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9주간 토요일] 회개(悔改)하여라. (루카13,1-9)

2024. 10. 25. 오후 5:5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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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6일 토요일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회개(悔改)하여라. (루카13,1-9)


   


1독서<머리이신 그리스도 덕분에 온몸이 자라나게 됩니다.>(에페4,7-16)

7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양에 따라, 우리는 저마다 은총을 받았습니다.

8 그래서 성경도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께서는 높은 데로 오르시어 포로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9 “그분께서 올라가셨다.”는 것은 그분께서 아주 낮은 곳 곧 땅으로 내려와 계셨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10 내려오셨던 그분이 바로 만물을 충만케 하시려고 가장 높은 하늘로 올라가신 분이십니다.

11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나 교사로 세워 주셨습니다.

12 성도들이 직무를 수행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는 일을 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키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3 그리하여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14 그러면 우리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닐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사람들의 속임수나 간교한 계략에서 나온 가르침의 온갖 풍랑에 흔들리고 이리저리 밀려다닙니다.

15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모든 면에서 자라나 그분에게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분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16 그분 덕분에, 영양을 공급하는 각각의 관절로 온몸이 잘 결합되고 연결됩니다. 또한 각 기관이 알맞게 기능을 하여 온몸이 자라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사랑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화답송>시편122,1-2.3-4ㄱㄴ.4ㄷㄹ-5(1) 기뻐하며 주님의 집으로 가리라.

주님의 집에 가자!” 할 때, 나는 몹시 기뻤노라. 예루살렘아, 네 성문에, 우리 발이 이미 서 있노라.

예루살렘은 튼튼한 도성, 견고하게 세워졌네. 그리로 지파들이 올라가네. 주님의 지파들이 올라가네.

이스라엘의 법을 따라,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네. 그곳에 심판의 왕좌, 다윗 집안의 왕좌가 놓여 있네.

. 나는 악인의 죽음을 바라지 않는다. 악인이 자기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살기를 바란다.

 

복음<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멸망할 것이다.>(루카13,1-9)

1 그때에 어떤 사람들이 와서,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여 그들이 바치려던 제물을 피로 물들게 한 일을 예수님께 알렸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러한 변을 당하였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3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

4 또 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지면서 깔려 죽은 그 열여덟 사람, 너희는 그들이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잘못을 하였다고 생각하느냐?

5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6 예수님께서 이러한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밭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 그 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았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였다.

7 그래서 포도 재배인에게 일렀다. ‘보게, 내가 삼 년째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네. 그러니 이것을 잘라 버리게. 땅만 버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8 그러자 포도 재배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9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제1독서(에페4,7~16)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양에 따라,  우리는 저마다 은총을 받았습니다.(7)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와 교사로 세워 주셨습니다.(11)  성도들이 직무를 수행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는 일을 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12)  그리하여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13)

 

사도 바오로는 에페소서 4장 ~6절에서 교회 일치를 위한 권면과 교회 일치의 근거 및 당위성에 대해 제시함으로써, 교회 공동체의 하나됨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전환의 접속사 '데'(de; but)가 사용된 본절 이후부터는 그리스도께서 주신 은혜를 받은 교회 구성원들의 독특성과 그들이 다양한 봉사의 직분을 가지고 하나된 교회의 일치와 성장을 위해 힘써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한편 사도 바오로는 본절에서 그리스도께서 교회 구성원 각 사람에게 분량에 따라 은총을 나누어 주셨음을 밝힌다.

여기서 '은총', 즉 '헤 카리스'(he charis; grace)는 성경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된 의미의 죄의 용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성도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봉사의 직분을 가리킨다.

이 봉사의 직분은 선물로 주어진 것이므로 '은사'라고도 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교회를 하나의 몸으로 부르시는데, 각 지체의 개성을 무시한 채 획일적으로 부르시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각 지체에게 다양한 은사를 주셔서 각 은사를 통해(1코린7,7)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한 몸된 교회를 효과적으로 섬기게 하셨다(로마1,11).

 

여기서 7절의 원문을 보면, 한글 새 성경은 능동태로 번역했으나 원문상으로는 수동태로 되어있고, 직역하면 '그러나 그 은총이 우리 각 사람에게 주어졌다'(But to each one of us grace was given)이다.

