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3주간 화요일] 세관장 자케오 (루카19,1-10)

2024. 11. 18. 오후 8:09:18

글자

 

20241119일 화요일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세관장 자케오 (루카19,1-10)

 


1독서<누구든지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을 것이다.>(묵시3,1-6.14-22)

나 요한은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1 “사르디스 교회의 천사에게 써 보내라. ‘하느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말한다.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너는 살아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죽은 것이다.

2 깨어 있어라. 아직 남아 있지만 죽어 가는 것들을 튼튼하게 만들어라. 나는 네가 한 일들이 나의 하느님 앞에서 완전하다고 보지 않는다.

3 그러므로 네가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들었는지 되새겨, 그것을 지키고 또 회개하여라.

네가 깨어나지 않으면 내가 도둑처럼 가겠다. 너는 내가 어느 때에 너에게 갈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4 그러나 사르디스에는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이 몇 있다. 그들은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닐 것이다. 그럴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5 승리하는 사람은 이처럼 흰옷을 입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생명의 책에서 그의 이름을 지우지 않을 것이고, 내 아버지와 그분의 천사들 앞에서 그의 이름을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6 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14 라오디케이아 교회의 천사에게 써 보내라. ‘아멘 그 자체이고 성실하고 참된 증인이며 하느님 창조의 근원인 이가 말한다.

15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

16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17 나는 부자로서 풍족하여 모자람이 없다.하고 네가 말하지만, 사실은 비참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깨닫지 못한다.

18 내가 너에게 권한다. 나에게서 불로 정련된 금을 사서 부자가 되고, 흰옷을 사 입어 너의 수치스러운 알몸이 드러나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제대로 볼 수 있게 하여라.

19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나는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한다. 그러므로 열성을 다하고 회개하여라.

20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21 승리하는 사람은, 내가 승리한 뒤에 내 아버지의 어좌에 그분과 함께 앉은 것처럼, 내 어좌에 나와 함께 앉게 해 주겠다.

22 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화답송>시편15,2-3.3ㄴㄷ-4ㄱㄴ.5(묵시 3,21) 승리하는 사람은 내 어좌에 나와 함께 앉으리라.

흠 없이 걸어가고, 의로운 일을 하며, 마음속 진실을 말하는 이, 함부로 혀를 놀리지 않는 이라네.

친구를 해치지 않으며, 이웃을 모욕하지 않는 이라네. 그는 악인을 업신여기지만,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존중한다네.

이자를 받으려 돈놀이 않으며, 죄 없는 이를 해치는 뇌물 받지 않는다네. 이 모든 것 행하는 그 사람, 영원토록 흔들림 없으리라.

 

복음<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루카19,1-10)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2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3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4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5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6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7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8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10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제1독서(묵시3,1~6.14~22)

 

"그러나 사르디스에는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이 몇 있다. 그들은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닐 것이다. 그럴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4)

 

묵시록 3장 1~3절까지는 사르디스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책임과 권면의 내용인 반면에 3장 4절은 사르디스 교회 일부 신자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격려의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2절에서 '아직 남아 있지만 죽어가는 것들'이란 언급을 통해 사르디스 교회의 영적 빈사 상태에도 불구하고 남은 자(remanant)가 있음을 표명했는데, 여기서 그들이 다시 거론되는 것이다.

 

1절에서도 '너는 살아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죽은 것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사실 묵시록 2장과 3장에서 일곱 교회 중에서 오직 라오디케이아와 사르디스 교회에 보내는 메시지에서만 예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칭찬이 배제된다.

 

여기서 '죽은 것이다'라고 번역된 '카이 네크로스 에이'(kai nekros ei; but you are dead)에서 '에이'(ei)는 본래 '이다', '있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에이미'(eimi)의 현재형으로서 이미 죽어버린 시체가 아니라 '현재 급속하게 죽어가고 있는 상태'를 생생하게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살아 있다'고 되어 있다.

원문은 '오노마 에케이스 호티 제스'<onoma echeis hoti zes; you have a name (reputation)of being alive>로서 직역하면 '너는 살아 있다고 하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라는 말이다.

 

여기서 '가지고 있다'로 번역된 '에케이스'(echeis) 역시 '소유하다'라는 뜻을 가진 '에코'(echo)의 현재형으로서 한편으로는 급속하게 죽어가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역설적 뉘앙스를 전달한다.

 

특히 '이름'으로 번역된 '오노마'(onoma)는 통상 '명성'이나 '평판'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므로 본문은 사르디스 교회가 살아 있다는 세간의 명성은 있지만, 실상은 영적으로 죽어가는 상태에 빠져있음을 시사한다.

 

전체적으로 사르디스 교회는 이단이나 황제 숭배, 우상 숭배에 대한 언질이 없는 것으로 보아서 이 교회의 문제는 무사안일주의, 즉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이 없는 교회였다(1티모3,5).

 

'그러나 사르디스에는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이 몇 있다'

 

'몇'으로 번역된 '올리가 오노마타'(oliga onomata)는 직역하면, '소수의 이름들'(a few names)이다.

