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1주간 목요일] 잃은 양의 비유 (루카15,1-10)

2024. 11. 6. 오후 4: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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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7일 목요일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잃은 양의 비유 (루카15,1-10)


   


1독서<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필리3,3-8)

3 하느님의 영으로 예배하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자랑하며 육적인 것을 신뢰하지 않는 우리야말로 참된 할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4 하기야 나에게도 육적인 것을 신뢰할 수 있는 근거가 있기는 합니다. 다른 어떤 사람이 육적인 것을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더욱 그렇습니다.

5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은 나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벤야민 지파 출신이고, 히브리 사람에게서 태어난 히브리 사람이며, 율법으로 말하면 바리사이입니다.

6 열성으로 말하면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고, 율법에 따른 의로움으로 말하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7 그러나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8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화답송>시편105,2-3.4-5.6-7(3) 주님을 찾는 마음은 기뻐하여라.

그분께 노래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그 모든 기적 이야기하여라. 거룩하신 그 이름 자랑하여라. 주님을 찾는 마음은 기뻐하여라.

주님과 그 권능을 구하여라. 언제나 그 얼굴을 찾아라. 그분이 이루신 기적과 이적을, 그분 입으로 내리신 판결을 기억하여라.

그분의 종 아브라함의 후손들아, 그분이 뽑으신 야곱의 자손들아! 그분은 주 우리 하느님, 그분의 판결이 온 세상에 미치네.

 

복음<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루카15,1-10)

1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4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5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6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8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9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1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제1독서(필리3,3~8ㄱ)

 

"그러나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7~8)

 

사도 바오로는 필리피서 3장 7절에서 지금까지 자랑해 오던 것을 '이롭던 것'(유익)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이롭던 것'으로 번역된 '케르데'(kerde; gain)의 원형 '케르도스'(kerdos)는 '이익','이득'(필리1,21; 3,7; 티토1,11)이란 뜻의 단어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의 바리사이인으로서, 그것도 유대교의 골수분자로서 자신이 누리고 있던 혈통, 가문, 종교적 유산과 열심, 지식, 율법준수 등 육체의 자랑 거리들을 하늘 나라의 의로움을 얻는 데 유익이 되는 것으로 여겼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오로는 이제 전에 유익하게 여기던 모든 것을 다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고 말한다.

 '~로 인해서', '~때문에' 라고 번역될 수 있는 전치사 '디아'(dia; for)가 목적격을 취하고 있는데, 바로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긴다고 말한다.

여기서 '해로운 것'(해)란 뜻으로 번역된 '제미안'(zemian)의 원형 '제미아'(zemia)는 '손해'(사도27,10), '손상'(사도27,21)이란 뜻이 있다.

 

따라서 여기서 해로운 것으로 여긴다는 것은 자신의 여러 외적 조건을 (필리2,4~6) 그리스도를 향한 올바른 신앙을 갖게 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손실을 가져오는 것으로 여긴다는 의미이다.

이때 '여기게 되었습니다'하는 의미로 번역된 '헤게마이'(hegemai; consider)는 과거에 이미 이루어진 일의 영향력이 현재에도 미침을 나타내는 시제인 현재 완료형으로 기록되어, 가치관이 바뀐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사도 바오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뒤 그동안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생각과 가치관에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다.

그렇다면, 사도 바오로에게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

 사도 바오로가 이전에 소중한 것으로 여기던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긴 것은 육체적 자랑 거리가 영적 진보를 막는 요소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즉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출발해야 할 신앙 생활이 육체적 자랑거리를 의존하는 것에 의해 침해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했던 것이다.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사도 바오로는 앞선 필리피서 3장 7절에 이어 자신의 육체에 관한 자랑거리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세상 모든 것을 손실로 여기고 있음을 밝힌다.

이 '모든 것'에는 지금까지 사도 바오로가 가치 있다고 여기던 것의 전부로서 유대교 내에서 그가 누렸던 높은 지위 등도 포함될 것이다.

 여기서 '여깁니다' 라는 의미로 '헤구마이'(hegumai)의 원형은 '헤게오마이'(hegeomai)이다.

이 동사가 3장 7절에서는 현재 완료 시제(헤게마이; hegemai)로 사용되었는데, 본절인 3장 8절에서는 현재 시제(헤구마이; hegumai)로 사용되었다.

