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3주간 월요일] 예리코 소경치유 (루카18,35-43)

2024. 11. 17. 오후 3:5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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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8일 월요일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예리코 소경치유 (루카18,35-43)


   


1독서<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여라.>(묵시1,1-4.5; 2,1-5)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하느님께서 머지않아 반드시 일어날 일들을 당신 종들에게 보여 주시려고 그리스도께 알리셨고, 그리스도께서 당신 천사를 보내시어 당신 종 요한에게 알려 주신 계시입니다.

2 요한은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 곧 자기가 본 모든 것을 증언하였습니다.

3 이 예언의 말씀을 낭독하는 이와 그 말씀을 듣고 그 안에 기록된 것을 지키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그때가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4 요한이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이 글을 씁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분과 그분의 어좌 앞에 계신 일곱 영에게서,

5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나는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2,1 “에페소 교회의 천사에게 써 보내라. ‘오른손에 일곱 별을 쥐고 일곱 황금 등잔대 사이를 거니는 이가 이렇게 말한다.

2 나는 네가 한 일과 너의 노고와 인내를 알고, 또 네가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사도가 아니면서 사도라고 자칭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너는 그들이 거짓말쟁이임을 밝혀냈다.

3 너는 인내심이 있어서, 내 이름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지치는 일이 없었다.

4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이다.

5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

 

<화답송>시편1,1-2.3.46(묵시2,7) 승리하는 사람에게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해 주리라.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아, 제때에 열매 맺고, 잎이 아니 시들어,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되리라.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 바람에 흩날리는 검불 같아라. 의인의 길은 주님이 아시고, 악인의 길은 멸망에 이르리라.

 

복음<주님,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루카18,35-43)

35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의 일이다. 어떤 눈먼 이가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다가,

36 군중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37 사람들이 그에게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 하고 알려 주자,

38 그가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39 앞서 가던 이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40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오라고 분부하셨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41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그가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42 예수님께서 그에게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43 그가 즉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랐다군중도 모두 그것을 보고 하느님께 찬미를 드렸다.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제1독서 (묵시록1,1-4.5ㄴ;2,1-5ㄱ)

 

"요한이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이 글을 씁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도 오실 분과 그분의 어좌앞에 계신 일곱 영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4-5)

 

요한은 4절과 5절 상반절에서 '삼위일체적인 특징'을 지닌 인사말을 바오로가 사용한 전형적인 서간 인사말(로마1,7; 1코린1,3; 2코린1,2; 갈라1,3; 에페1,2)과 함께 자유롭게 구사하고 있다.

그는 성부 하느님을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도 오실 분'으로 언급한다.

 

이렇게 묘사된 성부 하느님에 대한 칭호는 탈출기 3장 14절, "나는 있는 나다." 에 대한 일종의 해석이다.

후기 유대교의 해석이나 유대 출신 철학자 Philo(필로)의 해석에 의하면, '신적 영원성'이나 '그리스 철학 양식에 있어서의 영원한 존재' 에 대한 묘사에서 나타난다.

 

여기서 영원한 존재인 하느님은 인간적인 측면에서 과거, 현재, 미래의 존재로서 투영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앞으로도 오실 분'으로 번역된 '호 에르코메노스'(ho erchomenos)는 '오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에르코마이'(erchomai)의 현재 분사형으로서, 문자적으로는 '장차 오실 분' 이라는 미래적 개념이 아니라 '오시고 계시는 분', 또는 '오시는 분'으로 번역된다.

 

그렇다면, 요한은 여기서 하느님의 미래적 측면을 현재 진행적 의미로 변형하고 있는 것인가? 이것은 '단순한 미래적 실존' 아닌, '구원과 심판을 위해 이 세상에 도래하시는 것으로서의 하느님의 미래'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즉 하느님은 미래 뿐만 아니라 현재 속에 역동적으로 침투하고 계시는 미래의 힘이심을 나타낸다.

 

'그분의 어좌 앞에 계신 일곱 영에게서'

 

삼위일체적인 특징을 지닌 인사말은 성부 하느님께 대한 묘사에 이어서, 여기서는 성령 하느님께 대한 묘사로 이어진다.

여기서 언급된 '일곱 영'으로 번역된 '톤 헵타 프뉴마톤'(ton hepta pneumaton ; the seven spirits)는 즈카리야서 4장 1-14절에 근거한 성령에 대한 상징적 묘사이다.

