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5일 금요일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 (루카17,26-37)
제1독서<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는 이라야 아버지도 아드님도 모십니다.>(2요한4-9)
4 그대의 자녀들 가운데, 우리가 아버지에게서 받은 계명대로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매우 기뻤습니다.
5 부인, 이제 내가 그대에게 당부합니다. 그러나 내가 그대에게 써 보내는 것은 무슨 새 계명이 아니라 우리가 처음부터 지녀 온 계명입니다. 곧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6 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가 그분의 계명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고, 그 계명은 그대들이 처음부터 들은 대로 그 사랑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7 속이는 자들이 세상으로 많이 나왔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고 고백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런 자는 속이는 자며 ‘그리스도의 적’입니다.
8 여러분은 우리가 일하여 이루어 놓은 것을 잃지 않고 충만한 상을 받을 수 있도록 자신을 살피십시오.
9 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지 않고 그것을 벗어나는 자는 아무도 하느님을 모시고 있지 않습니다. 이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는 이라야 아버지도 아드님도 모십니다.
화답송시편 119(118),1.2.10.11.17.18(◎ 1 참조) ◎ 행복하여라,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이들!
○ 행복하여라, 온전한 길을 걷는 이들,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이들! ◎
○ 행복하여라, 그분의 법을 따르는 이들, 마음을 다하여 그분을 찾는 이들! ◎
○ 제 마음 다하여 당신을 찾나이다. 당신 계명 떠나 헤매지 않게 하소서. ◎
○ 행여 당신께 죄를 지을세라, 마음 깊이 당신 말씀 간직하나이다. ◎
○ 당신 종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제가 살아 당신 말씀 지키오리다. ◎
○ 제 눈을 열어 주소서. 당신의 놀라운 가르침 바라보리이다. ◎
복음<그날에 사람의 아들이 나타날 것이다.>(루카17,26-37)
26 “사람의 아들의 날에도 노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28 또한 롯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짓고 하였는데,
29 롯이 소돔을 떠난 그날에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30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에도 그와 똑같을 것이다.
31 그날 옥상에 있는 이는 세간이 집 안에 있더라도 그것을 꺼내러 내려가지 말고, 마찬가지로 들에 있는 이도 뒤로 돌아서지 마라.
32 너희는 롯의 아내를 기억하여라.
33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
3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35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36)·37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님, 어디에서 말입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제1독서(2요한4~9)
"속이는 자들이 세상으로 많이 나왔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으로 오셨다고 고백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런 자는 속이는 자이며 '그리스도의 적'입니다." (7)
성서 학자들은 요한의 세 편지(1,2,3서)의 저자를 세 편지에 나오는 '원로'라는 칭호에서 찾는다.
'원로'라는 칭호는 아시아 속주의 여러 교회에서 흔히 주님의 직제자 요한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던 사람을 가리킨다.
저자는 자신을 나자렛 예수님을 직접 본 목격 증인으로 내세우는데(1요한1,1~3; 4,14), 그는 요한계 공동체에 속하면서 사도 전통을 직접 이어받은 사도 요한 바로 다음 세대의 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세 편지는 메시지, 문체, 어휘 등이 매우 비슷해서 저자가 동일 인물로 간주한다.
세 서간의 집필 연대는 폴리카르푸스와 유스티누스가 요한1서를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150년 이전에 쓰인 것이 확실하다.
아마도 요한 복음이 쓰인 다음인 A.D.100년경이 될 것으로 본다.
요한 2서는 요한계 공동체에 속한 원로가 '선택받은 부인과 그 자녀들에게'(2요한1절) 보내는 편지다.
여기서 선택받은 부인은 원로가 속한 공동체와 가까운 자매 공동체를 말한다(2요한13절).
요한 2서와 3서의 구조는 1서와는 달리 복잡하지 않고 매우 단순하며, 한 장짜리 파피루스에 적어 보낸 고대의 짧은 편지 형식, 곧 첫 인사, 본문, 끝 인사의 형식을 그대로 따른다.
요한2서의 주된 관심사는 '진리'이다.
저자는 인사(1~3절)에서 진리를 알게 된 모든 사람은 '선택받은 부인'인 이 공동체를 사랑한다고 밝히고, 이 편지의 수신자들이 '진리와 사랑'안에서 은총과 자비와 평화를 얻기를 기도한다.
이어지는 본문(4~6절)에서 저자는 부인의 자녀들, 곧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진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부인에게 서로 사랑하자고 권면한다.
사랑이란 하느님의 계명을 따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계명은 우리가 처음부터 들어온 대로 사랑을 따라 살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속이는 자들, 곧 그리스도의 적들이 이 공동체에 도착하여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현혹시킬 것을 우려한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육화)를 부정한다.