 

앞서 현재 완료 시제를 사용한 것과 여기서 현재 시제를 사용한 것은 과거와 현재 뿐 아니라 앞으로도 변함없는 사실임을 나타내기 위한 표현이다.

즉 사도 바오로는 현재 시제를 사용하여 항상 이러한 태도를 견지할 것이라는 자신의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다.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사도 바오로가 세상 모든 이롭던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된 이유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높고 고상하다는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기 위해 가던 다마스커스 도상에서 사도 바오로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신 그리스도를 극적으로 만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음을 확인하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일이 모든 것 위에 뛰어난 가장 위대한 일임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아는 지식'으로 번역된 '그노세오스'(gnoseos)의 원형 '그노시스'(gnosis)는 구약 히브리어 '야다'(yada)의 역어로서,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친교 혹은 본질적인 깨달음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따라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란, 그리스도 예수님과 관계없던 사도 바오로가 그와 깊은 친교속으로 뛰어들어서, 그와 깊이 있는 밀접한 친교를 나누고, 그가 누구인지 본질적으로 깨닫게 된 것을 말한다.

그 지식으로 그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으며, 그 이후 그의 평생의 삶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삶이 되었다.

 

한편, '지고한 가치'로 번역된 '휘페레콘'(hyperechon)은 '~위에', '~을 넘어서는' 이란 의미의 전치사 '휘페르'(hyper)와 '가지다', '소유하다' 라는 의미의 동사 '에코'(echo)의 합성어에서 유래하며, '위로 올라가다', '뛰어나다'(로마13,1; 1베드2,13), '탁월하다','능가하다'(필리4,7)라는 뜻을 지닌 '휘페레코'(hyperecho)의 현재 분사형이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모든 것 위에 존재하는 가장 고상한 궁극적 가치가 있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김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 복음은 되찾은 양과 은전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의 배경은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며 투덜거리는 상황입니다.

첫째 비유에서 목자는 아흔아홉 마리 양을 놓아둔 채 잃어버린 한 마리를 찾아다닙니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비효율적이고 무모해 보입니다.

그러나 길 잃은 양을 되찾은 목자는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하며 이웃들이 자신의 기쁨에 함께하도록 초대합니다.

이어서 은전 열 닢 가운데 한 닢을 되찾은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은전 열 닢을 가졌던 부인은 잃어버린 한 닢을 찾으려고 집 안을 샅샅이 뒤집니다.

‘은전 열 닢’은 ‘열 드라크마’인데, 여기서 말하는 그리스 은전 한 닢은 로마의 한 데나리온, 곧 당시 노동자의 하루 일당과 비슷한 가치입니다.

그러므로 열 드라크마를 전 재산으로 가지고 있던 두 번째 비유 속 부인에게 한 드라크마는 재산의 십 분의 일, 곧 적지 않은 손실을 뜻합니다.

은전 한 닢을 되찾은 부인도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라며 이웃들을 초대합니다.

이처럼 잃었던 양과 은전을 되찾은 비유에서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라는 초대가 반복됩니다.

루카 복음서에서 이 초대는 죄인들과 함께 기뻐하지 못하는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최종 답변을 준비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비유는 우리에게도 질문합니다. 나는 죄인의 회개와 이웃의 기쁨에 공감하는가?

내 기준에 사로잡혀 함께 기뻐하지도, 함께 슬퍼하지도 못한 채 ‘나만의 섬’에서 쓸쓸히 지내지는 않는가?

 

(김상우 바오로 신부)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회개는 하느님께서 찾으심으로 시작.

 

복음(루카15,1-10)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 예수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들을 죄에서 구하시러 오셨다. 의인이 되어야 주님을 만날 수 있고, 죄인은 그분의 음식(성찬)을 먹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이해할 수 없어 투덜거릴 수밖에 없다. 사실 하느님만이 선, 의로우시다.(루가18,19)

 

(2코린5,21) 21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4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5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 주인이 자신을 찾았을 때 길을 잃은 자신의 잘못(죄)을 인정하고 주인을 따라 돌아온 양이다. 그것이 ‘메타노이아’ 회개다.(가던 길에서 방향을 바꾸어 돌아오는 것) 곧 회개는 하느님께서 찾으심으로 시작된다. 당연하다. 인간은 땅(세상)이 말하는 선악의 논리가 죄인 인줄 모르기 때문이다.(창세2,17참조)

그 선악의 법을 십자가의 대속으로 깨고, 그 선악의 법에서 벗어난 것이 진리이며, 진리의 하느님이시다.

