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2주간 월요일] 회개하거든 용서하라.(루카17,1-6)

2024. 11. 9. 오전 6:5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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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1일 월요일

[연중 제32주간 월요일] 회개하거든 용서하라.(루카17,1-6)

   


1독서<내가 그대에게 지시한 대로 원로들을 임명하십시오.>(티토1,1-9)

1 나 바오로는 하느님의 종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입니다. 내가 이렇게 부르심을 받은 것은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의 믿음을 돕고 신앙에 따른 진리를 깨우쳐 주기 위한 것으로,

2 영원한 생명의 희망에 근거합니다. 이 영원한 생명은 거짓이 없으신 하느님께서 창조 이전에 약속하신 것입니다.

3 사실 하느님께서는 제때에 복음 선포를 통하여 당신의 말씀을 드러내셨습니다. 나는 우리 구원자이신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이 선포의 임무를 맡았습니다.

4 이러한 나 바오로가 같은 믿음에 따라 나의 착실한 아들이 된 티토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 구원자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내리기를 빕니다.

5 그대를 크레타에 남겨 둔 까닭은, 내가 그대에게 지시한 대로 남은 일들을 정리하고 고을마다 원로들을 임명하라는 것이었습니다.

6 원로는 흠잡을 데가 없어야 하고 한 아내의 충실한 남편이어야 하며, 자녀들도 신자이어야 하고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지 않아야 하며 순종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7 사실 감독은 하느님의 관리인으로서 흠잡을 데가 없어야 합니다. 또한 거만하지 않고 쉽사리 화내지 않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술꾼이나 난폭한 사람이나 탐욕스러운 사람이 아니라,

8 손님을 잘 대접하고 선을 사랑해야 하며, 신중하고 의롭고 거룩하고 자제력이 있으며,

9 가르침을 받은 대로 진정한 말씀을 굳게 지키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건전한 가르침으로 남을 격려할 수도 있고 반대자들을 꾸짖을 수도 있습니다.

 

<화답송>시편24,1-2.3-4ㄱㄴ.5-6(6) 주님, 이들이 당신 얼굴을 찾는 세대이옵니다.

주님의 것이라네, 온 땅과 그 안에 가득 찬 것들, 온 누리와 그 안에 사는 것들. 그분이 물 위에 세우시고, 강 위에 굳히셨네.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랴? 누가 그 거룩한 곳에 설 수 있으랴?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한 이, 헛된 것에 정신을 팔지 않는 이라네.

그는 주님께 복을 받으리라. 구원의 하느님께 의로움을 얻으리라. 이들이 야곱이라네. 그분을 찾는 세대, 그분 얼굴을 찾는 세대라네.

 

복음<회개합니다.”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루카17,1-6)

1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그러한 일을 저지르는 자!

2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것보다,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낫다.

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라.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4 그가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5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연중 제32주간 월요일 제1독서(티토1,1~9)

 

"그대를 크레타에 남겨 둔 까닭은, 내가 그대에게 지시한 대로 남은 일들을 정리하고 고을마다 원로들을 임명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원로들은 흠잡을 데가 없어야 하고 한 아내의 충실한 남편이어야 하며 자녀들도 신자이어야 하고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지 않아야 하며 순종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5~6)

  

티토서 1장 5절부터 3장 11절까지가 서간의 본론 부분이다.

티토서 1장 5절에서 16절은 사목자로서 수행해야 할 근본 직무로서, 교회 조직을 수립하는 데 필요한 교훈인 원로의 자격 요건에 대한 지침과 정통 교리를 수호하는데 필요한 교훈인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계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내용을 시작하는 본절은 사도 바오로가 티토를 크레타에 남겨둔 이유에 대해 밝히고 있다.

사도 바오로가 티토를 크레타에 남겨두었다는 언급을 통해 사도 바오로가 크레타에 갔을 때 티토를 남기고 다음 선교지로 떠난 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사도 바오로가 크레타에 들러 교회를 개척한 때는 1차 로마 투옥에서의 석방 직후였을 것이다.

 

크레타는 지리적으로 그리스 본토의 남단 지중해 안에 있는 크고 유명한 섬이다.

크레타는 시칠리아, 시르데냐(이 둘은 이탈리아에 있는 섬들), 키프로스 다음가는 지중해에서 네번째로 큰 섬이며, 유럽과 소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로 다양한 문화를 지니고 있었다.

