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2주간 목요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루카17,20-25)

2024. 11. 10. 오전 7: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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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4일 목요일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루카17,20-25)

 


1독서<그를 종이 아니라 사랑하는 형제로 맞아들여 주십시오.>(필레7-20)

7 나는 그대의 사랑으로 큰 기쁨과 격려를 받았습니다. 그대 덕분에 성도들이 마음에 생기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8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큰 확신을 가지고 그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명령할 수도 있지만,

9 사랑 때문에 오히려 부탁을 하려고 합니다. 나 바오로는 늙은이인 데다가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님 때문에 수인까지 된 몸입니다.

10 이러한 내가 옥중에서 얻은 내 아들 오네시모스의 일로 그대에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11 그가 전에는 그대에게 쓸모없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그대에게도 나에게도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12 나는 내 심장과 같은 그를 그대에게 돌려보냅니다.

13 그를 내 곁에 두어, 복음 때문에 내가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그대 대신에 나를 시중들게 할 생각도 있었지만,

14 그대의 승낙 없이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대의 선행이 강요가 아니라 자의로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15 그가 잠시 그대에게서 떨어져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를 영원히 돌려받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16 이제 그대는 그를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종 이상으로, 곧 사랑하는 형제로 돌려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나에게 특별히 사랑받는 형제라면, 그대에게는 인간적으로 보나 주님 안에서 보나 더욱 그렇지 않습니까?

17 그러므로 그대가 나를 동지로 여긴다면, 나를 맞아들이듯이 그를 맞아들여 주십시오.

18 그가 그대에게 손실을 입혔거나 빚을 진 것이 있거든 내 앞으로 계산하십시오.

19 나 바오로가 이 말을 직접 씁니다. 내가 갚겠습니다. 그렇다고 나에게 빚을 진 덕분에 지금의 그대가 있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20 그렇습니다, 형제여! 나는 주님 안에서 그대의 덕을 보려고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내 마음이 생기를 얻게 해 주십시오.

 

<화답송>시편146,6-7.8-9.9ㄴㄷ-10ㄱㄴ(5) 행복하여라, 야곱의 하느님을 구원자로 모시는 이!

주님은 영원히 신의를 지키시고, 억눌린 이에게 권리를 찾아 주시며, 굶주린 이에게 먹을 것을 주시네. 주님은 잡힌 이를 풀어 주시네.

주님은 눈먼 이를 보게 하시며, 주님은 꺾인 이를 일으켜 세우시네. 주님은 의인을 사랑하시고, 주님은 이방인을 보살피시네.

주님은 고아와 과부를 돌보시나, 악인의 길은 꺾어 버리시네. 주님은 영원히 다스리신다. 시온아, 네 하느님이 대대로 다스리신다.

 

복음<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17,20-25)

20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서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21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2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날을 하루라도 보려고 갈망할 때가 오겠지만 보지 못할 것이다.

23 사람들이 너희에게 보라, 저기에 계시다.’, 또는 보라, 여기에 계시다.’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나서지도 말고 따라가지도 마라.

24 번개가 치면 하늘 이쪽 끝에서 하늘 저쪽 끝까지 비추는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날에 그러할 것이다.

25 그러나 그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아야 한다.”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제1독서 (필레몬7~20)

 

 "내가 옥중에서 얻은 내 아들 오네시모스의 일로 그대에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가 전에는 그대에게 쓸모없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그대에게도 나에게도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내 심장과 같은 그를 그대에게 돌려보냅니다."(10.12)

 

펠레몬서는 에페소서, 필리피서, 콜로새서 등과 함께 옥중서간으로 분류되고 특히 콜로새서와 동시에 기록되었으며 수신지가 같다.

다만 콜로새서가 콜로새 교회 공동체 앞으로 보내어진 공적 서간이라면, 필레몬서는 콜로새 교회의 지도적 인물 필레몬 개인에게 보내어진 사적 서간이다.

