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0주간 수요일] 좁은 문 (루카13,22-30)

2024. 10. 29. 오후 6:26:33

글자

 

20241030일 수요일

[연중 제30주간 수요일] 좁은 문 (루카13,22-30)


   


1독서<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섬기는 것처럼 섬기십시오.>(에페6,1-9)

1 자녀 여러분, 주님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그것이 옳은 일입니다.

2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이는 약속이 딸린 첫 계명입니다.

3 “네가 잘되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하신 약속입니다.

4 그리고 아버지 여러분, 자녀들을 성나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기르십시오.

5 종 여러분, 그리스도께 순종하듯이, 두려워하고 떨면서 순수한 마음으로 현세의 주인에게 순종하십시오.

6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 좋아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하느님의 뜻을 진심으로 실행하십시오.

7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섬기는 것처럼 기쁘게 섬기십시오.

8 종이든 자유인이든 저마다 좋은 일을 하면 주님께 상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 두십시오.

9 그리고 주인 여러분, 여러분도 종들을 이와 같이 대해 주십시오. 겁주는 일은 그만두십시오. 그들의 주님이시며 여러분의 주님이신 분께서 하늘에 계시고 또 그분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아 두십시오.

 

<화답송>시편145,10-11.12-13ㄱㄴ.13ㄷㄹ-14(13) 주님은 말씀마다 참되시네.

주님, 모든 조물이 당신을 찬송하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당신 나라의 영광을 노래하고, 당신의 권능을 이야기하나이다.

당신의 위업과 그 나라의 존귀한 영광, 사람들에게 알리나이다. 당신의 나라는 영원무궁한 나라, 당신의 통치는 모든 세대에 미치나이다.

주님은 말씀마다 참되시고, 하시는 일마다 진실하시네. 넘어지는 누구라도 주님은 붙드시고, 꺾인 이는 누구라도 일으켜 세우시네.

 

복음<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루카13,22-30)

22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하시는 동안, 여러 고을과 마을을 지나며 가르치셨다.

23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24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5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 버리면, 너희가 밖에 서서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

그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26 그러면 너희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27 그러나 집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하고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28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가 하느님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만 밖으로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29 그러나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30 보라,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연중 제30주간 수요일 독서 (에페6,1~9)

  

"자녀 여러분, 주님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그것이 옳은 일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이는 약속이 딸린 첫 계명입니다. "네가 잘되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하신 약속입니다." (1~3)

 

에페소서 6장 1~4절에서는 가족 관계에 있어서 부부와 더불어 또 하나의 중요한 구성원인  자녀와 부모사이의 상호 순종을 권면하며, 에페소서 6장 5~9절에서는 상전과 종 사이의 상호 순종을 권면하고 있다.

 

이러한 일관성을 지니는 에페소서 5장 22절~6장 9절에서의 권면은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 라고 에페소서 5장 21절에서 밝힌 바 있는 대명제와 연결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든 관계가 바로 정립되기 위해서는 먼저 그리스도께 대한 경외심이 전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자녀와 부모 사이의 상호 순종을 권면하고 새로운 단락을 시작하는 본문에서도 사도 바오로는 자녀가 부모를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만을 강조하지 않고, 그 순종이 '주님 안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동시에 강조하였다.

 

자녀의 부모에 대한 순종이 '주님 안에서'(엔 퀴리오; en kyrio; in the Lord)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 구절의 의미는 먼저 부모를 순종하라는 계명을 주님께서 주셨기 때문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명령 가운데는 인간은 하느님을 순종해야 하기 때문에, 그분께서 당신의 대리인으로 주신 부모를 순종해야 한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그분들을 부모로 주신 분이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녀들은 자신을 낳고 길러 주시는 부모에게 순종하면서 가족간의 질서를 주신 하느님께 대한 순종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다.

 

하느님께서 가정의 권위를 부모에게 맡겼으니,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마땅한 것이다.

 

한편 '주님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라는 본문이 신앙을 갖지 않은 부모에 대한 순종을 경시하는 내용은 결코 아니다.

 

신앙을 갖지 않은 부모를 두었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인이라면 성경이 교훈하는 부모에게 자녀로서 해야 할 도리를 다 하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부모의 회두를 위해 더욱 섬기는 자녀가 되어야 한다.