원로는 이들에게 단호한데, 이런 자들은 집 안에 들여놓아서도 안되고 인사를 해서도 안된다(10~11절).
이것은 진리를 따라 사는 자녀들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다.
요한의 세 편지는 요한계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전통 신앙을 위협하는 '그리스도의 적들'에게서 공동체를 보호하려는 데 그 집필 의도가 있다.
①먼저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부정한 가현주의자들(Docetists)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안티오키오의 성 이냐시오가 공격하던(A.D.110년경) 이단론자들이다.
②둘째로 영적인 존재인 그리스도가 보통 인간 예수에게 세례 때에 내려왔다가 십자가 처형 직전에 돌아갔다고 주장하는 체린투스(Cerinthus)를 생각할 수 있다.
체린투스는 리옹의 주교 성 이레네오가 사도 요한의 적대자로 지목한 인물이다.
③세째로 세상과 육체를 경멸했던 2세기의 영지주의자들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학자들은 요한의 편지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적들'은 이들의 보다 원초적인 형태로 본다.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김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 복음은 하느님 나라가 오는 방식과 장소에 대하여 다룹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이야기를 예로 드십니다.
여기서 노아의 방주와 롯의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이어서 롯의 아내 이야기를 상기시키며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구절에서 ‘살리다’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는 ‘생명을 주다’, ‘탄생시키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이 동사는 드물게 사용되는데, 이 대목에서는 자신의 현세적 생명을 희생한 이들이 새로운 생명, 곧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리라는 희망을 강조하는 의미로 쓰입니다.
그다음, “그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라는 설명이 덧붙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완성에 대하여 아무도 예상할 수 없으며 그것이 평범한 일상 가운데 긴박하고 갑작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끝으로,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런 일이 어디에서 이루어질지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라며 직접적인 대답을 피하시는듯 해 보입니다.
전통적으로 ‘독수리’ 같은 맹금류는 구약의 심판 장면에 자주 등장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는 ‘그 누구도 종말과 하느님의 심판을 피해 갈 수 없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위령 성월을 보내며 죽음과 종말, 하느님 나라의 완성에 대하여 묵상합니다.
이로써 우리의 오늘은 새로운 의미를 찾으며 희망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김상우 바오로 신부)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진리(眞理)?
(2요한1-9)
4 그대의 자녀들 가운데, 우리가 아버지에게서 받은 *계명대로 眞理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매우 기뻤습니다.
= 하느님의 계명은 진리이고, 그 진리 안에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5 婦人, 이제 내가 그대에게 당부합니다. 그러나 내가 그대에게 써 보내는 것은 무슨 새 계명이 아니라 우리가 처음부터 지녀 온 *계명입니다. 곧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 계명은 ‘사랑하라’인 것이고 계명은 하느님의 계명으로 진리인 것이고 그 진리 안에서 사랑하라는 것이다.
앞1절~ 원로인 내가 선택받은 婦人과 그 子女들에게 인사합니다. 나는 그대들을 진리 안에서 사랑합니다. 나뿐만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사람이 그대들을 사랑합니다.
6 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가 그분의 계명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고, 그 계명은 그대들이 처음부터 들은 대로 그 사랑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 그리고(진리의 계명) 그 사람은 우리가 그분(하느님)의 계명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고, 그 계명(진리의 사랑)은 그대들이 처음부터 들은 대로 ‘(진리의 계명)그 사랑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가 된다.
결론은 肉을 위한 인간의 진리의 계명이 아닌, ‘靈을 살리는 하느님의 진리의 계명으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眞理~ 육의 죽음으로 끝나야 할 땅의 존재들을 하늘의 생명으로 영원히 살게 하시기 위해 하늘이 죽어, 그 하늘의 생명력을 주는 것이다. 또한 죄인들을 하늘의 존재로 영원히 살게 하시기 위해 그들의 죗값으로 대신 죽으신 십자가의 예수님이 하느님의 사랑, 구원의 계명, 진리이신 것이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 그런데 사람의 계명, 그 길이 진리라고 우기는 이들이 있다. 속이는 것이다.
7 속이는 자들이 세상으로 많이 나왔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고 고백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런 자는 속이는 자며 ‘그리스도의 적’입니다.
= 하느님의 말씀(계명, 진리)이 사람의 몸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시고(요한1,14), 그 몸으로 죄인들의 속죄 제물이 되셨다.