 

여기서 '이름'이란 표현이 사용된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히브리 사상에는 '이름'이 '사람의 존재 전체'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희랍어에서도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옷'으로 번역된 '히마티아'(himatia)는 사람들이 몸에 걸치는 의복을 뜻하지만, 그 옷을 입은 사람의 신분을 상징하기도 한다.

 

또한 '더럽히지'로 번역된 '에몰뤼난'(emollynan)은 '오염시키다'라는 뜻을 지닌 '몰뤼노'(mollyno)의 부정 과거형으로서 여기서는 동사를 부정하는 부정어 '우크'(uk)와 더불어 사르디스 교회의 남은 자들이 소극적으로는 도시 자체가 제공하는 물질적 풍요, 무사 안일, 도덕적 부패와 야합하지 않았음을, 그리고 적극적으로는 최초에 복음을 전해 받았을 때의 열정적이고 순수한 신앙을 신실하게 고수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옷을 더럽히지 않았다는 것 예수 그리스도로 덧입은 자신들의 고귀한 신분을 이교적 상황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고, 잘 지켰다는 의미이다.

 

'그들은 흰옷을 입고'

 

여기서 '흰옷'으로 번역된 '류코이스'(lyukois)는 묵시록 3장 5절, 3장 18절, 4장 4절, 6장 11절, 7장 9절, 7장13절 등에도 나온다.

한마디로 이 흰옷은 땅에 기원을 둔 옷이 아니라 하늘에 기원을 둔 옷으로서 깨끗함, 순결함, 거룩함의 이미지와 결부된다. 따라서 '흰옷을 입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로움을 입는 것', '구원을 받은 것'을 의미한다.

 

 '나와 함께 다닐 것이다'

 

여기서 '다닐 것이다'로 번역된 '페리파테수신'(peripatesusin)은 '거닐다', '행동하다'라는 뜻을 지닌 원형 '페리파테오'(peripateo)의 미래형으로서 묵시록에서는 일관되게 천상의 존재를 묘사하는데 사용되는데(묵시2,1; 3,4; 16,15; 21,20), 사르디스 교회에 남은 자, 즉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않은 자들에게 주어지는 구체적인 종말론적 축복의 약속이란 점을 환기시킨다.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15~16)

 

묵시록 3장 15절부터 19절까지는 라오디케이아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책임과 권면이 나와있다. 

라오디케이아 교회 사르디스 교회와 함께 주님의 칭찬을 받지 못한 채 책망만 받고 있다.

 

여기서 '차지도'로 번역된 '프쉬크로스'(psychros; cold)는 본래 '차게 되다'라는 뜻을 지닌 '프쉬코'(psycho)에서 파생한 형용사로서 신약성경에서는 본절과 마태오 복음 10장 42절(시원한 물)에서만 사용되었다.

 

또한 '뜨겁지도'로 번역된 '제스토스'(zestos; hot)는 '끓어 오르다'라는 뜻을 지닌 '제오'(zeo)에서 파생한 형용사로서 '끓어오르는 뜨거움'을 나타내며, 신약 성경에서는 본절에만 나온다.

 

물과 관계되는 비유는 라오디케이아 북쪽 약 11km 지점에 위치한 히에라폴리스(Hierapolis) 뜨거운 온천수와 리오디케이아 동쪽 약 16km 지점에 위치한 콜로새(Colosse)의 차가운 우물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히에라폴리스에서 솟아난 온천수는 처음에는 매우 뜨겁지만, 흐르는 동안 미지근해진다.

 

물이 부족해 히에라폴리스로부터 온천수를, 콜로새로부터 냉수를 파이프 관을 통해 공급받는 라오디케이아 사람이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이런 현상을 염두에 두고, 사도 요한은 본절에서 라오디케이아 교회가 보여주고 있는 신앙의 태도를 설명 주고 있는 것이다.

 

라오디케이아 교회는 그들이 누리고 있는 풍부한 물질로 인해서 태만하기 그지없는 신앙생활을 한 것 같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태도가 완전하게 세속적인 것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신앙에 있어서는 이러한 어정쩡한 태도가 더 문제이다.

신앙에 있어서 중간 지대를 선택한 라오디케이아 교회가 믿음에 있어서는 회색지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망각했던 것이다.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미지근하여'로 번역된 '클리아로스'(chlliaros)는 '용해하다', '녹이다'라는 뜻을 지닌 '클리오'(chllio)에서 파생한 형용사로서 '열성이 없는'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신앙에 있어서는 결코 회색 지대나 중간 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마태6,24; 루카16,13). 이것이냐 저것이냐 중에서 양자택일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당시 라오디케이아 교회는 신앙의 회색 지대에 머물러 있었고,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역겨움을 자아내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언급된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는 표현은 라오디케이아 교회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격앙된 감정을 나타낸다.

 '~하겠다'는 뜻으로 번역된 '멜로'(mello)는 '내가 ~하려고 한다'는 의미로서, 말하는 사람의 최종적인 의향을 나타내는 동시에 강력한 경고의 뉘앙스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준엄한 뉘앙스의 책망은 오로지 라오디케이아 교회의 회개를 유도하기 위해 취해진 조치이다(묵시3,19).