 

사도 바오로는 콜로사이서 3장 20절에서 '무슨 일에서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라고 명하면서 그것이 '주님 마음에 드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사항에 예외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명령과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루카14,26)라는 주님의 말씀 및 "하느님의 나라 때문에 집이나 아내,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여러 곱절로 되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루카18,29.30)라는 주님의 말씀이 상호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루카 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주님의 이 말씀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순종이 부모에 대한 순종보다 더 우선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이는 약속이 딸린 첫 계명입니다'

 

부모 공경 관련 계명은 탈출기 20장 12절 신명기 5장 16절에 있는 계명으로서 십계명중에서 제4계명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약속이 딸린 첫 계명'이란 표현에서 '약속'(에팡겔리아; epanggelia; promise)은 구약의 기록들에 나오는 "그러면 너는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주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는 내용이다.

 

사도 바오로는 이 약속의 내용을 다음 절에서 "네가 잘되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는 내용으로 바꾸어 표현하였지만, 그 근본 의미는 동일하다.

 

이처럼 사도 바오로는 구약의 축복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부모 공경에 대한 필요성을 효과적으로 강조하였다.

 

여기서 '공경하여라'에 해당하는 '티마'(tima; hono(u)r)의 원형 '티마오'(timao)는 '(어떤 일에)가치를 두다'라는 문자적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겉으로 드러난 행위의 차원을 넘어서는 내적 가치를 포함하는 의미이다.

 

이처럼 부모를 공경하는 일이 지고(至高)의 가치를 갖는 것은 부모를 공경함이 궁극적으로는 하느님을 공경하는 일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한편, '약속이 딸린 첫 계명'이란 표현은 부모 공경의 계명이 십계명 가운데 네번째 계명이라는 사실과 상충되는 듯이 보인다.

 

십계명 가운데 1~3계명은 하느님과 관련한 계명이고, 4~10계명은 사람과 관련한 계명이라는 점에 비추어보면, 부모 공경의 계명은 사람과 관련한 계명들 중에서는 가장 첫번째의 계명으로 설명할 수 있다.

 

또한 원문의 '첫'에 해당하는 '프로테'(prote; first)에는 순서적으로 '첫째'라는 뜻도 있지만, 우선 순위에 있어서 '먼저' 또는 중요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이란 의미도 갖는다.

 

이 의미에 따르면, 약속이 딸린 첫 계명이란 표현 부모 공경의 계명이 십계명 가운데 첫번째 계명이라는 의미가 아니고, 부모에 대하여 자녀들이 취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계명이라는 의미가 된다.

 

'네가 잘되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분문은 신명기 5장 16절을 인용한 것인데,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주는'이라는 내용이 생략되었다.

 

그런데 이 계명대로 부모를 공경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이 땅에서 많은 복을 받고 살아가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어려움을 겪다가 생을 마감하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약속이 개개인에 대한 약속이라고 생각할 수 없고,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약속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즉 부모를 공경하여라는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일반적으로 장수한다는 것이다.

 

한편 오래 산다는 상급에 대한 표현은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는 오래 살지 못한다는 형벌의 반대 상황에 대한 표현이기도 하다.

 

유대인 사회에서는 부모를 공경하지 않거나 그들의 말에 불순종하여 제멋대로 사는 불효자들은 돌로 쳐죽이는 극형에 처해졌다(신명기21,18~23).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부모를 공경하며 사는 사람만이 온전한 수명을 누리며 살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사도 바오로는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주는 (땅)'이라는 표현을 생략하고 있다.

그 이유는 주로 이방인들로 구성된 에페소 교인들이 신명기의 말씀을 그 옛날 가나안이라는 시간적, 역사적 상황과 지리적 요소에 의해 제한받지 않고, 사도 바오로 당시의 모든 그리스 세계의 땅 뿐 아니라 후대 독자들이 살아가는 모든 세계를 아우르기를 바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이 '땅' 장수가 지상에서의 삶에 국한된 복임을 말해준다.

 

한편 부모를 공경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두 가지 축복을 묘사하는 동사들의 시제가 다름을 알아야 한다.

 

먼저 '네가 잘 되고'에 해당하는 '유 소이 게네타이'(eu soi genetai; it may go well with you)는 부정(不定) 과거 시제이고, '오래 살 것이다' 에 해당하는 '에세 마크로크로니오스'(ese makrochronios; you may enjoy long life)는 미래 시제이다.

 

부정 과거는 격언적 부정 과거(Gnomic Indefinite Past)로서 '잘 되고'라는 축복은 이것이 이미 일어난 일이나 다름없는 아주 확고한 진리임을 강조한다.

