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7주간 월요일]벙어리 치유 (마르코 9,14-29)

2017. 2. 20. 오전 5:2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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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7주간 월요일]벙어리 치유 (마르코 9,14-29)


집회서의 저자는, 모든 지혜는 주님에게서 오며, 주님께서는 당신을 보여 주실 이들에게 지혜를 베푸시어 당신을 알아보게 하신다고 한다. (집회 1,1-10)
1 모든 지혜는 주님에게서 오고, 영원히 주님과 함께 있다.
2 누가 바다의 모래와 빗방울과 영원의 날들을 셀 수 있으랴? 3 누가 하늘의 높이와 땅의 넓이를, 심연과 지혜를 헤아릴 수 있으랴?
4 지혜는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창조되었고, 명철한 지각도 영원으로부터 창조되었다. 5 지혜의 근원은 하늘에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이며, 지혜의 길은 영원한 계명이다.
6 지혜의 뿌리가 누구에게 계시되었으며, 지혜의 놀라운 업적을 누가 알았느냐? 7 지혜의 슬기가 누구에게 나타났으며, 지혜의 풍부한 경험을 누가 이해하였느냐?
8 지극히 경외해야 할 지혜로운 이 한 분 계시니, 당신의 옥좌에 앉으신 분이시다.
9 주님께서는 지혜를 만드시고, 알아보며 헤아리실 뿐 아니라, 그것을 당신의 모든 일에, 10 모든 피조물에게 후한 마음으로 쏟아부으셨으며,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선물로 주셨다. 주님의 사랑은 영광스러운 지혜이며, 그분께서는 당신을 보여 주실 이들에게 지혜를 베푸시어, 당신을 알아보게 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는 세대에 탄식하시며 영이 들린 아이 아버지의 호소를 듣고 더러운 영을 몰아내시고는,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고 하신다. (마르코 9,14-29)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산에서 내려와 14 다른 제자들에게 가서 보니, 그 제자들이 군중에게 둘러싸여 율법 학자들과 논쟁하고 있었다. 15 마침 군중이 모두 예수님을 보고는 몹시 놀라며 달려와 인사하였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저들과 무슨 논쟁을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7 군중 가운데 한 사람이 대답하였다. “스승님, 벙어리 영이 들린 제 아들을 스승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18 어디에서건 그 영이 아이를 사로잡기만 하면 거꾸러뜨립니다. 그러면 아이는 거품을 흘리고, 이를 갈며, 몸이 뻣뻣해집니다. 그래서 스승님의 제자들에게 저 영을 쫓아내 달라고 하였지만, 그들은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19 그러자 예수님께서, “아, 믿음이 없는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 곁에 있어야 하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아이를 내게 데려오너라.” 하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20 그래서 사람들이 아이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그 영은 예수님을 보자 곧바로 아이를 뒤흔들어 댔다. 아이는 땅에 쓰러져 거품을 흘리며 뒹굴었다.
21 예수님께서 그 아버지에게, “아이가 이렇게 된 지 얼마나 되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대답하였다.
“어릴 적부터입니다. 22 저 영이 자주 아이를 죽이려고 불 속으로도, 물속으로도 내던졌습니다. 이제 하실 수 있으면 저희를 가엾이 여겨 도와주십시오.”
23 예수님께서 그에게, “‘하실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하고 말씀하시자, 24 아이 아버지가 곧바로,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25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떼를 지어 달려드는 것을 보시고, 더러운 영을 꾸짖으며 말씀하셨다. “벙어리, 귀머거리 영아, 내가 너에게 명령한다. 그 아이에게서 나가라. 그리고 다시는 그에게 들어가지 마라.” 26 그러자 그 영이 소리를 지르며 아이를 마구 뒤흔들어 놓고 나가니, 아이는 죽은 것처럼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아이가 죽었구나.” 하였다. 27 그러나 예수님께서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아이가 일어났다.
28 그 뒤에 예수님께서 집에 들어가셨을 때에 제자들이 그분께 따로, “어째서 저희는 그 영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었다. 2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


연중 제7주간 월요일 제1독서(집회1,1-10)

집회서 1장에서 23장 머리글 지혜 찬미  집회서의 전반부에 해당된다. 집회서 1장 1절에서 21절은 집회서 전체의 서문뿐 아니라 바로 이어지는 전반부의 서문 역할을 한다.