 

또한 '입에서 뱉다'라는 의미로 번역된 '에메사이'(emesai)는 '구토하다'는 뜻과 더불어 '혐오하다' 라는 뜻도 지닌 '에메오'(emeo)의 부정 과거형으로서 신약성경에서 여기만 나온다.

 

이것은 신앙의 특성이 뜨거움에 있기 때문에, 마치 뜨거워야 하는 음식이 미지근한 상태에 있을 경우, 비위를 상하게 하여 역겨움을 자아내는 것과 같다는 의미 함축한다.

따라서 라오디케이아 교회를 향해 주님게서는 '열심을 내라','회개하라'고 촉구하시는 것이다(묵시3,19).

 

'나는 부자로서 풍족하여 모자람이 없다' 하고 네가 말하지만, 사실은 비참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깨닫지 못한다. 내가 너에게 권한다. 나에게서 불로 정련된 금을 사서 부자가 되고, 흰옷을 사 입어 너의 수치스러운 알몸이 드러나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제대로 볼 수 있게 하여라.' (17~18)

 

여기서 '부자'로 번역한 '플루시오스'(plusios)는 '부요함', '풍부함'이라는 뜻을 지닌 '플루토스'(plutos)에서 파생한 표현으로서 '풍족하여'로 번역된 '페플루테카'(pepllukeka)와 함께 라오디케이아 교회의 자기 인식의 수준을 가늠케 한다.

 

'페플루테카'(peplluteka)는 '부해지다','치부하다'라는 뜻을 지닌 '플루테오'(plluteo)의 완료형으로서 그들이 자신들은 이미 부자이고 부유한 상태에 있다고 생각하였음을 잘 드러낸다.

 

확실히 라오디케이아 도시는 다른 소아시아 도시들에 비해 부유했다.

따라서 그 안에 속해 있는 라오디케이아 교회 신자들 역시 물질적으로 풍족했을 것이다.

 

A.D. 60년에 발생한 대규모 지진 때 다른 소아시아 지역의 도시들은 로마 황제의 원조를 받아 도시를 복구했지만, 그들은 그런 도움을 거절하고 자력으로 도시를 재건할 정도로 부유했고, 부족함이 없었다.

 

라오디케이아 교인들 각자는 아마도 물질적으로 매우 부유한 사람들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들은 자신이 소유한 재물의 일부를 흔쾌히 교회에 헌납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자신들의 이러한 행동을 온전한 신앙 생활로 치부하고 착각했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막대한 재산을 교회에 바치는 것만으로 신앙 생활의 의무를 완수했다고 이해하고, 더 나아가 자신들의 신앙에 있어서도 '나는 부자로서 풍족하여 모자람이 없다'라고  자랑할 만큼 매우 교만한 자들이었다.

 

단적으로 말해서, 라오디케이아 교회는 자신이 가진 물질을 영적 부요를 가늠하는 척도로 오해하고 착각했던 것이다. 물질적 풍요와 영적 풍요는 결코 상호 교환되거나 혼동될 수 없는 사항의 것이다. 

 

역설적으로 라오디케이아 교회는 물질적 풍요에도 불구하고, 영적으로는 심각한  궁핍함에 직면해 있었다.그러나 이 교회의 더 큰 문제는 그러한 영적인 가난함에 대한 무감각이었던 것이다.

 

'사실은 비참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원문은 '쉬 에이'(sy ei; you are; 너는 ~이다)로 시작되는데, 주격으로 2인칭 대명사가 사용되었다.

희랍어 어법상 주격 인칭 대명사는 강조 요법 이외에는 사용되지 않는다.

 

라오디케이아 교회의 외적으로 드러나는 '물질적 풍요'이면에 숨겨진 그들의 '내면적 영적 현실'을 육체적 상황에 빗대어 묘사하고 있다.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김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 복음 내용은 루카 복음서에만 등장하는 일화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여정 가운데 예리코에서 일어납니다.

등장인물은 예수님, 자캐오, 군중입니다.

자캐오는 로마 제국의 위임을 받아 국경 도시인 예리코의 세관 업무를 담당하던 세관장입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자캐오를 ‘민족의 반역자’, ‘동족의 고혈을 빨아먹는 자’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한편 자캐오는 예수님을 직접 뵙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키가 작아 군중에 가려 그분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 무화과나무에 오릅니다.

예수님께서 위를 쳐다보시고, 자캐오의 집에 머무르시기로 하십니다.

자캐오는 기쁨에 넘쳐 예수님을 맞이합니다.

군중은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며 투덜거립니다.

유다교 전통에 따르면, 죄인의 집에 들어가는 행위는 방문자도 부정하게 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자캐오는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다른 이의 재산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다고 말합니다.

‘네 곱절’은 구약의 율법이 명하는 것 이상의 배상일 뿐 아니라, 로마법도 명백한 절도 행위에만 ‘네 곱절’의 배상을 적용합니다.

다시 말해서, 자캐오는 동족의 편견과 단죄에 마음을 쓰고 있습니다.

모든 상황을 지켜보시던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캐오의 구원을 선포하십니다.

자캐오의 회개 이야기로 ‘예수님께서는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오셨다.’라는 루카 복음서의 중심 주제가 드러납니다.