 

또한 미래 시제로 표현된 '오래 살 것이다'라는 축복은 장수의 복이 확실하게 일어날 축복임을 보여준다. 

즉 서로 다른 시제를 사용하고는 있지만, 모두 약속의 확실성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중 제30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 문을 닫은 집주인은 문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말을 두 번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낯선 사람에게 문을 열어 주지 않는 일이야 당연하겠지만, 비유에 등장하는 문밖에 선 이들은 집주인과 꽤 친분이 있어 보입니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들은 식사도 함께할 만큼 가까운 사이였고 가르침도 즐겨 듣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곧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하느님 나라로 향하는 문 앞에서 오히려 단호하게 거부되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우리는 성찬 전례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며, 말씀 전례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해 듣습니다.

미사는 우리의 구원 여정에 주어진 최상의 선물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미사 참례가 자동으로 우리의 구원을 보증하지는 않습니다.

성체를 받아 모시는 우리가 실제로 그리스도를 닮아 가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또 그분의 가르침을 듣기만 하고 삶 속에서 실천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분과 그저 피상적인 관계에 머무를 뿐입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하느님 나라로 향하는 문이 넓은 문이라면 참 좋겠으나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예수님께서 분명히 밝히십니다.

그리고 그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애쓰며 노력하라고 주문하십니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친분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서 결국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참여할 것인지, 아니면 문밖에 서서 ‘울며 억울해할 것’인지 선택하라고 강하게 촉구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새겨들읍시다.

문 안팎의 온도 차가 매우 커 보이기 때문입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30주간 수요일]

저희 안에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자라나게 하소서.

복음(루카13,22-30)​
22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하시는 동안여러 고을과 마을을 지나며 가르치셨다. 23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주님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하고 물었다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4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 많은 사람들이 가는 신앙의 길이 올바르지 안을 수 있다는 말씀이다. 곧 제사와 도덕과 윤리의 신앙은 아니라는 말씀이다.


*좁은 문- 뱀의 유혹으로 자신의 뜻, 욕망을 위해 말씀을 선악의 법으로 따 먹은 아담~
(창세3,23-24) 23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그를 에덴 동산에서 내치시어그가 생겨 나온 흙을 일구게 하셨다. 24 이렇게 사람을 내쫓으신 다음에덴 동산 동쪽에 커룹들과 번쩍이는 불 칼을 세워생명 나무에 이르는 길을 지키게 하셨다.
= 생명나무는 하느님의 구원의 계약을 뜻한다. 곧 메시아의 대속, 그 하늘의 의로움으로 하느님(생명)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계약의 십자나무다.
아담처럼 말씀을 선악의 계명, 인간의 지혜로 지킨, 그 자기 의로움으로 생명의 나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는 이는 커룹들이 지키는 불 칼이 세워진 그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없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그 인간들의 계명, 인간의 지혜로 지킨, 그 자기 의로움을 위한 신앙을 살기에~

25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 버리면너희가 밖에 서서 주님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그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 너희? 제사와 윤리로 사람의 규정과 교리를 열심히 지킨 그 자기 의로움을 구원의 진리로 믿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하늘의 문(길)이 열리지 않는다.(로마10,1-4참조)

26 그러면 너희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27 그러나 집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모두 내게서 물러가라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하고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 주님 앞에서 자신의 뜻(盃)을 위해 먹고, 마셨고, 자신들의 이름, 의(義), 영광을 위한 가르침으로 들었던 그것이 불의인 것이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뜻, 길(道)을 가르치시고 이루시러 오셨다.

(갈라1,4) 4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우리 아버지의 뜻에 따라 우리를 지금의 이 악한 세상에서 구해 내시려고우리 죄 때문에 당신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28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가 하느님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만 밖으로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되면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 씹을 양식, 곧 깨달은 말씀이 없어 이(齒)만 갈게 된다는 말씀이다.

29 그러나 동쪽과 서쪽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 하느님은 모든 만민들의 창조주요, 구원의 아버지시다.

30 보라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 현세에서의 첫째는 누구인가? 세상의 재물, 힘을 가진 사람이다.

(루가16,15) 15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꼴찌는? 하늘의 재물, 힘(성령)을 가진 사람,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믿음으로 받은 사람이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그 모든 것이 어리석음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 현세에서는 꼴찌다.

