사에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 날카로운 낫을 대어 땅의 포도나무에서 포도송이들을 거두어들이십시오. 포도가 다 익었습니다.”

19 그러자 그 천사가 땅 위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들이고서는, 하느님 분노의 큰 포도 확에다 던져 넣었습니다.

 

<화답송>시편96,10.11-12.13(13) 세상을 다스리러 주님이 오신다.

겨레들에게 말하여라. “주님은 임금이시다. 누리는 정녕 굳게 세워져 흔들리지 않고, 그분은 민족들을 올바르게 심판하신다.”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여라. 바다와 그 안에 가득 찬 것들은 소리쳐라. 들과 그 안에 있는 것도 모두 기뻐 뛰고, 숲속의 나무들도 모두 환호하여라.

그분이 오신다. 주님 앞에서 환호하여라. 세상을 다스리러 그분이 오신다. 그분은 누리를 의롭게, 민족들을 진리로 다스리신다.

 

복음<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루카21,5-11)

5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6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7 그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그러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8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9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10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11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




 

 

  연중 제34주간 화요일 제1독서 (묵시록14,14-19)

 

"흰구름이 있고 그 구름 위에는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이 앉아 계셨는데,  머리에는 금관을 쓰고 손에는 날카로운 낫을 들고 계셨습니다."  (14)

 

새 성경은 '흰 구름'과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이 앉아 계신 구름' 이 분리된 별개의 구름을 지칭하듯 번역했지만, 원문에는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이 앉아 계신 '구름'(nephelen) 앞에 정관사 '텐'(ten)이 동반되어 나온다.

그러므로 '흰 구름 그 위에'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이 앉아 계신 것이다.

 

그리고 '앉아 계셨는데'로 번역된 '카테메논'(kathemenon)는 '자리에 앉다', '좌정하다' 라는 뜻을 지닌 '카테마이'(kathemai)의 현재 분사로,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이 앉아 계신 모습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그런데 그가 앉아 있는 '흰 구름'(nephele leuke; 네펠레 류케) 이나 '사람의 아들과 같은 분' 은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께 가자 그분 앞으로 인도되었다.

 

 그분께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 (다니엘서7장13-14절)는 다니엘의 예언과 관련된다.

그렇다면, 본문에 언급된 '사람의 아들 같은 분'(homoin hyon anthropu)는 틀림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

 

 묵시록 1장 13절에서도 사도 요한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곧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면모를 소개하면서, "그 등잔대 한가운데에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발까지 내려오는 긴 옷을 입고 가슴에는 금 띠를 두르고 계셨습니다" 라고 묘사한 바 있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공생활을 하시는 동안 자신을 '사람의 아들'(인자)로 소개하셨다.

 

'인자'(人子) 라는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에서의 삶(인생)을 강조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예수님께서 사람에게서 태어났다는 의미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인자로 소개하심으로서 자신이 바로 다니엘이 예언한 '사람의 아들 같은 이' 임을 천명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활 기간 동안 스스로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인류의 메시아라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시기 보다는, 이 칭호로서 당신 자신이 바로 하느님이시며 인류의 구원을 위해 오신 분임을 드러내신 것이다.

 

'머리에는 금관을 쓰고 손에는 날카로운 낫을 들고 계셨습니다'

 

사도 요한의 환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에는 금관 있었다.

여기에서 '쓰고'로 번역된 '에콘'(echon)은 '소유하다'라는 뜻을 지닌 '에코'(echo)의 현재 분사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에 계속해서 얹혀 있는 금관의 면모를 더욱 생생하게 부각시킨다.

 

금관(스테파논 크뤼순; stephanon chrysun; a crown of gold)에는 통치와 왕권, 그리고 승리의 개념이 함축되어 있다. 이것은 종말에 심판주로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면모를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아울러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머리에 쓰고 계신 이 금관은 묵시록 9장 7절에서 지하에서 올라온 메뚜기가 그 머리에 쓰고 있던 것을 연상시킨다.

 

"머리에는 금관 같은 것을 쓰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곧 메뚜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모방한 존재로 거짓 그 자체임을 분명하게 드러낸다(요한8,44). 즉 메뚜기(황충)가 '금관 같은 것' 쓰고 있는 반면에,  진정한 승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금관을 쓰고 계신 것이다.