 

요한은 즈카리야서 4장 2절의, '온통 금으로 된 등잔대가 보입니다. 등잔대 머리에는 기름 그릇이 있고, 그 그릇에는 등잔이 일곱 개 있습니다. 그 머리에 등잔 부리(관)가 일곱 개 있는 것입니다." 라는 문구로부터 일곱 영에 대한 상징을 끌어왔다.

 일곱 영이 '하느님 어좌 앞에'(에노피온 투 트로누 아우투; enopion tu thronu autu; before his throne) 존재하고 있다는 점은 그가 하느님(성부)과 동등하다는 점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그 다음 5절의 '또 성실한 증인이시고, 죽은 이들의 맏이이시며, 세상 임금들의 지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에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언급이 나온다.

 

"에페소 교회의 천사에게 써 보내라. '오른손에 일곱 별을 쥐고 일곱 황금 등잔대 사이를 거니는 이가 이렇게 말한다.'"  (2,1)

 

묵시록 2장과 3장에서는 묵시록의 형식적인 수신자인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각각 보내는 칭찬과 책망의 메시지 수록되어 있다.

여기서는 세말이 오기까지, 이 지상의 교회들이 나타낼 여러 유형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일곱 교회에 대한 칭찬과 책망을 통해, 지상 교회가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교회상과 더불어 피해야 할 잘못된 교회상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2장과 3잘에 나오는 각 교회에 대한 메시지는 모든 세대의 교회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로서의 역할을 한다.

 

본절 이하 7절은 일곱 교회를 향한 첫번째 메시지로서, 에페소 교회에 보내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요한이 기록한 것이다.

에페소는 B.C. 133년이래 로마의 행정 구역으로 편입된 자유 도시로서, 소아시아의 수도이며 상업과 교통의 요지였다.

 

이곳은 에게해로 유입되는 카이스터 강 입구에 위치한 고지대의 도시로서, 고대 7대 유물에 속하는 웅장한 건물이 두 개나 존재한다.

하나는 대극장이고, 다른 하나는 아르테미스 신전이다.

 

특히 웅장한 아르테미스 신전은 당시 에페소의 우상숭배가 얼마나 극에 달해 있었는지를

그 자체로 웅변한다(사도19,24-41).

또한 이 도시에는 황제숭배도 행해졌는데, 이 지역에 건축된 신전들은 한결같이 Claudius 나 Hadrian, 그리고 Severus에 바쳐진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우상숭배와 황제숭배가 난무한 곳에 복음이 들어간 것은, 사도행전 18장 18절-19장 20절을 감안할 때, 바오로의 제3차 선교여행 덕분이었다.

바오로는 약 3년 동안 눈물로 에페소 교회를 개척했다.

 

또한 죽음을 목전에 둔 노 사도의 말년 저술에 나오는대로, 그가 자리를 비운 동안 에페소 교회는 디모테오에게 맡겨졌다(1티모1,3).

 그러나 이곳은 파트모스 섬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도시로 요한이 파트모스 섬에서 유배 생활 뒤 여생을 마친 곳이기도 하다. 이처럼 에페소는 요한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지닌 도시이다.

 

'오른 손에 일곱별을 쥐고 일곱 황금 등잔대 사이를 거니는 이'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씀인데, 예수 그리스도와 묵시록 2장 1절- 3장 22절에 언급된 일곱 교회가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 보여준다.

여기서 '쥐고'(붙잡고)로 번역된 '크라톤'(kraton)은 본래 '지지하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크라테오'(krateo)의 현재 분사형으로, 묵시록 1장 16절에 언급된 '쥐고 계셨으며' (에콘;echon)가 전달하는 뉘앙스와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어조를 나타낸다.

 

이것은 교회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계속적인 통치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표현이다.

 또한 '거니는'으로 번역된 '페리파톤'(peripaton)의 현재 분사형으로서, 교회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하여 계속하여 간섭하시며정확하고 면밀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오른손'으로 번역된 '덱시아 케이리'(dexia cheiri)는 구약에서 대표적으로 탈출기 15장 6절의 "주님, 권능으로 영광을 드러내신 당신의 오른손이, 주님, 당신의 오른손이 원수를 짓부수셨습니다" 에서 등장하며, 시편 17장 7절의 "당신 자애의 기적을 베푸소서. 당신 오른쪽으로 피신하는 이들을  적에게서 구해 주시는 분이시여!" 라는 문구와 시편 21장 9절의 "당신 손이 원수들을 모두 찾아내시리이다. 당신 오른손이 적들을 찾아내시리이다" 라는 문구에서도 발견된다.