(요한3,16)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속죄 죄물로)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 이 말씀을 믿지 않고 말하지 않는 것이 하느님의 뜻, 계명을 거스르는 적(敵)이 되는 것이다.그래서 조심해야 한다.
(티토1,14) 14 유다인들(사람)의 신화, 그리고 *진리를 저버리는 *인간들의 계명에 정신을 팔지 않게 하십시오.
= ~외 이사야 29,13 48,18 55,8 등 참조 하세요.
8 여러분은 우리가 일하여 이루어 놓은 것을 잃지 않고 충만한 상을 받을 수 있도록 자신을 살피십시오.
=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충만한 償, 하느님의 계명, 진리,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내려 주시는, 곧 대속의 십자가를 통해 거저 은총으로 주시는 하늘의 평화(쉼, 안식), 생명(구원)이다.
앞3절~ 하느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 주시는 은총과 자비와 평화가 진리와 사랑 안에서 우리와 함께 있을 것입니다.
9 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지 않고 그것을 벗어나는 자는 아무도 하느님을 모시고 있지 않습니다. 이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는 이라야 아버지도 아드님도 모십니다.
= 그리스도의 가르침, 곧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만 하느님을 내 아버지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요한7,16)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의 가르침은 내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것이다.
= 그러니 구원과 상관없는 인간의 지혜로 말하는 그 가르침에서 벗어나야 한다.
(1티모4,1) 1 성령께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때에 어떤 이들은 사람을 속이는 영들과 마귀들의 가르침에 정신이 팔려 믿음을 저버릴 것입니다.
= 사람을 속이는 영, 곧 마귀(사탄)들의 가르침은, 하느님의 일(뜻)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 그 자신의 만족(뜻)을 위한 일만 생각하고 살도록 한다.(마르8,33참조)
그래서 오늘 복음~
(루가17,26~37)
26 “사람의 아들의 날에도 노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 그 사람의 일만 생각하고 살았기에 홍수가 그들을 멸망시킨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 안에서 살면서 사람의 가르침으로 사람의 일 만을 생각하는, 현세의 우리 신앙인들에게 애착으로 돌아보는 그 땅의 것으로 내려가는 신앙을 살지 말라 하시는 것이다.
33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
= 사람의 목숨, 사람의 일을 버리면(구원의 가치 없음을 인정하는 것), 하늘의 생명으로 살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3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35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 둘을 하나로 데려 가시겠다는 말씀이시다. 사람의 선악의 그 두 가르침을 그리스도의 가르침, 곧 善惡을 품어 하나가 되는, 그 진리로 만들어 데려 가시겠다는 하느님의 사랑, 慈悲와 恩寵, 은혜의 말씀이시다.
(36)37ㄱ·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님, 어디에서 말입니까?” 하고 묻자,
= 그리스도의 가르침, 십자가의 복음, 그 진리의 계명이 있는 곳에서는 영원한 하늘의 생명이 주어지고, ~~
37ㄴ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
= 죽은(시체) 고기를 먹는 독수리, 곧 사람의 가르침으로 행해지는 모든 곳에서는 영원한 죽음이 있을 뿐이라 하신다.
오늘 복음을 사람의 도덕과 윤리,그 계명에 의한 죄와 악이 가득한 곳에 하느님의 진노가 내려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죄(罪)란.~ 우리를 위해 대속하신 그 그리스도(메시아)를 믿지 않는 것이 罪와惡이다.
(요한16,8-9) 8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9 그들이 죄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주님! 모든 인간은 그리스도를 통해 선택되고 창조되었기에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에 진리임을 깨닫게 허소서. 참 진리, 구원의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아멘!!!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복음(루카17,26~37)
"사람의 아들의 날에도 노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26~27)
여기서 '노아 때와 같은 일이'에 해당하는 '엔 타이스 헤메라이스 노에'(en tais hemerais Noe; in the days of Noe)를 직역하면, '노아의 날들에'로서 노아의 살아 생전을 말한다.
이것은 바로 노아의 생애에 있었던 결정적인 사건인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물 심판을 말한다.
이처럼 노아 때의 홍수 심판과 사람의 아들의 날을 비교하는 의도를 살펴보려면, 루카 복음 17장 24절의 번개와 사람의 아들의 날을 비교한 것을 보면 된다.
루카 복음 17장 24절에서 번개의 번쩍임과 비추임을 사람의 아들의 날에 비교하여 예수님의 재림은 매우 급작스러울 것이며, 동시에 세상 모든 사람들이 눈으로 확연하게 볼 수 있을 것임을 예언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도 분명 심판에 대한 하느님의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악해서 그것을 거절했다. 결국 심판은 임했고, 경고를 무시한 자들은 심판을 면치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 멸망 당한 자들에게 있어서, 그 심판은 갑작스러운 것으로 여겨졌는데, 그들은 심판의 경고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아 아무런 준비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사람의 아들의 날에도 사람들이 여러 가지 경고를 통해 알 수 있지만, 이러한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갑자기 임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느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그리스도 재림의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하느님의 경고를 통해 그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사실과 더불어 가까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는 뜻인 것이다.