 

당시 A.D.62년경 바오로가 제1차로 로마 옥중에 수감된 상태에서 필레몬에게 이와 같은 개인 서간을 보낸 목적은, 오네시모스(Onesimus)라고 하는 종이 용서받도록 중재하기 위함이다.

 

오네시모스는 그의 주인 필레몬에게 해를 끼치고 달아난 노예였다.(15절,18절)

그는 필레몬에게서 무엇인가를 훔쳐서 달아났든지, 아니면 어떤 중요한 일을 맡아 떠났다가 돌아오지 않고 그냥 도주해 버린 종이었다.

당시 로마법에 의하면 이처럼 주인에게서 도망친 노예는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 오네시모스가 로마에까지 도망쳐 있다가 거기서 바오로의 사목을 통해 회심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14절)

그리고 바오로 곁에서 시중드는 자가 되었다.

 

바오로가 그를 본 서간에서 '심장과 같은 그'(12절)라고 하며, 콜로새에서는 '충실하고 사랑받는 형제'(콜로4,9)라고 소개할 정도로 오네시모스는 분명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었다.

 

바오로 사도는 이런 오네시모스를 계속 곁에 두어 자신을 시중들도록 하는 것이 유익했으나, 선한 일이 억지로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를 주인인 필레몬에게 돌려보내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필레몬에게 오네시모스를 용서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로 받아줄 것을 호소하는 이 서간을 함께 보낸 것이다.

 

결국 본 서간의 주인공들인 필레몬과 바오로와 오네시모스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용서를 체험하고 맛본 자들이, 어떻게 실제의 삶과 그 속에서 관계를 통해 그러한 용서의 사랑을 반사시키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모든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오네시모스도 되고, 때로는 필레몬도 되며, 때로는 바오로도 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옥중에서 얻은 내 아들 오네시모스'

 

바오로는 자신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사목을 돕는 사람들 가운데 몇몇을 향하여 '아들'이라고 불렀다.  티모테오를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했고(2티모1,2), 티토를 '같은 믿음에 따라 나의 착실한 아들'이라고 했다(티토1,4).

 

옥중에서 얻은 내 아들이라고 지칭된 오네시모스 역시 바오로가 전하는 복음을 통해 거듭났으며, 바오로의 사목을 많이 도운 것으로 나온다.

 

'얻은'(낳은)이라고 번역된 '에겐네사'(egennesa)의 원형 '겐나오'(gennao)는 새로운 존재로 태어남을 가리키는 단어이며, 여기서는 전존재의 변화를 나타낸다.

전에는 죄를 짓고 도주한 노예였지만, 이제는 이 모든 것으로부터 변화되어 새로운 존재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표현인 것이다.

 

바오로는 랍비 문헌이나 쿰란(Qumran)문헌에서 발견되듯이, 학생들에 대한 영적 부권(父權)의 측면에서 오네시모스를 대했다.   

바오로가 오네시모스를 영적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 안에서 갖게 되는, 교사와 제자와의 관계를 말한다.

 

한편, '오네시모스'는 '유익한 자'라는 뜻으로, 당시 노예들 가운데 흔한 이름이었다.

오네시모스는 콜로새 출신의 필레몬의 이교도 노예였다.

당시 콜로새 출신의 노예에 대한 좋지 않은 평판이 많았고, 게다가 자신의 집에 해를 끼치고 달아난 오네시모스의 행위는 주인 필레몬의 노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따라서 이 서간을 접한 필레몬은 본절에서 오네시모스란 이름을 대했을 때, 깜짝 놀랐을 것이다.

즉 사형까지 처할 수 있는 도망자 노예가 바오로의 영적 아들로 거듭났다는 소식이 그를 놀라게 했을 것이다.

 

'내 심장과 같은 그를'

 

'심장'으로 번역된 '스플랑크나'(splangchna)는 7절에서 '마음'으로 번역된 단어로서,

본래는 '창자', '내장'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당시 사람들은 인간의 감정이 내장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여겼다.

