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2주간 화요일] 종(奴)의 자세 (루카17,7-10)

2024. 11. 9. 오전 7: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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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2일 화요일

[연중 제32주간 화요일] ()의 자세 (루카17,7-10)

 

제1독서<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기를 기다리며.>(티토2,1-8.11-14)

사랑하는 그대여, 1 그대는 건전한 가르침에 부합하는 말을 하십시오.

2 나이 많은 남자들은 절제할 줄 알고 기품이 있고 신중하며, 건실한 믿음과 사랑과 인내를 지녀야 합니다.

3 나이 많은 여자들도 마찬가지로 몸가짐에 기품이 있어야 하고, 남을 험담하지 않고, 술의 노예가 되지 않으며, 선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4 그래야 그들이 젊은 여자들을 훈련시켜, 남편을 사랑하고 자녀를 사랑하며,

5 신중하고 순결하며, 집안 살림을 잘하고 어질고 남편에게 순종하게 하여, 하느님의 말씀이 모독을 받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다.

6 젊은 남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신중히 행동하라고 권고하십시오.

7 그대 자신을 모든 면에서 선행의 본보기로 보여 주십시오. 가르칠 때에는 고결하고 품위 있게 하고

8 트집 잡을 데가 없는 건전한 말을 하여, 적대자가 우리를 걸고 나쁘게 말할 것이 하나도 없어 부끄러운 일을 당하게 하십시오.

11 과연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

12 이 은총이 우리를 교육하여, 불경함과 속된 욕망을 버리고 현세에서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도록 해 줍니다.

13 복된 희망이 이루어지기를, 우리의 위대하신 하느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우리를 그렇게 살도록 해 줍니다.

14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시어,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해방하시고 또 깨끗하게 하시며, 선행에 열성을 기울이는 당신 소유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화답송시편 37(36),3-4.18과 23.27과 29(◎ 39ㄱ) ◎ 의인들의 구원은 주님에게서 오네.

○ 주님을 믿으며 좋은 일 하고, 이 땅에 살며 신의를 지켜라.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여라. 네 마음이 청하는 대로 주시리라. ◎

○ 주님이 흠 없는 이들의 삶을 아시니, 그들의 소유는 길이길이 남으리라. 주님은 사람의 발걸음 지켜 주시며, 그 길을 마음에 들어 하시리라. ◎

○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여라. 그러면 너는 길이 살리라. 의인들은 땅을 차지하리라. 거기에서 길이 살아가리라. ◎

 

복음<저희는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루카17,7-10)

7 “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 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에 앉아라.’ 하겠느냐?

8 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9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연중 제32주간 화요일 제1독서 (티토 2,1-8.11-14)

 

티토서 본론 부분인 1장 5절에서 3장 11절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이 가운데 전반부인 1장 5절~16절에서, 바오로는 교회 조직의 확립과 정통 교리 수호를 위하여 원로를 세우는데 있어, 필요한 요건에 대한 지침과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계의 명령을 주었다.

이어지는 후반부인 2장 1절~3장 11절에서는, 교회의 유지와 성장을 위하여 사목자가 행해야 할, 성도 양육을 위한 바른 지도 자세와 사목에 대한 지침을 주고 있다.

 

'나이많은 남자들은 절제할 줄 알고 기품이 있고 신중하며'(2) 

 

'나이 많은 남자'로 번역된 '프레스뷔테스'(presbytes)는 대략 60세 정도의 남자로서, 몇 세대가 함께 사는 당시의 가부장 사회에서 한 가정을 다스리는 가장 격에 있는 남자로 볼 수 있다.

또한 공동체 내에서는 아랫 사람을 훈계하며 믿음의 본을 보여야 하는 교회의 어른들이라고 볼 수 있다.

바오로는 이러한 교회의 어른들이 갖추어야 하는 덕목이 절제, 품위, 신중 및 믿음과 사랑과 인내를 갖추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첫째로, '절제'로 번역된 '네팔리우스'(nephallius; temperate)의 원형 '네팔레오스'(nephalleos)는, 바오로의 사목 서간 가운데 하나인 티모테오 전서 3장 2절에서만 나오는 단어로,'(음식을) 삼가는','(술을) 절제하는','(행위를)절제하는' 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  단어의 어원인 '네포'(nepo)동사는 '(술이) 깨다','정신차리다' 라는 뜻인데, 이것을 참조할 때 '네팔레오스'(nephalleos)는 술에 취하거나 기타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맑은 정신' 지닌 상태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이 단어 자체가 절제해야 하는 이유을 가르쳐 주는데, 그것은 바른 판단력과 분별력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적으로 깨어 있기 위해서이다.