여기서 '은총'이 주어로 사용된 것은 은총을 강조하기 위함이고, 수동태로 쓰여진 것은 은사 분배자이신 그리스도의 시혜성을 잘 드러낸다.

 

둘째로 본문의 시제가 부정(不定) 과거 시제인데, 이것은 은사의 분배가 이미 이루어졌으며, 이제 필요한 것은 인간 편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함을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양에 따라'

 

본문은 성도 개개인에게 주어진 은혜(doreas; 도레아스; gift; 선물)가 그리스도께서 주시고자 하는 분량에 다라 주어졌음을 말한다.

 

여기서 '양에 따라'에 해당하는 '카타 토 메트론'(kata to metron)은 '알맞게 측정된 것에 따라서'(according to the measure) 라는 의미이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인 교회 구성원들인 성도 각자에게 가장 알맞는 은사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측정하시고,그에 적합한 봉사의 직분을 주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다른 사람의 은사를 무시하거나 자신의 은사만을 높여서는 안된다.

 

반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다른 사람이 잘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거나 평가 절하해서도 안된다.

 

그 누구보다 나를 가장 잘 아시는 하느님께서(로마8,29) 나에게 가장 알맞는 은사를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그 은사를 자랑삼거나 불만삼는 것이 아니라 그 은사로써 오직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교회와 지체를 섬기는 것이다(에페4,12).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와 교사로 세워 주셨습니다' (11)

 

이 구절에 대해서는 9월 18일 연중 제24주간 화요일(1코린12,12~14.27~31ㄱ)의 코린토 1서 12장 28절 주해 보면 좋겠다.

 

다만 빠진 부분만 보충하면, 여기서 '복음 선포자'는 선교사처럼 복음이 아직 전해지지 않은 곳에 가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이에 해당하는 '유앙겔리스타스'(euanggelistas)의 원형 '유앙겔리스테스'(euanggelites)는 '복음을 전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유앙겔리조'(euanggelizo)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번역 그대로의 의미를 나타낸다.

 

이 단어는 신약 성경에서 단 세 번 밖에 사용되지 않았는데, 사도행전 21장 8절에서는 필리포스에 대해서 사용되어 '복음 선포자' 로 번역되었고, 티모테오 후서 4장 5절에도 티모테오에 대해서도 사용되었다.

 

'어떤 이들은 목자나 교사로 세워 주셨습니다'

 

'목자'로 번역된 '포이메나스'(poimenas)의 원형 '포이멘'(piomen)은 본래 '보호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어근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가축지기', '양치는 목자'를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가리켜 '나는 착한 목자'라고 하셨을 때에도 이 단어가 쓰였다(요한10,11).

 

같은 어근에서 파생된 '포임네'(poimne)가 '양떼'를 의미한다는 것은(루카2,8; 1코린9,7) 이 '포이멘'(poimen)이 양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임을 잘 나타낸다.

 

한편, 목자를 바로 이어 등장하는 교사와 동일한 직분으로 보는 견해와 다른 직분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먼저 동일한 직분으로 보는 견해 '교사'를 가리키는 '디다스칼루스'(didaskalus) 앞에 관사 '투스'(tus)가 없다는 점을 그 근거로 둔다.

이 견해에 따르면 '목자'는 곧 '가르치는 자'(교사)라는 것이다.

 

코린토 1서 12장 28절에서 '사도'와 '예언자' 다음에 '교사'만 언급되는 점도 이 견해를 지지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목자'와 '교사'를 다른 직분으로 보는 경우에는 먼저 '목자'를 '감독' 과 '원로'로 나뉘어지는 교회를 다스리는 직분으로 보고, '교사'를 성경을 해석하고 그 내용을 가르쳐 영적으로 인도하는 직분으로 본다.

 

실제로 '목자'라는 용어는 필리피서 1장 1절이나 티모테오 1서 3장 2절에서는 '감독'이라는 용어와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되었고, 사도행전 14장 23절이나 티모데오 1서 4장 14절에서는 '원로'(단)라는 용어와도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되었다.

 

위의 두 견해 중에서 문법적으로 보면, 목자가 곧 가르치는 교사라는 견해가 타당하다.