 

이러한 용례에서 드러나듯이, 오른손은 단순히 왼손의 짝을 의미하지 않는다.

히브리인들의 사유 구조 속에서 오른손은 상징적으로 권능과 능력을 의미한다(시편20,7; 44,4).

 

그런데, 그 능력과 권능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일곱 별'(아스테라스 헵타; asteras hepta)이다. 묵시록 1장 20절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곱 교회의 천사들'이라고 설명하신다.

여기서 언급된 '일곱 교회의 천사들' '교회의 지배적인 정신(영)을 의인화' 한 것이며 실상 '교회 자체의 상징'이라고 본다. 말하자면, '~교회의 천사' 실제로 '~교회' 자체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일곱 황금 등잔대'

 

여기서 '등잔대'(촛대)로 번역된 '뤼크니아'(lychnia)는 '빛나다'라는 의미의 동사 '뤼케'(lyke)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촛대', '등경', '등잔대' 등으로 번역된다.

이 등잔대는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여 제작토록 한, 성소의 순금 등잔대에서 비롯된 상징이다(탈출25,31-40 ; 37,17-24 ; 민수8,4).

 

이것이 순금으로 제작된 것은 금이 지닌 속성, 즉 귀하고 아름답고 빛나고 불변하는 속성과 관련된 것 같다. 

'일곱 황급 등잔대'는 묵시록 1장 20절에 언급된 대로, 명백히 '일곱 교회'를 상징하며, 암흑 세상에 빛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교회의 사명과 잘 결부된다(묵시2,5).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 네가 그렇게 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가서 네 등잔대를 그 자리에서 치워 버리겠다."  (5)

 

여기서 '처음에 지녔던 사랑'으로 번역된 '아가펜 수 텐 프로텐'(agapen su ten proten ; your first love)은 문자적으로는 '너의 그 첫 사랑' 으로 번역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에페소 교회가 보이고 있는 '지금의 행위'와 교회가 세워질 당시의 '처음 행위' 사이의 간격을 첨예하게 대조한다.

 

처음 교회가 세워질 때, 그들은 '자발적으로 하느님께 가까이 가려는 마음, 모든 일에 주님을 기쁘게 하려는 마음, 항상 신선하고 새롭고 반짝이는 열성,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기쁨, 열정의 분출'을 지니고 있었으나, 지금은 이단들과의 오랜 투쟁으로 인해, 그 모든 열정이 소모되었던 것이다.

 

오랜 내부의 문제, 곧 이단들과의 투쟁이라는 문제를 마무리하는 동안, 신학적으로는 정확하고 엄격하며, 윤리적으로는 도덕적이며 준엄하기 그지없는 특성을 확립했을 지라도, 사랑이라는 추진력에 의해 살기를 멈추어버린 교회였다.

따라서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믿음이나 신학적인 정통 교리가 아니고, '처음에 지녔던 사랑' 이어야만 했던 것이다.

 

오늘 제1독서에 안 나오는 구절을 더 첨부했는데, '네 등잔대를 그 자리에서 치워 버리겠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여기서 '치워 버리겠다'로 번역된 '키네소'(kineso; will remove)는 본래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의미라기보다 '제거해 버리다' ,'밀어 버리다' 라는 뜻을 지닌 동사 '키네오'(kineo)의 미래형이다.

에페소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처방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그 교회(등잔대: 촛대)를 역사에서 아예 지워버리시겠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오른손에 일곱 별을 쥐고 일곱 황금 등잔대 사이를 거니는 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교회의 주인이요, 머리로서 그 교회를 제거해 버리시는 권한을 발휘할 수 있으니, 교회의 본질인 사랑을 회복하라는 말씀이다.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김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부터 두 주간에 걸쳐 제1독서로 요한 묵시록을 읽습니다.

유사 종교에서 그릇된 해석으로 혼란을 일으키고는 하는 요한 묵시록은 과연 어떤 책일까요?

요한 묵시록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 책이 어떤 ‘문학 유형’인지 파악한 다음 그에 맞추어 읽어야 합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는 뉴스, 드라마, 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가 있습니다.