 

둘째로,'기품이 있고'로 번역된 '셈누스'(semnus; grave,worthy of respect)의 원형 '셈노스'(semnos)는 '귀하신','공경할 만한','인격적으로 존경할 만한'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사람에 대한 바람직한 자세를 나타내는 데 쓰이는 단어로(필리4,8; 1티모3,8.11) 티모테오 전서에서는 '품위가 있어야 하고' 번역되어 있다.

하느님께나 신앙심에 대한 '경건'을 말할 때에는 티토서 1장 1절에 사용된 '유세베이아'(yusebeia)를 사용한다.

이런 용례로 보아, 여기서 말하는 '품위'란 신앙심에 대한 경건이 아니라 예의 범절이나 질서 정연함에 있어서의 윤리적인 자세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나이많은 남자들은 인격적으로도 품행이 방정하며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세째,'신중하며'으로 번역된 형용사'소프로나스'(sophronas; self-controlled)의 원형 '소프론'(sophron)은 바오로의 사목서간에만 나타나는 단어이다(티토1,8; 2,5; 1티모3,2).

형용사 '소프로나'(sophrona)의 의미는 '마음이 건전한',또는'제 정신의'이다.

어떤 영어 성경은 이것을 '술취하지 않은'이란 의미의 'sober'로 번역했는데, 이것은 '소프로나'가 술취하여 정신이 몽롱한 상태와 정반대로 맑은 상태를 의미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26장 25절에서는 '정신차린'의 의미로 쓰였고, 루카 복음 8장 35절에서는 '정신이 온전해졌다' 사실에 대한 묘사로 이 단어의 명사형과 동사형이 쓰이고 있다.

 

이런 사실들을 고려해 볼 때, 신중하다는 것은 어떤 것에 취하거나 정신이 빠지지 않고, 건전한 정신을 지켜 바른 태도를 가지는 근신의 의미를 말한다.

바오로가 나이많은 남자(2절), 젊은 여자(5절),젊은 남자(6절)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소프론'(sophron)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아, '신중'(근신)은 그리스도인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임을 알 수 있다.

 

'나이많은 여자들도 마찬가지로 몸가짐에 기품이 있어야 하고, 남을 험담하지 않고,  술의 노에가 되지 않으며, 선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3)

 

나이많은 여자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특히 '남을 험담하지 않는 것' '술의 노예가 되지 않는 것'이 거론되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 이런 일들이 나이많은 여자들에게 문제가 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남을 험담하다' 번역된 '디아볼루스'(diabollus)의 원형 '디아볼로스'(diabollos)는 '참소하다','비방하다','험담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디아발로'(diaballo)에서 유래한 단어로, '비방하기 쉬운','거짓 고발하는'(1티모3,11; 2티모3,3)이란 뜻을 갖는다.

특히 고유명사 '호 디아볼로스'(ho diabollos)는 마귀들의 왕이나 악의 창시자, 하느님과 메시아의 적대자인 사탄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마태4,10; 마태25,41; 마르코1,12; 루카4,1-13).

바로 거짓으로 참소하는 일은 마귀의 특징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묵시록12,10).

 

이런 참소하는 일을 주로 노인들에게 경계시키는 것은 나이가 들어 연륜이 쌓일수록

자신만의 안목과 기준이 굳어져, 그것으로 남을 비방하고 헐뜯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특히 말하기를 좋아하는 여자들에게서 이것은 더욱 조심해야 할 일이라고 할 수 있다(1티모3,11).

 

한편, '술의 노예가 되지 않으며'에서 '노예가 되지 않으며' 번역된 '데둘로메나스'(dedullomenas)는 '둘로오'(dulloo)의 완료 수동태 분사형이다.