 

구약 성경에서는 이 섬이 '캅토르'로 기록되어 있으며(신명2,23; 예레47,7; 아모9,7), 오늘날에는 '칸디아'(candia)로 불리고 있다.

 

이곳은 일찌기 문명이 발달했던 지역이며,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통치 당시에 행정 구역상으로 키레네와 합쳐져 한 지방이 되었다.

이곳 출신 디아스포라 유대인 중에 오순절 성령 강림 때에 함께한 사람도 있었다(사도2,11).

  

'남은 일들을 정리하고'

 

본절을 통해 티토는 애초부터 크레타 교회를 돌보도록 세워진 사목자라기보다는 사도 바오로를 대신하여 일정 기간 동안 크레타 교회를 돌보도록 위임된 사도 바오로의 대리자였음을 알 수 있다.

사도 바오로는 두 가지 목적을 위해 티토를 크레타에 남겨 두었다.

 

그 중 본문은 첫번째 목적이다.

'남은'으로 번역된 '레이폰타'(leiponta)의 원형 '레이포'(leipo)는 '열등하다', '모자라다'(야고1,4), '없다', '결핍하다'(야고2,15), '부족하다'(티토3,13; 루카18,22)라는 뜻을 갖는데, 여기서는 현재 분사형으로 불완전한 것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사도 바오로가 말하는 복수형으로 표현한 남은 일들은 여러가지를 들 수 있다.

 

당시 크레타 교회가 온전한 교회로 성장해 나가기 위해 보다 보완되어야 할 것들로는 거짓 사상에 맞선 진리에 대한 불충분한 인식과 교육, 그리고 기타 비조직적이고 비행정적인 일 등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사도 바오로의 신뢰를 받고 있던 티토는 이러한 일들을 바로잡을 적임자로 여겨져 크레타에 남겨졌을 것이다.

 

'고을마다 원로들을 임명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티토를 크레타 섬에 남겨둔 두번째 목적이다.

 

본문에서 '고을마다'라는 표현을 보아 크레타 안에는 이미 몇몇 지역에 상당수의 교회가 존속하고 있었으며, 티토는 바로 이런 여러 교회들의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원로들을 세우는 일을 처리해야 했다.

 

'원로들을'로 번역된 '프레스뷔테루스'(presbyterus)는 '프레스뷔테로스'(presbyteros)의 복수형 목적격이다.

 

'프레스뷔테로스'는 '나이 많은'이란 의미의 형용사 '프레스뷔스'(presbys)의 비교급으로서 원래 '연장자', '원로', '장로', '노인'(사도2,17), '조상이나 옛 사람'(히브11,2)을 뜻하는 단어였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 의미가 확대되어 유대인의 산헤드린 최고 회의 의원(마태16,21; 마르코8,21; 루카9,22; 사도4,5), 혹은 개개의 도시들에서 공적 업무를 처리하고 재판을 집행하는 자(루카7,3), 교회나 집회를 관장하는 자(사도11,30; 1티모5,17; 2요한1장; 3요한1장; 2베드5,1.5)등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쓰였다.

 

여기서 말하는 원로는 오늘날 교회의 영적 지도자인 '신부'(사제)의 개념에 가깝다.

 

당시에는 '목자'를 지칭하는 '포이멘'(poimen)이란 단어가 따로 있었으나(에페4,11), '프레스뷔테로스' 혹은  7절에 언급되는 '감독'(에피스코포스; episkopos; 오늘날의 주교)이란 단어가 더 많이 쓰였다.

 

이 가운데 '원로'(elder)가 구약 시대 한 성읍의 지도자를 지칭하는 말로서 유대적인 배경에서 나온 단어라면, '감독'(bishop)은 그리스 도시의 행정 책임자를 지칭하는 말로 그리스적인 배경에서 나온 단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원로'라는 단어가 '연장자'라는 측면에 중점을 둔 단어라면, '감독'은 교회 사목의 측면에 중점을 둔 단어라고 말할 수 있다.

 

한편, '원로'를 세우는 일은 티토가 크레테에서 해야 할 임무 중의 하나였는데, 이것으로 보아 원로 제도는 이미 초대 교회 시대에도 있었으며, 사도 바오로는 교회가 설립되면 이렇게 원로를 세웠던 것으로 볼 수 있다(사도14,23; 20,17).

 

그러나 오늘날 교회 직무와 유사한 개념으로서 안수받는 직분인 주교, 사제, 부제 등

봉사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은 2세기 초에 가서야 비로소 나타나게 되었다.