오늘 복음을 통하여 우리는 ‘죄인’이라고 단정한 이웃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죄인의 회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스스로 돌아볼 수 있습니다.

 

(김상우 바오로 신부)

 

스스로 죄인이라며 성체모심을 거부하는 신자들은 어찌 보아야 합니까?

성체는 거룩한 의인들만 모시는 것인가요?

예수님은 의인(義人)이 아니라 죄인(罪人)을 부르러 왔다는데요.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네가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들었는지 되새겨,

 

(묵시록 3,1-6.)

1 “사르디스 교회의 천사에게 써 보내라. ‘하느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말한다.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너는 살아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죽은 것이다.

= 요즘 우리는 계숙해서 인간의 계명에 의한 그 착한 일은 구원의 힘, 권위가 없음을 묵상하고 있다.

오늘도 구원 받을, 살 일이라고 생각했던 사르디스 교회의 착한 이르 그 사람의 의로운 일이 죽을 일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또 사람의 노력, 방법으로 육을 위한 희망을 갖게 하는 것, 그 역시 죽이는 일이다. 우리의 희망은 하늘을 향해있다.

 

2 그러니~ 깨어 있어라. *아직 남아 있지만 죽어 가는 것들을 튼튼하게 만들어라. 나는 네가 한 일들이 나의 하느님 앞에서 완전하다고 보지 않는다.

= 살아 있는데 죽어 가는 것, 靈이다. 그 영은 하느님만이 살리실 수 있다.

 

3ㄱ 그러므로 네가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들었는지 되새겨, 그것을 지키고 또 회개하여라.

=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의 말로 듣고 말했다(행했다)면 회개하고, 하느님의 뜻으로 다시 되새겨 믿고 말해, 죽어가는 영을 살리는 그 말씀을 지켜라 하시는 것이다. 곧 하느님의 말씀, 그분의 뜻으로 , 뜻 안에서 듣고 말하는 신앙을 살아라 하시는 것이다.

例) 우리는 주님 안에서(뜻으로) 기뻐하고(시편32,11 필리3,1), 주님 안에서 승리와 영예를 얻고(이사45,25), 주님 안에서 찬양하고 복을 받고(예레4,2), 주님 안에서 강해지고(즈카10,12), 주님 안에서 다른 이를 맞아들이고(로마16,2), 주님 안에서 사랑하고(에페6,21) 주님 안에서 죽는다(묵시14,13)~등등

그런데 그 주님 안에서 그분의 말씀, 뜻으로 산다는 것은, 내 뜻을, 나를 버리는 것이다. 세상의 명예, 영광, 의로움을 위해 살았던 내가 부인되는 것, 죽는 것이다. 그것이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고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이다.(마태16,24참조)

 

오늘 입당송 (시편112,9) 그는 가난한 이에게 넉넉히 나누어 주니, 그의 의로움은 길이 이어지고, 그의 뿔은 영광 속에 높이 들리리라.

= 하느님의 뜻으로, 가난한 이에게 하느님의 구원(생명)의 뜻인 말씀(양식)을 넉넉히 나누어 주어 영을 살리는 그 의로움이 하느님의 영광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위로의 말, 사람의 양식을 나누어 주는 착한 일, 그 수고는 사람이 해야 할 도리이지 신앙의 목적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사랑), 양식을 먹는 信者라면 인간의 道理가 아닌 그리스도의 도리인 진실된 사랑이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자케오가 스스로의 힘(능력, 수고)으로 나무 위로 올라 갔을 때, 

(루가19,5-6. 8)

5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당신(구원자)을 만나려면 내려와야, 낮아져야 한다. 자케오의 수고(힘)가 否認되는 것이다.

 

6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 자기의 수고가 무시(부인) 당해도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기에 기쁜 것이다.

 

8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 이웃에게 나눔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신앙인에게서 반드시 나와야하는 사랑의 행위인 것이다. 그러면 자케오가 자신의 재산을 나누어 준 것은 자기 의로움이 아닌가? 아니다.

앞, 시편에서 묵상했듯이 자케오의 재산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자케오, 그의 재산은 자기 목숨이다. 자케오는 그 자기 목숨을 버려서 이웃을 살리겠다는 예수님의 뜻(십자가)을 따른 것이다.

그리고 자케오가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한 것은 직역하면 ‘넷으로’인데 곧 땅(4)의 구원의 완성을 위해 갚겠습니다라는 의미이다.

예전에 여러번 다루었듯~ 그 넷(4)은 마지막 한닢(에스카톨로지 코드란테스)과 연결이 되는데, 구원의 완성인 사랑, 그 하나를 뜻한다. 그러니 그 역시 주님의 일(사랑)에 동참하는, 나를 버리고 주님을 따르겠습니다.라는 것이다.

자케오는 주님 안에서, 주님의 뜻으로 한 것이다. 혹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는 사람의 도리, 의로움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면 그 기준이 어떻게 될까? 90%? 아님 99%? 아니다. 100% 완전해야 한다.(야고2,10참조)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그것이 가능했다면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그것도 저주로 죽으러 오실 필요가 없으셨다는 것이다. 사람이 그 자기 의로움을 믿고 있다는 것이, 자기 영이 죽어가는 것이다. 하느님의 생명의 말씀을 사람의 말(법)로 들었다면 죽는 것이다.