'둘로오'는 '~의 종이 되다','노예 신분으로 떨어뜨리다'(2베드2,19),'속박아래 있다'(1코린7,15),

'추종하다'라는 뜻이 있는데, 비유적으로는 '어떤 사람의 필요에 자신을 완전히 내어주다'(1코린9,19), '다스림에 복종하다'(로마6,18.22)라는 의미가 있다.

여기서는 술에 속박되는 것을 말한다. 즐거움과 쾌락을 위한 술이 오히려 그것을 마시는 사람을 노예로 전락시키는 모습을 연상시킨다(1티모3,8).

 

특히 당시의 상황을 보면, 주후 1세기에는 거의 노예와도 같이 오랜 시간동안 남자들에게 속박을 당하고 살던 여자들에게 자유의 물결이 흐르고 있었다.

이 틈을 타서 여자들은 그 이전까지는 주로 남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술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술의 노예' 될 정도로 심각하게 술에 취하는 일들이 발생했으며, 그것은 교회 안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령에 취해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오히려 술의 노예가 된다면(에페5,18),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지체들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바오로는 이 문제를 단호하게 제재하고 있다.

 

'선을 가르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바오로가 본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여자들이 대중들을 가르친다는 의미가 아니라(1티모2,12) 늙은 여자들이 젊은 여자들의 생활을 지도하고 교훈하라는 것이다.

즉 아래의 티토서 2장 4~5절의 내용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말이다.

 

'하느님의 말씀이 모독을 받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다'

 

젊은 여자들이 4절과 5절의 내용(남편을 사랑하고 자녀를 사랑하며, 신중하고 순결하며,  집안 살림을 잘하고 어질고 남편에게 순종하게 하여)대로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것은, 그들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하느님의 말씀이 모독을 받아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모독을 받지' 번역된 '블라스페메타이'(bllasphemetai)는 '블라스페메오'(bllasphemeo)의 현재 수동태 가정법이다.

'블라스페메오'는 '비난하다','욕하다','모독하다','중상하다'(루카22,65; 사도13,45; 18,6; 1티모1,20; 1베드4,4)라는 뜻을 갖는다.

 

특히 복음에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향해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 군'(마르코2,7)이라고 말할 때 쓰인 단어이다.

이처럼 이 단어는 신성한 것, 즉 하느님이나 성령처럼 마땅히 흠숭해야 할 대상에 대해

모독하거나 방해하는 것을 말할 때 쓰인다(마태9,3; 마르코2,7; 3,29; 요한10,36).

본문에서는 수동태로 쓰였는데, 경멸적인 말이나 행위로 인해 하느님의 말씀이 모독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신자인 젊은 여성이 가정 안에서 남편을 존중하지 않고 자녀들을 잘 양육하지 못할 때, 결과적으로 불신자들로부터 하느님의 말씀이 형편없다고 모독받게 된다는 것 시사한다.

바오로는 유대인들이 하느님 뜻대로 행하지 못할 때, 그들이 믿는 하느님의 이름이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다고 본문과 유사하게 말한 적이 있다(로마2,24).

'가정'안에서 그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주어진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이며, 또한 그런 행위는 타인들로 하여금 하느님을 비방케 하는 요인이 된다.

 



 

 

[연중 제32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김상우 바오로 신부)

 

「미사 통상문」에서 ‘공통 감사송 4’를 많은 신자분이 좋아합니다.

“아버지께는 저희의 찬미가 필요하지 않으나, 저희가 감사를 드림은 아버지의 은사이옵니다.

저희 찬미가 아버지께는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으나, 저희에게는 주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도움이 되나이다.”

이 감사송의 내용을 곱씹어 보면 겸손한 태도를 표현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더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 감사송의 내용에 비추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종이 주인을 겸손하게 섬겨야 한다는 이야기를 꺼내십니다.

종은 종일 밖에서 일하고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주인의 식사를 준비하고 시중드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주인은 종에게 고마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로 마무리됩니다.

그러면 공동체 안에서 봉사할 때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기도할 때 우리의 마음가짐은 어떻습니까?

인정받고 싶은 욕구,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 그리고 만일 이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밀려오는 섭섭하고 서운한 감정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만큼의 기도를 하였다면 하느님께서 하나만큼의 은총을 베푸셔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당신 일을 완성하시는 데에 반드시 우리의 찬미를 필요로 하시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기도와 봉사와 희생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데 보잘것없을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라는 겸손하게 섬기는 신앙인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김상우 바오로 신부)

 

 


   

 

  연중 제32주간 화요일 복음(루카17,7~10)

 

"이와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10)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종의 위치에 두시면서 당신이 교훈하시고자 하는 핵심을 말씀하신다.