루카 복음 17장 27절에서는 26절의 노아 때와 같은 일들에 관해 더욱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하고'로 나열된 동사는 모두 미완료 과거 시제이다.
이것은 그들의 삶이 항상 그러했다는 사실과, 그들이 노아의 경고를 듣고도 안일하고 익숙한 삶의 방식에서 탈피하지 않고, 계속 이전과 동일하게 살았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그것이 왜 그들에게 죄가 되는가?
루카 복음사가의 의도는 단순히 그것밖에는 다른 어느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즉 그들에게 가장 심각한 죄는 다름아닌 세상의 일들에만 가치를 두고, 그 일들에만 골몰하였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노아가 방주를 짓고 있었을 때나 그 방주에 들어가기 전까지도, 그들은 하느님의 심판이 임박해 있음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아무런 위기감없이 여전히 그들의 세속적 관심에 따라 일상사에만 열중해 있었다.
그래서 하느님의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이에 대비한 노아와 그 가족들은 구원받았지만, 그들은 멸망의 길을 갔던 것이다.
오늘날 여기 굿뉴스에서는 어떻한가?
노아때와 마찬가지로 성경의 경고를 말하는데도 뭐 별반 다른게 있는가.
온 세상이 온통 하느님의 경고로 뒤 덮고 있는데도 말이다.
올바른 가르침에 좀더 힘써야 할 것이다.
2024년 11월 15일 금요일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어떤 사람에게 세 명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는 첫 번째 친구를 가장 좋은 친구로 여겼고 늘 함께 있고 싶어 하였습니다.
두 번째 친구는 좋아하기는 하였지만, 첫 번째 친구만큼 소중하게 여기지는 않았습니다.
세 번째 친구에게는 별로 큰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임금에게서 궁으로 들어오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혹시 무슨 벌을 받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진 그는 세 명의 친구에게 임금 앞에 함께 가 달라고 차례로 부탁하였습니다.
그가 가장 좋은 친구라고 여긴 첫 번째 친구는 딱 잘라 거절하였습니다.
다음 두 번째 친구는 궁전 문 앞까지는 함께 가 줄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어렵다고 말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친구에게 부탁하였는데 그는 흔쾌히 대답하였습니다.
“그래, 기꺼이 함께 가겠네. 자네는 어떤 나쁜 짓도 하지 않았으니 두려워할 것 없네. 내가 함께 가서 임금께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잘 말씀드려 주지.”
임금의 부름은 죽은 뒤 하느님 앞에 서는 것을 뜻합니다.
첫 번째 친구는 재산입니다.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 돈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그것을 모으려고 갖은 애를 쓰지만, 죽은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없습니다.
두 번째 친구는 가족과 친척들입니다.
그들은 무덤까지 따라와 주지만, 죽은 이가 무덤에 묻히고 나면 그를 혼자 남겨 두고 돌아갑니다.
세 번째 친구는 선행입니다.
그의 선행은 그가 죽은 뒤에도 영원히 그와 함께 남아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탈무드에 나오는 유명한 세 친구 이야기로, 하느님 앞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 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상 마지막 순간에도 집과 들에 남겨진 재산에 마음을 쓰는 어리석은 자들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날에 주님 앞에 동행할 친구는 돈이나 재산이 아닌 오직 사랑의 실천뿐입니다.
(최정훈 바오로 신부)
2024년 11월 15일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
독서(2요한1,4-9)
4 그대의 자녀들 가운데, 우리가 아버지에게서 받은 계명대로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매우 기뻤습니다.
= 그런데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께 받은 계명(誡命)은 선악(善惡)의 도덕(道德)과 윤리(倫理)의 계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선악의 법, 계명을 그리스도 안에서 깨고, 벗어난 것이 진리이며 하느님의 계명이다.
사람(아담)이 나무에서 따 먹은, 그 선악에 머물면 심판으로 죽음인 것이고(창세2,16-17), 하느님의 계명인 나무 하나의 희생, 곧 십자나무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진리의 계약, 말씀에 머물면 자유, 생명이다.(탈출15,25-26 요한8,28-32 1베드2,24) *나무는 ‘스타오오스’로 ‘하느님의 계약, 기둥’이라는 뜻이다.