 

한편,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머리에 금관을 쓰고 계시지만, 동시에 손에는 날카로운 낫을 들고 계셨다.

본문에서 '낫'으로 번역된 '드레파논'(drepanon)은 본래 '뜯다' 라는 뜻을 지닌 동사 '드레포'(drepo)에서 파생한 명사로서, 나뭇가지를 치거나 풀이나 낟알을 베는 데 사용하는 농기구이다(신명16,9; 이사18,5).

 

그런데 신약 성경에서는 본장에서와 마르코 복음 4장 29절의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 수학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는 언급에서만 등장한다.

'날카로운'으로 번역된 '옥쉬'(oksy)는 '날카로운'(sharp)이라는 뜻을 지닌 형용사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소유하고 계신 낫이 시퍼렇게 날이 선 매우 날카로운 것임을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여기서 특별히 이 표현을 사용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수행하시는 최후의 심판이 신속하고 엄중하게 이루어질 것임을 암시한다.

 종말의 심판을 추수(수확)와 관련시키는 이러한 상징적 묘사는  요한 복음 4장 35절과 마태오 복음 9장 37-38절에도 발견된다.

  

"그는 불에 대한 권한을 지닌 천사였습니다" "그 날카로운 낫을 대어 땅의 포도나무에서 포도송이들을 거두어 들이십시오.  포도가 다 익었습니다."  (18)

 

본문에 언급된 '불'(투 퓌로스;tu pyros)에 대한 권한을 지닌 천사는 '하느님의 종말론적 심판'과 관련된다. 왜냐하면, 여기서 ''은 '하느님의 심판'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마태18,8; 루카9,54; 2테살1,7).

 한편, 종말론적인 하느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이 천사는 묵시록 8장 3-5절에서  "향로를 가져다가 제단의 숯불을 가득 담아 땅에 던지는" 천사를 연상시킨다.

 

또한 여기서 '거두어 들이십시오'로 번역된 '트뤼게손'(trygeson)은 '따다','모으다' 라는 뜻을 지닌 '트뤼가오'(trygao)의 부정 과거 명령형이다.

그리고 '익었습니다'로 번역된 '에크마산'(ekmasan) 역시 '성숙해지다', '절정에 다다르다' 라는 뜻을 지닌 '아크마조'(akmazo)의 부정 과거이다.

이것은 포도송이가 이미 익었기 떄문에, 즉  죄인들의 죄가 절정에 다다랐기 때문에  빨리 거두어야만 한다는 매우 시급하면서도 준엄한 뉘앙스를 함축한다.

 

여기서 '포도송이'로 번역된 '투스 보트뤼아스'(tus botryas)'보트뤼스'(botrys)에서 파생한 명사로서,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나 손에 표를 받은 자들이 "하느님의 분노의 술을 마실 것이다. 하느님의 진노의 잔에 물을 섞지 않고 부은 술이다" 는 묵시록 14장 10절의 언급과 밀접하게 관련된다(묵시14,19.20).

따라서 포도 추수에 대한 천사의 명령은 땅에 거주하는 악한 세력들에 대한 하느님의 종말론적 심판을 상징하는 것이 분명하다.

 

'하느님의 분노의 큰 포도확에다 던져 넣었습니다'

 

여기서 '큰' 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은 하느님의 진노가 그만큼 크며, 심판받을 악인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연중 제34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김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 복음은 예루살렘 성전 파괴와 재난에 관한 예고입니다.

이 내용이 우리의 신앙 여정에 어떤 의미를 주는지 묵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 파괴를 예고하십니다.

이 말씀을 우리 신앙인은 ‘하느님의 성전’(1코린 3,16-17; 2코린 6,16 참조)이라는 관점에서 묵상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하느님의 성전인 우리는 때때로 귀가 얇아져 하느님의 뜻에 머물기보다 다른 가치들을 더 중요시할 때가 있습니다.

성공, 권력, 명예, 돈, 자녀 교육은 일상생활에서 결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리하여 이것들을 하느님의 자리에 올려놓고는 하느님의 성전인 우리 자신을 스스로 파괴합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닥쳐올 재난을 예고하십니다.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경기 침체, 전 세계를 둘러싼 절망적인 상황과 정세 때문에 세상이 당장 멸망할 것 같은 두려움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댈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은 하느님 나라가 오고, 그분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실현되기 위한 과정입니다.