“죄(罪), 하마트리아’(과녁을 벗어나다.)는 하느님의 뜻, 길을 벗어나 인간의 뜻, 길을 고집하는 것이 죄다. 그러니 성경을 통해 하느님의 뜻, 진리를 올바로 깨닫지 못하면 죄도 모르고 올바른 회개도 할 줄 몰라 헛된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면 유턴(U-Turn), 그 회개가 아닌 반성의 차원으로 끝내버린다.

미사(Missa) 드릴 때, ‘죄를 반성합시다.’로 시작하는데, 내 뜻을 위한 삶에서 하느님의 뜻으로 방향전환을 하겠다는 목적, 그 회개로 시작되는 ‘미사(Missa ‘보내다’, ‘파견하다’)여야 한다. 그것이 길을 잃었던 나를 찾을 때까지 찾아주신 주인이신 하느님을 따라 돌아오는 회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이와 같이 하늘에서는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 아흔 아홉이 진리가 된 의인이 아니라, 광야, 곧 물(진리)이 없는, 율법(제사, 윤리)을 열심히 지킨, 자칭 의인이다. 그 자기 의(義)를 고집하는 이들은 회개를, 곧 자기 의가 참이라 고집하며 버리지 않기에 회개를 못한다 하심이다.

 

(로마10,3) 3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알지 못한 채 자기의 의로움을 내세우려고 힘을 쓰면서하느님의 의로움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 당시에 신랑이 신부에게 패물로 준 열 닢이다. 그 중 한 닢을 잃으면 큰일이다. 이혼이다. 그래서 반드시 그 하나를 찾아 열을 채워야 한다. 그 비유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열 계명을 주셨는데 하나를 잃으면, 곧 열 계명을 하나로 깨닫지 못해 하나를 갖지 못하면(갈라5,14) 법이 되어 하느님과 이혼이다.

열 계명, 그 각 계명은 모두 하느님의 사랑, 그 하나를 품고, 말한다.

 

(요한3,16)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 성경전체의 핵심이다.

 

(1요한4,10)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십계명을 사랑, 그 하나로 깨닫지 못해, 갖지 못했다면 ‘등불’, 곧 하느님께서 보호자로 보내주신 성령께 의탁하여 열을 하나로 깨달을 때까지 말씀 안에 머물러 찾아야 한다.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 은전은 우리 죄의 속죄 제물로 죽으신 예수님의 몸값이다.(마태26,15) 곧 옛 계명, 그 옛 계약의 법, 심판, 그 죽음의 길에서 새롭고도 살아있는 길인 그리스도의 대속, 그 새 계약의 길을 찾았고, 돌아왔다, 회개 했다는 것이다.

 

1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 약속하신 성령께 의탁해야 할 수 있는 유턴, 회개다.(1코린2,9-13)

십계명을 열 개의 계명, 법으로 가지면 심판으로 죄, 죽음이지만, 십계명을 그리스도의 대속, 그 하느님의 사랑, 하나로 간직하면 생명이다.

 

(히브10,20) 20 그분께서는 그 휘장을 관통(찢는)하는 새롭고도 살아 있는 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셨습니다곧 당신의 몸(대속)을 통하여 그리해 주셨습니다.

 

영원한 진리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들 안에서 늘 충만 하심을 깨닫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복음(루카15,1~10)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2)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부정한 자 혹은 율법과는 상관이 없는 자들로 여겨지던 사람들을 받아들이며, 그들과 함께 식사를 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애초에 초대를 받은 사람들이었지만 한결같이 거부하므로(루카14,18~20), 그들은 단 한 명도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다고 말씀하셨다(루카14,24).