 

3ㄴ 네가 깨어나지 않으면 내가 도둑처럼 가겠다. 너는 내가 어느 때에 너에게 갈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 하느님의 말씀으로 자기 부인, 버림이 되어 있는 사람은, 하느님의 심판이 도둑처럼 오지 않는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뜻이다. 자기 부인으로 죽은(낮은) 상태인 것을 알기에 두렵지 않는 것이다. 그는 하느님의 심판이 구원(생명)의 판결을 주실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사람이 사르디스교회에 있다.

 

4 그러나 사르디스에는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이 몇 있다. 그들은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닐 것이다. 그럴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흰 옷은~

(묵시7,14) 14 “원로님, 원로님께서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고 내가 대답하였더니, 그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이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

= 그리스도의 대속, 그 의로움의 피로만 더러운 옷을 희게 할 수 있다. 사람의 의로움, 그 피(희생)는 자격이 없다는 말씀이시다.

그 사람의 의로움으로 사람들의 칭찬으로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그 유혹을 뿌리치고, ‘그리스도의 피’만이 구원의 능력, 권위 있음을 믿고 의지하는 그 자기 부인, 버림이 된 그 승리한 사람만이 흰 옷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케오 처럼~

 

5 승리하는 사람은 이처럼 흰옷을 입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생명의 책에서 그의 이름을 지우지 않을 것이고, 내 아버지와 그분의 천사들 앞에서 그의 이름을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생명의 책은 성경이다. 성경 속에 하느님의 구원의 약속, 그 말씀을 갖는, 믿는 사람이다.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베드로와 오늘 자케오까지~ 성경 속 모든 인물들, 모든 죄인들이 ‘나, 내 이름’이 되어야 한다.

곧 예수님을 진리로 깨달아(낳아) 그분의 십자가로 용서와 구원(생명)을 받는 ‘나, 내 이름’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생명 책에 내 이름이 그대로 있는 것, 지워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6 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1베드1,22) 22 여러분은 진리에 *순종함으로써 영혼이 *깨끗해져 진실한 *형제애를 실천하게 되었으니, 깨끗한 마음으로 서로 *한결같이 사랑하십시오.

 

*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멘!!!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내려와야 만나는 용서(容恕)

 

복음(루카19,1-10)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복음환호송(1요한4,10)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셨네.” 로 알린다곧 우리 죄인들의 속죄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나가고 계신 것이다.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 로마(세상)의 힘, 법(法)을 이용하여 부자(富者)가 된 세리(稅吏)들의 장이다. 얼마나 악착을 부렸으면 세리장(稅吏長)이 됐을까. 보든 이들도, 자신도 인정하는 죄인이다. 그래서 늘 죄책감(罪責感)에 시달려 살았던 것이다.

엄청 외로웠을 것이다. 그런 경험(經驗)이 있었다면 알 것이다. 자신의 처지(處地)를 알아줄,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하고, 그때 지나가시는 예수님의 소리를 들었다.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 군중(群衆)에 가려 볼수 없었다? 이 표현은 많은 사람(군중)들이 예수님을 자신들의 소원(所願), 뜻을 이루어줄 분로 알고 자신들의 생각, 길로 열심을 다해 따랐기에, 세관장(稅關長)은 자신의 사정, 죄를 없애주실 대속의 속죄(贖罪) 제물(祭物)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만날 수)가 없었음을 성경(聖經)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로, 속죄 제물로 죽으시고 구원을 주시는 그 예수님과 한 몸이 되는 진리의 포도나무와 반대인 구원을 주지 못하는 율법(律法)을 뜻한다. 그러니까 세관장 또한 율법으로 열심을 부려, 온 힘을 다해 예수님을 만나려고 했던 것이다. 그 표현이 ‘키가 작은이가 예수님을 앞질러 가서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얼른 내려오너라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 그게 ‘아니지’ 하신다. 예수님을 만나려면 얼른 내려와야 한다. 곧 자신의 죄를 없애주실 대속(代贖)의 구원자를 만나려면 율법(제사와 윤리)의 나무에서 얼른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다. 율법의 열심, 그 의로움은 용서, 구원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려오면, 부자 세관장, 세리-죄인)이 아닌, 자케오(완성을 얻다)가 된다.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 로마, 곧 세상의 힘, 법으로 완성을 이루려했던 그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렸다는 것이다. 그랬을 때, 자신의 죄를 대속(代贖)하신 예수님을 용서의 그리스도로 기쁘게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용서, 구원의 진리를 깨닫지 못한 군중은 자기 버림, 부인(否認)의 삶을 어리석음으로 보기에~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8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주님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 네 곱절로, 직역하면 ‘넷으로~’ 곧 땅(4)의 구원을 위해 갚겠다는 것이다. 자신과 같이 땅(세상)의 것을 위해 살았던 그 땅의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살겠다는 것이다. 자신과 같이 ‘땅에서 일어서서,’ 하늘을 향해 살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웃 사랑이며 구원의 완성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아브람과 맺으신 계약 때문이라는 말씀이다. 곧 하느님께서 가져 오라는 하늘(3)의 제물을 하나(1)로 완전하게 가져오지 않고, 사람(아담)의 본능대로 둘(2)로 나누어 반(半)으로 잘라 바쳤기에 죽음이 왔다.(창세15,9-12참조) - 말씀을 선과 악, 그 둘의 법으로 드린 것이다.