 

'원로들은 흠잡을 데가 없어야 하고'

 

티토서 1장 6~9절은 원로의 자격 요건에 관한 지침이다. 

여기서 제시된 원로의 자격 요건은 티모테오 전서 3장 1~13절에 제시된 것과 상당 부분 유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티모테오 1서에서는 '난폭한 사람이 아니라 관대하고 온순하며' (1티모3,3) 라고 했으나, 티토서에서는 '거만하지 않고 쉽사리 화내지 않는' (티토1,7)라고 묘사되어 있다는 점이다.

 

또한 티모테오 1서에서는 감독의 자녀들에 대해 '아주 품위있게 자녀들을 순종시켜야 한다'(1티모3,4)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티토서에서는 원로의 자녀들에 대해 '신자이어야 하고,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지 않아야 하며 순종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티토1,6)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티모테오 1서에서는 감독은 '가르치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1티모3,2) 라고만 말하고 있지만, 티토서에서는 '가르침을 받은 대로 진정한 말씀을 굳게 지키는 사람이어야 합니다'라고 말하면서 말씀대로 행하는 언행일치적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기록의 차이를 볼 때, 사도 바오로는 두 교회가 처한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권면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편, '흠잡을 데가 없어야 하고'라고 번역된 '아넹클레토스'(anengkletos)는 부정 접두어 '아'(a)와 '고소하다'라는 뜻을 갖는 동사 '엥칼레오'(engkalleo)가 합성된 형용사로서 '비난할 수 없는', '아무 죄가 없는', '문책받을 것이 없는' (1코린1,8; 콜로1,22; 1티토3,10)이라는 뜻이 있다.

 

'인격에 흠이 없고 훌륭한'이라는 의미인데, 이런 성품이 너무 고차원적인 요구 사항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갖추어야 할 윤리적 자질이며, 그리스도와의 친교 가운데 드러나는 자연스런 성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원로'가 갖는 공적인 위치를 감안할 때, 개인적으로 결백하고 흠잡을 데 없는 고매한 성품을 지녀야 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공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비난받을 만하거나 나무랄 데가 없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연중 제32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김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 복음은 공동체 생활에 관한 예수님의 세 가지 말씀을 소개합니다.

남을 죄짓게 하지 말라는 경고와 형제의 죄를 몇 번이고 용서하라는 권고, 그리고 믿음의 힘에 관한 말씀입니다.

첫 번째 말씀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라는 표현을 직역하면 “(남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들”이 됩니다.

스스로 죄를 짓는 것도 문제지만 권모술수로 형제가 구원의 길 위에서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도 잘못이라는 지적입니다.

그런 사람은 차라리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낫다.”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그만큼 형제를 죄짓게 하는 행위가 얼마나 무거운 죄인지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라는 권고가 등장합니다.

여기서 ‘일곱’이라는 숫자는 7회만 용서하면 된다는 가르침이라기보다, ‘완성’을 나타내는 숫자 ‘일곱’이 드러내듯 회개하는 형제를 끝없이 용서하라는 뜻입니다.

세 번째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믿음의 힘에 관하여 역설하십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겨자씨는 매우 작지만, 돌무화과나무는 웅장합니다.

그만큼 작은 믿음만이라도 간직하고 있다면, 그 믿음으로 공동체 안에서 큰일을 실현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공동체는 저마다 여러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가정 공동체, 직장 공동체, 본당 공동체가 구원의 길 위에서 바로 설 수 있도록 예수님의 세 가지 말씀을 새겨보면 좋겠습니다.

 

(김상우 바오로 신부)

 

 

 

 

 

[연중 제32주간 월요일]​

 

죄를 지어 불행한 것이 아니라 용서를 모르는 것이 불행이다.

 

복음(루카17,1-6)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그러나 불행하여라그러한 일을 저지르는 자!

= 모든 인간은 다른 이를 죄짓게 하는 존재라는 말씀?

 

병행~(마태18,7) 7 불행하여라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많은 이 세상사실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다그러나 불행하여라남을 죄짓게 하는 일을 하는 사람!