가르치는 일은 사목의 필수적인 부분이고, 목자와 교사는 서로 결합하여 한 가지 일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성도들이 직무를 수행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는 일을 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 (12)

 

먼저 본절에서 전치사가 세 개 쓰였는데, 성도들을 준비시키려는 것이라는 구절 앞에 사용된 전치사는 '프로스'(pros)인 반면에, 직무를 수행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는 일을 한다는 구절 앞에 사용된 전치사는 '에이스'(eis)이다.

 

전치사 '에이스'(eis; for)가 최종 목적의 의미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볼 때, 본절은 성도들을 준비시키는(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to prepare God's people; for the perfecting of the saints) 목적이 곧 직무를 수행하는 일(봉사의 일; the work of the ministry; the work of service)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본절은 일차적으로 '이것은 성도들을 준비시켜서 봉사의 직무를 수행하게 하고 (결국)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도록(성장시키도록) 하기 위함이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

 

즉 에페소서 4장 11절에 거론되고 있는 직분자들은 성도들을 온전케 하고 준비시키기 위해 직분(직책)을 부여받았으며, 그 직분의 수행의 결과로 준비된 성도들은 봉사의 일을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콜로사이서 1장 28절에서 성도들을 가르치는 목적을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사람으로 굳건히 서 있게 하려고' 라고 말하며, 본절과 동일한 사상을 보였다.

 

원문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기 위함'에 해당하는 전치사구 앞에 쉼표(,)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을 때, 성도들을 준비시켜 봉사의 일을 하게 하는 궁극적 목적이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는 데에 있음이 잘 드러난다.

 

여기서 '준비'에 해당하는 '카타르티스몬'(katartismon)은 신약 성경에서 오직 본문에만 사용된 단어로서 '온전'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힘과 조화를 이루어 발전하게 한다' 또는 '원래 있던 제 자리로 되돌리다'라는 의미이다.

 

후자는 의학 용어로 사용된 경우로서 '탈골된 뼈를 제 자리로 맞추어 넣다'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봉사의 일을 하는 것이나, 결국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은 사람이 피조물로서 또한 성도로서 제 위치에 섰을 때 자연스럽게 되는 일임을 보여준다.

 

한편, '직무'로 번역된 '디아코니아스'(diakonias)는 로마서 12장 7절에서는 '봉사'로 번역되었는데, 원어로는 '디아코니아'(diakonia)라는 동일한 단어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로마서 12장 7절에의 경우에는 은사로서의 봉사를 말하고 본문의 경우는 교회안의 성도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이루어지는 봉사를 말한다.

 

이 두 경우를 함께 생각할 때, 사람들 중에는 다른 사람을 잘 섬기는 특별한 은사를 가진 경우도 있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지 섬기는 일을 기본적인 의무로 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킨다(세운다)는 말은 교회를 건물로 비유했던 에페소서 2장 21절, 22절의 표현과 관련된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체를 이루는 각 성도들이 서로 연결되어 성전으로 만들어 가게된다.

 

그런데 이 일이 가능하려면, 성도 각자가 온전하게 준비되어야 한다는 것이 본절의 요지이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온전하지 않고 준비되지 않으면, 각 사람이 연결되어 만들어지는 교회라는 건물이 결코 온전히 세워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13)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매일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오늘 복음은 이스라엘에서 벌어진 두 비극적인 사건을 소개합니다.

하나는 유다 총독이던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학살한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지면서 열여덟 사람이 희생된 사건입니다.

당대의 유다인들은 어떤 재앙이 발생하였을 때, 그 원인을 희생자들의 잘못에서 찾는 ‘인과응보’적 사고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위의 두 사건을 보고서도 자연스럽게 희생자들이 저지른 죄악과의 연관성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 대한 판단에서 오히려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라는 경고로 이야기의 초점을 옮기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이어지는 무화과나무 이야기는 회개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해마다 열매를 맺는 무화과나무에 무려 삼 년이나 열매가 없었다는 것은, 무화과나무로 상징되는 하느님 백성이 회개의 열매 맺기를 계속해서 거부하고 있음을 말해 줍니다.