그러나!~ 독서(로마8,26.30) 26 성령께서는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 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30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 곧 보이는 것 안에서 보이지 않는 하늘의 복, 하늘의 진리를 깨닫는 것이 하늘의 첫째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 복을 받은 첫째들을 보면서 하느님의 부재로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 그래서 하마터면 넘어질 뻔, 낙오될 뻔 한다.

(시편73,1-24 성서로~) 1 하느님은 참으로 이스라엘에게 어지시고 주님은 마음이 (그리스도의 피로 씻겨깨끗한 사람을 축복하시거늘, 2 그러나 나는 (하마터면미끄러져 거의 넘어질 뻔하였습니다. 3 어리석은 자들을 부러워하고 악한 자들이 잘 사는 것을 시샘한 탓이옵니다. 4 그들은 피둥피둥 살이 찌고 고생이 무엇인지 조금도 모릅니다. 5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을 겪지 않으며 사람들이 당하는 쓰라림은 아예 모릅니다.
그래서 거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횡포가 그들의 나들이옷입니다. 7 그 비곗덩어리에서 악이 나오고 그 마음에서 못된 생각이 흘러 넘칩니다. 8 그들은 낄낄대며 악을 뿌리고 거만하게 을러메며 억누릅니다. 9 하늘을 쳐다보며 욕설 퍼붓고 혓바닥으로 땅을 휩쓸고 다닙니다. 10 그리하여 내 백성마저 그들에게 솔깃하여 그들의 물에 흠뻑 젖어 들었습니다. 11 그러면서 한다는 말은 '하느님이 어떻게 알랴가장 높은 분이라고 세상 일을 다 아느냐?' 12 그런데 그들을 보십시오그들은 악인이어도몸은 항상 편하고 재산은 늘어만 갑니다.
13 나는 과연 무엇하러 마음을 맑게 가졌으며 깨끗한 손으로 살았사옵니까? 14 이렇게 종일토록 얻어 맞고 잠만 깨면 받는 것이 책벌(징벌)일 바에야?(히브12,10-11) 15 나도 그들처럼 말하며 살고 싶었지만 그것은 당신 백성을 배신하는 일이겠기에 16 혼자 생각하며 깨치려 하였습니다그러나 눈이 아프도록 고생스러웠습니다.
17 마침내 하느님의 성(성전)소에 들어 와서야 그들의 종말을 *깨달았습니다. 18 당신은 그들을 미끄러운 언덕에 세우셨고 패망으로 빠져 들게 하셨습니다. 19 삽시간에 당한 그들의 처참한 최후공포에 휘말려 없어지고 말았습니다잠에서 깨어난 사람의 허황한 꿈처럼 20 주님은 일어나셔서 그들의 몰골을 멸시하십니다. 21 내 마음이 쓰라렸을 때창자가 끊어지는 듯 아팠을 때, 22 나는 미련하여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당신 앞에서 한 마리 짐승이었습니다. 23 그래도 나는 당신 곁을 떠나지 않아 당신께서 나의 오른손을 잡아 주셨사오니, 24 나를 타일러 이끌어 주시고 마침내 당신 영광에로 받아 들여 주소서.

☨보호자 성령님! 하늘의 꼴찌가 될 땅의 첫째들로 넘어지지 않게 하소서. 성령으로 늘 첫째로 살게 하소서. 아바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흙인 나)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연중 제30주간 수요일 복음(루카13,22~30)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4)

 

본절에서 '힘써라'에 해당하는 '아고니제스테'(agonizesthe; strive; make effort to)의

기본형 '아고니조마이'(agonizomai)는 원래 경기에서 상을 얻기 위해 '경쟁하다',

'싸우다'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최선을 다하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루카 복음 13장 25절이 문이 열려 있을 때와 닫혀버린 이후를 대비한다는 점에서,

이 동사의 의미는 '구원의 문이 열려 있을 때 어떻게든 들어가도록 노력하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말고 그것을 최대한 이용하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열려진 구원의 문을 들어가도록 애쓰라는 것이다.

 

또한 본절에서 '문'은 '집의 문'을 가리키는 '튀라'(thyra; gate; door)로 표현된 반면에, 마태오 복음 7장 13절에서는 '성문' 또는 '성전의 문'을 가리키는 '퓔레'(pyle)로 표현되었다.

 

이런 차이는 13장 25절에서 문을 열고 닫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집주인'의 역할에 따라 이 구절의 배경을 어떤 성이나 성전이 아닌 '어떤 집'으로 맞추기 위한 으로 보인다.