=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인 곳이 세상이라는 말씀이다. 육적으로도, 또한 영적으로는 더욱 그렇다. 그 영적인 죄의 일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보자~

(마태65,9-10) 9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 아버지의 이름이, 아버지의 나라가, 그분의 뜻이, 땅인 우리에게 이루어 지기를 기도하라 하셨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똑같이 자신들의 이름, 나라, 뜻을 이루려 한다. 세상이 주는 영광, 현세의 만족을 위한 일, 그 헛된 신앙 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많은 신자들이 그렇게 살기에 사도는~

(1코린15,19) 19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 성경에 하느님 말씀을 매일 양식으로 먹지 않으면 우리는 현세만을 위해 살 수 밖에 없는 땅, 흙, 그 육적 존재라는 것이다. 본능인 흙(육)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으로 하느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면 인간의 뜻, 이름,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옳다고, 참이라고 말하며 남(이웃)을 죄짓게 하기 마련이라는 말씀이다.

‘묵주기도 열심히 해봐 병이 낳을 거야’ ‘미사 열심히 드려봐 대학 붙을 거야’ ‘본당 활동 열심히 해봐 하는 일이 잘 될 거야’ 또 인간의 본능(本能)인 욕망은 하느님(남)의 뜻, 나라를 거스르는 그분(남)께 죄를 짓게 된다는 것이다. (마태7,12 ‘황금율’에서 ‘남’을 ‘성령’으로 여러번 공부했다) 그래서 자기 욕망, 뜻을 위해 사는 이세상의 뜻, 힘을 악하다고 하는 것이다.

 

 (갈라1,4) 4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우리 아버지의 뜻에 따라 우리를 지금의 이 악한 세상에서 구해 내시려고우리 죄 때문에 당신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 죄를 지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죄를 용서 받지 못한 것이 불행한 것이다. 그 길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불행인 것이다. 곧 우리(나)의 죄로 돌아가신 분을 모르는 것,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를 위한 제사를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음’을 믿지 못하는 것,

그래서 구원의 진리, 새 계약이 완성되었음을 성경이 전해 주시는 그 하느님의 뜻, 약속을 깨닫지 못하고, 믿지 않는 것이 불행한 것이다. 그리고 율법(제사와 윤리)에 갇혀, 매어서 사는 것이 불행인 것이다.

 

(갈라5,16-18) 16 내 말은 이렇습니다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십시오그러면 육의 욕망을 채우지 않게 될 것입니다. 17 육이 욕망하는 것은 성령을 거스르고성령께서 바라시는 것은 육을 거스릅니다이 둘은 서로 반대되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됩니다. 18 그러나 여러분이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닙니다.

= 성령께서 깨닫고, 믿고, 의탁하게 하심으로 곧 예수님께서 우리가 지키지 못한 모든 율법, 제사와 윤리)을 대속으로 다 지키시고 완성하셔서(로마8.3) 죄인이었던 우리가 하늘의 용서, 쉼, 자유를 누리게 되었음을,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신다는 것이다. (로마8,16참조) 그러므로 하느님의 영, 성령을 믿지 못하고, 의탁하지 못하는 것이 불행한 것이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것보다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낫다.

= 아직 깨닫지 못한, 그래서 땅에 속해있는 그 작은 이들, 이웃들에게 성령을 주지 않는 것, 죄짓게 하는 것이다. 율법과 사람의 규정과 교리에 묶여 무거운 짐 같은 신앙을 살게 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라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 율법(제사와 윤리)과 사람의 규정과 교리가 진리라 말하는 그 잘못, 죄를 짓거든 꾸짖으라는 말씀이다.

 

그가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용서해 주어야 한다.”

= 일곱 번- 일곱(7)으로다. 일곱, 7은 하늘의 쉼, 안식의 숫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그 십자가의 용서로 누리는 안식(자유)인 것이다.

그 구원의 진리, 구원의 새 계약을 믿지 못하고, 율법(제사, 윤리)과 사람의 규정, 교리를 진리로 의탁하는 그 헛된, 불의, 그릇된 것을 믿는(마태7,21-23 마르7,7 요한16,8-11 등) 그 죄를 짓다가 돌아오면 곧 십자가의 복음이 진리라 말하면(믿으면) 용서가 이루어진다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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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 겨자씨 한 알의 믿음이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땅(빈땅-죄인)을 위해 씨가 스스로 들어가 썩어지고 죽어서 열매를 맺고는 땅이 맺었다고 해 주시는 창조 사흗날의 씨의 죽음, 그것이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다.(창세1,11-12 루가13,7-9참조)

곧 우리 죄인들을 살리시기 위해 대속으로 죽으셨고, 의롭게 하시려고 사흗날에 부활하신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로마4,25 7,4참조)

그러면 구원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돌 무화과나무, 곧 율법(제사와 윤리)과 사람의 규정과 교리가 뽑혀, 없어진다는 말씀이다. 자유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남(이웃, 하느님)을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 세상에서 자유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하느님의 뜻인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진리로 믿었을 때그 진리의 길로 성령께서 이끌어 주신다는 것을 잊지 말자. ‘청 하여라찾아라두드려라그러면 성령을 주실 것이다.‘ 약속하신 주님을 잊지 말자.