삼 년, 곧 세 번씩이나 기회를 주었던 주인은 이제 포도 재배인을 불러서 그 무화과나무를 잘라 버리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재배인은 주인을 만류하며 한 해 동안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는 정성과 수고를 조금만 더 해 보겠다고 합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누리는 다양한 성사의 은총은 회개의 열매를 맺도록 예수님께서 거저 주신 좋은 거름들입니다.

우리는 분명 은혜로운 시기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은혜로운 시기가 언제까지고 계속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유예 기간이 ‘한 해’라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회개의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음을 뜻합니다.

얼마 남지 않은 이 은혜로운 시기에 우리는 정말로 회개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혹시 아버지 하느님의 인내심을 시험하며 여전히 그 소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보았으면 합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하느님당신 날개 그늘에 저를 숨겨 주소서.

 

복음(루카13,1-9)

그때에 어떤 사람들이 와서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여 그들이 바치려던 제물을 피로 물들게 한 일을 예수님께 알렸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러한 변을 당하였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3 아니다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

= 제물을 어떻게 바쳤길래 멸망할 것이라 하시나? 제물을 자신의 뜻, 소원을 얻어내기 위해 곧 ‘하느님 내 정성을 받으시고 내 소원을 들어 주세요’하는 그 거래의 제사로 드렸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그런 제물을 받지 않으신다. 하느님은 흠 없는 깨끗한 제물만 받으신다. 곧 흠도 티도 없는 깨끗한 그리스도의 제물만 받으신다.(히브10,1-5참조)

 

(히브10,5) 5 그러한 까닭에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야훼)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 하느님은 사랑하는 당신 외아들을 인간의 육(肉)을 입혀서 인간들의 죄(罪)의 속죄 제물로 보내셨다. 신성(神性)이 없는 인성(人性), 그 육으로 모든 고난을 다 받으시고 구원의 새 계약을 완성하신 진리의 제물로 자신을 바치신 것이다.(1베드4,1참조)

 

또 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지면서 깔려 죽은 그 *열여덟 사람너희는 그들이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잘못을 하였다고 생각하느냐? 5 아니다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 열여덟 사람이 무슨 잘못을 한 것일까? 먼저 숫자 열여덟(18)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18(10+8)은 충만+부활로 완전 수다. 그러나 9+9=18의 9는 10(충만)에서 하나(1)가 빠진 그 진짜 사랑을 깨닫지 못한 모자람을 뜻한다. 오늘 본문에서는 9+9=18로 멸망할 잘못이다.

 

어제 복음인 앞절로 가 보면~

(루가12,59) 59 “내가 너에게 말한다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 마지막 한 닢, 하늘(3)의 찟어짐, 곧 땅(4)을 위한 하늘(3)의 죽음인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사랑이다. 그러니 죽은 열여덟 사람은 하늘(3)의 대속, 그 사랑 하나를 깨닫지 못해 그리스도의 길(道), 사랑을 진리로 의지하지 않고(무시하고) 자신들의 이름, 영광, 의를 위한 사랑을 진리로 살았던 것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뜻을 적대하는 큰 잘못(罪)인 것이다. 하느님은 살리시려고 그들에게 시련을 허락 하신다.

 

(판관3,12-15) 12 이스라엘 자손들이 다시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그래서 주님께서는 모압 임금 에글론을 이스라엘보다 우세하게 하셨다그들이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13 에글론은 암몬과 아말렉의 자손들을 모아 진군해 와서이스라엘을 치고 야자나무 성읍을 차지하였다. 14 그리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이 *열여덟 해 동안 모압 임금 에글론을 섬겼다. 15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께 부르짖자주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구원자를 세우셨다.

= 자신들의 모든 것도, 하느님의 사랑도 빼앗기고 시달린 열 여덟 이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밭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다그리고 나중에 가서 그 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았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였다.

=포도 밭 주인을 하느님으로 비유하셨다. 그 하느님께서 하나, 곧 사랑(진리)의 깨달음, 믿음의 열매를 찾으신다.

 

그래서 포도 재배인에게 일렀다. ‘보게내가 *삼 년째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네그러니 이것을 잘라 버리게땅만 버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 포도 밭 재배인은 하늘(삼년)의 일을 하신 예수님이시다.

