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3주간 토요일] 산 이들의 하느님 (루카20,27-40)

2024. 11. 22. 오전 8: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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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3일 토요일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산 이들의 하느님 (루카20,27-40)


   


1독서<그 두 예언자는 땅의 주민들을 괴롭혔습니다.>(묵시11,4-12)

나 요한에게 이런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여기 나의 두 증인이 있다.”

4 그들은 땅의 주님 앞에 서 있는 두 올리브 나무이며 두 등잔대입니다.

5 누가 그들을 해치려고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 그 원수들을 삼켜 버립니다. 누가 그들을 해치려고 하면, 그는 반드시 이렇게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6 그들은 자기들이 예언하는 동안 비가 내리지 않게 하늘을 닫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원할 때마다 온갖 재앙으로 이 땅을 치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7 그러나 그들이 증언을 끝내면, 지하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싸워 이기고서는 그들을 죽일 것입니다.

8 그들의 주검은 그 큰 도성의 한길에 내버려질 것입니다. 그 도성은 영적으로 소돔이라고도 하고 이집트라고도 하는데, 그곳에서 그들의 주님도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9 모든 백성과 종족과 언어와 민족에 속한 사람들이 사흘 반 동안 그들의 주검을 바라보면서, 무덤에 묻히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10 땅의 주민들은 죽은 그들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서로 선물을 보낼 것입니다. 그 두 예언자가 땅의 주민들을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11 그러나 사흘 반이 지난 뒤에 하느님에게서 생명의 숨이 나와 그들에게 들어가니, 그들이 제 발로 일어섰습니다. 그들을 쳐다본 사람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12 그 두 예언자는 하늘에서부터, “이리 올라오너라.” 하고 외치는 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원수들이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화답송>시편144,1.2.9-10(1) 나의 반석 주님은 찬미받으소서.

나의 반석 주님은 찬미받으소서. 그분은 내 손가락에 싸움을, 내 손에 전쟁을 가르치셨네.

그분은 나의 힘, 나의 산성, 나의 성채, 나의 구원자, 나의 방패, 나의 피난처, 민족들을 내 밑에 굴복시키셨네.

하느님, 당신께 새로운 노래 부르오리다. 열 줄 수금으로 찬미 노래 부르오리다. 당신은 임금들을 구원하시고, 당신 종 다윗을 구하시나이다.

 

복음<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루카20,27-40)

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28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아내를 남기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29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30 그래서 둘째가, 31 그다음에는 셋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일곱이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32 마침내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33 그러면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35 그러나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36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37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떨기나무 대목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38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39 그러자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스승님, 잘 말씀하셨습니다.” 하였다.

40 사람들은 감히 그분께 더 이상 묻지 못하였다.





 

 

2022년 11월 19일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제1독서 (묵시11,4-12)

 

"여기 나의 두 증인이 있다. 그들은 땅의 주님 앞에 서있는 두 올리브 나무이며 두 등잔대입니다. 누가 그들을 해치려고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 그 원수들을 삼켜 버립니다. 누가 그들을 해치려고 하면, 그는 반드시 이렇게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3~5)

 

하느님께서 권세를 부여하신 '두 증인' (토이스 뒤신 마르튀신;tois dysin martysin; two witnesses)는 누구인가?

묵시록 11장 3절 이하 13절에서 두 증인이 지니고 있다고 묘사된 권세는 명백히 모세와 엘리야의 행적을 상기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두 증인에 대한 언급은 모세와 엘리야 예언자를 염두에 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5절과 6절).

 

두 증인은 엘리야와 같이 원수를 불로 사르고(2열왕1,10 이하), 하늘을 닫아 비가 오지 못하게 한다(1열왕17,1).

또한 모세처럼 물을 피로 변하게 만들고(탈출7,14~18), 모든 재앙으로 땅을 칠 수 있는 권세를 지니고 있다(탈출8,12).

타볼산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나타난 이들도 역시 모세와 엘리야였다(마르9,4).

 

실제로 구약 시대 유다인들은 모세와 엘리야가 세상의 종말이라는 파국에 치닫기 전에 다시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였다(말라4,5; 신명18,18).

말라키 예언자의 예언 가운데 언급된 엘리야는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에 앞서 그의 길을 준비했던 세례자 요한에 의해 성취되었고, 신명기 18장 18절의 '너(모세)와 같은 예언자'는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되었다.