따라서 이 단어는 긍정적 감정 즉 친절, 자비심, 동정심과 같은 추상적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본절에서는 주인의 마음에 이러한 긍정적 감정을 갖도록 해주는 종이나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자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당시 부모들은 자녀를 가리켜, 자신의 '스플랑크나'라고 부르면서,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자녀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기도 했다.

 

따라서 바오로가 이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은 그가 오네시모스에게 자녀를 향해 나타내는 끓어넘치는 사랑을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친자식 이상으로 자신의 심장처럼 극진히 사랑하는 자라는 의미이다.

 

바오로는 오네시모스가 비록 노예였지만 회개하고 돌아와, 자신을 섬기는 그 모습 속에서 마치 아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그러한 극진한 사랑과 애정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회심한 오네시모스는 이미 바오로의 일부와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법적으로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주인 필레몬으로부터 오네시모스가 용서함을 받아 온전히 회복되는 것이 선행되어야 했기에, 심복같은 그를 일단 필레몬에게 보내는 것이다.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김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 복음은 하느님 나라가 올 시기에 관하여 다룹니다.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묻고 예수님께서 이에 대답하시는 것으로 복음은 시작합니다.

그런데 하느님 나라가 오는 것은 비단 바리사이뿐 아니라 당시 많은 유다인에게도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 나라가 온 것을 짐작할 수 있는 표징들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말씀에 따르면, 이때를 추정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여러 사람이 잘못된 표징을 보이며 왜곡된 길로 이끌 텐데, 그들의 꼬임에 걸려 넘어지지 말라는 당부도 잊지 않으십니다.

믿음은 정확하게 계량하거나 측정할 수 없습니다.

신앙의 여정 또한 그저 막연하고 모호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때때로 구체적 표징, 확실한 ‘계시’, 강렬한 은사를 간절히 구합니다.

이 목마름을 악용하여 인류 역사 안에서 이단과 사이비가 끊이지 않고 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가 올 시기에 관한 표징을 해석하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의 완성과 사람의 아들,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은 그리스도인이 애타게 기다리는 종말의 때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종말은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종말은 희망과 기쁨과 사랑으로 가득 찬 구원의 순간입니다.

그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을 마주 뵙게 될 것이고,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위하여 여러분은 오늘 어떤 준비를 하겠습니까?

 

(김상우 바오로 신부)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하느님의 나라가 하늘의 죽음으로 인간의 육()을 뚫고 들어오신다.

 

복음(루카17,20-25)

20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서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 인간들의 생각하고 말하는 하느님의 나라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21 또 보라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보라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 너희 가운데(어몽- 사이에), 곧 바리사이들에게 둘러싸여 계신, 그들 사이에 계신 예수님 당신을 지칭하신 말씀이다.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려, 그분의 말씀으로, 지혜로 오신 예수님이 하느님 나라다.

 

(히브1,1-3 참조하느님께서 아드님을 통하여 말씀하시다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2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을 만물의 상속자로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그분을 통하여 온 세상을 만들기까지 하셨습니다. 3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진리)에 앉으셨습니다.

 

(지혜7,25-28) 25 지혜(말씀예수)는 하느님 권능의 숨결이고 전능하신 분의 영광의 순전한 발산이어서 어떠한 오점도 그 안으로 기어들지 못한다. 26 지혜(예수)는 영원한 빛의 광채이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 없는 거울이며 하느님 선하심의 모상이다. 27 지혜는 혼자이면서도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자신 안에 머무르면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며 대대로 거룩한 영혼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하느님의 벗과 예언자로 만든다. 28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지혜와 함께 사는 사람만 사랑하신다.

= 하느님의 말씀, 지혜이신 예수님을 구원의 진리로 깨달은 사람만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은 이들이 또한 하느님의 나라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중~‘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 하늘(샤마임- 하늘들)의 복수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지혜의 말씀인 그리스도의 복음을 구원의 진리로 깨달은 이들이 하늘인 것이고, 그 ‘하늘들 안에 계신 아버지’라는 말씀이신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의 나라가, 뜻이 땅(흙인 나)에서도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 하신 것이다.