 

종이 주인의 명령에 순종했던 것처럼, 제자들도 그와 같이 한 후에는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하고 말하라고 예수님께서 명령하신다.

 

여기서 종은 루카 복음 17장 8절에 나오는 데로, 자신에게 맡겨진 바깥 일만을 끝마쳤다고 해서 휴식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바깥 일은 바깥 일일 뿐이며 다시 집안에 들어와서는 집안일을 해야만 했던 노예였다.

 

특히 '허리에 띠를 매고'는 띠를 풀고 쉬는 상태와 반대되는 상황을 나타내는 표현으로서, 일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철저하고 겸손한 봉사와 전적인 헌신만이 제자들에게 요구된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당시 사회 제도에서 가장 하부 구조를 차지했던 종의 비유를 들어 교훈하신 것이다.

 

본절인 루카 복음 17장 10절에서 종을 수식하는 '쓸모없는'에 해당하는 '아크레이오이'(achreioi; unworthy; unprofitable)는 '무익하고 가치없음'을 의미한다.

 

왜 이 종은 자신에 대해 '쓸모없는 종'이라고 일컫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라고 말해야 하는가?

 

예수님께서는 당신 구원 사업의 협력자들에게 겸손하고 당연한 자세로 하느님의 일을 할 것을 교훈하고, 또한 실제적인 삶에 있어서 하느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하느님의 말씀에 대해 무조건적 순종이 따라야 함을 명확히 해 주시는 말씀이다.

 

하느님의 자녀들이 행하는 봉사와 헌신은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총에 대한 감사의 보답이요, 표현일 뿐이기 때문이다.




 

20241112일 화요일

[연중 제32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토머스 힐 그린 신부는 계약적인 주종 관계와 사랑의 가족 관계를 비교합니다.

주종 관계는 책임과 의무를 분명하게 규정하지만, 사랑의 가족 관계는 그 이상이 필요합니다.

그는 환자와 간병하는 사람의 비유로 이 차이를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계약적인 주종 관계는 환자와 직업 간병인의 관계와 같습니다.

간병인이 성심성의껏 환자를 돌보아 준다고 하더라도 그 둘은 남남이며, 계약으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간병인은 환자를 돌보는 대가로 돈을 받기에 생각한 만큼 돈을 받지 못하면 그는 그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습니다.

또 간병인은 자신에게 더 중요한 일이 생기면, 환자를 두고 떠날 수도 있습니다.

환자의 삶이 사흘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간병인은 자기에게 더 급한 일이 있다면 임종을 지키지 않을 수 있고, 그에 따른 죄책감을 느낄 책임도 없습니다. 책임과 의무의 범위가 분명한 관계입니다.

그러나 환자를 돌보는 이가 사랑하는 아내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아내는 출퇴근 없이 밤낮으로 그를 돌봅니다. 이 돌봄에 보수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만일 환자가 사흘밖에 살지 못한다면, 아내는 모든 일을 뒤로하고 그 자리를 지킬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엄청난 일이지만, 사랑하는 아내라면 이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토머스 힐 그린, 하느님과 얼굴을 맞대고, 63-71면 참조).

오늘 복음의 종은 자신이 해야 할 것의 그 이상을 하며 주종 관계를 뛰어넘습니다.

주님께서는 처음에는 주종 관계로 우리를 부르시지만, 마침내 사랑의 가족 관계를 맺기를 바라십니다.

하느님과 적당히 거리를 두며 그저 몇 가지 계명과 의무를 지키는 것으로 충분한 계약 관계에 머무르지 말고,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가족이 되는 사랑의 관계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최정훈 바오로 신부)




 

 

 

 [연중 제32주간 화요일]

 

()의 종일 때는 아들이 된다.

 

복음(루카17,7-10)

7 “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에 앉아라.’ 하겠느냐? 8 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라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9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 하느님 앞에 모든 인간은 없음의 존재다. 흙의 먼지일 뿐이다.