그래서 대신에 하느님 나라의 잔치와는 상관없이 보이는 사람들, 곧 세리와 죄인들이 그 잔치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당신 가르침 속에서 뿐만 아니라 죄인들과 세리들, 가난하고 소외받는 자들과 식사를 즐기셨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자랑하는 율법과 거리가 먼 이들을 받아들이고 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당시 종교 지도자였던 기득권 세력의 강한 반발이 예상되는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이 일을 서슴지 않고 강행하신 이유는 당신께서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사명을 분명히 아셨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신 것은 하느님 나라의 잔치를 선취하는 행위로 이해되어야 한다(루카14장).

 

여기서 '받아들이고'로 번역된 '프로스데케타이'(prosdechetai; receives; welcomes)의 원형 '프로스데코마이'(prosdechomai) 어떤 사람의 가치를 인정하며 긴밀한 관계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로마16,2; 필리2,29).

즉 '프로스데케타이'(prosdechetai)는 도움을 얻거나 존경하기 때문에 맞아들이는 적극적인 의미가 있다.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을 대하실 때, 마치 유대인들이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대하듯 하신 것이다. 경멸받으며 기피되던 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이러한 파격적 행동은 당시의 사람들, 특히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이해되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일컬어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요, 먹보요 술꾼이라고 비아냥거린 것이다(루카7,34). 

 

유대인에게 있어서 '함께 식사하는 행위'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같은 부류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세리들과 함께 식사를 하신 것은 그들과 같은 부류가 되었다는 사실을 뜻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고, 또한 사람들 중에서도 경멸받는 사람이 되셨던 것이다(필리2,7).

하지만 잃어버린 자들인 세리들과 죄인들이 초청을 받아들여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할 자들이 분명하기에, 예수님의 이러한 태도는 당당했던 것이다.

 

그래서 루카 복음 15장 6절과 10절이 '잃은 한 마리 양의 비유'와 '잃은 은전 한 닢의 비유'의 결론이 되어서, 잃어버린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그가 하느님께로 돌아올 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를 보여 준다.

 

이런 기쁨은 한 명의 죄인이라도 찾고 찾으시는 하느님의 끊임없는 사랑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발견할 때까지 찾으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죄인들을 마침내 하느님께로 돌이키는 것이다.

 

그 돌아온 죄인들로 말미암아 하늘에서는 반드시 놀라운 기쁨이 생겨난다.

루카 복음 15장 10절의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는 표현은 죄인의 회개가 하느님께 속한 천사들도 기뻐할 정도로 너무도 중요한 사건임을 나타낸다.

 

 



 

  

20241107일 목요일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광야에 놓아두고,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으러 가는 목자는 그리 좋은 목자가 아닌 것 같습니다.

한 마리의 양을 위하여 나머지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놓아둔 무책임한 목자처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속성을 깊이 생각해 보면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선택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를 구원하시고자 하며, 단 한 마리의 양도 버리시거나 포기하실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는 백 마리를 돌볼 때 한 마리쯤 잃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어쩌면 아주 작은 기회비용이라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는 버림과 포기라는 말이 없으며, 그분께 한 마리를 잃는다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과 같습니다.

한 마리 때문에 아흔아홉 마리를 놓아두시는 분이 아니라, 단 한 마리도 포기하시지 않고 모두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곧 이 비유는 버림받은 아흔아홉 마리의 양 이야기가 아니라, 길 잃은 한 마리의 양 이야기입니다.

어쩌다 아흔아홉 마리의 양 가운데 또 다른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면 주님께서는 곧바로 그 양을 찾아 나서실 것입니다.

이는 아흔아홉 명의 구원을 배제한 채 특정한 한 명의 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도 주님의 구원 의지에서 멀어질 수 없음을 뜻합니다.

우리도 길 잃은 영혼 하나를 찾으러 나가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한 영혼을 포기하고 배제하면서 회개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행복을 누리는 공동체보다, 불편하고 고생스럽더라도 한 사람의 회개를 이끌고 그것에 기뻐하는 공동체를 바라십니다.

그런 공동체가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시는 하느님과 닮았습니다.

 

(최정훈 바오로 신부)

 




 

 

2024년 11월 7일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말씀으로회개로 찾아오시는 주님.

 

복음(루카15,1-10)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 판단은 ‘스스로 의롭다’ 하는 이들이 한다. 죄인임을 자각하는 이는 남을 판단할 수 없다. 예수님을 의지하며 말씀만을 갈망할 뿐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4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이와 같이 하늘에서는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 양(羊)이 무슨 회개를 했나? 주인이 잃은 양을 끝까지 쫓아가 찾아 데려온 것을 ‘회개했다’고 하신다. 주인이 양을 찾아 어깨에 메고 돌아왔음을 기억하자.