 

☨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흙인 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생명의 길을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예비, 준비하신 하느님, 그리고 성령을 영원한 보호자로 보내시어 그 진리, 구원의 길로 이끌어 주시니 감사와 찬미로 영광을 돌려 드립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연중 제32주간 월요일 복음(루카17,1~6)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그러한 일을 저지르는 자!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것보다,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낫다."  (1ㄴ~2)

 

루카 복음 17장 1~10절은 루카 복음 9장 51절~19장 27절에 기록된 예수님의 후기 활동 가운데 예루살렘을 향한 최후의 순회 선교 여행을 떠나시기 직전(17,11) 베레아 지방의 활동(14,1~17,10)의 마지막 시점에 일어난 일들을 다룬다.

 

그리고 17장 1~10절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는데, 1~4절까지는 성도들의 믿음의 공동체 내에서 이웃과 수평적 관계에서 가져야 할 기본 덕목에 대한 교훈이 들어 있고, 5~10절까지는 하느님과의 수직적 관계에서 가져야 할 덕목에 대한 교훈이 들어 있다.

 

또한 이 가운데에서 1~4절의 전반부는 형제를 죄짓게 하는 일에 대한 경계(1~3ㄱ절)와 형제간의 상호 용서에 관한 교훈(3ㄴ~4절)이 나오며, 5~10절의 후반부는 진실한 믿음에 관한 교훈(5~6절)과 겸손한 봉사에 관한 교훈(7~10절)이 나온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베레아 지방 활동을 마감하시며, 주님의 제자들이 가져야 할 주요한 덕목들을 다시 한번 강조하시면서, 루카 복음 15장, 16장에 나오는 비유들을 총정리하시고,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과 구별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임을 밝히신다.

 

한편 루카 복음 17장 1~2절 마태오 복음에서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이고 배척하는 이야기와 내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마태18,1~7).

 

하지만 마태오 복음에서는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배척함으로써 그를 죄짓게 하는 것으로 상황이 설정되어 있지만, 루카 복음에서는 소외되고 멸시받는 자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용서하지 않는 것이 그를 죄짓게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예수님께서는 동일한 교훈을 여러 장소에서 여러 번 주셨기에 이런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

 

예수님께서는 두 개의 부정적 의미를 지닌 단어인 '아넨덱톤'(anendekton; impossible)과 '스칸달라'(skandala; offences)를 사용하셔서 강조하시고자 하는 것을 매우 효과적으로 드러내신다.

 

새 성경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일'로 번역된 '스칸달라'(skandala)의 원래 의미는 '덫'(trap)이나 '장애물'로서 '올무', '부딪히는 돌', '거리끼는 것'으로 성경에 번역되어 있다.

 

이것은 형제를 유혹에 빠뜨리거나 교리 혹은 가르침 등으로 잘못된 믿음으로 이끄는 것들을 의미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고 말씀하시며, 세상에 죄를 짓게 만드는 요소가 늘 산재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계신다.

 

신약 성경에서 여기에만 나오는 '아넨덱톤'(anendekton)은 '가능하다', '허락하다'는 뜻이 있는 '엔데코마이'(endechomai) 동사에 부정 접두어 '아'(a)가 결합된 동사에서 유래했는데, '불가능하다', '절대 허락할 수 없다'라는 뜻이다.

 

이 단어가 다시 부정 불변사인 '메'(me)와 연결되어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라는 강한 긍정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시면서, 그러한 유혹이 반드시 그리스도인에게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공동체에서 더욱 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계신다.

 

예수님께서는 사실 자체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현실 극복에 대한 강인한 지향이 있어야 됨을 부정에 부정을 거듭하는 강조 어법으로 제자들에게 촉구하시고 있는 것이다.

 

 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 18장 6절과 마르코 복음 9장 42절에는 '연자매'에 해당하는 '뮐로스 오니코스'(mylos onikos; a millstone)가 나온다.