집회서 2장에서 23장은 지혜에 관한 첫 번째 모음집으로 지혜로운 인간의 덕목들(2장1절~4장10절), 인생의 가치(4장20절~6장17절), 사회적 삶에서의 지혜 추구(7장1절~14장19절), 종교와 교리(15장11절~23장28절)가 세 편의 작은 '지혜 찬미'(4장 11~19절; 6장 18~37절; 14장 20절~15장 10절)와 서로 교차되면서 배열되고 있다. 

집회서 제1부(1,1-16,23)에서 저자는 주님을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임을 천명한다. 모든 지혜는 주님에게서 오므로 주님을 제대로 알아 모시지 않으면 그 지혜를 얻을 수 없다.

지난 번에도 이야기했지만 '지혜'라는 단어 대신에 '예수(그리스도)'를 넣어 묵상해도 좋다. 구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지혜' 혹은 하느님의 '말씀'으로 계시된다.  

인간인 내가 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생각했을 때 내 자신에 대한 깨달음(생각 혹은 인식, 지혜)가 생긴다. 그러나 이 깨달음(생각 혹은 인식, 지혜)는 불완전한 인간의 것이기에 바람처럼 휙 지나가는 지성(지능)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무한히 완전하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 자신에 대해 생각을 하셨다고 가정하자. 그럴 때 이 생각(깨달음 혹은 인식, 지혜)은 너무나도 완전하여 성부 하느님과 똑같은 위격(persona)을 갖게 된다. 

완전하고 충실한 표현일수록 그 본형(원형)에 가깝듯이 또 하나의 위격을 갖게 된다. 위격(persona; personality)이란 지성과 (자유)의지가 있는 실존으로서 자기 행위에 도덕적 책임을 질 수 있는 행위의 주체(subject)말한다. 그러니까 위격은 사람(인격)이상 마귀, 천사, 하느님께만 해당되는 것이다.   

여기서 생각(깨달음 혹은 인식, 지혜)는 내적인 언어이다. 생각한 것이 말로써 밖으로 표현된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생각(깨달음 혹은 인식, 지혜)은 하느님의 말씀이 된다. 그래서 구약에서 천주 성자는 하느님의 '지혜' 혹은 '말씀'으로 표현되고 계시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혜' 대신 '예수(그리스도)'를 넣어 묵상해도 좋은 것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보여주실 이들에게 지혜를 베푸시어, 당신을 알아보게 하신다."

우리 인생의 여정에서 홍해와 요르단 강 같은 바다가 앞에 가로막혀 있고, 예리고성과 같은 난공불락의 성벽이 앞에 버티고 있어도 시간의 주재자이신 주님, 인간 생명의 절대권을 가지신 주님께 간절히 기도를 하고 봉헌을 하면서 맡기면, 제가 해결되는 기도의 응답을 받게 된다.

여기서 지혜는 그렇게 고대하던 기쁨의 기도의 응답이요, 문제 해결의 마스터 키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씀이다.


전삼용 요셉 신부 / 연중 제7주간 월요일 - 믿음과 기도

<믿음>


“그들이 다른 제자들에게 가서 보니,
그 제자들이 군중에게 둘러싸여 율법 학자들과 논쟁하고 있었다.
마침 군중이 모두 예수님을 보고는 몹시 놀라며 달려와 인사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저들과 무슨 논쟁을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군중 가운데 한 사람이 대답하였다.
‘스승님, 벙어리 영이 들린 제 아들을 스승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 스승님의 제자들에게 저 영을 쫓아내 달라고 하였지만,
그들은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마르 9,14-18)”