 

(창세15,17) 17 해가 지고 어둠(죽음)이 깔리자연기 뿜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이 그 쪼개 놓은 짐승(죽음)들 사이로 *지나갔다.

= 횃불, 곧 불이신 하느님께서 쪼개놓은 제물, 그 죽음들 사이를 홀로 지나가심으로 죽어야 할 아브람을 살리시고~

 

(창세15,18) 18 그날 주님께서는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 강에서 큰 강 곧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르는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준다.

= 땅은 약속의 땅으로 하늘나라를 비유한 것이다.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대신 죽으시고 아브람을 살리신, 그 구원의 계약으로 세관장이 살아났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 1절이 예수님께서 예리고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로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 홀로 죽음들 사이로 들어가시어 죽음들을 살리시겠다는 대속의 계약, 그 구원, 용서의 말씀을 거짓 사도들의 가르침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많은 사람(군중)들이 여전히 선악의 도덕과 윤리로, 사람의 규정과 교리, 그 법의 신앙으로 살아가고 있기에,

구원이신 하느님께 가는 길을 잃어버려 하늘의 용서, 구원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시어 그 죽음들 사이를 다시 지나가시게, 곧 대신 죽게 하신 것이다.

 

10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 구원의 길로 십자가를 지러 오신 것이다. 잃은 아들을 찾아서....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

(히브9,11) 11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이루어진 좋은 것들을 주관하시는 대사제로 오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사람 손으로 만들지 않은, 곧 이 피조물에 속하지 않는 더 훌륭하고 더 완전한 성막(하늘 성전)으로 들어가셨습니다.

 

☨ 우리를 위해 탄식하며 기도해 주시는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땅의 것에서 일어나 완성된 하늘의 것을 향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와 같이 땅(흙인 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복음(루카19,1~10)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2~4)

 

'자캐오'에 해당하는 희랍어 '작카이오스'(Zakcaaios; Zacchaeus)는 '순결한'(pure),'무죄한'(innocent)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히브리어 '작카이'(zakai)에서 유래되어 '깨끗한 자', '의로운 자'라는 뜻이다.

 

하지만 자캐오는 그의 직업이 당시 사람들이 부정하게 여기는 '허가받은 도둑'인 세관장이었기에 자신의 이름의 뜻에 걸맞게 살지 못하는 갈등을 느끼고 있었다.

 

여기서 '세관장'에 해당하는 '아르키텔로네스'(architelones; a chief tax collector)는 '우두머리'라는 뜻의 '아르코'(archo)와 '세금 징수원'이라는 뜻의 명사 '텔로네스'(telones)가 결합된 합성어이다.

 

당시 예리코는 세금을 거두는 관리들이 로마로부터 파견되어 늘 머물러 있었고, 세관원들은 요르단 강 동편 지역에서 유다 땅으로 들어오는 물품에 대한 통관세를 받는 일을 했다.

 

그러나 로마 사람들이 일일이 세금을 징수한 게 아니라, 그곳 유대인들과의 임대차계약에 따라 일정 기간 동안 세금을 징수할 수 있는 권한을 유대인들에게 주었고, 그들 세리(세관원)중에 우두머리가 바로 세관장이었던 것이다.

 

또한 루카 복음 19장 2절에는 세관장 자캐오가 '부자'였다고 말한다.

'부자'에 해당하는 '플루시오스'(plusios; was rich, wealthy)라는 표현은 그가 단지 잘먹고 잘사는 정도가 아니고, 당시 유대인 대부분이 식민지 생활로 인해 가난한 생활을 하던 것과 대조적으로 그의 재산이 아주 많았음을 암시하며, 동시에 이것은 부정직한 방법으로 그가 부를 축적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루카 복음 19장 3절에 '그가 ~ 애썼지만'에 해당하는 '에제테이'(ezetei; he sought)는 '집요하게 찾아'라는 뜻이 있는 '제테오'(zeteo)의 미완료 능동태이다.

희랍에서 미완료는 계속과 반복을 나타내므로, 이것은 자캐오가 능동적으로 '계속해서 찾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 단어 뒤에 '보려고'로 번역된 부정사 '이데인'(idein; to see)이 따르고 있는데, 이것은 '보기 위해 계속해서 찾고 있었다'는 뜻이다.

자캐오는 키가 작은 신체적 장애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라는 환경적 장애로 말미암아 난관에 부딪혔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얼굴을 보고자 계속적으로 노력했음을 말해준다.

 

자캐오는 자신들을 경멸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함께 친구가 되어 주시며, 병을 고쳐주실 뿐만 아니라 죄도 용서해주시는 권세도 갖고 계시다는 소문도 들었기에,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을 만남으로 이러한 외롭고 수치스런 상황에서 구원받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고 본다.