 

아울러 묵시록 11장 12절에 나오는 두 증인의 승천에 대한 묘사는 열왕기 2권 2장 11절에 묘사된 엘리야의 승천 장면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구약의 위경 '모세의 승천기'에 묘사된 모세의 면모와 결부된다.

따라서 모세와 엘리야는 본문의 두 증인의 모티브의 기초가 된다. 

즉 두 증인은 모세와 엘리야의 면모를 갖춘 또 다른 존재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두 증인'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묵시록 11장 4절에 의하면, 이 두 증인은 '두 등잔대'(촛대)이다. 묵시록에서 등잔대(촛대)는 오로지 교회를 상징한다(묵시1,12.20; 2,1). 이것은 묵시록 2장과 3장에 언급된 일곱 교회를 나타내는 일곱 등잔대를 상기시킨다.

 

일곱 등잔대가 전체로서의 교회를 상징한다면, 두 등잔대는 증거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신실한 교회를 상징한다. 왜냐하면, 둘은 증거의 신실성을 입증하기 위해 채택되는 상징적 숫자이기 때문이다(민수35,30; 신명17,6; 19,15; 마태18,16; 요한5,31; 8,17; 15,26.27).

따라서 두 증인은 모세와 엘리야와 같은 권세를 지니고 복음을 증거하는 신실한 교회 및 그 교회에 속한 신실한 하느님의 종들을 상징한다.

 

묵시록 11장 3절에 이 두 증인이 자루옷을 걸치고 천이백육십일 동안 예언한다고 되어 있다.

'자루옷'(굵은 베옷)으로 번역된 '삭쿠스'(sakkus)는 히브리어 '사크'(sak)에서 유래한 '사코스'(sakkos)의 복수형이다.

여기서는 '슬퍼하는 자가 입는 옷' 곧 '상복'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는 구약 시대에 상복을 입는 것은 애곡과 참회의 상징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옷은 회개를 촉구하는 그들의 메시지에 부합하는 것이다(예레4,8; 마태11,21).

두 증인이 전하는 예언적 메시지는 '많은 백성과 민족과 언어와 임금들'(묵시10,11)의 종말론적 운명에 대한 것으로서, 궁극적으로는 그들의 회개를 목적으로 한다.

 

한편 두 증인이 회개를 촉구하는 기간은 1,260 일이다. 이것은 묵시록 11장 2절에 언급된 마흔두 달과 같은 기간이다. 종말의 때에 교회가 비그리스도인들의 핍박에 시달릴 기간으로 상징된 '마흔두 달'은 묵시록 11장 2절을 제외하고, 묵시록 13장 5절에 다시 한번 언급된다.

 

그런데 창세기 7장 11절~8장 4절에서 5개월이 150일로 계산된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한 달을 30일로 계산한다. 그러므로 42개월은 3년 반이며, 1,260일이다.

 

묵시록에서는 마흔두 달과 동일한 기간인 1,260일이 묵시록 11장 3절과  12장 6절에 나타난다. 역시 동일한 기간을 나타내는 표현인 '일년과 이년과 반년'은 묵시록 12장 14절에 언급된다.

따라서 '마흔두 달'은 다니엘 7장 25절과 12장 7절에 언급된 '일년, 이년, 반년'과 병행한다.

 

그러니 이 기간은 실제 기간을 나타내는 것이라기 보다는, 다니엘이나 사도 요한이 이방인들이나 비그리스도인들에 의해 거룩한 예루살렘이나 교회가 짓밟히는 시기를 예언하기 위해 사용된 '묵시적 수'로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이 기간은 B.C.168년 6월부터 B.C.165년 12월까지 자행되었던 안티오쿠스 에파파네스의 예루살렘 압제 기간과 일치한다.

이 때문에 이후로 '마흔두 달'은 악이 마음대로 활개치도록 허락된 짧은 기간을 상징하는 전통적인 수가 되었다.

그리고 숫자 42는 이스라엘이 시나이 광야에서 진을 쳤던 날 수와 일치한다는 점에서 (민수33,5) 이스라엘 민족이 경험한 광야에서의 시련기를 상기할 수도 있다.