우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을 것(루카 21,19 참조)이기 때문입니다.

 

(김상우 바오로 신부)

 

 

 

 

 [연중 제34주간 화요일]​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루카21,5- 9)

5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6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 예수님께서 성전이심을(요한2,19), 그리고 그분의 영을 믿는 이들이 또한 그분의 성전임을(1코린6,19), 그리고 그 성전의 의미는 모르고 보이는 성전, 그 성전을 아름답다 기념하고 축제를 벌이는 그 사람의 관습의 성전은 무너져야 한다는 말씀이신 것이고, 

또한 돌, 무너져야할 돌, 곧 죽으셔야 할 당신을 말씀하신다(요한2,19) 그러면, 성전, 돌의 의미는 무엇인가~ 성전과 돌에서 물이 나온다는 것이다.(예제47,1~ 탈출17,6) 

성전이, 돌이 부서져서 나오는 물이다. 곧 예수님께서 죽으셔서 흘리신 물과 피라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속죄 제물로 죽으시고 흘리신 물과 피다. 그 물(말씀)을 먹고 그 피(새 계약)로 죄가 씻겨 받는 구원이다. 그 십자가의 말씀, 새 계약으로 받는 구원이다. 

그런데 그 물과 피, 그 말씀을 무시하면, 버리면 심판인 것이다. 앞19장에서 말씀하셨듯이 그 물과 피로 얻는 평화를 몰라 부서지는 것, 죽는 것이다.

 

(로마9,31-33) 31 그런데 이스라엘은 의로움의 율법을 추구하였지만 그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32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것을 믿음으로 찾지 않고 행위로 찾을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걸림돌에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33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보라,내가 시온에다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을, 부딪쳐 쓰러지게 하는 바위를 놓는다. 그를 믿는 이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 생명수, 곧 생명의 말씀이신 성전과 돌, 그 예수님을 믿는 이는 구원을 받지만~ 그 예수님을 구원의 진리로 믿지 않으면 예수님이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 부딪쳐 쓰러지게 하는 바위가 되신다.(루가12,34~참조)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지 않는 이들의 심판의 근거가 되신다는 것이다.

 

7 그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그러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8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 많은 사람이다. 혹 신천지의 이만희씨, 통일교의 문선명씨 같은 그런 사람들을 생각하면 않된다. 그런 사람은 몇 안된다. 많지 않다. ‘내가 그리스도다’ 하신 것은 예수님 당신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잘 분별해 보라-많은 사람들을~) 

하느님의 뜻을 위해 죄인들의 속죄 제물로 죽으셔서 사람의 영을 구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이는 능력과 기적의 예수님으로, 그래서 사람들의 뜻을 들어 주시는 그 그리스도로 말한다면~ 인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세상이다. 그들의 말과 행위를 듣지도 따라가지도 말라는 것이다.

 

9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 전쟁, 반란이 왜 반드시 있어야 하나~ 시련과 환난을 통해 떨어져 나가고 남은 자, 새로운 삶, 하늘을 살아갈 그 남은 자를 위한 것이다.

 

(히브12,25-28) 25 말씀하시는 분을 거부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땅에서 지시하시는 분을 거부할 때에 저들이 벌을 피할 수 없었는데, 하물며 하늘에서 지시하시는 분께 등을 돌릴 때에야 우리는 더더욱 그 벌을 피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26 그때에는 그분의 소리가 땅을 흔들었지만,이제는 “내가 *한 번 더 땅만이 아니라 하늘까지 뒤흔들리라.” 하고 *약속하셨습니다. 27 “한 번 더”라는 말은 흔들리는 것들 곧 피조물들이 치워져 흔들리지 않는 것들만 남는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28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으려 하고 있으니 감사를 드립시다. 감사와 함께 존경과 경외로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예배를 드립시다.