 

그리고 여기서 문을 특별히 '좁은 문'('테스 스테네스 튀라스'; tes stenes thyras;

the strait gate; the narrow door)으로 묘사한 것은, 앞의 '힘써라'는 표현과 함께 구원받는 것이 그렇게 안일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진정으로 구원은 자신을 낮추고 예수님께 나아가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좁은 문'이라고 할 수 있다.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하겠지만'에 해당하는 '제테수신'(zetesusin; will seek; will try)의 기본형 '제테오'(zeteo)는 '추구하다'는 뜻으로서 개인적인 추구와 노력을 가리킨다.

 

결국 이 동사는 구원에 있어 아무런 결과를 가져다 주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의 헛된 노력과 시도들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13장 25절과 관련지어 볼 때, 문이 닫혀진 후에 계속해서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당신께 구원을 겸손히 청하는 사람들을 결코 물리치지 않으신다.

 

하지만 하느님의 구원의 방법인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 자신의 노력과 인생의 헛된 수고만으로 구원을 얻기를 추구한다면, 그에게는 결코 구원이 없음을 본절에서 사용된 '제테오'(zeteo) 동사의 뜻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을 유대인들에게 적용할 때에는, 그들의 인본주의적인 전통이나 율법에 대한 추구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구원은 인위적인 노력으로만 얻어질 수 없다는 방법적인 측면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못할 것이다'에 해당하는 '우크 이스퀴수신'(uk ischysusin; will not be able to)은 '그들이 할 수 없을 것이다'는 뜻으로 불가능의 의미를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할 수 있다'는 뜻의 기본형 '이스퀴오'(ischyo)의 미래 직설법 능동태로 사용된 '이스퀴수신'(ischysusin)은 부정어 '우크'(uk)와 더불어 그들의 구원에 대한 노력은 마지막 때에 무익한 것으로 드러날 것임을 표현해 주고 있다

 

 



 

20241030일 수요일

[연중 제30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오늘 복음 말씀을 보면 앞뒤가 맞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을 사람은 적다는 말씀일까요, 많다는 말씀일까요?

문은 좁고, 많은 사람이 들어가려고 하지만 들어가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길거리에서 가르치실 때 거기 있던 사람들에게도 당신은 그들을 모른다고 하십니다

구원되리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던 이들 가운데서도 그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 나라에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시 예수님께서는 동서남북 사방에서, 아마도 예수님께서 가르치실 때는 그분을 본 적도 없던 이들이 들어와서 잔칫상에 자리를 잡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구원받을 사람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는 뜻이 됩니다.

이렇게 상반된 측면이 함께하는 것은, 누가 구원을 받을지 미리 단정지을 수 없기 때문일 듯합니다.

스스로 구원되리라고 여기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쉽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일깨우십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것을 직접 보고 들었다는 것도 구원을 보장하여 주지 않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먹고 마시며 그분과 친분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어 알고 있다고 하여도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만하지 말고 문이 닫히기 전에 그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할 일입니다

언젠가 그 안에 들어가게 되면 우리가 그 안에 있으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하였던 이들이 먼저 그 잔칫상에서 첫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볼 것이니,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힘쓰십시오”(필리 2,12).

 

(안소근 실비아 수녀)

 

 


 

2024년 10월 30일 [연중 제30주간 수요일] 

좁은 문 

 

복음(루카13,22-30)

22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하시는 동안여러 고을과 마을을 지나며 가르치셨다. 23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주님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하고 물었다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24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 구원 받을 사람이 적다는 말씀이다. 많은 사람이 가지않는 좁은 문이 구원이다. 사람(아담)이 육신의 욕망을 위해 뱁(사탄)의 유혹으로 먹은 그 선악의 법을 깨고 벗어난 진리의 길이 좁은 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눈에 보이는 것에서 벗어나 하늘의 용서, 생명, 평화, 자유를 주시는 하느님께 들어가는 것이 좁은 문이다.

자신의 뜻을 부정, 부인하고 하느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통과할 수 있는 좁은 문이다. 곧 율법(제사와 윤리) 그 옛 계약을 대속으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새 계약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들어가는 좁은 문이다.

 

(요한10,7-8) 7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나는 양들의 문이다. 8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 도둑, 강도, 새 계약보다 먼저 온 옛 계약인 율법이다. 인간의 소원, 욕망을 위해 율법을 열심히 지킨 인간들의 의(義)가 모두 도둑이며 강도라 하심이다.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숨, 사랑으로 존재하며 그리스도의 대속, 그 하늘의 의로움으로 받는 구원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양(羊), 그리스도인(人)이라면 주님보다 먼저 온 제사와 윤리 그 옛 계약의 말을 치워야한다.(히브10,9)

*탐욕(예삐뚜미아), 율의 욕망을 위해 희생제사를 열심히 드리는 것.