 

(요한1,29) 29 이튿날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 죄를 없애시는- (직역하면) 죄를 어깨로 나르다. 짊어지다. 곧 세상의 모든 죄를 당신의 어깨에 짊어짐으로 없애시는 예수님이시다.  양의 주인은 그 양의 죄를 당신의 어깨에 짊어짐으로 없애셨고, 그 양은 그 주인(주님)을 믿고 따라왔던 그것을 회개라 하신 것이다.

회개(悔改)는 하느님의 찾으심으로 시작된다는 말씀이다. 양은 그렇게 자신의 죄를 어깨에 짊어지고 없애주신 그 하느님의 사랑을 늘 간직하고 잃어버리면 안 된다.

그러나 온갖 유혹과 거짓 가르침으로 그 하느님의 사랑을 잃어버리고 인간의 길을 쫓아가 헤메일 때가 있다. 곧 인간의 방법으로 잃었던 예수님을 찾게 된다.(루가2,43-45참조) 그러면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부인, 여자, 마리아(쓴물)처럼 된다. (루가2,50참조) 그래서 연결된 비유를 더 주신 것이다.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등불(성령)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9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1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 잃어버린 한 닢, 곧 잃었던 은전을 찾았는데 ‘회개했다’ 하신다. 대속, 그 하느님의 사랑을 다시 찾은 것이다. 은전 ‘열 닢’은 십계명으로 그 열 개의 계명 하나하나 모두가 하늘의 대속(代贖), 그 이타의 사랑을 담고, 진리로 말하고 있다.

은전또한 우리 죄로 죽으신 예수님의 몸값을 뜻한다. (마태27,5) 곧 그 대속의 사랑, 그 하나를 깨닫지 못한 것이 은전 한 닢을 잃어버린 것이고, 성령께 의탁하여 그 열계명을 사랑의 계명, 하나로 깨달아 믿게 된 것이 은전을 찾은 회개인 것이다.

십계명을 열 개의 계명으로 지키면 법이 되어 심판을 주지만, 대속 그 이타의 사랑, 그 하나로 깨달으면(믿으면) 하늘의 용서, 자유다.

회개(메타노이아)란 뉘우치고 반성하는 차원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찾아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곧 하느님께서 죄인을 찾아주시고, 그 죄인은 자신을 찾아주신 그 주님을 진리로 믿고 따르는 것, 그것이 회개다.

 

하늘에서 땅으로 죄인들을 찾아오신 구원자 예수님~

(루가1,67-69) 67 아기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성령으로 가득 차 이렇게 예언하였다. 68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그분께서는 당신 백성을 찾아와 속량하시고 69 당신 종 다윗 집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힘센 구원자를 일으키셨습니다.

 

(요한1,9-11) 9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예수말씀)이 세상에 왔다. 10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1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 우리는 미사 때마다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님을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으로 고백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이 제사와 윤리의 신앙으로 스스로 죄를 없애려고 노력하며 애쓴다. 구원의 진리인 십자가의 대속, 그 이타의 사랑을 잃어버렸기(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이 잘못이다. 용서는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로만 이루어진다. 죄인임을 자각하고 말씀을 들으려고 예수님을 찾아온 세리와 죄인들, 그들이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회개한 (용서받은) 이들이다.

우리 또한 자신의 뜻, 소원, 의무(의로움)를 위해 미사를 드리러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내 죄의 속죄 제물로 내 주신,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당신을 제사 제물로 드리며 완성하신 ‘다 이루어졌다’ 하신 그 사랑의 하느님과 주님께 감사와 찬미와 영광을 드리는 ‘찬미의 미사’를 드리려 모여야 한다. 하느님은 그런 이들을 찾으시고, 그들로 기뻐하신다.

 

(요한4,23-24) 23 그러나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지금이 바로 그때다사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이들을 *찾으신다. 24 하느님은 영이시다그러므로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이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요한1,11-12.14) 11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 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 그리스도의 대속, 그 사랑을 진리로 깨닫게 하시며 구원으로 이끄시는 천주의 성령님!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흙인 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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