= 하느님의 뜻에 맞는 예배로 끝까지 남을 수 있다. 어떻게?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셨듯이 제사의 예배가 아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몸(성전, 돌)을 제물로 십자가에서 구원의 제사를 완성하셨고, 즉 죽으시고 부서지셔서 구원의 진리, 그 생명의 말씀을 주셨고 그리고 그분의 영, 그리스도의 영을 주셔서 그분의 성전이 되었으니 그 모든 것, 그 진리 안에서 나의 열심, 그 *예물로가 아닌 나를 위해 죽어주신 주님의 사랑이 너무나 감사해서 하느님께 존경과 경외의 진실된 마음으로 나를 드리는(버리는, 죽이는) 그 *헌금의 진실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요한4,23) 23 그러나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사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이들을 *찾으신다. ~아멘!!!

 


  

 

 

 연중 제34주간 화요일 복음(루카21,5~11)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들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곳이다." (5~6)

 

루가 복음 21장 5~19절은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와 종말의 여러 징조들, 그리고 대박해에 대한 성도의 자세에 관한 교훈이 들어 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에 대한 예언을 하신 후, 그 일이 언제 일어나는지

그 때를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 직접적인 대답을 회피하시고, 대신에 전쟁, 반란,

민족분쟁, 지진, 기근, 전염병, 천체의 큰 표징 등의 종말론적인 징조들 (Eschatological Signs)을 언급하신다.

 

그 다음 예수님께서는 대박해를 겪어야 할 성도의 자세를 교훈하신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께서는 예언 성취의 시기를 알고 싶어하는 제자들에게 예언이 성취될 때에 가져야 할 바른 자세에로 관심의 방향을 전환시키신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 파괴와 더불어 종말의 징조들이 복합적으로 예언됨으로써, 대박해를 겪어야 할 자세에 대한 교훈은 당시 제자들 뿐만 아니라, 마지막 종말의 시기를 살아갈 성도들에게도 확대되고 있다.

 

루가 복음 21장 5절~19절까지는 성주간의 올리브산 설교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마태오 복음 24장과 25장 및 마르코 복음 13장과 병행을 이루며, 예루살렘 성전 파괴 및 종말과 그리스도 재림에 관계된 예언들이 집중적으로 다루어지기 때문에 '소묵시록'(Little Apocalypse)이라는 별명이 불려지기도 한다.

 

그중에 21장 5절과 6절은 올리브산 설교가 주어진 동기가 되는 예루살렘 성전 멸망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이 기록되어 있다. 

이 성전 멸망에 대한 예언은 일차적으로 A.D.70년에 발생할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예언이다.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사가는 이 예언을 성전 안에 계시다가 성전 밖으로 나오실 때 주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지만(마태 24,1; 마르 13,1), 루카 복음사가 예수님께서 성전 안에서 계속적으로 머무르시면서 주신 것처럼 묘사한다.

 

루카 복음사가 성전에서 나갔다는 표현을 쓰지 않고, 또한 몇몇 사람이 구체적으로 가리키며 질문한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은 성전 내부에서 자세하게 볼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할수 있다.

 

루카 복음사가가 이렇게 다르게 기록한 것은, 지금까지 성전 안에서 행해진 예수님의 여러 가르침들과 치열한 논쟁의 절정으로써 성전 멸망을 다룸으로써,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맞이할 최후의 심판을 보다 극적으로 묘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유대교의 구심점이 되는 성전이 붕괴된다는 것은 동물의 희생을 통한 구약의 제사의 제도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단 한 번 흘리신 십자가상 구속 성혈의 공로로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뜻과 더불어,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가진 잘못된 신앙에 대한 심판적인 의미도 가진다.

 

그리고 루카 복음 사가는 장소적 이동보다는 등장 인물들의 시선을 중심으로 사건을 전개 시킴으로써 우리가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를 강조한다.

 

진정으로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은 성전의 화려한 외적인 아름다움과 같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적인 신앙이 아니라, 가난한 과부의 두 렙톤과 같은 경건한 믿음을 소유한 자들의 진실된 신앙을 보고 배워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한편, 루카복음 21장 5절의 '아름다운 돌'로 변역된 '리토이스 칼로이스'(lithois kalois;

beautiful stones)는 성전을 건축할 때 사용된 희고 큰 대리석을 말한다.

이 돌은 주로 성전의 기초와 기둥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자원 예물'로 번역된 '아나테마신'(anathemasin; gifts dedicated to God)의 원형 '아나테마'(anathema)는 '아나티테미'(anatithemi)에서 유래된 단어로서 '성전에 바쳐진 물건', 즉 '봉헌된 제물'을 가리킨다.