 

2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날을 하루라도 보려고 갈망할 때가 오겠지만 보지 못할 것이다.

사람의 아들의 날곧 하느님의 나라를 너희들이 생각하고 말하는그 하느님의 나라를 갈망할 때는 하루도 보지 못할 것이라 하신 것이다.

 

23 사람들이 너희에게 보라저기에 계시다.’, 또는 보라여기에 계시다.’ 할 것이다그러나 너희는 나서지도 말고 따라가지도 마라.

= 너희들이 원하는 하느님의 나라를 찾지 말라, 다시 반복하여 강조하신 말씀이다.

 

24 번개가 치면 하늘 이쪽 끝에서 하늘 저쪽 끝까지 비추는 것처럼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날에 그러할 것이다.

= 하느님의 나라를 완성하실 그리스도의 영, 성령은 번개처럼 일하신다.

 

 (지혜7,27.-8,1) 27 지혜(예수의 영)는 혼자이면서도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자신 안에 머무르면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며 대대로 거룩한 영혼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하느님의 벗과 예언자로 만든다. 8,1 지혜는 세상 끝에서 끝까지 힘차게 퍼져 가며 만물을 훌륭히 통솔한다.

 

25 그러나 그(人子)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아야 한다.”

= 사람의 아들(예수님)이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는 먼저 배척을 받아 육이 죽으시고(벗으시고) 영으로 살아 나셔야, 그 영이 사람(제자들) 안으로 들어오셔서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신다는 말씀이시다.

(로마8,9) 9 그러나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갈라5,4-5) 4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는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와 인연이 끊겼습니다여러분은 은총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5 그러나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믿음으로 의로워지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루가2,34)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 세상(世上) 속에 갇힌 하느님의 백성, 자녀들을 먼저 구하셔야 한다. 그런데 그 하느님의 자녀(제자)들이 세상 것에 물들어 따르려하지 않기에, 그 세상의 것을 치워 버리는, 빼앗아 버리는 그 고난으로 쓰러지게 하신 후, 하늘의 것으로 채우시고 입히셔서 다시 일으키는 일을 하실 것이기에 제자들의 배척과 사람들의 반대를 받으실 것이라는 말씀이다.

 

(요한3,3) 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2테살1,5) 5 이는 하느님의 의로운 심판의 징표로여러분이 하느님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사실 여러분은 하느님의 나라를 위하여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 또한 세상의 죄에 물든 그 하느님 백성, 자녀(제자)들의 죄를 예수님 당신의 정결한 피로 깨끗하게 씻어 거룩하고, 의롭게 하신 다음 데려가셔야 했기에, 십자가의 대속, 그 죽음, 고난을 먼저 받으셔야 함도 말씀하신 것이다.

 

(요한19,30) 30 그래서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

 

(로마14,17) 17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

= 성령의 이끄심, 보호하심으로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그 십자가가 거저 주는 의로움으로 하늘의 기쁨, 평화를 누리고 있다면, 그래서 하느님께 감사의 축제, 예배(미사)를 드리고 있다면 하느님 나라가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요한4,23) 23 그러나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지금이 바로 그때다사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이들을 찾으신다.

 

☨영원한 보호자 천주의 성령님!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흙인 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복음 (루카17,20-25)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20ㄴ~21)

 

바리사이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오는 '때'에 대하여 질문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때에 대해서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하느님의 나라의 실체에 대한 대답을 하신다.

 

하느님의 나라의 실체에 대해 모르고, 그 도래의 시기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이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인식을 잘못하고 있음을 먼저 가르쳐 주신다.

 

여기서 '눈에 보이는 모습'에 해당하는 '파라테레세오스'(paratereseos; observation)의 원형 '파라테레시스'(parateresis)는 눈으로 볼 수 있는즉 가시적 방법으로서의 '관찰'이라는 뜻이다.