 

사도 요한은 이런 방식으로 하느님의 백성들이 겪는 환난의 기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과, 그 짧은 기간이 지난 후에는 결국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즉 42개월, 1,260일, 일년 이년 반년<전(前) 삼년 반>은 묵시록 11장 7~13절에 기술된 후(後) 삼년 반의 기간과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에 있을 종말론적 환난의 시기가 제한되어 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기간은 교회의 핍박기인 동시에 예언의 기간, 즉 교회의 복음 증거 기간이기도 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에 있을 7년 대환난기 가운데, 전(前) 삼년 반에 해당하는 이 기간동안 두 증인이 계속하여 예언할 수 있었던 것은, 그 핍박의 정도가 묵시록 11장 7절 이하에 나오는 후(後) 삼년 반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덜한 온건한 핍박기였기 때문이다.

 

'두 올리브 나무이며 두 등잔대'

 

두 증인은 '땅의 주님 앞에 서 있는 두 올리브 나무이며 두 등잔대'로 묘사된다. 

이와같은 묘사는 즈카르야 예언자의 환시와 관련된 것이 분명하다. '등잔대 곁에는 올리브 나무가 두 그루 있는데, 하나는 기름 그릇 오른쪽에 있고 다른 하나는 그 왼쪽에 있습니다' (즈카4,3).

'이것들은 온 세상의 주님 곁에 서 있는 성별된 두 사람을 뜻한다' (즈카4,14).

 

본래 즈카르야 예언자가 목격한 환시에서 등잔이난 등잔대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며(즈카4,2.3.14), 두 올리브 나무는 '예수아'(3장)와 '즈루빠벨'(4장)을 가리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는 그러한 구체적 대응 관계에 상관없이 즈카르야 예언자의 환시와 유사한 환시가 등장하며, 여기서 두 올리브 나무와 두 등잔대는 모두 교회에 대한 상징이다.

신실한 교회에 속하는 신실한 성도들은 하느님의 빛을 비추는 자들이란 의미에서 등잔대로 상징된다.

 

또한 올리브 기름이 등잔의 불을 계속 밝혀주듯이, 신실한 성도들이 생명을 주는 복음의 빛을 계속 비춘다는 점에서 올리브 나무 역시 교회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즈카르야서 4장 6절은, 즈카르야가 목격한 환시를 '권력으로도 힘으로도 되지 않고 나의 영으로만 될 수 있다.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라고 해석한다.

이것은 오직 하느님의 영만이 하느님께서 기름부은 '예수아'와 '즈루빠벨'을 통해 그의 성전을 완공하실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직 하느님의 영이신 성령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교회의 복음 증거를 위한 권능을 제공하신다.

또한 '땅의 주님 앞에'라는 어구는 '온 세상의 주님 앞에'라는 의미로서 온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통치권과 지배권을 나타낸다.

따라서 세말의 교회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무장하고서 세상 만물에 대한 주권을 소유하신 하느님 앞에서 복음의 증인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존재이다.

 

'누가 그들을 해치려고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 그 원수들을 삼켜 버립니다.  누가 그들을 해치려고 하면 그는 반드시 이렇게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5).

 

세상의 어떤 존재도 성령 충만함으로 무장하고 온 세상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느님 앞에 서 있는 존재를 해치지 못한다.

만약 누구든지 신실한 교회 및 그 교회에 속한 신실한 하느님의 종들로 상징되는 두 증인을 해치려 한다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 그 원수들을 소멸할 것이다.

 

두 증인의 입에서 불이 나오는 광경은 열왕기 2권 1장 10절,12절에서 엘리야의 적대자였던 아하즈야 왕의 50명의 부하가 두 번이나 하늘에서 내려온 불로 삼켜진 사건을 연상시킨다.

또한 민수기 4장 35절에서는 하느님의 종 모세를 대적하는 자들이 하늘에서 내려온 불로 심판받았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본문에 언급된 '불'(퓌르; pyr)은 종말의 대환난기에 하느님의 교회가 하느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보호될 것임을 암시한다.

 

두 증인의 입에서 불이 나오는 것 역시 상징적인 표현이라면, 이것은 "그러므로 주 만군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들이 이런 말을 했으니 나 이제, 내 말이 너의 입에서 불이 되게 하고 이 백성은 장작이 되게 하여 그 불이 그들을 삼키게 하리라'"(예레5,14)는 표현과 관련될 것이다.

 

그렇다면, 두 증인의 입에서부터 나오는 불은 예언자의 말씀 선포를 비유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두 증인의 활동이 물리적인 살인 행위와 전혀 관련이 없다는 점은 이와같은 견해를 지지한다.