 

여기서 '연자'에 해당하는 '오니코스'(onikos) '나귀'(루카14,5)를 뜻하는 '오노스'(onos)에서 유래한 단어인데, 따라서 '연자매', '연자 맷돌'에 해당하는 '뮐로스 오니코스'(mylos onikos)는 '나귀의 힘에 의해 돌리는 커다란 맷돌'을 말한다.

 

이것은 집안에서 사용되는 손으로 돌리는 작은 맷돌과는 달리 많은 곡식을 한꺼번에 빻기 위해 사용되는 큰 맷돌이었다.

 

루카 복음 17장 2절에는 '리토스 뮐리토스'(lithos mylikos; a millstone)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것은 '맷돌에 속하는 돌'이라는 뜻이다.

 

이것의 용도는 곡식을 가는 것인데, 때로 이방인들은 이것을 형벌의 도구로 사용하기도 했다.

 

당시의 로마 처형법 중에 하나는, 이 돌의 구멍에 목을 매게 해서 바다에 가라앉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러한 처형 방법은 영적 세계에 무지한 이교도들이 바다에서 죽은 자들은 사자(死者)들이 머무는 세계로 가지 못한다고 생각한 데서 나왔다.

 

그들은 바다에 빠져 죽은 사람의 영혼은 그들이 죽은 물 위에서 영원히 방향도 없이 떠돈다고 생각했다.

 

보통 맷돌에 사람을 묶어 바다에 던져도 가라앉는데, 하물며 대형 맷돌에 목을 매어 빠뜨리는 것은 그 사람을 죽음에서 영원히 헤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된다.

 

따라서 연자매에 목을 매어 죽임을 당하는 죽음은 장례를 지낼 수 없는 죽음으로써 최악으로 여겨졌다.

 

한편, '걸고'와 '내던져지는 편'으로  각각 번역된 동사 '페리케이타이' (perikeitai; that were hanged; that were tied)와 '에르맆타이' (erriptai; be thrown; be cast)는 중간태 내지는 수동태로서, 남을 죄짓게 한 당사자가 제3자, 즉 사법당국에 의해서 수장되는 형벌을 당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준다.

 

따라서 걸리어지는 '그 목'은 죄짓는 작은 이의 목이 아닌, 작은 이를 죄짓게 한 당사자의 목이며, 그 목에 연자매를 매고 바다에 던지는 주체는 형벌을 집행하는 사법당국이다.

 

그리고 '낫다'에 해당하는 '뤼시텔레이'(lysitelei; it would be better)는 본절에서 '더 좋다'(it is better)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지만, 원래는 '세금을 지불하다'는 뜻으로서 의무적으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작은 이들 중에 하나를 죄짓게 하면,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지는 것과 같은 준엄한 형벌이 반드시 주어짐을 전제하는 동시에, 차라리 이러한 형벌이 더 낫다는 이중적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그러니까 '작은 이'(one of these little ones), 즉 연약하고 상처입기 쉬운 이들 중에 하나를 죄짓게 해서 내세에서 무서운 형벌을 받게 되는 것보다, 바다에 수장되어 죽임을 당하는 것이 오히려 그 개인에게 낫다는 의미이다.

 

내세에서의 형벌의 막중함은 연자매에 달려 수장당하는 형벌에 비할 수가 없다.

 

따라서 하느님의 자녀들인 성도들은 남들이 보잘것 없게 여기는 작은 이, 즉 소외된 이웃이나 스스로 힘으로 설 수 없는, 믿음이 연약한 이들 하나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당시 로마 사회에서 흔히 시행되던 가혹한 형벌을 언급한 것은 형제를 죄짓게 하는 일을 애타는 심정으로 막고자 하기 위한 것이다.

 



 

20241111일 월요일

[연중 제32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오늘 복음은 교정과 용서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루카 17,3).

형제의 죄는 꾸짖어 바로잡아야 하고, 그가 뉘우치면 기꺼이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가끔 형제의 잘못을 보고도 이를 바로잡지 않고, 그냥 혼자 용서해 버리기도 합니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의 용서가 아닙니다. 그 형제는 자신의 잘못을 모르기에, 회개하지 못한 채 죄에 머물게 됩니다.

혼자서 용서하고 마는 것은, 그를 꾸짖을 때 예상되는 갈등과 다툼이 싫어서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용서는 상대에 대한 사랑이 없고, 불편함의 회피일 뿐입니다. 사랑이 없기에 그에게 진정한 형제가 될 수 없습니다.