뉴스는 정확한 사실을 전달해야 하고, 드라마는 허구의 내용으로 시청자에게 감동과 공감을 끌어내며, 코미디는 과장된 방식으로 웃음을 유발합니다.

각각의 프로그램을 제대로 시청하려면, 우리는 각각의 장르마다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올바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 묵시록은 ‘묵시 문학’이라는 특별한 문학 유형으로 집필된 책입니다.

묵시 문학은 악의 세력으로 표상되는 신앙의 박해, 세상 권력, 하느님과 반대되는 가치가 현실에서 득세함으로써 독자가 절망의 상황에 놓여 있음을 전제합니다.

이러한 구체적 상황에도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심판자이신 하느님께서 ‘마지막 때’ 곧 종말에 악의 세력을 심판하시고 승리하실 것이라는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그 결과, 묵시 문학은 근본적으로 위로의 메시지이며, 독자들이 고통 받는 현실을 꿋꿋이 견뎌 내며 살아갈 수 있게 합니다.

한편 묵시 문학은 환시, 상징적 숫자와 짐승, 우주적 재앙 같이 추상적이고 모호해 보이는 상징을 사용합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묵시 문학은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놓습니다.

그러나 묵시 문학을 마치 미래를 점치거나 길흉 화복을 알려 주는 책으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유사 종교에서 그러하듯 요한 묵시록을 잘못 이해한다면, 신자들은 구원의 길이 아닌 혼돈과 파멸의 길로 이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상우 바오로 신부)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처음에 지녔던 사랑

  

(묵시 1,1-4.5 2,1-5)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하느님께서 머지않아 *반드시 일어날 일들을 당신 종들에게 보여 주시려고 그리스도께 알리셨고, 그리스도께서 당신 천사를 보내시어 당신 종 요한에게 알려 주신 계시입니다. 2 요한은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 곧 자기가 본 모든 것을 증언하였습니다. 3 이 예언의 말씀을 낭독하는 이와 그 말씀을 듣고 그 안에 기록된 것을 지키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그때가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 지키다- 킵(히브리어) “밖으로 흘려버리지 않고 안에 지키다.”의 뜻. 들은 말씀을 마음 안에  간직 하는 것, 그리스도인의 실행, 行함인 것이다. 그리고 예언의 말씀은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과 계약(약속)의 말씀이다.

 

(야고보1,21) 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움과 그 넘치는 악을 다 벗어 버리고 여러분 안에 심어진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십시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힘이 있습니다.

 

4 요한이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이 글을 씁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분과 그분의 어좌 앞4 요한이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이 글을 씁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분과 그분의 어좌 앞에 계신 일곱 영에게서, 5 또 성실한 증인이시고 죽은 이들의 맏이이시며 세상 임금들의 지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피로 우리를 죄에서 풀어 주셨고,

= 세상 임금들의 지배자, 곧 세상 임금들의 임금 우두머리로, 세상의 모든 죄의 심판을 받아 그 죄의 속죄 제물로 죽으신 그 당신 피로 우리를 죄에서 씻어 하늘의 평화를 주셨고, 그래서 세상의 죄와 의로움과 심판이 하늘의 평화를 줄 수 없는, 곧 구원을 주지 못하는 그릇된 것임을 밝히셨다.

 

(요한16,8-11) 8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9 그들이 죄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고, 10 그들이 의로움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버지께 가고 너희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며, 11 그들이 심판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 이 말씀이 *지금도 있었고 *전에도 또 *앞으로도 영원히 살아계신 구속의 약속, 말씀이시다.

 

2,1 “에페소 교회의 천사에게 써 보내라. ‘오른손에 일곱 별을 쥐고 일곱 황금 등잔대 사이를 거니는 이가 이렇게 말한다.

= 일곱 별, 황금 등잔은 앞 1,20에서 교회라 알려 주신다. 그러니까 그 교회를 거니시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시다.

 

(골로1,18) 18 그분은 또한 당신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분은 시작이시며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맏이이십니다. 그리하여 만물 가운데에서 으뜸이 되십니다.

 

2 나는 네가 한 일과 너의 노고와 인내를 알고, 또 네가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사도가 아니면서 사도라고 자칭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너는 그들이 거짓말쟁이임을 밝혀냈다.