 

그러자 포도 재배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주인님이 나무를 *올해(3)만 그*냥 두시지요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 *그냥 두시지요(아피엠- 용서하다. 면죄하다) *거름, 포도 재배인(栽培人)인 예수님(하늘,3)께서 손수 땅으로 들어가 썩어져(죽음) 거름이 되어 열매를 맺게 하시겠다(살리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냥 두시지요, 용서해 주세요.’ 하시는 것이다. 곧 하늘(3)의 대속(代贖)의 죽음(死亡)으로다.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

= 올해인 삼년, 그 삼(3- 하늘)이 죽으면 내년(4- 땅), 곧 땅의 존재들이 살아나게 된다는 말씀이다. 그 삼(3)의 죽음이 앞 절에서 말씀하신 ‘마지막 한 닢’인 구원의 진리, 사랑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이 ‘바로 그때에~’로 시작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찾으신 열매란? - 그리스도의 대속, 그 사랑을 진리로 깨닫고 믿어 그 진리 안에서 감사와 희망의 삶을 사는 것, 그리고 그 진리의 그리스도를 속죄(贖罪) 제물로 내주신 사랑의 하느님께 찬미로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

 

(에페1,5-6.12) 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6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12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골로1,5-6) 5 그 믿음과 사랑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마련되어 있는 것에 대한 희망에 근거합니다이 희망은 여러분이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을 통하여 이미 들은 것입니다. 6 이 복음은 여러분에게 다다라 여러분이 그 진리 안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듣고 깨달은 날부터온 세상에서 그러하듯이 여러분에게서도 열매를 맺으며 자라고 있습니다.

 

* 아버지! 당신 사랑의 날개 그늘에 숨어드나이다. 

☨보호자 성령님! 하늘의 의로움에 매이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복음(루카13,1~9)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밭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 그 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 보았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였다.  그래서 포도 재배인에게 일렀다.  "보게, 내가 삼 년째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네. 그러니 이것을 잘라 버리게. 땅만 버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자 포도 재배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 (6ㄴ~9)

 

루카 복음 13장 6~9절은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 말씀이다.

루카 복음 13장 1~5절이 죄를 회개하지 않는 사람에게 오는 멸망에 대한 경고라면, 13장 6~9절은 지금이 하느님께서 인내하시는 때로 곧바로 회개가 이루어져야 함을 교훈하는 비유이다.

 

보통 구약에서 포도나무(시편80,9~12; 이사5,2)와 함께 무화과나무 (예레24,3; 호세9,10)는 이스라엘 민족을 상징한다.

 

여기서도 '무화과나무'에 해당하는 '쉬케'(syke; a fig tree)도 일차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키지만, 넓게는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 할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문맥상 '어떤 사람'에 해당하는 '티스'(tis; a man)는 '포도밭 주인'인 '하느님'을, '열매'는 '회개'를, 그리고 13장 7절의 '포도 재배인'은 '예수님'을 상징한다.

 

그리고 포도밭에 무화과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포도밭 주인이 무화과나무에 대해 특별한 기대와 애정을 가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또한 '심어 놓았다'에 해당하는 '페튀튜메넨'(pephyteumenen; planted)는 '심다'는 뜻의 '퓌튜오'(phyteuo)의 수동태 완료 분사이다.

 

여기서 동사를 과거에 이미 완료된 동작을 가리키는 완료 시제로 표현한 것은 이 무화과나무가 심어 놓은 후 많은 시간이 지났고, 이제 완전히 자라 충분히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나무가 되었음을 암시한다.

 

13장 6절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 보았지만'에 해당하는 '제톤 카르폰 엔 아우테'(zeton karpon en aute; and sought fruit on it)에서 '제톤'(zeton)의 기본형 '제테오'(zeteo) '집요하게 구하다', '열심히 찾다'는 뜻이고, '카르폰'(karpon)은 '열매'를 말한다.

 

여기서 '제톤'(zeton)은 '제테오'(zeteo)의 현재 분사형으로서 포도밭 주인이 그 무화과나무로부터 '열매'를 구하기를 계속적으로 해왔다는 것을 나타낸다.

 

말하자면 포도밭 주인이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을 무렵부터 계속해서 그 무화과 열매를 기다리며 열심으로 찾았던 것이다.