 

자캐오는 가까이에서 지나가고 있는 예수님을 보지 못하게 하는 두 가지 장애 요인, 즉 수많은 군중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 접근하기 어려운 것과, 자신의 키가 작음에서 오는 난관을 극복하고자 두 가지 행동을 한다.

 

첫째로 군중들에 의해 둘러싸인 예수님 보다 '앞질러 달려가는 것'이다.

여기서 '달려가'로 번역된 '프로드라몬'(prodramon; he ran)은 능동태 분사인데, 이것은 예수님을 간절히 보기를 원하는 자신의 열망과 더불어, 결단을 내린 후 즉시 행동에 옮기는 강한 의지를 잘 보여준다.

 

둘째로 그는 키가 작아 예수님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돌무화나무 위로 올라간다.'

'올라갔다'에 해당하는 '아네베'(anebe; and climbed up)는 자캐오의 적극적인 행동을 강조할 뿐 아니라 믿는 이들이 본받아야 할 믿음의 모델이 된다.

 

한편, 자캐오가 올라간 '돌무화과나무'에 해당하는 '쉬코모레안'(sykomorean; a sycamore-fig tree)는 루카 복음 17장 6절에 나오는 '돌무화과나무'('뽕나무'; '모폰'; mopon)와는 다른 나무이다.

 

이 나무는 일명 '이집트 무화과 나무', '시카모어 무화과나무', '백뽕나무'로 불리는데, 잎사귀는 뽕나무와 비슷하고 열매는 무화과와 비슷하며, 가지가 사람이 올라가기 쉬운 형태로 뻗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20241119일 화요일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나니아 연대기로 유명한 소설가인 C. S. 루이스가 쓴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의 설정과 내용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주인공 스크루테이프라는 노련한 악마가 젊고 미숙한 악마인 조카 웜우드에게 영혼을 유혹하는 요령을 가르쳐 주는 이야기입니다. 이를 통하여 악마가 어떻게 인간을 유혹하고, 어떤 상황을 즐거워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이것입니다.

환자(영혼)에게 모든 일에서 중용을 지키라고 말해 주어라. ‘종교는 지나치지 않아야 좋은 것이라고 믿게만 하면 그의 영혼에 대해서는 마음 푹 놓아도 좋아. 중용을 지키는 종교는 우리한테 무교나 마찬가지니까. 아니, 무교보다 훨씬 더 즐겁지”(스크루테이프의 편지, 8).

빠짐 없이 주일 미사에 참례하는 신앙인이라 하더라도 그의 신앙이 점잖게 중용을 지키고 있다면, 그것은 신앙이 없는 것보다 오히려 더 나쁠 수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의 요한 묵시록에서 주님께서는 바로 이 점을 안타까워하십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3,15)

라오디케이아 교회는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였지만, 그 말씀에 온전히 헌신하여 살아가지 않았습니다.

이와 반대로 복음의 자캐오는 아주 차가웠지만, 예수님을 만난 뒤 아주 뜨거워진 사람입니다.

그는 세리이고 죄인이었지만, 그리스도를 자기 집으로 맞아들인 뒤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고 자기 죄를 네 곱절로 기워 갚겠다는 결단을 내립니다.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하느님께 온전히 나를 맡기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삶의 방향을 정하고, 그 삶에 헌신하겠다는 뜨거운 결단입니다.

 

(최정훈 바오로 신부)

 

 



 

 

2024년 11월 19일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내 밖에 문을 먼저 열어라.

 

독서(묵시3,14-22)

14 라오디케이아 교회의 천사에게 써 보내라. ‘아멘 그 자체이고 성실하고 참된 증인이며 하느님 창조의 근원(하르케-시작)인 이가 말한다.

= 아멘(확실하고 참되다. 이루어지다.) (히브1,2-3)

 

15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 16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 뜨거운 것, 불 기둥. 차가운 것, 구름 기둥으로 모두 하느님의 구원의 뜻, 하나의 계약이다. (탈출13,21) 말씀 안에 하느님의 뜻을 깨닫게 되면 그 하느님의 뜻을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된다. 곧 내 뜻을 위한 그 미지근한 신앙을 살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17 나는 부자(페플리테카내힘능력)로서 풍족하여 모자람이 없다.′ 하고 네가 말하지만사실은 비참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깨닫지 못한다.

= 모든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내린다. (1코린4,7) 재물과 의지, 모두...., 곧 자기 뜻, 의를 위한 신앙이 비참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 멀고 벌거벗은 미지근한 신앙임을 깨달아라. 하심이다.

 

(호세13,6) 6 내가 먹여 주자 그들은 배가 불렀고 배가 부르자 마음이 우쭐해져 나를 잊어버렸다.

= 미지근한 신앙을 벗어나는 세가지 처방을 주신다.

 

18 내가 너에게 권한다. *나에게서 불로 정련된 금을 사서 부자가 되고,* 흰옷을 사 입어 너의 수치스러운 알몸이 드러나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제대로 볼 수 있게 하여라.

① 예수님에게서 ‘불로 정련된 금’을 사는 것, 허락된 시련에 감사하는 것이다.