= 많은 일을한 그들의 수고와 주님의 말씀, 가르침을 전해야 할 사도가 사람의 말(계명)을 하느님의 말씀(계명)인양 전하는 거짓을 밝힌 것이다.

 

3 너는 인내심이 있어서, 내 이름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지치는 일이 없었다. 4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이다.

= 첫사랑의 말씀을 저버렸다는 것이다. 1장 3절에서 말씀하신 예수님의 증언, 곧 그분의 사랑의 말씀을 듣고 지키지 않았다는, 버렸다는 말씀이시다.

세상의 모든 죄로, 저주의 심판을 받아 그 죄의 속죄 제물로 죽으신, 그 당신 피로 우리를 죄에서 풀어 주신 사랑이시다. 그 사랑이 창조 이전에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첫 사랑이시다.

 

(에페1,4-5)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 십자가의 대속, 그 사랑을 통하여 받는 구원이다.

 

5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 네가 그렇게 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가서 네 등잔대를 그 자리에서 치워 버리겠다.

= 어디?, 에덴동산에서 선이 악을 품어 생명을 주는 그 생명나무, 그 진리의 말씀을,(창조 이전 사랑을 다시 말씀 하시는 것) 아담과 하와 처럼 선과 악을 분리 시키는 도덕과 윤리의 나무, 그 법의 말씀으로 읽으면, *그곳에서 부터 죽음(심판)으로 추락하는 것이다. 

그러니 제사와 윤리, 그 사람의 규정, 교리를 부인하고(버리고) 예수님께서 우리의 악을 품고대신 죽으신 그 사랑, 그래서 죄인에게 하늘의 생명을 주시는 그 사랑, 창조 전에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그 사랑, 그 첫사랑의 말씀을 생각(기억)하여 그 첫사랑을 믿는, 그 사랑의 말씀을 믿고 간직하는, 지키는 일을 다시 ‘시작하라’ 하시는 것이다.

그 처음 사랑의 말씀(진리)을 사람의 말(법)로 들어~ 그 사랑(말씀)을 지키지 못하고 잃어버려 자신들의 일로 열심했던 에페소 교인들이다.

 

(티토3,5) 5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비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고 새로워지도록 물(말씀)로 씻어 구원하신 것입니다.

= 자신들이 열심히 한 그 일로는 구원의 승리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진리의 사랑, 그 처음 사랑(말씀)으로만 받을 수 있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 하셔서 죽으신 당신의 죽음으로 죄(죽음)를 이기신 그 승리의 예수님으로부터 받는 구원의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 처음 사랑으로 사랑하고, 그 처음 사랑의 용서로 용서하고, 그 처음사랑을 진리로 믿고 말해야 하는 그 주님의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1코린15,56-58) 56 죽음의 독침은 죄이며 죄의 힘은 율법입니다.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58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언제나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 여러분의 노고가 헛되지 않음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 그 진리의 말씀, 승리의 말씀을 잃어버려 못 보게 된, 그래서 주님의 일을 못한, 그가 구걸을 하며 살았다 하신 오늘 복음에 눈 먼 사람이다.

그러나 그런 자신의 잘못, 그 자신의 실체를 깨닫고 인정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 승리의 예수님, 처음 사랑이신 예수님을,~~

 

(루가18,39-43) 39 앞서 가던 이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40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오라고 분부하셨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41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그가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42 예수님께서 그에게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 제사와 윤리의 의로움, 자기가 한 의로운 일로 구원의 의로움을 잃었던, 그러나 예수님의 대속, 그 의로우심을 구원의 의로움으로 깨달아 다시 보게 된 그 믿음이다. 그것이 보는 것이다.


43 그가 즉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랐다. 군중도 모두 그것을 보고 하느님께 찬미를 드렸다.

= 제사와 윤리가 구원을 줄 수 없는 그 구걸의 삶을 살았던 눈 먼 이기에, 그는 자신의 구원의 완성이신 주님, 그 사랑이신 분으로 살게 되었다는 그 사실을 깨닫고는 감사할 수 밖에 없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 처음 사랑을, 말씀을 지키게 되었다는 그 사실을 깨달은 그에게서 어찌 감사로 드리는 찬양이 나오지 않겠는가?