 

'두 증인의 입에서 나오는 불은 그 원수들을 소멸할 것이다.'

 

'삼켜 버립니다'로 번역된 '카테스티에이'(katesthiei)는 '먹어버리다'라는 뜻을 지닌 '카테스티오'(katestio)의 현재형으로서, 신실한 교회나 이 교회에 속한 신실한 하느님의 종들을 상징하는 두 증인을 해치려는 원수가, 하느님의 소멸하는 불, 곧 초자연적인 하느님의 능력이나 교회가 전하는 말씀의 능력으로 파괴될 것임을 드러낸다.

 

'또한 그들은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이다.'

 

여기서 '반드시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로 번역된 '데이~아폭탄테나이'(dei~apoktanthenai)는 필연이나 의무의 뜻을 함축하는 '데이'(dei; must)와 '살해하다'라는 뜻을 지닌 '아폭테이노'(apokteino)의 부정 과거 수동태 부정사가 상관적으로 사용된 것으로서 그들의 죽음이 필연적임을 보여준다.

이것은 지상에서 전투하는 교회의 복음 선포 능력이 얼마나 막강한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김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 복음은 부활 논쟁 장면을 소개합니다.

등장인물은 사두가이 몇 사람, 율법 학자 몇 사람, 예수님이며, 구성은 ‘액자형 구조’입니다.

등장인물들의 대화 안에 다른 이야기들이 끼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두가이들은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 아내를 남기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라는 모세의 율법 일부를 근거로 일곱 형제 이야기를 예로 듭니다.

일곱 형제가 한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는데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였다면, 부활 때 그 여인은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는 질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가이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예시입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모순을 지적하시려고 다른 이야기를 꺼내십니다.

사두가이들이 모세의 율법 일부를 근거로 논쟁을 시작하였다면, 예수님께서는 모세의 떨기나무 발현 이야기를 끌어오십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당신을 드러내시고 이름까지 알려 주신 구약 성경의 가장 탁월한 계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여러 성조의 하느님이심을 밝히셨습니다.

이로써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시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심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부활을 받아들였던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동조하는 것으로 전체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복음 내용을 우리 자신에게도 적용해 봅니다.

나의 옳음과 정당함을 주장하려고 인위적으로 이야기를 끌어다 사용하는 사두가이들의 모습과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는 못하지만 경쟁 상대를 끌어내리려고 그분께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율법 학자들의 모습 가운데 우리는 어느 쪽에 가깝습니까?

나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김상우 바오로 신부)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다.

 

복음(루카20,27-40)

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 우리(나)는 믿는가? 부활을 준비하는 신앙을 사는가? 현세의 삶을 위한 신앙을 사는 것은 아닌지요.

 

28 “스승님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아내를 남기고 죽으면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자식아들)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29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30 그래서 둘째가, 31 그다음에는 셋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습니다그렇게 일곱이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32 마침내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33 그러면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35 그러나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36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 하느님 나라의 성가정 모습이다. 영원한 죽음에 갇혀야 할 죄인이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풀려나 그분과 혼인하러 가는 하느님 나라다.

 

(마태22,2) 2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37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은모세도 떨기나무 대목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이사악의 하느님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38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 아브라함은 아들 이사악을 *낳았고, 이사악은 아들 야곱을 *낳았다. 그리고 야곱은 열 두 아들을 *낳았다. - ‘아들을 낳았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의 뜻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하느님의 뜻을 깨달은 이들을 ‘살았다’고 하는 것이고, 그 깨달아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라는 말씀이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을 당신의 자식(산 이들)으로 보지만 인간은 하느님의 뜻을 깨달으려 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위한 삶을 살아가려 하기에 스스로 죽은 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세가 반드시 후사 - 자식(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성경은 하느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 이들을 ‘죽었다.’고 ‘죄인, 짐승’이라고 하신다.

 

(이사1,2-3) 2 하늘아들어라땅아귀를 기울여라!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내가 아들들을 기르고 키웠더니 그들은 도리어 나를 거역하였다. 3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제 주인이 놓아 준 구유를 알건만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

= 모든 피조물, 우주 만물이 하느님의 뜻을 위해 그분 뜻대로 살아가며 움직이지만, 인간만이 하느님의 뜻을 거역(拒逆)하며 원수로 살아간다고 하신다.

 

39 그러자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스승님잘 말씀하셨습니다.” 하였다. 40 사람들은 감히 그분께 더 이상 묻지 못하였다.