 

특히 여기서는 표징들에 대한 관찰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

 

바리사이들의 질문 속에는 하느님의 나라가 올 때 어떤 징조가 나타나지 않겠느냐?는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고 대답하신다.

 

이것은 하느님의 나라가 인간이 가시적으로 어떤 표징들을 주의 깊게 관찰해 내어서 그 정확한 '때'가 언제인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리사이들을 포함한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께서 메시야를 통해 선민 이스라엘 가운데 가시적인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시고, 죽은 자들을 생명으로 다시 일으키시며, 새 하늘과 새 땅을 세우시는 지극히 복된 나라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으로 말미암아 이미 도래한 하느님의 나라는 유대인들이 흔히 생각하듯, 인간의 물리적 시각으로 확인되는 세상적인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고 말씀해 주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미래에 당신의 재림을 통해 온전히 완성되어져 나타날 하느님의 나라를 부정하신 게 아니다.

 

다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도래로 이미 이 땅 가운데 영적인 하느님의 나라, 즉 당신 안에서 하느님의 통치가 실현되고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바리사이들의 영적 무지와 하느님의 나라의 본질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지적해 주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여기서 '가운데에'에 해당하는 '엔토스'(entos; in the midst of; among; within)을 '안에'(within)라고 번역하면, 하느님의 나라가 '개인의 내부에', '마음 안에'라는 뜻이 되고, '가운데에'라고 번역하면, '너희 가운데에' 혹은 '이 세상 가운데'라는 뜻이 된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셨을지라도, 당시 예수님 앞에는 함께 동행한 제자들도 있었기 때문에, 후자가 더 타당한 번역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있다'에 해당하는 '에스틴'(estin; is)은 원형 '에이미'(eimi)의 현재 시제이다.

 

이 시제는 하느님의 나라의 미래적 측면보다는 하느님의 나라의 현재, 즉 현존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예수님의 인격과 그의 활동을 통해 현재 임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구원과 통치를 인정하며,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이는 이들 가운데 이미 임하고 있는 나라이므로, 바로 이 순간도 우리는 실제로 하느님의 나라를 체험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20241114일 목요일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1독서에서 봉독되는 필레몬서는 한 장으로 구성되었고, 성경에서 가장 짧은 책입니다.

부유한 신자 필레몬의 노예였던 오네시모스가 도망쳤다가 바오로 사도를 만났습니다.

그는 바오로를 통하여 입교하였고, 옥중에 있는 바오로의 시중을 들었습니다.

그 뒤 바오로는 오네시모스의 안전을 생각하여 그를 다시 필레몬에게 돌려보냅니다.

그러면서 바오로는 필레몬에게 편지로 오네시모스가 노예로서 지은 죄를 용서하고 신앙의 형제로 너그럽게 받아들여 줄 것을 간곡하게 부탁합니다.

바오로는 신앙의 지도자로서 필레몬에게 요구할 권위가 있음에도, 그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대의 승낙 없이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대의 선행이 강요가 아니라 자의로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필레 14).

바오로가 이 두 그리스도인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려고 쓴 방식은 권위로 지시하기보다 필레몬의 성숙한 신앙과 애덕을 믿으며 그의 선한 마음을 일깨우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바오로는 오네시모스가 필레몬에게 입힌 손해를 자신이 직접 갚아 주기로 합니다.

이러한 희생적 사랑의 행위가 필레몬의 마음을 누그러뜨렸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두 사람 사이를 섬세하게 중재하는 바오로의 모습에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갈등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중재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신앙의 차원에서 이 사건을 다시 보며, 그들 안에 있는 성숙한 신앙과 애덕에 기대야 합니다.

권위적인 지시보다, 선의를 움직이게 하는 부탁과 제안이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손해를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중재자의 희생적인 행위도 화해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최정훈 바오로 신부)

 



 


 

  

2022년 11월 10일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이런 거 였어?”