 

오늘 화답송을 기억하자~ “승리하는 사람에게는 생명나무 열매를먹게 해 주리라” (독서 요한 묵시록 본문의 결론인 것이다)

 

(묵시2,7) 7 ‘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승리(믿는, 지키는)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하느님의 낙원에 있는 생 나무의 열매(하늘의 생명)를 먹게 해 주겠다.’~아멘.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복음 (루카18,35-43)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41ㄴ)

 

마르코 복음의 병행 구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그를 부르시자 바르티매오는 겉옷조차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로 갔다(마르10,50).

즉 그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외침에 응답해 주시자 너무도 기뻐한 나머지, 밤에는 이불이 되고 낮에는 거지 행세를 할 수 있는 유니폼이며 생계 수단인 '겉옷'을 벗어 던지고 예수님께로 달려 갔던 것이다.

 

그렇게 달려 온 바르티매오에게 예수님께서는 소원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물으신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자기 자신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인식하고 있는지 알고 싶으셨다.

이에 대하 바르티매오는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마태20,33; 마르10,51)라고 표현함으로써 자신의 소원을 구체적으로 고백했다.

 

희랍어에서 '보다'는 뜻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동사가 '블레포'(blepo)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접두사 '아나'(ana)가 붙은 '아나폴레포'(anablepo)가 사용되었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바르티매오가 보기를 간절히 원했다(I want to see)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데, 여기서의 용례는 단순히 '보다'는 뜻보다는 '다시 보다'(see again)는 을 지닌다(사도9,12.17; 22,13).

이것으로 보아 그는 전에는 소경이 아니었지만 소경이 되었고, 따라서 눈을 뜨고자 하는 욕구가 다른 사람보다 더 강했다고 볼 수 있다.

 

원문에는 '해 주십시오'에 해당하는 동사 '텔로'(thelo; want, desire)가 생략되어 있는데, 이 '텔로'(thelo) 접속사 '히나'(hina)앞에 있어야 완전한 문장이 된다.

그러나 소경이 이렇게 '텔로'(thelo)를 생략하고 짧게 말한 것은, 자신의 소원을 말하는 것이 너무나 급했고 절박했기 때문이다.




  

 

20241118일 월요일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예리코의 눈먼 이에게 하신 말씀은 이웃에게 호의를 베풀 때의 마음가짐에 대해서 묵상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자비를 청하는 눈먼 이를 곧바로 고쳐 주시지 않고 물으십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루카 18,41) 예수님께서는 먼저 그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물으십니다.

눈먼 이는 예수님께 자신의 바람을 아룁니다.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18,41).

예수님께서는 그가 바라는 것을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는 형제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할 때, 먼저 그가 바라는 것을 세심하게 살펴야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그가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라는 것을, 내가 하고 싶은 방식으로 주게 됩니다.

그것은 도움을 받는 사람보다 내 만족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애덕의 행위는 자신의 만족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 상대를 위한 행위여야 합니다.

그래서 이웃 사랑에는 상대의 마음을 살피는 세심한 배려와 겸손이 필요합니다.

도움을 주려는 선의가 자칫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상대가 필요하지도, 바라지도 않는 것을 받도록 강요할 때입니다.

살레시오회의 설립자인 요한 보스코 성인은 사랑에 대한 중요한 가르침을 전합니다.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자기중심적인 방식으로 사랑할 때 상대는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상대를 중심으로 사랑할 때 비로소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는 통찰입니다.

 

(최정훈 바오로 신부)

 



   

2024년 11월 18일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주님볼 수(호라우있게 해 주십시오

 

독서(묵시2,1-5)

2,1 “에페소 교회의 천사에게 써 보내라. ‘오른(진리)손에 *일곱 별을 쥐고 *일곱 황금 등잔대 사이를 거니는 이가 이렇게 말한다.

= 일곱(7- 안식), 교회의 주인이시며 진리, 안식의 완성이신 ‘그리스도’시다.

 

나는 네가 한 일과 너의 노고와 인내를 알고또 네가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사도가 아니면서 사도라고 자칭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너는 그들이 거짓말쟁이임을 밝혀냈다. 3 너는 인내심이 있어서내 이름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지치는 일이 없었다. 4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너는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이다. 5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고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

= 우리에게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처음에는 있었던가? 사랑이란 상대의 말, 뜻을 믿는 것이다. 곧 내 뜻, 의를 위해 살았지 하느님의 사랑을 믿지도 않았고, 없었다는 것이다.(1요한4,10)

*하느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당신의 숨(영)을 불어 넣으시어 창조하셨다. 사랑이 낳은 결과다. 그 사랑께서 당신의 뜻인 나무(스타오로스-계약)의 열매를 선악의 열매로 ‘먹지마라’ 하셨는데, 사람(아담)이 자신의 욕망의 눈으로 보고, 선악과로 따 먹어 하느님의 사랑을 잃어 버렸다.