 

* 그러면 우리가 깨달아야 할(믿어야 할) 하느님의 뜻(일)은? 자신의 뜻, 현세의 것을 이루려 육의 양식을 위해 열심을 부리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

(요한6,27) 27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죄를 품으시고 대신 죽고 살리시어, 하늘의 새 생명으로 영원히 살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그 약속의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님 이시다.(요한1,9-14참조) 그러나 그들은 알아듣지 못한다. 믿으려, 깨달으려 하지 않고 자신들의 행위를 앞세운다.

 

(요한6,28-29) 28 그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2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죄인(짐승)들의 생명의 양식으로 보내심을 믿는 것이다.

 

(요한6,38-40) 38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39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40 내 아버지의 뜻은 또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 아버지의 뜻, 그 뜻에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을 진리로 깨달아 믿는 것이 구원의 길이다.

 

(갈라1,4) 4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우리 아버지의 뜻에 따라 우리를 지금의 이 악한 세상에서 구해 내시려고우리 죄 때문에 당신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 그래서 우리도 성모 마리아처럼 아들을 낳아야(깨달아야)한다.

 

(루가2,7) 7 첫아들을 낳았다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 짐승들의 먹이통에 누우신, 깨끗하고 따듯한 여관에 들어가지 못한, 그 작은 아기가 구원자임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곧 구유의 아기가 하느님의 뜻으로 구원의 진리, 새 계약의 말씀으로 오신 구원자 그리스도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루가2,34) ~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 쓰러지게 하신 후 일어나게 하시는, 곧 육의 교만을 죽이시고 영으로 살리시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사람들의 반대를 받는 그분이, ‘구원의 진리’이심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산 자,’ 곧 하느님의 자식(아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간다고 그 길이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 구원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오늘 독서(1마카베오 6,13) 안티오코스처럼 세상의 권력(명예, 힘)을 떨칠 때에 쓸모 있고 사랑 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간다면 영원한 죽음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육의 영광을 위해 따르게 되면, 곧 현세를 위해 믿는다면 그와 같이 되는 것이다.

 

(마르8,31-33) 31 예수님께서는 그 뒤에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대속)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32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히 하셨다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꾸짖다)하기 시작하였다. 3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내게서 물러가라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셨다.

= 하느님의 일(뜻)을 위한 죽음이다. 성경의 모든 말씀과 예수님께서 하신 기적과 표징등, 모든 일이 땅의 일, 사람의 현세의 일이 아니라 하늘의 일, 하느님 나라의 일임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곧 어제 확인했듯, ‘믿음의 목적’은 영혼의 구원이며, 그 우리의 구원을 위해 당신 아드님을 속죄 제물로 내주신,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하느님의 사랑, 자비를 깨닫고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로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 그들이 ‘산 이들’인 것이고, ‘그들의 하느님’ 이시다.

 

(로마6,3-5) 3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우리가 모두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4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우리도 새로운 삶(하늘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5 사실 우리가 그분처럼 죽어 그분과 결합되었다면부활 때에도 *분명히 그리될 것입니다. - 아멘

 

*본문 38절을 다시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말씀을 곰곰이 되새기는 기도로 하느님의 뜻을 깨닫는 자녀가 되게 하소서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와 같이 땅(흙인 우리)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연중 제33주간 토요일복음(루카20,27-40)

 

끝은 시작입니다. 죽음은 마지막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시작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미 생사를 넘어 오늘 지금 여기서 영원한 삶을 삽니다. 주님을 닮아 아름답고 기쁘게 살아갑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분명히 죽음이 마지막이 아님을 밝히십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그러나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 받은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34-36)

 

이미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된 하늘 나라입니다. 수도자들은 물론 믿는 이들은 이미 주님의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로서 천사들처럼 천상 생활을 앞당겨 살아갑니다. 

 

삶이나 자연을 통해 이런저런 아름다움을 체험할 때 천국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는 생각도 어렴풋이 듭니다. 사실 세상의 아름다움은 천상 아름다움의 희미한 그림자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니 지상에서 이미 하늘 나라 천국을 살아야 합니다. 바로 파스카의 삶입니다.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십니다. 

사실 하느님께는 믿음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 있습니다. 사람 눈에 죽음이지 하느님 눈에는 모두가 당신 안에 살아 있는 사람들입니다. 