예수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셔서
세 제자에게 당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시는 동안에(마르 9,2-10)
다른 제자들은 산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악령 들린 아들을 데리고 왔고,
예수님께서 안 계시자 제자들에게 악령을 쫓아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으로부터 악령에 대한 권한을 받았고(마르 6,7),
그 권한으로 많은 마귀를 쫓아냈었습니다(마르 6,13).
그런데 그들은 악령을 쫓아내지 못했고, 아마도 많이 당황했을 것입니다.
또 그 상황을 본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을 사이비 취급했을 것이고,
제자들은 반박하면서, 율법 학자들과 논쟁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아이 아버지는 자기 아이의 상태를 설명하면서 예수님께 간청합니다.
“... 이제 하실 수 있으면 저희를 가엾이 여겨 도와주십시오(마르 9,22).”
그는 제자들이 악령을 쫓아내지 못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권능에 대해서도 의심하고 있습니다.
‘하실 수 있으면’이라는 말은 그가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도 바로 그 점을 지적하십니다.
“‘하실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르 9,23).”
예수님을 믿지도 않으면서 예수님께 도와달라고 간청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여기서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라는 말씀은,
“믿기만 하면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모든 것이 가능한 분이신 하느님을 믿어라.” 라는 뜻입니다.
또 이 말씀은, 당신이 하느님과 같은 분임을 암시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아이 아버지가 곧바로,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외쳤다(마르 9,24).”
여기서 ‘곧바로, 외쳤다.’는 말은, 그의 간절한 심정을 나타냅니다.
그는 자신이 예수님께 도와달라고 간청하면서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모순이고 잘못이라는 것을 바로 깨달았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라는 말은, 뜻으로는 “저는 믿겠습니다.”입니다.
(또는 “믿으려고 노력하겠습니다.”입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를 원문대로 직역하면,
“저의 불신앙을 도와주십시오.”입니다.
지금 그가 청하는 것은, ‘믿음의 은총’입니다.
(‘치유의 은총’을 청하는 일은 잠시 뒤로 미루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말 번역만 놓고 보면,
“저는 믿습니다.” 라는 말과 “믿음이 없는 저를...”이라는 말은 서로 모순됩니다.
또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라는 번역은,
“저에게 믿음이 없지만 그래도 저의 간청을 들어주십시오.”
로 오해하기가 쉬운 번역입니다.
따라서 별로 좋은 번역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악령 들린 그 아이의 믿음이 아니라,
아이 아버지의 믿음이 강조되고 있다는 점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치유의 은총이 필요한 사람은 아이 아버지가 아니라 아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도와달라고 간청한 사람은 아이가 아니라 아이 아버지입니다.
믿음을 가져야 할 사람은 간청하는 사람입니다.
당장 은총이 필요한 사람은 자기가 아니라고 해도...
(나의 믿음이 내 병을 고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병을 고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간청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간청할 수도 있습니다.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서 바치는 기도가 좋은 예입니다.
회개해야 할 그 ‘죄인들’은 예수님을 모르거나 안 믿고 있어도,
기도를 바치는 내가 제대로 믿고 기도한다면,
예수님께서 그 죄인들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은 자비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아이 아버지의 믿음과 상관없이 그 아이를 고쳐 주셨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 아이 아버지의 믿음을 강조하신 것은,
믿어야만 그의 간청을 들어주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청하지 않은 은총까지 그에게 주기 위해서입니다.
즉 아이에게는 ‘치유의 은총’을 주셨고,
아이 아버지에게는 ‘믿음의 은총’을 주셨습니다.
(믿으려고 노력하겠다는 그의 말은 진심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말한 대로 믿으려고 노력했을 것이고, 결국 믿었을 것입니다.
악령이 쫓겨나는 것을 본 다음에야 비로소 믿게 된 것이 아니라,
그 전에 믿음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뒤에 예수님께서 집에 들어가셨을 때에 제자들이 그분께 따로,
‘어째서 저희는 그 영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마르 9,28-29)”


제자들이 악령을 쫓아내지 못한 것은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힘’이 아니라
‘자신들의 힘’으로 악령을 쫓아내려고 시도했음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악령에 대한 권한을 주신 것은,
아주 넘겨주신 것이 아니라 ‘위임’해 주신 것입니다.
말하자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권한을 대행한 것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잊어버렸고, 자신들에게 권한과 권능이 생겼다고 착각했습니다.
그 착각은 그들을 ‘믿음 없는 사람들’과 같은 사람들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 라는 말씀을,
“사람의 힘으로는 악령을 쫓아낼 수 없고,
오직 하느님(예수님)의 힘으로만 쫓아낼 수 있다.”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기도’는 하느님(예수님)의 힘을 청하는 일입니다.
일은 하느님(예수님)께서 하시는 것이고, 우리는 협력자일 뿐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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