 

이 자원 예물들은 임금이나 지도층에 있는 부유한 사람들이 성전에 바친 물건으로서 성전을 장식하고 전시하는 데 사용된 물건이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아름답게 장식된 성전이 아니라 영과 진리안에서 영이신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것이었다(요한 4, 20~24).

 

루카 복음 21장 6절의 '때가 올 것이다'에 해당하는 '엘류손타이 헤메라이'(eleusontai hemerai; the days will come)에서 '때', '날'로 번역된 '헤메라이'(hemerai; the days; the time) 어떤 특정한 목적에 따라 예비된 날로서 바로 하느님의 진노가 현실 가운데 드러나는 심판의 날을 가리킨다.

 

A.D. 70년 로마의 황제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 티토(Titus)가 이끄는 부대에 의해 예루살렘이 점령되고 성전이 화염에 휩싸여 전소될 때를, 40년 전에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예지 능력으로 미리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리고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라는 표현은 철저한 파괴와 멸망에 대한 예언인데, 루가 복음 사가는 마태오나 마르코 복음 사가에 비해서 성전 파괴가 세상의 마지막 날이라는 오해를 막기위해서 성전 파괴를 마지막 날들에 일어날 많은 종말적인 사건들 중 하나로만 기록한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승천 직후에,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에 바로 이 세상의 종말이 있을 것으로 여기고, 예수님께서 재림 하실 것을 기다렸다.

 

루카 복음 사가는 이러한 당시 사람들의 상황에 보다 관심을 기울여서 '예루살렘의 멸망'과 '사람의 아들'(인자;人子)의 도래를 분명하게 구분함으로써, 재림의 자연이 예수님의 예언과 결코 모순되지 않음을 밝히며, 또한 인내심으로 기다리라는 권고를 하고 있다(루카21,20~28).

 



 

  

20241126일 화요일

[연중 제34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거짓 예언자들에게 속는 일이 없도록 당부하십니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루카 21,8).

성전 파괴가 일어나고 혼란스러운 틈에 거짓 예언자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성전이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표지라면, 성전의 파괴는 주님께서 우리를 떠나신 것과 같은 혼란을 겪게 됨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삶의 고통과 어려움을 겪으면서, 주님께 버림받았다고 느끼며 굳건하고 영원할 것 같은 신앙이 뿌리째 흔들리고 무너지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사이비와 이단 종교와 같은 거짓 예언자들은 이런 혼란한 시기에 상처받고 약해져 있는 우리를 찾아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이용하여 우리를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오류의 길로 끌어들입니다.

그들은 특히 임박한 종말론으로 불안과 두려움을 부추기며 우리를 속입니다.

그리스도교든 사이비 종교든 다가올 종말을 말하며 회개와 새로운 삶을 촉구합니다.

그러나 그 차이는 오늘을 어떻게 살게 하는지에 있습니다.

올바른 종말론은 희망을 주고 그 희망으로 오늘에 발붙이고 성실히 살게 하지만, 그릇된 종말론은 사람들을 불안하고 두렵게 하여 오늘을 떠나게 하고 존재하지 않을 내일속에서 헤매게 하면서 삶 자체를 무너뜨립니다.

거짓 예언자들에게 속지 않으려면 평소에 주님과 깊은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삶의 고통이 올 때만 주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주님과 친밀하고 돈독한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신뢰는 고통과 혼란의 시기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의 빛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최정훈 바오로 신부)

 


 

2024년 11월 26 [연중 제34주간 화요일]

 

하늘의 수확은 영원의 시작인 죽음심판이다.

 

독서(묵시14,14-19)

14 내가 또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그 구름 위에는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이 앉아 계셨는데머리에는 관을 쓰고 손에는 날카로운 *낫을 들고 계셨습니다.

= 금관(스테파노스), 승리한 이가 쓰는 관. 사람의 아들, 영원의 승리자 예수 그리스도다.(다니7,13-14) 낫은 수확물을 거두는 심판이다.

 

(묵시1,7) 7 보십시오그분께서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모든 눈이 그분을 볼 것입니다그분을 찌른 자들도 볼 것이고 땅의 모든 민족들이 그분 때문에 가슴을 칠 것입니다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아멘.