형제가 잘못을 저지르면 그것을 멈추게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와 불편해지는 결과까지도 감당하기로 결심하면서, 형제를 올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만일 죄를 저지른 형제가 자신의 잘못을 알고 뉘우친다면, 곧바로 용서해야 합니다.

하느님처럼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가 용서받기 어렵다고 생각한 큰 죄도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용서하십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의 죄보다 늘 더 큽니다.

또 되풀이되어 고백하기도 부끄러운 죄도 하느님께서는 그때마다 처음처럼 용서해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용서하시는 데 지치시지 않습니다.

우리도 하느님과 같이 형제가 어떠한 큰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또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여 저지르더라도, 그가 진심으로 회개한다면 큰 사랑으로 용서해야 합니다.

 

(최정훈 바오로 신부)

 


 


 

 

2024년 11월 11일 [연중 제32주간 월요일]

 

쇼생크에서 탈출하라! ”

 

복음(루카17,1-6)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그러나 불행하여라그러한 일을 저지르는 자!

=세상 인간사가 다 죄라는 말씀이다.(마태18,7) 하느님의 뜻, 그분의 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할 피조물둘이 자신들의 뜻, 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인간의 길이 흙의 본질, 본성으로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지만, 그것에 머물면 그 길이 자신 뿐만 아니라 남들까지 죄짓게 하는 불행, 죄라 하심이다.

그 영원한 멸망, 죽음의 감옥에서 구하시기 위해 구원자 그리스도를 속죄 제물로 내주셨기 때문이다. 그 구원자 진리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들의 길 만을 고집하면 불행이요 죄인 것이다.

 

(요한1,11-12) 11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에페2,7-8) 7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호의로당신의 은총이 얼마나 엄청나게 풍성한지를 *앞으로 올 모든 시대에 보여 주려고 하셨습니다. 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아멘)

= 하느님의 은총, 은혜의 그리스도가 아닌 인간의 뜻, 의, 영광을 위한 법(法)의 예수님으로 전하면 남을 불행, 죄 짓게 하는 것이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것보다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낫다. 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라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 죄(하마르티아-과녁을 벗어나다.), 곧 하느님의 뜻, 길에서 벗어난, 인간의 뜻, 길을 위한 그 육신에 갇히게 하는 말을 하면, 가르침을 주면 꾸짖으라 하심이다.

다시 말씀 속에 감추어진 하느님의 뜻, 진리를 깨달아 간직하여 지키는 삶이 아닌, 말씀을 보이는 그대로 보고 법으로 받아 행위로 지키게 하는, 그 자기 의를 위한 신앙의 삶을 살게 하는 이들을 꾸짖으라 하심이다. 

그 자기 의는 세상에서만 빛을 낼 뿐, 영원한 멸망에 갇히게 하기 때문이다.(로마10,1-3) 그 길에서 돌아서는 것, 회개다. *회개- ‘메타노이아‘- 가던 길에서 돌아서다.

 

그가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용서해 주어야 한다.”

= 모든 피조물은 하루를 창조주께서 주시는 쉼을, 안식을 산다. 그리고 일곱(7)은 안식의 숫자다. 안식은 하느님의 뜻, 길, 진리이신 그리스도이시다.

 

(마태12,8) 8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 인간들의 뜻, 육의 길에서 하느님의 뜻, 길로 돌아오면 하루를 안식으로 살 수 있는 용서를 말씀하신 것이다.

 

(이사55,7-9) 7 죄인은 제 길을불의한 사람은 제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오너라그분께서 그를 가엾이 여기시리라우리 하느님께 돌아오너라그분께서는 너그러이 용서하신다. 8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주님의 말씀이다. 9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

= 당연히 우리의 생각, 길이 아닌 하느님의 생각, 길에 대한 깨달음이 필요하다. 그래야 인간 세상사가 죄임을 깨달을 수 있고, 용서, 자유에 대한 믿음도 생길 수 있다.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이 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겨자씨는 잘 보이지 않는 씨(말씀)로, 곧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은 하느님의 한 말씀 안에 감추어진 하늘의 대속, 그 진리에 대한 믿음인 것이고, 돌 무화과나무는 말씀을 인간들의 법, 여러 계명으로 받아 열심히 지킨 온갖 행위들이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한 말씀, 진리인 그리스도의 대속에 대한 믿음이 생겼을 때, 무거운 짐이 되었던 모든 법, 온갖 계명들이 사라진다는 말씀이다. 그런데도 계속 인간들의 법, 계명을 고집한다면 죄에 갇혀 하늘의 안식, 쉼,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불행(不幸)이다. 오늘 그 죄의 감옥에서 탈출하라 하심이다.