주님 안에서 하늘 나라의 영원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5,10). 아멘.

 

 





 

   

2024년 11월 23일 토요일

[연중 제33주간 토요일오늘의 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1독서에서는 두 증인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이 두 증인은 바로 모세와 엘리야를 가리킵니다.

예언하는 동안 비가 내리지 않게 하늘을 닫는 권한”(묵시 11,6)은 아합 임금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삼 년 동안 비와 이슬이 내리지 않게 한 엘리야를 떠올리게 하고(1열왕 17,1 참조),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원할 때마다 온갖 재앙으로 이 땅을 치는 권한”(묵시 11,6)을 가진 예언자는 이집트에 열 가지 재앙을 일으킨 모세를 떠올리게 합니다(탈출 7,14-12,13 참조).

이 두 예언자는 주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하며 자신의 사명을 다하였지만사명을 마친 뒤 지하의 짐승들에게 죽임을 당하고도성 한길 가에 내버려집니다.

사흘 반 동안 무덤에 묻히지도 못합니다.

마치 악이 승리한 듯 보이고이 예언자들은 조롱거리가 됩니다.

불의한 자들은 예언자들의 죽음에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예언자들을 일으키시고 하늘로 불러올리시어그들의 승리를 선언하실 것입니다.

이처럼 부활은 공정과 정의를 실현하실 하느님에 대한 희망입니다.

부활은 우리 삶의 마지막에 결국 선이 승리하고 악이 심판받으며 모든 것이 질서 잡힐 것이라는 희망입니다.

의인이 고통받고 악인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을 해결하실 분은 하느님뿐이십니다.

부활이 없다면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노력은 아무 쓸모가 없을지 모릅니다.

하느님께서 계심과 그분께서 이루실 하느님 나라는 지금의 우리의 노력을 의미 있게 합니다.

부활에 대한 전망은 이 세상에서 정의를 위한 작은 노력이비록 큰 열매를 맺지 못하더라도완성으로 나아가는 밑거름이라는 것을 보증해 줍니다.

 

(최정훈 바오로 신부)

 

 

 

 


2022년 11월 19일[연중 제33주간 토요일]

 

증인(證人과 순교(殉敎)는 같은 의미다.

 

독서(묵시11,3-12)

나는 나의 두 증인을 내세워 *천이백육십 일 동안 자루옷(상복)을 걸치고 예언하게 할 것이다.”

천이백육십 일(삼년 반. 42. 70주간예수님의 공생활 수다곧 죽음을 각오한 복음 선포다.(루가10,3)

 

그들은 땅의 주님 앞에 서 있는 두 올리브 나무이며 두 등잔대입니다.

= 땅의 주님? 하늘나라께서 땅(세상)의 주인으로 오신 주님이시다. 두 증인은 하느님의 구원의 계약인 구약과 신약을 뜻하며 그 계약의 말씀을 받은 교회다. *나무(스타오로스- 계약) *등잔대(빛인 교회)

 

(즈카4,11-12.14) 11 나는 그 천사에게 물었다. “등잔대 오른쪽과 왼쪽에 있는 올리브 나무 두 그루는 무엇입니까?” 12 나는 다시 그에게 물었다. “두 금 대롱으로 금빛 기름을 흘려보내는 저 올리브 나무 가지 두 개는 무엇입니까?” 14 천사가 이것들은 온 세상의 주님 곁에 서 있는 성별된 두 사람을 뜻한다.” 하고 말하였다.

= 그리스도인, 우리 각자가 세상에서 성별, 구별되어 하느님의 구원의 약속, 계약의 말씀을 받은 두 증인이며 교회다. 곧 하늘의 금빛 기름(그리스도)을 흘려보내는(전하는) 예언자들인 것이다.

 

누가 그들을 해치려고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 그 원수들을 삼켜 버립니다누가 그들을 해치려고 하면그는 반드시 이렇게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 해치려하는 자들, 곧 적대자, 불의를 말씀이 불이 되어 태우신다.(예레5,14 히브2,19) 말씀을 잘라내는 칼로도 표현 하셨듯이 불의를 태우시고 잘라 없애심, 정의다.