 

(요엘4,13) 13 낫을 대어라수확 철이 무르익었다와서 밟아라포도 확이 가득 찼다확마다 넘쳐흐른다그들의 악이 크다.

 

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에서 나와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께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낫을 대어 수확을 시작하십시오땅의 곡식이 무르익어 수확할 때가 왔습니다.”

= 성전에서 나온 천사, 곧 하느님의 심판의 명령을 받아 전한 것이다. 그 심판의 때는 사람의 아들 예수님도 모르셨기 때문이다.(마르13,32 사도1,7)

 

16 그러자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이 땅 위로 낫을 휘두르시어 땅의 곡식을 수확하셨습니다. 17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왔는데그도 날카로운 낫을 들고 있었습니다. 18ㄱ 또 다른 천사가 제단에서 나왔는데그는 불에 대한 권한을 지닌 천사였습니다.

= 하느님의 태워 버리시는 권한이다.(히브12,29)

 

18ㄴ 그가 날카로운 낫을 든 천사에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 날카로운 낫을 대어 땅의 포도나무에서 포도송이들을 거두어들이십시오포도가 다 익었습니다.”

= 심판의 때가 익었다. 되었다는 말이다. 이 세상의 악이 무르익었다는 것이다. 세상은 점점 악해지고 가고 있다. 그 악의 정점, 그 무르익은 상태에서는 수확, 심판을 받는다. 이 땅의 죄인들이 하느님 앞에서 도저히 핑계 댈 수 없을 만큼 악하게 될 때까지 기다리신 것이다.(창세15,16)

우리가 바로 그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온 세상의 모든 이들이 손을 잡고 하느님을 반대로 열심히 가고 있는 그 속에서 우리는 그 물결을 거스러 올라가는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힘들다. 그래서 인내가 필요한 것이다.

 

19 그러자 그 천사가 땅 위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들이고서는하느님 분노의 큰 포도 확에다 던져 넣었습니다. 20 도성 *밖에 있는 그 확을 밟아 누르니그 확에서 높이가 말고삐에까지 닿는 *피가 흘러나와 천육백 스타디온이나 퍼져 나갔습니다.

= 두 번의 수확이 있다. 봄에는 밀의 수확, 오순절이다. 가을에는 포도를 수확한다. 이스라엘에는 물이 귀하기에 포도주를 만들어 음료로 마셔야했다. 그 때, 포도를 포도확에 넣고, 사람이 들어가 밟아야 했는데 포도즙이 온 몸에, 옷에 피같이 물이 들었다.

하느님은 그 포도 확을 밟은 것에 피(죽음)의 심판을 비유하신 것이다. 확에서 흘러나온 피가 ‘천육백 스타디온’이나 퍼져 나갔다는 것은, (4☓4☓10☓10= 1,600) 4는 땅, 10은 땅의 임금,(묵시17,12)

심판의 범위가 전 세계, 전 우주적으로 철저하고 완전하게 일어날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 심판에 반드시 모두 던져진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느님의 백성들은 거기서 견뎌지게 되는데, 그것이 구원이다.

‘심판의 포도 확’이 도성 밖에 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도성 밖에서 그 포도 확에 밟히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 심판의 확에서 구출된 것이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달리 그 포도 확과 상관없는 사람들이 된 것이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다 똑같이 죄 속에서 산다. 그런데 하느님이 우리를 택하셔서 예수님 안에 넣으셔서 예수님을 밟으신 것이다.

 

(히브13,12-16) 12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13 그러니 진영 밖으로 그분께 나아가 그분의 치욕을 함께 짊어집시다.

= 십자가의 복음을 진리로 살자는 것이다.

14 사실 땅 위에는 우리를 위한 영원한 도성이 없습니다우리는 앞으로 올 도성을 찾고 있습니다. 15 그러므로 예수님을 통하여 언제나 하느님께 찬양제물을 바칩시다그것은 그분의 이름을 찬미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16 *선행과 나눔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이러한 것들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 제물입니다.

=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것, 나누는 것, 선행, 좋은 일이다.

 

*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인간이 죽음을 통과 하듯이 모든 인간이 그 심판대에 반드시 서게된다. 우리는 그 때를 준비하는 것이다. 영원의 시작인 그때를 준비하는 것이다. 이 땅에서 우리의 배를 위해서 사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속적으로 사는 것이 자신은 죽음(심판)과는 상관이 없다고 은연중에 외면하며 살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 죽는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죽어가고 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준비 없이 하느님의 심판대에 올라가고 있다. 포도 학에 스스로 들어가는 것이다. 죽음은 우리 가까이에 있다.