 

루카 복음 13장 7절에는 구체적으로 삼년 동안 열매 얻기를 구했다고 말한다.

'보게, 내가 삼 년째'에 해당하는 '이두 트리아 에테'(Idu tria ete; Behold three years)에서 '보라'는 뜻의 감탄사 '이두'(Idu)를 문장 서두에 사용하여 '삼 년'(tria ete)을 강조해 주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그 동안 열매 맺기를 기다린 포도밭 주인의 인내를 암시하는데, 바로 지금까지 심판을 유보하시어 회개의 열매를 맺기를 인내하며 기다리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상징한다.

 

 '삼 년'은 하느님께서 회개의 열매를 기다리시며 인내하신 오랜 기간을 상징하지만, 하느님께서 마냥 기다리시는 것이 아니라 그 기간을 '삼 년'이란 시간으로 한정했다는 점에서 회개할 시간이 무제한을 주어지지 않고 한정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그래서 13장 7절에 '잘라 버리게'에 해당하는 '엑콥손'(ekkopson; cut down)이 등장한다.

 

이 동사의 기본형 '엑콥토'(ekkopto)는 '나무를 잘라내다' 또는 '완전히 제거하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부정(不定) 과거 명령형으로 사용되었는데, 부정과거는 완료적 결과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완전한 제거, 즉 영원한 멸망을 가리킨다.

 

이제 루카 복음 13장 8절은 비록 포도밭 주인이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잘라 버리라고 명령했음에도 불구하고, 포도 재배인이 끝까지 열매 맺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을 보여 준다.

 

여기서 포도 재배인은 하느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느님 나라의 진정한 의로움의 열매를 맺도록 도와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또한 이 구절은 하느님의 심판이 예수 그리스도의 중재로 말미암아 유보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여기서 포도 재배인의 노력은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는 것'인데, 이것은 별개의 행동이 아니라 무화과나무에 거름을 주기 위한 한 가지 행동을 중복하여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하느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느님 나라의 의로움의 열매를 맺도록 거름을 주는 것 말씀을 가르치고, 보호자 성령님을 통해 은총을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중재로 하느님의 심판이 유보되었는데, 유보된 시간도 거름을 주어 열매를 기다리는 '한 해'라는 한정된 시간이다.

 

따라서 '거름'에 해당하는 '코프리아'(kopria; dung)로 비유된 예수님의 말씀이 전해지는 바로 이때가 '구원의 시기'이며, 예수님의 말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회개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결국 영원한 멸망을 받을 수 밖에 없음을 비유해 주고 있다

 

 

 


 

20241026일 토요일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에페소서에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표현이 여러 차례 나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고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우리 각자의 구원으로 끝나지 않으며 하느님의 우주적인 계획 안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우리의 속량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에페 1,10)을 드러내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천지 창조 이전부터 이러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 계획은 교회를 통하여 이미 드러나고 있습니다.

4장 이후로는 이러한 교회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하여 줍니다.

교회는 인간적인 덕들을 실천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한 분이신 하느님 안에서 일치하여야 합니다(어제 독서).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실천하는 것은 한 분이신 하느님의 부르심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독서에서는 교회 안의 여러 직무도 같은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고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려고 주어지는 것임을 말합니다.

눈을 크게 뜨고 멀리 바라봅시다. 최종 목표는 만물이 그리스도 안으로 수렴되는 것입니다.

이 커다란 계획 안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성장하고, 우리 각자도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4,13) 다다르기까지 성장합니다.

어중간한 삶에 만족하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4,1) 살아가야 한다고 할 때 그것은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도달하라는 부르심입니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2024년 10월 26일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용서는 하느님께서 죄라고 하는 것을 받는 것그 죄에서 돌아서는 것을 회개.

 

복음(루카13,1-9)

그때에 어떤 사람들이 와서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여 그들이 바치려던 제물을 피로 물들게 한 일을 예수님께 알렸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러한 변을 당하였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3 아니다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

= 제사를 드린 것이 멸망할 죄? 그래서 모두가 회개해야 할 죄인이라 하신 것이다. *회개- 잘못을 반성하는 차원이 아니라 자기 열심인 제사 행위를 멈추고 제사의 의미, 곧 하느님의 열심인 어린양의 대속으로 용서, 생명을 주시는 그 자비의 하느님께 돌아오는 회개를 말씀하심이다.