 

그들은 자기들이 예언하는 동안 비가 내리지 않게 하늘을 닫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또한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원할 때마다 온갖 재앙으로 이 땅을 치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 탈출, 구출, 구원, 그 하느님의 일, 그 일의 권한을 받은 엘리야와 모세의 모습이다. 곧 교회가 해야 할 일이며, 교회가 받은 권한이다. 하늘나라이신 그리스도를 생명의 빛, 진리로 전(선포)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들이 증언을 끝내면지하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싸워 *이기고서는 그들을 죽일 것입니다.

= 주님의 말씀을 전(증언)하는 이들은 땅(세상)에서는 지게 되어있다. 세상이 그릇되다, 악하다고 말하기 때문이다.(요한16,8) 그 그릇된 세상에서는 그 그릇됨이 세상의 힘, 영광이기에 세상이 승리한다.(필리3,19) 진리가 죽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하늘의 진짜 승리다.)

그래서 진리이신 예수께서 죽으셨고, 두 증인의 삶인 교회에게 그 죽음을 배우라고 하시는 것이다. 곧 핍박을 각오하라는 것이다.

 

(요한7,7) 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할 수는 없다그러나 세상은 나를 미워한다내가 세상을 두고 그 일이 악하다고 증언하기 때문이다.

 

(요한15,19) 19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갈라5,24) 24 그리스도 예수님께 속한 이들은 자기 육(세상)을 그 욕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갈라2,19) 19 나는 하느님을 위하여 살려고율법과 관련해서는 이미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었습니다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들의 주검은 그 큰 도성의 한길에 내버려질 것입니다그 도성은 영적으로 소돔이라고도 하고 이집트라고도 하는데그곳에서 그들의 주님도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 소돔, 이집트, 모두 하느님의 뜻을 적대하는 율법, 세상이다. 곧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예수님처럼, 땅에 대하여는 죽어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죽는 것이 참 승리다. 곧 육적 자아가 죽고 영으로 살아나는 승리다.

 

모든 백성과 종족과 언어와 민족에 속한 사람들이 사흘 반 동안 그들의 주검을 바라보면서무덤에 묻히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10 땅의 주민들은 죽은 그들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서로 선물을 보낼 것입니다그 두 예언자가 땅의 주민들을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 예언자가 전한 말, 곧 주님의 말씀은 땅(세상)에게는 괴롭히는 말로 들린다. 그들의 뜻, 욕망을 부수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예언자의 죽음이 세상, 율법, 그들에게는 기쁜 소식인 것이다.

 

11 그러나 사흘 반이 지난 뒤에 하느님에게서 생명의 숨이 나와 그들에게 들어가니그들이 제 발로 일어섰습니다그들을 쳐다본 사람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 그리스도의 사람은 하느님의 영광을 본다.

 

12 그 두 예언자는 하늘에서부터, “이리 올라오너라.” 하고 외치는 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그리하여 그들은 원수들이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 구름은 하느님의 약속, 영광의 현존을 뜻한다.(창세9,13 탈출13,21 16,10 마태17,5) 교회는 그 하느님의 영광 속으로 들어간다.

 

(묵시14,13) 13 나는 또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이들은 행복하다.’고 기록하여라.” 하고 하늘에서 울려오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그러자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그들은 고생 끝에 이제 안식을 누릴 것이다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공부한 글~

교회(敎會 에글레시아- 밖으로 불러냄을 받는다.) 세상 밖으로 불림을 받은, 곧 세상과 분리된 이들이 모인 곳이 교회다. 교회는 하느님으로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받는 은총, 은혜의 선물, 그것들을 풀어내어 그리스도를 진리로 세우는 것이지, 자신들에게 필요한 어떤 것을 얻어 내겠다는 열망으로 모여서 자신들에게 유익이 되는 것을 찾아내는, 그리고 감동을 받고 나를 존중해 주고 만족시켜 주는 그러한 것들을 바라는 이들이 모인 곳을 교회라 하지 않는다. 그런 것들로는 ‘왜 진정으로 행복할 수 없는가?’를 배우라고 주어진 것이 교회다.

그리스도인(人), 성도(聖徒)는 이 땅을 잠시 살면서 세상적 명성과 부를 쌓아서 세상적인 즐거움과 편안함을 추구하도록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느님과 함께하는 것과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것이 진짜 행복, 승리라는 것을 경험하며 배우고 가는 것이다.

 

(에페1,22-23) 22 또한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시고만물 위에 계신 그분을 교회에 머리로 주셨습니다. 2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습니다.

 

☨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그리스도로 그리스도 안에서 두 증인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늘 나(우리교회)에 충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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