 

(창세3,6) 6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그래서 여자가 열매 하나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자그도 그것을 먹었다.

= 아담에 후예인 모든 사람은 선악의 논리로 세상을 본다. 선악의 두 마음으로 산다. 그래서 선악의 법의 결과인 죽음으로 영원한 어둠, 흙 속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창세2,17) 그래서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그들을 살리시기 위해,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해 사랑하는 당신 외 아드님을 속죄 제물로 내어주시어 십자나무에서 대신 죽게 하셨다.

그러므로 선악의 나무(계약- 말씀)를 버리고,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라. 하심이다. 곧 하느님의 나무(계약), 그 진리의 말씀을 도덕과 윤리로 보고 지킨, 그 자기 의를 버리고 그리스도의 대속, 그 하늘의 의를, ‘하느님의 사랑을 찾아라. 그리고 다시 시작하라.’ 하심이다.

 

(로마3,25) 25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

 

(에페2,7) 7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호의로당신의 은총(은혜)이 얼마나 엄청나게 풍성한지를 *앞으로 올 모든 시대에 보여 주려고 하셨습니다.

 

복음(루카18,35-43)

35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의 일이다어떤 눈먼 이가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다가,

= ‘길 가에’, 곧 진리의 길을 벗어난 ‘길 가’다. 선악의 법, 그 죽음의 자리에 앉아 있음이다.

 

36 군중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37 사람들이 그에게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 하고 알려 주자, 38 그가 예수님다윗의 자손이시여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39 앞서 가던 이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 사람들의 꾸짖는 말을 상처로 염두에 두면(그 말에 매이면) 주님을 만날 수 없다.

 

40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오라고 분부하셨다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41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그가 주님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 ‘나’라면 무엇을 청했을까?

 

42 예수님께서 그에게 다시 보아라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 눈먼 이는 자신의 자리가 죽을 죄인의 자리임을 알고, 하늘의 용서, 생명, 구원을 위한 것을 다시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한 것이다. 곧 단순히 눈이 먼 장애를 고쳐 달라고 청한 것이 아니다. 눈이 멀어 어둠 속에 사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고, 생명, 구원의 빛을 다시 볼 수 있게 청했던 것이다.

오늘 복음을 통해 선악의 논리로 죽음을 향해가는 영적 눈 먼 신앙인들에게 그 선악의 논리를 벗어난 진리, 곧 하느님의 사랑인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으로 얻는 자유, 평화, 생명을 다시 청하라 하심이다.

성경 말씀 안에, 우주만물 안에 숨겨진 사람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것들을 약속하신 성령을 통하여 깨달아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하라 하심이다. 보이는 것 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깨달아 볼 수 있게, 다시 믿을 수 있게 해 달라 청하라 하심이다.

 

(1코린2,9-10) 9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되었습니다.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 10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성령께서는 모든 것을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로마1,20) 20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본성 곧 그분의 영원한 힘과 신성(사랑)을 조물을 통하여 알아보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따라서 그들은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

 

43 그가 즉시 다시 *보게 되었다그는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랐다군중도 모두 그것을 보고 하느님께 찬미를 드렸다.

 

‘보다’의 4가지 단계를 복습해 보자.

 ‘옵타노마이’ - 보이는 그대로 보는 것. ② ‘아니돈’ - (보이는 그대로 보고) 크고 놀라워 감격, 우상으로 보는 것. ③ ‘블랙보우’ - (우상 삼아 본 것을) 곰곰이 생각하고 고민하며 보는 것. ④ ‘호라우’ - (생각하고 고민하다가) 아! 하고 하느님의 뜻으로 깨달아 보는 것.

*어느 단계, 어떤 눈으로 만물을, 말씀을 보는지, 하느님의 힘, 신성, 사랑을 보는지, 그리스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내 생명, 진리로 보고 믿어 의탁하며 사는지.....

 

지혜진리이신 천주의 성령님!

호라우’ 할 수 있는 눈을 주소서하느님의 사랑을 다시 볼 수 있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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