 

(이사2,22) 22 너희는 더 이상 인간에게 의지하지 마라코에 숨이 붙어 있을 뿐 무슨 가치가 있느냐?

= 그리스도인(人)이란? 그 죽음과 심판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 죽음 뒤에 삶을 준비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돈과 명예는 세상 사람들의 돈과 명예와는 다른 의미가 있다. 세상 사람들은 그것만을 위해서 시간을 소비하며 하루하루 살아가지만,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자녀로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을 성실하게 해 나가는 과정에서 하느님께서 잠깐 맏기시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그 돈과 명예로 이웃을 섬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실력이 안되는 사람들에게 돈과 명예가 주어지게 되면, 그 사람을 파괴할 수 있기에 ‘조심하라’ 하는 것이다.

돈(만몬- 신) - 성경은 돈을 세상 신(神)이라한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하느님을 섬기는가? 예수님을 이용해서 돈 신을 섬기는가?”

 

(1티모6,7.10) 7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으며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10 사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돈을 따라다니다가 믿음에서 멀어져 방황하고 많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신 보호자 성령님!

저희 마음 안에서 인내의 힘을 주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2024년 11월 26[연중 제34주간 화요일]

 

가장 무서운 일이 무엇일까?

 

복음(루카21,5-11)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예수님께서 이르셨다. 6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 아름다운 성전이 무너지는 것을 걱정하시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열심으로 지은 그 화려한 성전은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있지 않고 다 허물어져야 한다는 말씀이다. 인간들의 열성, 생각을 하나하나 부수심이다.

 

(히브12,29) 29 우리의 하느님은 다 태워 버리는 불이십니다.

= 그 성전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성전에 갇히시는 분이 아니시다.

 

(사도7,47-49)47 하느님을 위하여 집을 지은 사람은 솔로몬이었습니다. 4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집에는 살지 않으십니다이는 예언자가 말한 그대로입니다. 49 ‘하늘이 나의 어좌요 땅이 나의 발판이다너희가 나에게 무슨 집을 지어 주겠다는 것이냐?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또 나의 안식처가 어디 있느냐?

 

(사도17,24-27) 24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하느님은 하늘과 땅의 주님으로서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는 살지 않으십니다. 25 또 무엇이 부족하기라도 한 것처럼 사람들의 손으로 섬김을 받지도 않으십니다하느님은 오히려 모든 이에게 생명과 숨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26 그분께서는 또 한 사람에게서 온 인류를 만드시어 온 땅 위에 살게 하시고일정한 절기와 거주지의 경계를 정하셨습니다. 27 이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찾게 하려는 것입니다더듬거리다가 그분을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사실 그분께서는 우리 각자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 우리와 하나(한몸)가 되시기 위해 당신 아드님의 목숨으로 값을 치르신, 속죄 제물로 내어주신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의 안식처는 그리스도를 통해오신 우리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안식처는 성전인 우리들이며 우리의 안식처는 하느님인 것이다.

 

(1코린6,19-20) 19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그 성령을 여러분이 하느님에게서 받았고또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님을 모릅니까? 20 하느님께서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속량해 주셨습니다그러니 여러분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 인간들은 자신들의 뜻, 소원, 영광을 위해 성전을 기념하며 섬기기에 다른 민족을 통해 그 성전을 파괴하시는 것이다. 하느님과 그리스도가 하나 되는 것, 그것이 안식이며 성전이다. 그 모든 것을 성령께서 깨닫고 믿게 해 주신다.

예수님의 유언~

(요한14,10.19)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19 이제 조금만 있으면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 그리고 부활로 제자들이 용서받아 의롭게 된다는 말씀이다.

(요한14,20.26) 20 그날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또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26 보호자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요한15,4-5.8) 4 내 안에 머물러라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열매, 그리스도를 통한 하늘의 용서, 생명, 그 깨달음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림이다.(로마7,4참조)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 열매는 나무가 맺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라, 믿어라 하시는 것이다.

 8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 그 열매 없는 성전은 다 부수신다.