 

(호세6,6) 6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

 

(에제33,11) 악인이 자기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살기를 바란다.

 

또 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지면서 깔려 죽은 그 열여덟 사람너희는 그들이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잘못을 하였다고 생각하느냐?

= 탑(塔)을 쌓았다는 것은 하느님을 믿지 못해 쌓은 인간의 열심, 희생, 노력인 공든 탑을 뜻한다. 곧 하느님께서 흩어버리신 ‘바벨’이며(창세11,1-9), 예수님께서 지옥까지 떨어질 것이라 하신 ‘카파르나움’으로(루카10,15) 모두 큰 죄악이다.

 

아니다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 인간의 뜻을 위한 열심, 희생, 수고의 종교 행위를 버리고 하느님의 뜻, 사랑, 진리를 깨닫고 믿기 위한 삶으로 돌아오라 하심이다.

 

(에페3,18-19) 18 여러분이 모든 성도와 함께 (사랑의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닫는 능력을 지니고, 19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이렇게 하여 여러분이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빕니다.

 

(에페4,15)15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모든 면에서 자라나 그분에게까지 이르러야 합니다그분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 진리를 말하는 것이 사랑이며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다. 그것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다.(에페1,10)

 

6ㄱ 예수님께서 이러한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밭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다.

= 비유한 포도밭의 주인 - 하느님이시다.

 

6ㄴ 그리고 나중에 가서 그 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았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였다.

= 무화과나무는 우리가 알 듯 잎만 무성할 뿐, 열매를 못 맺는다. 우리가 열매로 알고 먹는 것은 열매인 척 하는 꽃이다. 곧 인간의 열심히 드린 제사와 쌓은 공든 탑, 인간들이 무성한 행위들은 구원을 주지 못하는 열매로, 흉내를 내는 위선으로, 사람을 멸망으로 이끌기에 죄로 낳았음을 비유한다.(로마3,20참조)

 

그래서 포도 재배인(예수)에게 일렀다. ‘보게내가 *삼 년째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네그러니 이것을 잘라 버리게땅만 버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 삼(3), 곧 하늘의 열매를 찾으심이다.

 

그러자 포도 재배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주인님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거름을 주겠습니다. 9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

= * ‘그냥 두시지요’ - ‘아피엠’(융성하다. 면죄하다.) * ’거름‘ - 땅속에서 썩어짐을 뜻한다. 곧 땅을 위한 사흗날의 씨의 죽음(창세1,11), 씨는 히브리어 ’제라‘로 후손을 뜻하는데 예수님으로(갈라3,16), 그리스도의 대속, 십자가의 죽음과 사흗날의 부활로 받는 용서다. (로마4,25)

 

(마태16,21) 21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 제사와 윤리로 착한 행위가 무성했던 그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였다. 무화과나무처럼 인간이 내놓은 무성한 열심히 내놓은 죄악이다.

십자나무, 포도나무의 가지로 붙어야 구원이 이를 수 있는 깨끗함, 의, 거룩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곧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거저 얻는 깨끗함, 거룩이다.

본문6절 자기 포도밭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다.”?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는 한 나무라는 뜻이다곧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함을 깨닫고 포도나무에 붙어져 열매를 맺는 것그래서 한 나무인 것이다.

무화과나무는 구약율법옛 계약포도나무는 신약대속새 계약.

구약에 머무르면 죄를 낳고(깨닫고), 그 죄로 신약으로 건너와 새 계약의 말씀에 머무르면 생명을 낳는다. 생명을 낳게하는 죄다.

 

(로마5,20) 20 율법이 들어와 범죄가 많아지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오 복된 죄여!” * 사도 바오로 “나는 첫째가는 죄인입니다.”

 

영원한 보호자이신 지혜의 성령님!

성령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어찌 깨달을 수가 있겠습니까어찌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생명의 양식으로 먹고마음에 지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살도록늘 함께 하시어 말씀으로 저희 모두 안에 충만(充滿하소서.  진리로 자유하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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