많은 사람이 십자가의 길을 좁은 문, 진리로 믿고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려는 삶을, 신앙을 살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이다.

 

(루가18,8)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25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 버리면너희가 밖에 서서 주님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그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26 그러면 너희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27 그러나 집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모두 내게서 물러가라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하고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 자비와 사랑의 주님이 아닌 것 같다. 정의의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지만, 곧 말씀은 들었지만 좁은 길인 주님의 뜻, 말씀을 벗어난 넓은 길로 인간들의 뜻, 세상의 것을 위한 말로 먹고 마셨기에 그것이 불의를 일삼는 것으로 정의의 주님께서 모른다 하심이다.

 

28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가 하느님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만 밖으로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되면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 구약의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모든 예언자들, 그들도 진리를 말하고 살았다는 말씀이다.

 

십자가에서 대속으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진리의 주님을 몰라, 실망하는 제자들에게~

(루가24,25-27)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어리석은 자들아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26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27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구약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29 그러나 동쪽과 서쪽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30 보라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 세상에서는 십자가의 길을 진리로 믿어 그리스도께 거저얻는 의(義)가 허황되고 어리석은 꼴찌로 보인다.(1코린1,18참조) 그래서 유다처럼 ‘내 죄는 내가 책임 진다’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세상 적으로 보면 멋지게 보인다. 그러나 주님은 그 멋지게 보이는 죽음이 당신의 대속을 헛되게 하는 큰 죄라고 하신다.

그리고 진리를 깨달은 이들은 주님만을 의지하기에 행위의 열심을 부리지 않는다. 마리아처럼 깨달음을 위해 말씀에 머무르는 신앙을 산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마리아보다 마르타 처럼 열심 한 행위, 의로움이 첫째다(루가10,38-42) ‘예수님을 구원자로 인정하지 않는 슈바이쳐 박사 등을 교회 안에서도 본받자’고 권하듯 말이다.

어제 묵상했듯, 바벨, 카파르나움인 인간들의 공든 탑이 훌륭해 보이고 인간의 열심히 키운, 높고 푸른 나무가 하느님께서 열심히 세우신 십자가 나무보다 멋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도리를 진리인 냥 가르치는 것, 멋져 보이지만 구원을 빼앗는 도둑이며 강도다. 우리의 죄로 죽으시고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 사흗날에 부활하신 그 진리(眞理)가, 복음(福音)이, 마음 안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 구절에서 사흗날의 대속, 그 진리를 말씀을 하신다.

 

은총진리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
[모든 성인 대축일] 하늘에서 받을 상 (진복 팔단) (마태5,1-12ㄴ)24.10.31조회 20[연중 제30주간 목요일] 나의 길 (루카13,31-35)24.10.30조회 18[연중 제30주간 수요일] 좁은 문 (루카13,22-30)24.10.29조회 19[연중 제30주간 화요일]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 (루카13,18-21)24.10.28조회 17[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열두 사도 (루카6,12-19)24.10.27조회 24[연중 제29주간 토요일] 회개(悔改)하여라. (루카13,1-9)24.10.25조회 10[연중 제29주간 금요일] 시대의 징표 (루카12,54-59)24.10.25조회 16[연중 제29주간 목요일] 불 세례 (루카12,49-53)24.10.23조회 11[연중 제29주간 수요일] 늘 깨어 준비하라. (루카12,39-48)24.10.22조회 9[연중 제29주간 화요일] 깨어 있는 종 (루카12,35-38)24.10.21조회 10[연중 제29주간 월요일] 탐욕을 경계하여라 (루카12,13-21)24.10.20조회 9[연중 제28주간 토요일] 성령 모독죄 (루카12,8-12)24.10.18조회 12[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수확할 일꾼 (루카10,1-9)24.10.17조회 13[연중 제28주간 목요일] 예언자들의 피 (루카11,47-54)24.10.16조회 11[연중 제28주간 수요일] 불행하여라, 바리사이들아! (루카11,42-46)24.10.16조회 12[연중 제28주간 화요일] 자선을 베풀어라. (루카11,37-41)24.10.14조회 15[연중 제28주간 월요일] 요나 예언자의 표징 (루카11,29-32)24.10.14조회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