 

(로마8,9-10) 9 그러나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10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몸은 비록 죄 때문에 죽은 것이 되지만의로움 때문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 성령이 계시면(믿으면) 십자가의 대속, 그 주님의 의로움을 거저 전가 받아 영원한 죽음에 갇히지 않고 하늘의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을 믿게 된다는 말씀이다.

 

그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그러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8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 자신을 가리켜 ‘내가 그리스도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예수님은 *많은 사람이 “내가 그리스도다”라고 말한다고 하신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다”라고 하신 그 ‘내가’는 예수님 자신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뜻으로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대속으로 죽으러 오신 분이시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르10,45)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기적과 능력의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곧 예수님을 자신의 뜻, 소원을 들어 주시는, 병을 고쳐주고, 재물을 늘려주는 땅의 복을 주시는 분으로, 그리스도라고 한다는 말씀이다. 그렇게 말하고 가르치는 사람을 ‘따르지 마라, 믿지 마라’고 하시는 것이다. 우리 교회 안에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씀이다.

 

(마르13,22) 22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나타나할 수만 있으면 선택된 이들까지 속이려고 표징과 이적들을 일으킬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10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11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

 

어떤 무서운 일일까? 가장 확실한 무서운 일은 ~

(히브10,31) 31 살아 계신 하느님의 손에 떨어지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 하느님의 정의(正義)의 손이다. 곧 심판(審判)의 손이다. 그리스도의 대속, 그 구원의 진리를 깨닫고도 죄를 짓는다면 곧 용서를 믿지 못한다면 심판만이 남는다.

앞 절로 돌아가 보면~

(히브10,26-29) 26 우리가 진리를 깨닫고서도 일부러 죄를 짓는다면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바칠 수 있는 제물이란 남아 있지 않습니다. 27 심판그리고 적대자들을 삼켜 버릴 맹렬한 불에 대한 무서운 예상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28 모세의 율법을 무시한 자는 둘이나 세 증인의 말에 따라 가차 없이 처형됩니다. 29 그렇다면 하느님의 아드님을 짓밟고자기를 거룩하게 해 준 계약의 피를 더러운 것으로 여기고은총의 성령을 모독한 자는 얼마나 더 나쁜 벌을 받아야 마땅하겠습니까?

= 그러면 하느님의 정의의 손, 곧 심판의 손에 떨어지는 무서운 일이 있을 뿐이다. 즉 하느님의 자비, 사랑을 믿지 못해 하느님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 가장 무서운 일이다.

 

보호자 성령님땅의 복과 하늘의 복을 분별 못하는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해 간구해 주시어 그리스도께서 역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흙인 우리)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
[연중 제34주간 목요일]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는 날 (루카21,20-28)24.11.27조회 12[연중 제34주간 수요일] 내 이름 때문에 (루카21,12-19)24.11.26조회 19[연중 제34주간 화요일] 하늘에 큰 표징 (루카21,5-11)24.11.25조회 61[연중 제34주간 월요일] 렙톤 두 닢 (루카21,1-4)24.11.24조회 36[연중 제33주간 토요일] 산 이들의 하느님 (루카20,27-40)24.11.22조회 53[연중 제33주간 금요일] 하느님의 집 (루카19,45-48)24.11.22조회 9[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 (마태12,46-50)24.11.20조회 57[연중 제33주간 수요일] 미나(은화)의 비유 (루카19,11ㄴ-28)24.11.20조회 22[연중 제33주간 화요일] 세관장 자케오 (루카19,1-10)24.11.18조회 31[연중 제33주간 월요일] 예리코 소경치유 (루카18,35-43)24.11.17조회 51[연중 제32주간 토요일] 올바른 판결 (루카18,1-8)24.11.15조회 16[연중 제32주간 금요일]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 (루카17,26-37)24.11.15조회 54[연중 제32주간 목요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루카17,20-25)24.11.10조회 27[연중 제32주간 수요일] 나병(癩病) 치유 (루카17,11-19)24.11.09조회 9[연중 제32주간 화요일] 종(奴)의 자세 (루카17,7-10)24.11.09조회 8[연중 제32주간 월요일] 회개하거든 용서하라.(루카17,1-6)24.11.09조회 10[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성전정화 (요한2,13-22)24.11.08조회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