 

(창세2,7) 7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 하느님의 숨이 빠진 인간은 존재가 아니다. 온 세상이 추앙하는 노벨 평화상을 받는 이들이나, 나라를 위한 독립투사, 혁명가들이나, 모든 이들이 싫어하는 감옥에 있는 강도, 살인범, 범법자 등~ 모두 하느님 앞에 쓸모없는 종(奴)임을 아는 이가 그리스도 안에서 쓸모있는 의(義)의 종이 된다. (로마3,20-25)

*종(奴), 헬라어 ‘둘로스’는 주인의 부속품, 한 부분이라는 뜻이다. 자칼(씨)과 네카버(그릇)처럼 하나로 묶여있어 주인과 하나로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죄의 종’이란, 단순히 죄가 시키는 대로 죄만 짓는 사람이라는 의미 보다는(그러면 자꾸 죄에게 책임전가 시키게 되니까) 그냥 죄 자체를 가리킨다. 죄와 연합이 되어서 죄의 한 부분, 그 죄로 존재하는 ‘죄의 종, 둘로스’다. 죄의 종 이라하면 죄라는 나쁜 놈이 있고, 그 나쁜 놈이 시키는 대로, 마지못해서 하는 덜 나쁜 나, 이렇게 이해하면 안 된다.

그의 모든 행위와 사유는 다 죄일 수 밖에 없다. 그가 아무리 착해 보이는 일을 해도 ‘죄, 둘로스’의 상태에서 자체가 죄가 된다. 죄의 종, 죄의 부분이니까,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로마10,3) 3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알지 못한 채 자기의 의로움을 내세우려고 힘을 쓰면서하느님의 의로움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한16,8) 8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 반면에 ‘주의 종’이란 하느님의 의로움이신 그리스도와 하나 되었을 때, 그분의 부분, 부속품인 둘로스(종)는 아들이 된다. ‘둘로스, 종’은 종(奴)인데 ‘의(義)의 종’일 때는 아들이 되고, 죄(罪)의 종일 때는 죄, 그자체가 되는 것이다. (각 부분, 부속품이니까)

 

독서(티토2,14) 14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시어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해방하시고 또 깨끗하게 하시며선행에 열성을 기울이는 당신 소유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 선행(善行), 좋은 일, 착한 일, 모두 ‘토브’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토브)” 하신 생명을 창조하신 그 진리의 일에 동참하는 열성을 기울여야한다. 곧 그리스도 예수님을 하느님의 의(義), 진리, 은총으로 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분의 종으로, 그분 안에서 하늘의 새 생명을 사는 새 것이 되게 해야 하는 것이다. (2코린5,17 갈라6,15)

 

*기억(記憶)해야 할 성구(聖句)~

(시편143,11) 11 주님당신 이름을 보시어 저를 살리소서당신의 의로움으로 제 영혼을 곤경에서 이끌어 내소서.

 

(이사45,24) 24 말하리라. “주님께만 의로움과 권능이 있다그분께 격분하는 자들은 모두 그분 앞에 와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리라.

 

(바룩1,15-16) 15 이렇게 말하십시오주 우리 하느님께는 의로움이 있지만우리 얼굴에는 오늘 이처럼 부끄러움이 있을 뿐입니다유다 사람과 예루살렘 주민들, 16 우리 임금들과 우리 고관들과 우리 사제들우리 예언자들과 우리 조상들에게도 부끄러움이 있을 뿐입니다.

 

(로마10,10) 10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2코린5,21) 21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필리3,5-9) 5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은 나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벤야민 지파 출신이고히브리 사람에게서 태어난 히브리 사람이며율법으로 말하면 바리사이입니다. 6 열성으로 말하면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고율법에 따른 의로움으로 말하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 흠 잡을 때 없는 참 신앙인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러나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8 그뿐만 아니라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율법에서 오는 나의 의로움이 아니라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로움곧 믿음을 바탕으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지니고 있으려는 것입니다.

= 의로움은 받아 지니는(지키는) 것이지, 인간의 행(行)함이 아니다. 받아 지닌 그 하늘의 의(義)를 진리로 전해주는 것이 선행, 착한일이다.

 

진리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믿음의 신앙을 깨닫고 믿게 하소서인간의 길선악의 법그 감옥에서 탈출하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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