(티토1,14) 14 유다인들의 신화, 그리고 진리를 저버리는 인간들의 계명에 정신을 팔지 않게 하십시오.
(에페1,13) 13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위한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게 되었을 때, 약속된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 하느님의 약속인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하느님의 새 계약, 진리로 증언하시며 죄인들을 모든 죄(罪)에서 구(求)하시어 살리신다.(여한15,26 로마8,1-4 히브10,15-18)
5 부인, 이제 내가 그대에게 당부합니다. 그러나 내가 그대에게 써 보내는 것은 무슨 새 계명이 아니라 우리가 처음부터 지녀 온 계명입니다. 곧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6 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가 그분의 계명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고, 그 계명은 그대들이 처음부터 들은 대로 그 사랑(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 하느님께서 주신 말씀, 계명을 인간의 뜻, 지혜로 받으면 율법, 옛 계약, 옛 계명이 되는 것이고, 하느님의 뜻인 진리의 말씀, 구원의 복음, 곧 그리스도의 대속, 그 사랑으로 깨닫게 되면 새 계약, 새 계명인 것이다. 곧 ‘하나’다. ‘어떻게 받는가, 듣는가?‘ 에 달려있을 뿐이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어떤 이들은 옛 계약이라는 걸림돌에 걸려 넘어져서 하느님을, 그분의 뜻을 죽이는 죄인(罪人)이 되고, 어떤 이들은 옛 계약의 껍질을 부수고 그 안에 진리(眞理)에 도달한다.*
새 계약, 새 계명을 진리로 이웃에게 전해주는 것,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옛 계약, 옛 계명으로 열심을 부리며 수고하는 사람과 새 계약, 새 계명이 주는 자유를 누리는 사람, 그 중 하느님은 새 계약, 새 계명을 진리로 믿고 그 하나만 데려가심을 말씀하심이다.
(루카17,34-37) 3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 밤(심판의 날)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35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 그러나 우리 안에 옛것, 새것, 두 성향이 다 있음이다. 그러니 옛 계약(계명)의 나를 죽이고 그리스도의 대속, 그 사랑의 새 계약(계명)으로 새것(진리)로 만들어 데려 가신다는 것이다. (2코린5,17)
7 속이는 자들이 세상으로 많이 나왔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고 고백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런 자는 속이는 자며 ‘그리스도의 적’입니다.
= 하느님의 외아들(獨生子)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말씀을 담고, 사람의 육(肉)을 입으시고, 죄인들의 속죄제물(贖罪祭物)로, 구원의 진리로 오셨다.(요한1,17 1요한4,10) 그분과 한 몸이 되는 것, 진리가 됨이다.
8 여러분은 우리가 일하여 이루어 놓은 것을 잃지 않고 *충만한 상을 받을 수 있도록 자신을 살피십시오.
= 충만한 상(償), 사도가 사랑으로 전한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이 주시는 하늘의 용서, 자유, 평화, 생명, 사랑이다. 이 모든 충만(充滿)한 하늘의 상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 곧 인간들의 계명, 가르침에 흔들리지 않고 지켜야하는 것이다. 그래야 영원한 빛의 나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음이다.
9 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지 않고 그것을 벗어나는 자는 아무도 하느님을 모시고 있지 않습니다. 이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는 이라야 아버지도 아드님도 모십니다.
= 그리스도의 가르침, 곧 진리의 말씀, 구원의 복음을 벗어나 인간들의 말, 도덕과 윤리의 가르침에 머물면 그리스도 예수님도, 하느님 아버지도 없는 고아와 과부로 헛된 신앙을 사는 것이다.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 聖 예로니모) 그것이 과녁, 목적을 벗어난 죄(罪)다.
(1베드1,8-9) 8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지만 그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분을 보지 못하면서도 그분을 믿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 속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9 여러분의 믿음의 목적인 영혼의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필리3,12) 12 나는 이미 그것을 얻은 것도 아니고 목적지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차지하려고 달려갈 따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미 나를 당신 것으로 차지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멘.
= 하느님의 심판의 근거는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지, 인간들의 지혜로 합의하여 정해놓은 죄가 아니다.
<도덕(道德)과 윤리(倫理), 무시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도리(道理), 질서(秩序)로 잘 지켜야한다. 그러나 그것이 신앙(信仰)의 목적(目的)이 아니라는 것이다>
☨은총, 지혜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들 안에 말씀으로 충만(充滿) 하소서. 하느님의 뜻, 그 과녁, 목적을 올바로 깨닫고 보게 하소서. 그리하여 옛것에서 벗어나 새것, 진리가 되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