 

(1베드1,6-7) 6 그러니 즐거워하십시오여러분이 지금 얼마 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며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7 그러나 그것은 불로 단련을 받고도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훨씬 값진 여러분의 믿음의 순수성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밝혀져여러분이 찬양과 영광과 영예를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 예수님은 인간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문제를 해결해 주시러 오신 것이 아니라, 불로 단련을 하여 깨끗하게 하시러 오셨다.(즈카13,8-9) 깨끗해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님에게서 사는 정련된 금이다. 

곧 주님께서 겪으신 고난이다. 배반 당하심, 낮아지심, 모함 받으심, 당신을 죽여 다른 이를 살리심이다. 그 주님의 정련된 금을 사는 것, 구원의 진리로 믿는 것이다.

 

② ‘힌 옷을 사 입는 것, 예수님의 흰 옷을 입는 것이다.(마태17,2) 곧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로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의롭게 하시려고 의(義)의 흰 옷을 입히시려고 사흗날에 부활하심을 믿는 것이다.(로마4,25) 그것이 우리에게 감사, 희망인 것이다.

 

(1베드1,13) 13 그러므로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려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받을 은총에 여러분의 모든 희망을 거십시오.

 

③ 안약을 사서 눈에 바르는 것, 눈이 열리도록(깨닫도록)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침, 말씀을 바르는 것이다.

 

(마르8,23-25) 23 그분께서는 그 눈먼 이의 손을 잡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그의 두 눈에 침을 바르시고 그에게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보이느냐?” 하고 물으셨다. 24 그는 앞을 쳐다보며, “사람들이 보입니다그런데 걸어다니는 나무처럼 보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5 그분께서 다시 그의 두 눈에 손을 얹으시니 그가 똑똑히 보게 되었다그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된 것이다.

= 창조의 침(말씀)이며 손이다. 곧 새 창조를 하셨음이다.

그러니까 내가 가치로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버리는 시련으로 그리스도를 담고, 입고, 그분 안에서 새 사람, 새 것으로 새 창조가 되는 것, 그것을 위한 신앙이 아닌 것이 미지근한 신앙이다.

 

19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나는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한다그러므로 열성을 다하고 회개하여라.

=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은 주님께서 사랑하신다는 증거다. 우리는 가치로 가지고 있는 것들을 스스로 버리지 못한다. 그래서 버릴 수 있도록 책망과 징계라는 시련, 고난을, 그리고 죄까지도 허락하신다.(로마3,26) 하늘의 용서, 자유,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열성과 회개(돌아옴)의 삶을 살아야 한다.

 

20 보라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 문(門), 우리의 집, 문, 마음이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 맑은 공기를 마시려고 창문을 열면 자동으로 맑은 공기가 내 안으로 밀고 들어온다. 그렇듯, 내 밖에 문을 먼저 열어야 한다. 곧 문은 예수님의 집, 문을 말씀하심이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의 영(靈), 맑은 새 영으로 우리의 마음을 뚫고 들어오신다.(예제11,19 요한20,26참조)

 

(루가12,36) 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 먼저, 주님이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곧 먼저 말씀 안에 머물러야 예수님의 실체이신 창조의 근원, 시작이신 그리스도와 함께할 수 있음이다.

 

21 승리(믿는)하는 사람은내가 승리한 뒤에 내 아버지의 어좌에 그분과 함께 앉은 것처럼내 어좌에 나와 함께 앉게 해 주겠다. 22 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 보호자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들의 마음눈에 충만하시어 하느님의 뜻이 되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 (마태12,46-50)24.11.20조회 57[연중 제33주간 수요일] 미나(은화)의 비유 (루카19,11ㄴ-28)24.11.20조회 22[연중 제33주간 화요일] 세관장 자케오 (루카19,1-10)24.11.18조회 32[연중 제33주간 월요일] 예리코 소경치유 (루카18,35-43)24.11.17조회 51[연중 제32주간 토요일] 올바른 판결 (루카18,1-8)24.11.15조회 17[연중 제32주간 금요일]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 (루카17,26-37)24.11.15조회 54[연중 제32주간 목요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루카17,20-25)24.11.10조회 28[연중 제32주간 수요일] 나병(癩病) 치유 (루카17,11-19)24.11.09조회 9[연중 제32주간 화요일] 종(奴)의 자세 (루카17,7-10)24.11.09조회 9[연중 제32주간 월요일] 회개하거든 용서하라.(루카17,1-6)24.11.09조회 11[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성전정화 (요한2,13-22)24.11.08조회 11[연중 제31주간 금요일]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루카16,1-8)24.11.07조회 10[연중 제31주간 목요일] 잃은 양의 비유 (루카15,1-10)24.11.06조회 12[연중 제31주간 수요일] 제자의 길 (루카14,25-33)24.11.05조회 12[연중 제31주간 화요일] 초대 받은 나 (루카14,15-24)24.11.04조회 12[위령의 날/첫째 미사] 하늘에서 받을 상 (마태5,1-12ㄴ)24.11.01조회 11[모든 성인 대축일] 하늘에서 받을 상 (진복 팔단) (마태5,1-12ㄴ)24.10.31조회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