 

⁜<쑈 생크 탈출>

앤디는 아내와 정부(情夫)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흉악범들만 가두어는 ‘쇼 생크’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런데 감옥에서 자신의 누명을 벗겨줄 수 있는 증인을 만나게 되는데 교도소 소장이 자신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 그 증인을 죽여버린다. 그래서 앤디는 꼼짝없이 살인자의 누명을 스고 그 감옥에서 장기 복역수로 살게 된다.

그런데 앤디는 “억울하지 않아?”묻는 레드에게 의외의 대답을 한다. “거의 내가 죽인거나 마찬가지예요. 내 성격 때문에~”

처음에는 억울해 미치겠다고 하더니 그 감옥에서 자신을 자꾸 돌아보니 자신이 방아쇠를 당기지는 않았지만 평소의 자신의 언사나 행동이 아내에게 방아쇠를 당겨 죽인 것만큼 나쁜 짓이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들에게 허락된 세상이라는 감옥의 역할이다. 곧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해 주시기 위함인 것이다. 그런데 말씀 안에 머무는 성도만 그것을 감지한다.>

40년 가까이 복역 중인 레드가 ‘처음에는 저 교도소의 벽을 원망했고, 그러다 시간이 지나 그 벽에 기대게 되고, 좀더 시간이 가게 되면 그 벽을 의지하게 되고, 조금더 시간이 흐르니 벽이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감옥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되더라는 것이다. 40년을 있다 보니 그것이 공식이라는 것이다.

 

*하느님은 그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빠져 나오라고 세상을 주셨는데 사람(아담)들은 세상에 익숙한, 아니 세상의 일부가 되어서 그것이 전부인 양 살다가 결국 그 세상 이라는 감옥에서 죽는다.

아니다. 앤디처럼, 내가 누구인지 알고 빠져 나와야 한다. ‘쇼생크 탈출’을 해야 한다. 그런데 안 나온다. 나중에 래드가 40년 감옥 생활을 마치고 출옥 하는데, 이 자유의 세상에 나와서 세상 자유에 동화되지 못한다. 그래서 결국 자살을 시도한다. ‘못 살겠다’는 것이다. 감옥이 훨씬 났다는 것이다. 익숙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자신의 처절한 실존을 확실히 깨닫고, 그 감옥에서 탈출한 ‘앤디’에 의해서 참 자유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쇼생크 탈출‘의 이야기다.

 

밖으로 나가는 땅굴이 뚫렸는데도 안 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여기 감옥이 좋아 나가면 나는 적응을 못할 것 같아’ 하면서 ~

마찬가지다. 선악의 법을 깬 그 진리의 복음을 듣고 자유로 나가라 하니까 여전히 율법(제사와 윤리), 선악의 법을 붙들고 못 나가는 사람이 태반이다. 그리고는 갈팡질팡 어쩔 줄을 모르면서 불안해 한다.

하느님은 진리의 복음을 주시면서 “자유의 나라, 내 아들의 나라로 탈출하라.”고 하시는데 진리의 말씀을 듣고도 그 자유가 익숙하지 않아서 여전히 율법의 나라에 종으로 살고 있는 것이 오늘날 신자라는 사람들의 현실이다.

새 신랑(새 계약)을 주시면서 그 새 신랑 곁에서 영원한 안식으로 영원을 누리라 했더니, 이미 시체가 된 율법(옛 계약)의 신랑 곁에서 한 발자욱도 벗어나지 못한다. 하느님은 그 율법의 신랑(예수)를 죽였는데~~

 

(로마10,4) 4 사실 그리스도는 율법의 끝이십니다믿는 이는 누구나 의로움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로마11,32) 32 사실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불순종 안에 가두신 것은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려는 것입니다.

 

(갈라3,22) 22 그러나 성경은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어 놓았습니다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믿는 이들이 약속을 받게 되었습니다.

 

지혜진리이신 천주의 성령님!

믿음의 신앙을 깨닫고 믿게 하소서인간의 길선악의 법그 감옥에서 탈출하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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