 

복음(루카17,20-25)

20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서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21 또 보라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보라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 나라가 너희 가운데 있다. *너희 가운데(어몽-사이), 곧 바리사이들 사이에 계신 예수님 당신을 말씀하심이다.

*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의 주권, 말씀이 통치하는 곳이다. 하느님나라 ‘바실레이아’는 ‘섬기다.’ 라는 뜻이다. 곧 예수님께서 법, 어둠인 세상에, 빛인 말씀으로 오셔서 하느님의 뜻, 진리를 흘려주심으로 섬겨주신다.(마태20,28)

 

(요한1,4-5.9.12-13)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5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9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13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야고1,18) 18 하느님께서는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시어우리가 당신의 피조물 가운데 이를테면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2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날을 하루라도 보려고 갈망할 때가 오겠지만 보지 못할 것이다.

= 자신들의 뜻, 의(義)를 위해 열심히 율법(제사와 윤리)을 고집하는 한, 하느님 나라로 오신 예수님의 섬김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요한5,43-44) 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다른 이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너희는 그를 받아들일 것이다. 44 자기들끼리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은 추구하지 않으니너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요한6,37-40) 7 (그러나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고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38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39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40 내 아버지의 뜻은 또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아멘)

 

23 사람들이 너희에게 보라저기에 계시다.’, 또는 보라여기에 계시다.’ 할 것이다그러나 너희는 나서지도 말고 따라가지도 마라.

= 보이는 현상을 쫓지 말라는 말씀이다. 모두 속이는 가짜이기 때문이다.

 

(마태24,24)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나타나할 수만 있으면 선택된 이들까지 속이려고 큰 표징과 이적들을 일으킬 것이다.

= 오늘 날은 큰 표징, 기적 같은 것으로 일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예수님, 사도들의 때에는 땅의 질병, 죽음을 통해 하늘의 생명, 영원한 자유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시기 위해 표징과 기적을 일으키셨지만, 오늘날은 성령께서 말씀을 깨닫게 하심으로 살리시는 일을 하신다.

 

(로마14,17) 17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옛 계약육의일이 아니라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

 

(2코린3,6) 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새 계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이 계약은 문자가 아니라 성령으로 된 것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

 

(갈라6,7-8) 7 착각하지 마십시오하느님은 우롱당하실 분이 아니십니다사람은 자기가 뿌린 것을 거두는 법입니다. 8 자기의 육()에 뿌리는 사람은 육에서 멸망을 거두고성령에게 뿌리는 사람은 성령에게서 영원한 생명을 거둘 것입니다.

 

24 번개가 치면 하늘 이쪽 끝에서 하늘 저쪽 끝까지 비추는 것처럼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날에 그러할 것이다.

= 하느님 나라는 말씀 안에 머무름으로 “아! 이런 거 였어?” 이렇게 번쩍, 순간적, 깨달음이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는 ‘보이지 않는다.’ 하신 것이고 ‘여기 저기 따라다니지 마라’ 하신 것이다.

 

25 그러나 그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아야 한다.”

= 먼저 죄인들에 의해 예수님께서 죽으셔야 한다는 말씀인데, ‘내 뜻, 의로움을 위해 내가 섬겼던 예수님이 먼저 내 안에서 죽으셔야 한다’는 말씀이다. 곧 육(肉)의 뜻, 의(義)를 위해 살았던 내가 예수님과 함께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의 영, 성령으로 오셔서 비워진 나와 한 몸이 되실 수 있다는 말씀이다.

그렇게 우리 사이에 계셨던 하느님 나라가 내 안에 들어오심이다. 그리고 육신을 벗는 날, 더러웠던 나를 목숨 바쳐 사랑해 주신 영원한 사랑이신 하느님께 들어가 영원히 살게 된다.

 

진리이신 천주의 성령님!

마음을 비울 수 있도록 깨닫고믿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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